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럽혀진 아이돌-10화 (10/136)

〈 10화 〉 제9 화 별의 반짝임

* * *

신혜민

기적의 소녀.

그녀가 처음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냈을 때…

너무도 현실감 없는 그녀의 신비롭고 아름다운 모습에 모두가 넋을 잃고 잠시 후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그 후 그녀는 모두로부터 천 년에 한 번 나올 인재라며 극찬받았다.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전부 이룰 소녀.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면에서 일반의 노력만으로는 결코 닿을 수 없는 영역에 있는…

질투하는 것조차 허무해질 정도로 여자로서 아니, 인간으로서의 그 격이 가장 높은 산 위에 오른 소녀.

이 세상의 질척함이나 추악함과는 전혀 인연이 없을 것만 같은 순결과 신성함이 인간의 형태를 빌려 나타난 그녀에게…

신혜민에게 심취한 자들은 그녀를 성녀 혹은 여신이라며 추앙했다.

그들에겐 다행스럽게도 그들이 갈망하던 대로 그녀의 육체는 아직 남자를 몰랐다. 그녀의 몸은 단 하나의 발자국도 없는 새하얀 설원과도 같이 그녀의 몸을 거쳐 간 남자는 없었다.

아직 남자의 정욕과 씨를 그 안에 받아들인 적 없는 더없이 순결한 몸.

그렇지만 그녀가 남자와 육체관계를 갖지 않았다는 사실이…

그녀가 남자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오히려 그녀는 남자를 무척이나 잘 알았다.

그녀는 남자가 얼마나 여자를 원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남자가 여자를 안고 싶어 하는 마음을 그 누구보다 잘 이해했고…

사랑하는 여자를 더럽히고 자신만의 것으로 종속시키고 싶다는 남자의 독점욕을 사랑스럽게 여겼다.

물론 원래부터 그랬던 건 아니었다.

처음 그녀는 남자들의 성욕에 대해 아무런 생각도 없었다. 가끔 그녀를 끈적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몇몇 남자들이 거추장스러울 뿐이었지 성욕이 딱히 추잡하거나 더럽다곤 생각하지 않았다.

수컷이 암컷에게 자신의 씨를 남겨 번식하고 싶은 건 그저 자연스러운 본능일 뿐이니까.

그래서 딱히 아무런 생각도 없었다.

정확히는 관심이 없었다.

그녀가 사랑에 빠지기 전까진…….

‘후후…서준은 내가 얼마나 그를 사랑하는지 그 자신도 모르겠지.’

누구나가 내게 의지한다.

자신들이 하면 무척 힘들고 많은 노력이 필요하지만, 나라면 손쉽게 할 수 있다고 멋대로 믿어버리고는 아무렇지 않게 부탁한다.

누구나가 그랬다.

예외는 없었다.

나를 버린 부모마저도…

아버지가 다른 여자와 바람나서 도망친 후 홀로 남은 엄마는 나를 학대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아무리 나를 학대해봤자 그녀의 비참한 현실이 변하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닫고는 나라면 혼자 어떻게든 할 수 있을 거라며 날 내버려 두고 어느 날 집에 돌아와 보니 스스로 목을 매달고 죽어있었다.

하지만 서준만은 달랐다. 그는 화내주었다. 남들에게 힘든 건 나에게도 귀찮고 힘든 일이라며…진심으로 다른 사람에게 화내주었다.

사람을 차별하지 않고, 사람은 그 자체로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소중한 존재라고 진정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 상냥한 그에게는 일상적인 일이라 모르겠지만 그에게 내가 얼마나 구원받았는지.

물론 처음에는 그를 의심하기도 했었다. 나에게 흑심을 품고 내 호의를 끌어내기 위한 계산적인 행동에 불과하다고 생각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는 증명했다.

그 해 겨울

그는 말뿐만이 아니라 나를 구하기 위해서라면 그 어떤 죄도 서슴없이 저지를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자신의 모든 걸 헌신할 수 있다는 것을 말이 아닌 행동으로 증명해냈다.

처음으로 남자에게 꽉 안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원토록 그와 함께 이 죄를 기꺼이 짊어지겠노라고 맹세했다.

그리고 그는 내가 의지할 수 있는 남자가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해주었다.

