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화 〉 제10 화 잠 못 드는 밤을 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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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준과의 통화가 끝난 뒤 핸드폰을 머리맡에 내려놓는다.
원래대로라면 시설을 나오자마자 서준과 동거하면서 매일 매일 시도 때도 없이 몸을 섞었을 것이다.
하지만 세계적인 불황의 여파로 나와 서준이 많은 신세를 졌던 보육원이 경제적으로 큰 타격을 입었다.
전 세계적 불황 이전에도 워낙 경쟁이 치열하고 각박한 세상이었다. 남자든 여자든 자신을 희생해가며 상대방의 뜻을 받아줄 여유가 없다 보니 자연스레 결혼도 잘 안 하게 되었다. 혹 결혼을 하더라도 가난을 물려주기 싫다면서 자기 아이조차 갖지 않는 부부가 많은데 시설에 있는 아이들을 입양할 부부가 있을 리 없었다.
기댈 곳 없는 시설의 아이들과 무엇보다도 나와 서준이 크나큰 은혜를 입은 원장 수녀님께 조금이라도 그 은혜를 갚기 위해서라도…
나는 급하게 커다란 돈이 필요했고, 자본도 아무것도 없었던 나는 내 몸을 장사밑천으로 삼는 일에 뛰어들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나는 연예계에 뛰어들었다.
물론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연예계에 뛰어든다는 건 내 몸을 밑천으로 삼아 내 사생활을 판다는 의미였다. 서준과 만나는 것 따위 용납될 리가 없었다.
물론 나와 서준이 1, 2년 떨어져 있다고 소원해질 사이는 아니었다.
서준은 단순한 첫사랑이 아니라 같은 죄를 짊어지고, 앞으로 평생 함께할 반려자기에…
1, 2년 떨어져 지내는 것 정도는 크게 문제 될 게 없긴 했다.
그렇지만 내가 그러기 싫었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한 채 제자리에 멈춰있는 내 등을 떠밀어준 건 무엇보다도 서준의 강력한 의지였다.
서준은 내가 연예계로 진출해 그와 잠시 떨어지는 것이 서로에게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다줄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말해주었다.
그는 언제나처럼 온화하게 웃으면서 나에게 말했다.
“선배, 저는 자신이 없어요. 선배와 같이 살면서 선배에게 빠지지 않고 어엿한 한 사람의 남자가 될 자신이 없어요. 선배는 지금도 많은 것을 짊어지고 계세요. 그런 선배인 만큼 선배가 저만큼은 의지해줬으면 해요. 그렇게 되기 위해선 이 어쩔 수 없는 상황에 편승해서 잠시 거리를 두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그건 그의 본심에서 우러나온 말이 아니었다.
그는 시설의 존립이 위태로운 지금 시설을 나가면 의지할 곳 없는 아이들을 돕고자 하는 내 발목을 붙잡는 존재가 되고 싶지 않아서 그런 말을 한 거였다.
지금 도움을 필요로 하고 있는 이 가련한 아이들은 과거의 그와 나였으니.
시설과 원장 수녀님께 도움을 받은 우리가 이들을 외면한다는 선택지는 존재하지 않았다.
자신이 짐이 되는 건 남자의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았다.
고지식하고, 융통성 없는 남자의 자존심.
하지만…
그런 바보 같은 남자의 자존심을 존중하는 게 여자다.
어쩔 수 없는 일이라 그때의 선택 자체를 후회하는 건 아니고, 이미 지나간 일이니 후회해봤자 소용없지만 나는 지금도 가끔 의문을 가진다. 그때 과연 이러는 수밖에 없었는가. 좀 더 신중하게 시설의 어린이들을 위해 시설을 운영할 자금과 서준과의 생활을 양립할 수 있는…그런 방법은 정말 없었는가.
혹시라도 나라면 그게 가능하지 않았을까.
특히 이런 회한은 오늘처럼 서준과 통화를 끝내고 홀로 잠들 때 불현듯 나를 엄습해온다.
나 또한 한창때의 여자아이.
좋아하는 남자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게 되면 이번에는 몸이 그를 갈구하며 뜨겁게 달아오른다.
특히 그 역시 지금쯤 내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내가 그를 원하는 것보다도 더 내 몸을 갈구한다는 게 어렴풋이 짐작이 갔기에…
하복부가 근질거리기 시작한다.
허벅지를 꼼지락거리다가 침대에 옆으로 누운 뒤 허벅지 안쪽의 은밀한 부분에 손을 가져다 대려다가 멈추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이미 창문에는 커튼이 쳐져 있어 혹여라도 누군가 밖에서 안을 보는 것 따위 불가능했지만… 밝은 곳에서 하는 건 아직 스스로에게 부끄러웠다.
형광등을 끄고 침대로 뛰어든다. 두꺼운 이불을 목까지 푹 뒤집어쓰고 얼굴만 이불 밖으로 내놓았다.
