〈 29화 〉 제28 화 독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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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준의 반응을 떠보기 위해서 서준에게로 몸을 가까이 한 나는 서준의 손목을 살며시 붙잡은 다음 그의 손을 내 가슴으로 가져왔다. 그리고는 기습적으로 그의 손이 내 가슴을 주물럭거리게 했다.
내 그런 갑작스러운 행동에 그가 몹시 당황했나 보다. 언제나 초연한 모습만을 보여주던 그였다. 어딘가 속세에서 동떨어져 있는 것만 같은 평소 그의 달관한 모습으로는 상상도 못 할 정도로 그가 급박하게 몸을 뒤로 빼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덜커덕!
우당탕!
그러다 보니 그가 앉아있던 의자가 위태롭게 흔들리다가 결국 커다란 소리를 내며 뒤로 넘어졌다.
평소였다면 공공장소에서 소란을 일으키지 않도록 그가 의자가 쓰러지기 전에 붙잡았을 테지만 너무 놀란 나머지 거기에까지 신경이 미치지 못했나 보다.
한순간 뷔페 안의 모든 시선이 서준에게로 꽂혔다.
보통 사람이라면 패닉을 일으켜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었다. 무안함을 전가하기 위해 이 모든 소란의 원인 제공자인 나에게 큰소리쳐도 하등 이상할 게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서준은 곧바로 침착함을 되찾았다.
“소란을 피워 죄송합니다.”
…라고 주변을 향해 한두 번 꾸벅 허리를 공손하게 숙여 인사한 후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 이후에도 한동안 무슨 일인가 싶어 혹은 이제부터 무슨 재미있는 일이 일어나는 게 아닌가란 호기심과 기대가 어린 시선으로 힐끔힐끔 우리 쪽을 훔쳐보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금방이었다. 우리가 아무 일 없이 마치 서로 사전에 협의한 것처럼 평온한 표정으로 식사를 재개하자 그들도 이내 우리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각자 자기들 식사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주위의 관심이 옅어졌다는 판단이 서자 서준이 조금 날카로운 시선으로 날 노려보며 내게 싸늘하게 물었다.
“대체 무슨 짓이지?”
그가 진심으로 화를 내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예전의 나였다면…
스스로가 저지른 제멋대로인 행동으로 인해 그에게 조금이라도 미움받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마음이 찢어지고 위축되었을 게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오히려 그의 두 눈동자 속에 내 모습만이 비치고 있다는 지금 상황에 은밀한 희열을 느끼고 있었다.
단 한 순간.
비록 몇 분도 안 되는 이 짧은 순간뿐이지만…
지금 그의 마음은 나를 향한 분노와 내가 그에게 한 행동에 대한 의구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비록 그게 호의와는 명백하게 거리가 있어도 나에겐 상관없었다. 그저 그게 어떤 이유건 간에 내가 그를 잠시라도 이렇게 독점한다는 게 기분 좋았다.
“미안, 장난이 심했네.”
우선은 그에게 순순히 사과한다. 여자가 저자세로 나가면 아무리 화가 났더라도 억지로라도 일단은 누그러뜨릴 수밖에 없는 남자의 서글픈 본능을 이용하기 위해서였다.
아니나 다를까.
그가 한숨을 한번 크게 내쉰 뒤 어깨를 으쓱하며 다소 풀어진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정말이지…좀 봐줘. 안 그래도…”
그가 더 말하려다 퍼뜩 무언가를 깨닫고는 급하게 말끝을 흐린다.
나는…그 뒤에 이어질 말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다.
그건 그가 애써 외면하려는 것. 다른 사람에게만은…특히 이성에게는 말하고 싶지 않은 말.
하지만 굳이 나는 짓궂게 씨익 웃으며 그에게 물었다.
사모하는 남자가 곤란해하는 얼굴이 이렇게 사랑스러울 줄이야.
좀 더 그가 나 때문에 당황해하는 모습을 이 눈에 새겨두고 싶었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응? 뭐야? 뭐야?”