그를 상냥하게 안아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가 요구하기만 하면 언제든지 그에게 몸과 마음을 다 주었을 텐데…….

하루 종일 단둘이 좁은 방에서 알몸으로 같이 있고 싶다. 스스로 그의 노예를 자처하며 정성껏 봉사하고, 기절할 때까지 귀여움받고 싶다.

여자인 나도 이렇게나 그의 몸을 원하는데, 한창 여자를 품고 싶을 때인 그는 오죽할까.

나보다 더할 것이다.

나를 자신만의 암컷으로 삼고 싶어 매일 미칠 것이다.

하지만 나와 마찬가지로 부모에게 버림받아 시설에 맡겨졌던 그는 나와 그의 부모같이 책임감 없는 남자가 되고 싶지 않다며 초인적인 자제력을 발휘했다.

그와의 첫 키스 때 그의 탄탄한 가슴에 내 두 젖가슴을 바싹 밀착하곤 그의 등을 꽉 끌어안으며 그를 유혹했었다.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그의 귓가에 오늘 밤 안아달라고 속삭이며 스스로 옷을 벗으려고 할 때였다.

그는 한점 망설임 없이 내 어깨를 꽉 붙잡고는 흔들림 없는 눈동자로 날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저는 무책임하게 선배를 안고 싶지 않아요.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그야…선배와 비교하면 보잘것없겠지만…그래도 제 능력만으로 선배를 책임질 수 있는 남자가 되었을 때……”

나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당장이라도 울 것만 같은 심정이 되어 그의 입술에 다시 한번 입 맞추며 그의 말을 도중에 끊었다.

보잘것없을 리가 없지 않은가. 부모조차도 내 편이 되어주지 않았을 때 유일하게 내 편을 들어준 남자다. 나를 위해 망설임 없이 그의 현재와 미래를 포기했던 이 세상에서 둘도 없는 나만의 남자다.

그뿐 아니라 사랑하는 남자가 온갖 유혹을 뿌리치고 사랑하는 여자를 위하여 최선을 다해서 노력하겠다는데 그 모습을 보잘것없다고 낮게 여길 여자가 어디 있겠는가.

더없이 사랑스러웠다.

나를 위해서라면 그 어떤 짓도 저지를 수 있는 그처럼, 나 역시 그를 위해서라면 무슨 짓도 할 수 있다.

한참 동안 서로 끌어안고 영원과도 같은 길고 긴 입맞춤을 나눈 후 나는 그의 입술에서 살짝 떨어지며 약간의 아쉬움을 떨쳐버리곤 온화하게 웃으면서 그에게 말했다.

“응…언제까지고 기다릴게.”

“네.”

후후…

그는 날 깜짝 놀래주려고 내게 비밀로 하고 있겠지만, 최근 그의 묘하게 들뜬 목소리만 들어도 약속의 때가 얼마 안 남았단 건 쉽게 눈치챌 수 있었다.

빠르면 연말 늦어도 새해 첫날에는 드디어 그와 몸도 맺어질 수 있겠지.

그동안 얼마나 스스로에게 자신을 갖기 위해 노력했을까…안쓰럽기도 하고 대견했다.

그런 생각에 잠겨있을 때였다.

“선배, 정말 아무 일도 아닌 거죠?”

다시금 핸드폰서 들려오는 걱정으로 가득 찬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며 퍼뜩 정신을 차린다.

그동안 많은 적의와 질투에 가득 찬 시선을 한몸에 받아왔다. 하지만 바로 조금 전에 정말 한순간에 느꼈다가 그것을 눈치챈 순간 곧바로 사라졌던 섬뜩함은…

기존의 것들과는 궤를 달리해서일까…

굳이 비유하자면 그것은 지독할 정도로 농축된 살의.

나와 서준을 같은 죄를 공유한 사이로 연결한 그 해 겨울에 있던 비열한 악의조차도 까마득히 뛰어넘을 듯한…….

“정말이지 나도 어쩔 수 없는 여자아이네…….”

변함없이 자신을 진심으로 위해주는 서준의 다정한 목소리를 들으며 새삼 자신이 여자라는 사실을 깨닫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렇게 사랑하는 남자의 목소리를 핸드폰 너머로라도 듣는 것만으로 태어나 처음으로 느껴본 온몸의 피를 한순간 얼어붙게 만든 한없이 꺼림칙하던 기분이 눈 녹듯이 사라졌다.