하아…
읏…
응…
조심스레 왼손을 팬티 아래로 집어넣고 살짝 돌출된 음핵을 만지작거리면서 오른팔을 이불 밖으로 뺀 다음 천장을 향해 곧게 뻗는다.
오른손을 활짝 펴고 잠시 손 등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주먹을 쥐었다가 펴기를 몇 번이고 반복한다.
지금 서준이 방에서 혼자 뭘 하고 있을지 또 어떤 심리일지가 손바닥에 훤히 잡혔다.
나의 사랑스러운 남자는 아마 지금 망설이고 있을 것이다.
그는 무척이나 올곧은 남자니까…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위해서라면 맨발로 가시밭길을 걷는 것도 주저하지 않을 남자니까…
그래서 나를 상상하며 자신의 성욕을 해소하려는 행위를 추잡하다고 여길 것이다. 어쩌면 죄악감마저 느낄지도 모를 일이었다.
여자에게 씨를 뿌리고 싶다는 남자로서의 본능을 주체하지 못해 하룻밤 정돈 호기심으로라도 여자를 사서 안을 수도 있었을 텐데, 남자라면 한번 안은 여자는 평생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고지식한 그는 주변의 친구들과 달리 거들떠 조차도 안 봤겠지.
그렇게 나를 상상하며 스스로의 몸을 위로하는 것에 짙은 자기 혐오를 느끼면서도…끝내 그것만은 거부하지 못하고 침대에 누워 나를 격렬하게 안는 상상을 하며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손으로 자신의 성기를 자극하며 쾌락을 추구할 것이다.
응…읏…
하아…
팬티를 완전히 허벅지 아래까지 내린 뒤 눈을 감는다. 그리고 서준의 상상 속에서 안기는 내 모습을 상상하며 왼손으로 음핵을 격렬하게 문지르고 오른손으로 가슴을 주물럭거린다.
그는 내 몸으로 어떤 상상을 하고 있을까.
아마 나를 무척이나 소중하게 여기니까…
나한테 봉사 받기보단 그가 나한테 봉사하며 내 몸을 구석구석 만지고 맛보는 상상을 하려나…….
그가 내게 가볍게 입맞춤한다.
옷 위로 내 가슴을 내가 기분 좋도록 부드럽게 매만지면서 내 윗입술과 아랫입술을 번갈아 가며 잘근잘근 깨문다.
그것만으로 몸에서 힘이 빠진 나는 멍하니 입술을 벌리고 달콤한 신음성을 흘리고…
그는 처녀에게 삽입하듯이 조심스레 내 살짝 벌려진 입 틈 사이로 자신의 혀를 집어넣는다.
나는 그를 받아들이기 위해 내 입안에 들어온 그의 혀를 서툴게나마 빨기 시작하고, 그렇게 우리는 서로의 혀를 휘감고 서로의 타액을 교환하며 오랜 시간 사랑을 나눈다.
후아아…
사…상상하는 것만으로 한번 가버렸다.
등줄기가 저릿하고 이마에 땀이 흐르기 시작한다. 이불 속으로부터 암컷 특유의 시큼한 냄새가 올라왔다.
여운에 취해있자 한번 흥분이 가셔 맑아진 머리에 새로운 상념이 자리 잡는다.
어쩌면 서준은 남자로서 여자를 리드하고 싶다고 생각하면서도…연상인 나한테 리드 당하는 상상을 할지도.
실제로 우리는 둘 다 경험이 없다.
...
후후…내가 연상의 여인으로서 서준에게 여자를 가르쳐 준다라…
마음이 너무 앞서서 남근을 그가 생각했던 것만큼 능숙하게 내 안에 넣지 못해 초조해하는 그를 상냥하게 끌어안는다.
첫 경험에서 멋진 모습을 보여주지 못해 자기에게 실망하려는 그를 진정시키기 위해 상냥하게 그의 등을 토닥이며 그를 달랜다.
그가 어느 정도 안정됐을 때 잔뜩 흥분해 당장이라도 터질 것 같은 그의 물건을 상냥하게 잡으며 살짝 아래를 향하게 한 뒤 그에게 나직하게 속삭인다,
“후후…괜찮아…너무 풀죽을 필요 없어. 오히려 기뻐…역시 내가 너의 첫 여자라는 거니까…기분 좋아지기 위해서 같이 노력해보자. 응…조금 더 아래로 내린 다음…그쯤에서 그대로 위로 밀어넣으면……”
“읏……!”
일부러 아픈 척해서 남자의 자신감을 살려주는 서비스도 잊지 않는다.
“드디어 너와 하나로 이어졌네. 기뻐…….”
이런 식으로 처음에는 아무것도 몰라서 의욕만 앞서고 서툴기만 하던 그가 매일 관계를 거듭할수록 점점 능숙해진다.