“아…아냐. 당황해서 말이 헛나왔어.”
그가 살짝 얼굴을 붉히며 내게서 시선을 피해 고개를 옆으로 돌린다. 그 모습이 너무도 귀여워서 순간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정말이지 좋은 걸 봤다.
‘후후…이 정도로 봐주도록 할까.’
당장이라도 코피가 날 정도로 좋은 걸 봐서 기분이 몹시 좋아졌기에 조금 관대해지기로 했다.
무엇보다도 계속 무언가에 쫓기고만 있던 것처럼 초조했던 지금까지의 나답지 않게 마음속에 무척이나 커다란 여유가 생긴 게 컸다.
우리가 평소 인식하고 있는 표층의 세계가 아닌 심상의 세계 속에서 마치 나는 그의 심장을 움켜쥐고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지금도 조금만 의식하면 내 손안에 쥐어진 채 펄떡펄떡 뛰고 있는 그의 심장을 느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내가 아주 조금 살짝만 힘을 주면 당장이라도 산산이 부서질 것만 같은 그의 연약하고 사랑스러운 심장을…
심장이란 균열이었다.
있을 리가 없는 작은 틈새였다.
서준과 혜민 두 사람이 만난 이후 지금까지 쌓아온 유대는 견고한 성벽과도 같아서 쉬이 파고들 틈이 없었다.
몸이 아무리 떨어져 있어도 마음의 거리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두 사람은 그 정도로 서로의 신뢰를 오랜 세월 공들여서 구축해왔다.
그건 한순간에 타오르다 그만큼 순식간에 꺼지는 격렬한 불꽃이 아니었다.
한 폭의 그림과도 같은 관계.
마치 동화 속에서 튀어나온 것만 같은 금슬 좋은 오래된 부부의 그것과 닮았다. 일반적인 시선으로 보았을 때 죽음이 두 사람을 갈라놓지 않는 한 그 둘을 떨어뜨리는 건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불가능하다고 여기고 ‘체념’해야만 할 정도로…
하지만 본래라면 없어야 할 것이 존재했다.
그 균열은…
두 사람의 관계를 생각해보면 그 안에서는 몹시도 사소한 것이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자연스레 메워질…
그런 무척이나 작은 균열이었다.
원래대로라면 문제 될 것이 하나도 없는…
내가 거기에 얽혀있지만 않았더라면 균열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할 정도로 작은 허점.
하지만…크고 작음은 중요하지 않았다.
정말로 중요한 건 거기에 틈이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내 독을 흘려 넣을 수 있는…
그거면 충분했다.
‘후후후…물렀군, 신혜민.’
실로 무른 행동이었다.
나는 조금 전 서준의 반응으로 확신했다.
두 사람은 아직 육체관계를 가지 않았음을.
물론…애인도 아닌 여자가 갑자기 공공장소서 자기 가슴을 만지게 한다면 서준처럼 깜짝 놀라는 게 당연했다.
하지만…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나는 그 속에서 보았다.
그건 너무도 찰나에 사라진 미약한 반응이지만 나는 놓치지 않았다.
여자의 몸을 알고 있는 남자와 그렇지 않은 남자의 무척이나 사소한 차이를 발견했다.
서준의 얼굴에서 한순간 떠올랐다가 눈도 깜빡하기 전에 사라진 것은…
바로 당혹감.
단순히 비록 그에겐 사고였을 지라도 애인이 아닌 다른 여자의 가슴을 만졌다는 사실에 당황한 반응이 아니었다.
여자의 가슴이 자신이 상상했던 것보다 아득하게 부드럽고 기분 좋다는 거에 놀란 반응이었다.
나는 그걸 곧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왜냐하면…내가 그랬으니까.
내가 처음 사장에게 봉사하기 위하여 남자의 물건을 처음으로 만졌을 때 손안에 느껴지는 남성기가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뜨겁고 딱딱해서 일순간 당황했던 나와 똑같은 반응이었으니까.