그래서일까 안심하게 되자 그 반동으로 내 안에 빛바래지 않는 따스하고, 죄로 물든 추억들을 떠올리며 나도 모르게 감상에 젖고 말았나 보다.

너무 걱정시키는 것도 미안하니까 최대한 평정을 가장하며 밝은 목소리로 답했다.

“응, 별일 아니야. 갑자기 배가 너무 아파서 급하게 화장실에 다녀오느라…”

말끝을 살짝 흐리면서 한번 끊은 후에 일부러 짓궂은 목소리로 적나라하게 말한다.

“후후, 혹시 방금 내가 볼일 보는 모습을 상상한 거 아니야? 남자아이는 역시 변태네.”

“아…아뇨, 그런.”

“다 알고 있으니 솔직하게 말해봐.”

“그…그게…조금…”

“후후…괜찮아. 나중에 얼마든지 보여줄게. 너한테 어떤 독특한 취향이 있어도 난 다 이해하고 받아줄 수 있어.”

그가 수화기 너머에서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이며 허둥지둥하는 모습이 떠오른다. 내 앞에서 언제나 멋진 모습을 보여주려고 맨날 무리하면서도, 그리고 내가 정말 곤경에 처했을 땐 세상 누구보다도 듬직했으면서도, 이렇게 나한테 순진한 모습을 보여주는 그가 참을 수 없이 사랑스러웠다.

그럼 장난은 여기까지. 지아비가 될 남자에게 장난치는 건 아무래도 나랑 잘 안 맞나 보다. 나도 사랑하는 남자에겐 순종적이란 말이지.

“미안…나 때문에…최근엔 잘 만나지도 못하고…….”

“아뇨…신경 쓰지 마세요.”

“이해해줘서 고마워. 그래도 이제 거의 끝났으니까.”

“네, 고생하셨어요. 그 뒤의 선배의 인생은 제게 맡겨주세요.”

“그래, 둘이서 같이 행복해지자.”

내일은 모처럼의 휴일이다.

아마 그는 나를 위해 시간을 비워뒀겠지.

쉬는 날이라 친구들과 만난다거나 자기만의 시간을 가지고 싶을 때가 있을 텐데도 그는 혹시 내가 주말에 만날 수 있냐고 할까 봐 언제나 기약 없이 기다린다. 그리고 그걸 결코 나한테 티 내려 하지 않는다. 내가 부담 갖지 않도록.

뻔히 보이는데도 그만큼 그게 전부 여자를 위해서 나온 행동이란 게 과장 없이 전해지기에 남자의 그런 어수룩하고 바보 같은 점이 여자를 두근거리게 만든다.

다 알면서도 모르는 척 눈감아주고 장래를 약속한 남자의 기분을 맞춰주는 것도 사랑에 빠진 소녀의 미덕.

여기선 그의 체면을 세워주도록 할까.

“혹시 내일 약속 있어?”

“아, 아뇨. 원래 있었는데, 취소되어서 내일은 하루 종일 한가해요.”

“정말? 나 때문에 무리하는 거 아니지?”

“그럼요.”

“그…그럼 내일 간만에 만날까?”

“저야 좋지만, 선배 정말 괜찮으시겠어요? 아직은 너무 이른 게 아닌지.”

“괜찮아. 무엇보다 내가 너무나도 만나고 싶어서 그래.”

“…알겠어요. 그럼 제가 아침에 그쪽으로 갈게요.”

“그래, 에스코트는 맡길게.”

“네. 저한테 맡겨주세요.”

‘정말이지…언제나 한결같이 상냥하구나. 지금 대화에서도 자신의 욕망보다 내 사정을 먼저 배려해주다니. 매일매일 나를 안고 싶어 미칠 지경일 텐데.’

‘후훗…혹시 지금쯤 나를 생각하며 스스로를 위로라도 하고 있는 걸까나.’

자신을 떠올리며 지금쯤 팬티를 내리고 열심히 오른손으로 용두질을 치고 있을 서준의 모습을 생각하자 나 역시 하복부가 근질거리고 몸에서 열이 나며 기분이 이상해지기 시작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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