그리고 어느 순간 입장이 역전되어 그가 사정하기도 전에 내가 몇 번이고 황홀경에 빠지고 그가 만족해서 사정할 때쯤엔 이미 나는 온몸이 녹초가 된 채 반쯤 의식이 없다.
의식이 날아가 버린 상태에서 그에게 안기며 내 몸의 주인은 서준이라는 게 내 무의식에 새겨지고……
하루도 그에게 안기지 않으면 살 수 없는 몸이 된 나는 기꺼이 스스로 그의 노예를 자초하겠지.
하아…하아…
나에게 하나부터 열까지 배우던 소년에게 소년이 성장하여 남자가 되고 그에게 지배당하는 상상을 하자 순간 흥분으로 머리로 피가 쏠렸다.
눈앞이 까맣게 되며 현기증을 느낀다.
의식을 잃어도 이상하지 않았지만, 그 와중에도 여자의 비밀스러운 부분을 미친 듯이 문지르던 손은 멈추지 않았고 허리가 붕 뜨며 성대하게 절정에 이르렀다.
방금 그건 굉장했어…
숨을 헐떡이며 고개를 돌려 핸드폰 시계를 본다.
꽤나 몰입했었나 보다. 시간이 상당히 흘러가 있었다.
내일 서준과 만나려면 지금 자도 아침에 일어나기 빠듯할 거 같은데…
하지만 방금 느꼈던 절정의 여운이 가시질 않는다.
그래,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 번…
딱 한 번만 더 하고 진짜 자도록 하자.
한 번 만이다…
한 번 정도 더 하는 건 괜찮겠지.
아까의 뒤를 이어서 하자.
나는 아무래도 내 남자의 머리 꼭대기에 올라가기보단 그에게 종속당하고 싶은 성향이 두드러지나 보다.
다시 한번 반할 정도로 멋진 남자가 되어 내 몸을 완전히 장악하게 된 서준의 앞에 공손하게 무릎을 꿇고 그의 발등에 입 맞추고 싶다.
그의 노예가 됐음을 시인하고 그에게 시도 때도 없이 봉사할 날이 하루빨리 오기를.
멀어져 가는 의식 속에서 나는 간절하게 바랐다.
한편…
혜민이 서준이 자신을 상상하며 한창 성욕을 풀고 있으리라 여기고 있었을 때…
혜민은 서준이 자신에게 얼마나 사랑받고 있는지 그는 모를 거라 여겼지만, 혜민 또한 서준에게 얼마나 사랑받고 있는지 모르고 있긴 매한가지였다.
통화를 끝내고 난 후 서준의 머릿속에는 혜민에 대한 걱정뿐이었다.
'역시 선배에게 무언가 안 좋은 일이 일어났음이 분명하다. 지금까지 그녀는 단 한 번도 통화 중에 넋이 나갔던 적이 없었다. 자신과의 시간을 너무도 소중히 여기던 그녀는 의식하지 못한 채 당연하게 행동한 거겠지만, 자신은 그녀가 얼마나 자신을 배려해 주는지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그녀는 언제나 화장실을 가더라도 핸드폰을 들고 가거나 혹은 잠깐 마실 것 좀이라며 둘러서 말하곤 했다.'
조금 불길한 예감이 든다.
그게 아니면 자신이 그녀에게 과도하게 집착하는 걸까. 그녀가 눈앞에 없다 보니 그저 자신이 초조하고 별것도 아닌 일에 예민한 걸지도 몰랐다.
만약 그런 거라면 나는 무척이나 구속이 심한 속 좁은 남자라는 얘기가 되는 거겠지만…
그녀에게 안 좋은 일이 일어났을 바에는 차라리 내가 한심한 편이 훨씬 마음 편하다.
후…
이것도 전부 자신이 미숙해서겠지. 그녀가 자신을 무척이나 사랑하고 자신 또한 그녀를 사랑한다. 하지만 그녀와 비교하면 자신은 아직 한참 부족하다.
염원하던 특허도 무사히 출원된 덕분에 이제 특허료도 나오고, 기업으로부터 졸업 후 내정까지 받았다지만, 이럴 때는 자신은 그녀 곁에 서기에 당당한 남자가 되기엔 아직 한참 부족하단 걸 새삼 깨닫는다.
그녀는 그런 거에 그다지 신경 쓰지 않을 테지만. 아마 그녀라면 내 이런 속마음 따위 진즉에 다 알고 자상하게 기다려주고 있는 거겠지.
…
‘좋아, 좀 더 열심히 해볼까. 언제까지고 그녀의 상냥함에 기대며 응석 부리고 있을 수만은 없다.’
‘비범한 그녀를 위해 평범한 나는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 그녀가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마음의 안식처 정도는 될 수 있도록 끊임없이 노력하는 수뿐이 없다.’
‘그러니 나는 현실에 안주해서는 안 된다.’
서준은 그렇게 생각하며 다시금 책상 앞에 앉아 두꺼운 노트를 펼쳤다.
두 사람의 행복한 미래를 믿어 의심치 않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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