어떤 연유에선지 서준과 혜민은 아직 몸까지 하나가 된 건 아니었다.
아니, 이해하긴 한다.
아무리 몸에 좋은 음식도 지나치면 오히려 독이 된다.
신혜민이라는 여자는 남자에게 있어서 이 세상에 둘도 없는 극상의 진수성찬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극상의 진수성찬이어도 아직 여물지 못한 아이에게는 해롭기 그지없다.
아이가 눈앞에 놓여있는 천만금에 버금가는 만한전석에 눈길조차 안 주고 미음을 먹는다고 아이를 바보 취급할 사람은 없듯이…
…
신혜민이란 여자는 그 정도로 남자에게 치명적인 독이 될 수 있는 여자였다. 아니, 남자만이 아니다. 남자든 여자든 한번 그녀의 젖과 꿀을 맛보고 나면…그녀의 몸에서 헤어날 수 없겠지.
사적인 감정을 제외하더라도 나 역시 그녀를 가둬놓고 하루 종일 철저하게 망가뜨리고 싶다는 욕구가 있을 정도니까.
...
물론 서준은 아이가 아니다. 오히려 나 따위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성숙하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이야기다.
신혜민 그 규격 외의 존재와 비교하면, 아직 서준은 그녀와 자신을 품을 정도로 그릇이 완성되지 않았다고 보는 게 맞겠지.
그러니 그가 그녀의 몸에 어느 정도 빠지더라도 지장이 없을 정도로 자리를 잡을 때까진 육체관계는 잠시 뒤로 미뤘을 것이다.
…
아니, 어쩌면 그 반대일지도.
혜민이 서준에게 빠져들어 그녀가 해야만 하는 일에 지장이 생기는 걸 경계한 걸지도 모른다.
둘 다 가능성 있겠지.
어쨌든…여기서 한 가지 더 확실한 사실을 알 수 있다.
지금과 같은 두 사람의 미적지근한 관계가 그다지 남지 않았을 거란 것이다.
머지않아 서준과 혜민은 몸도 마음도 하나로 맺어진다.
서준이 사랑하는 여자를 오래 기다리게 할 리가 없으니까…….
…
이대로 두 사람이 완전히 맺어진 뒤에 갈라놓는 것도 불가능하진 않지만…애초에 그걸 전제로 움직이고 있었으니.
하지만 이젠 상황이 바뀌었다. 신혜민 그녀가 혼자서는 일어설 수 없을 정도로 보다 치명적인 상처를 입힐 수 있게 되었다.
그러려면 그 전에 그녀를 끌어내리는 게 좋았다.
…
‘여기가 승부처인가.’
내 의도를…
내 마음속에 존재하는 비수를 서준에게 결코 들켜선 안 된다.
물론 언제까지 숨길 수 있으리란 낙관적인 생각은 하지 않는다.
하늘의 구름은 제 몸이 뜯겨 나간 것을 모르고, 꺼진 불꽃은 그 자신조차 꺼진 순간을 인식하지 못하더라도…
결과만은 반드시 남는다.
서준은 뛰어난 남자다.
결과로부터 거슬러 올라와서 오늘 있었던 일의 진실에 닿을지도 모른다.
하지만…비록 그가 내 본모습에 도달하게 되더라도…
그 시기를 최대한 늦추면 그만이다.
모든 것을 알게 되었더라도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태가 되었을 때까지…
그가 알아차렸을 때는 나와 함께 살아가거나…
아니면 함께 나락으로 떨어진다는 두 개의 선택지뿐이 남아 있지 않은 그 순간까지…
내가 품고 있는 비정한 독아(??)를 그가 최대한 늦게 눈치채도록…
그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새기고 그의 손에 죽게 된다면 그건 그것대로 나한텐 만족스러운 시나리오다.
그러니 지금부터 연주될 파멸의 프렐류드는 그가 연주하게 만들자.
그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가 목숨보다도 사랑하는 신혜민, 그녀의 목을 조르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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