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28화 〉 마지막 번외편: 천마강림(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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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륙의 모든 국가가 군침을 흘리며 각축전을 펼치는 테세트 평야지만 그곳에도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불모지가 있었다.
서남쪽 끄트머리에 있는 안돌레인 황야.
오르피나가 미처 마나 오염을 정화하지 못한 지역이기에 누구도 접근하지 못했고, 설령 가까이 다가간다고 해도 흙먼지만 날리는 쓸모없는 땅이 데빌즈 핑거네일(악마의 손톱)이라고 불리는 깎아지른 절벽으로 분단되어 있어서 누구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바꿔 말하면 인간의 눈을 피해서 숨어 살기에는 여기보다 좋은 장소는 없다는 것이다.
더 원의 생존자들은 바로 이곳에 모여있었다.
쿵쿵! 쿵! 쿵쿵쿵! 쿵쿵!
평소에는 계곡을 휘몰아치는 바람만 요란한 장소에 발을 구르는 소리가 무수하게 메아리치면서 천지를 뒤흔들었다.
깎아지른 단장절애에 굽이굽이마다 서 있는 이형의 생물들.
초췌하고 남루해진 모습에 이루 말할 수 없는 고생의 흔적이 엿보였지만 눈빛만은 살아있었다.
바로 오늘, 그들의 희망이 살아서 돌아왔기 때문이다.
[국왕 폐하를 뵙습니다!]
[국왕 폐하를 뵙습니다!!!!!]
후우우우우우웅
쩌렁쩌렁한 합창이 바위에 부딪히는 파도처럼 한 순간에 흩어져 사라졌다.
계곡 전체를 요란하게 메아리치면서 울려 퍼지는 동족들의 목소리에 발끝에서부터 밀려 올라오는 전율이 목구멍 바깥으로 흘러넘쳤다.
인간 세상에서 지낸 시간은 너무나도 길었다.
백치로 3년.
제정신으로 돌아온 후에는 불과 몇 달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마치 수십 년동안 악전고투를 경험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이제는 돌아올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인간이 되었다고 두려워했다.
하지만 리한은 동포들을 마주한 순간에 알 수 있었다.
마침내 고향에 돌아왔다는 사실을…
“모두…살아있어 줘서 고맙다. 그리고 지금까지 부족한 지도자를 믿고 기다려줘서 고맙다. 감사하고 있는 마음이 얼마나 커다란지 도저히 표현할 수가 없을 정도다!”
쿵쿵! 쿵쿵쿵! 쿵쿵!!
대답 대신에 그를 위로하는 힘찬 발소리가 들려올 뿐이었다.
누구 하나도 굳게 다물어진 입을 여는 사람은 없었지만 뜨거워진 눈시울에서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하지만 재회의 기쁨을 누리고 있을 여유는 없었다.
“미안하지만 환영 행사는 여기까지다! 모두 자세한 사정은 임페리얼 가드에게 전달받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네비로스, 그리고 루스탐! 그리고 알파 리더들은 회의장으로 집결해라!!”
[존명!]
지시를 내리자 일사불란하게 흩어지는 백성들을 뒤로 연단을 내려왔다.
잠시 후.
더 원의 지휘관들이 동굴 내부에 회의실에 집결했다.
쿵!!
“크라라라락! 국왕 폐하를 뵙습니다!!”
커다란 덩치로 천장이 흔들린 정도로 힘차게 무릎을 꿇으면서 인사하는 루스탐.
얼핏 보기에는 갑옷을 입고 있는 갈색 곰처럼 보이지만 태생부터 피부 조직 일부가 단단한 합금으로 되어있는 것이며, 골격도 탄소 성분이 다량으로 함유되어서 평범한 생물과는 구조 자체가 달랐다.
그야말로 선천적으로 타고난 괴력난신?力??
여왕인 오르피나를 제외하면 힘과 방어력 모두 더 원 중에서 가장 강력할 뿐만 아니라 보기보다 민첩해서 100m를 7초에 주파할 수가 있다.
하지만 무시무시한 생김새하고는 다르게 숲에서 뒹굴뒹굴 굴러다니면서 노래를 부르는 것을 좋아하는 온순한 녀석이다.
[국왕 폐하를 뵙습니다.]
그 옆에 사뿐히 내려앉는 조그마한 황금 벌레, 네비로스.
리한의 기억을 되찾았을 당시에도 마주치기는 했지만 그 또한 생김새하고는 다르게 엄청난 수완을 가지고 있는 책사로 더 원의 군사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힘이 약한 것은 아니다.
애초에 특별한 존재가 아니면 오를 수가 없는 것이 장군의 지위.
조그마한 몸집에도 불구하고 수 톤 단위의 암석을 가뿐하게 들어 올릴 수 있는 괴력, 그리고 단단하고 매끈매끈한 그의 껍질은 B급 무장이 사용하는 무투기로도 흠집 하나 만들지 못하리라.
사실상 리한을 대신해서 더 원의 생존자를 지휘한 것이 그였다.
솔직한 마음으로는 아무리 감사해도 모자랄 지경이었지만 지금은 그런 것들을 이야기할 시간이 없었다.
“모두…이야기는 들었겠지?”
[여왕 폐하께서 살아계신다는 말씀이로군요. 솔직하게 믿기 힘든 내용이었습니다. 물론, 리사엘 장군이 살아있었다는 이야기도…]
“…”
리한의 곁에 서 있는 리사엘은 자신의 처분을 기다리는 것처럼 조용하게 입을 다물고 두 눈을 감고 있었다.
이미 그녀가 저지른 ‘배신’은 더 원 전체에 알려졌다.
솔직한 심정으로는 지금 이 자리에 있는 누구라도 자신의 손으로 찢어 죽이고 싶어서 속이 부글거리고 있을 테지만, 그 권리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오직 하나뿐이었다.
“앞서도 말했지만 나는 너를 용서한 것이 아니다, 리사엘. 너에 대한 처벌은 여왕 폐하를 안전하게 구출할 때까지 미뤄졌을 뿐이야. 사면을 바라면 어머님께서 무사하시기만을 빌어라. 왜냐면 자비로운 어머님하고는 다르게 나는 너를 절대로 용서하지 않을 테니까.”
“…어떤 처분을 내리시든지 달게 받겠습니다.”
“칫.”
고분고분하게 대답하는 모습에 배알이 뒤틀렸다.
리한은 그 거무튀튀한 감정을 억지로 집어삼키면서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여왕 폐하께서는 현재 백상아의 마탑이라는 장소에 유폐되어 있다고 한다. 듣자 하니 이곳에서는 3년 전에 사로잡은 우리 동족들에게 이루 말할 수 없는 끔찍한 고문과 실험을 자행하고 있다고 하더군.”
크르르르르르
루스탐과 알파 리더들이 분노한 표정으로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낮게 으르렁거렸다.
“다행스럽게도 그 장소는 안돌레인 황야에서 얼마 떨어져 있지 않다. 문제가 있다면 그것이 적진 한복판에 있다는 거지. 그것도 유레시아 대륙 최강의 군사력을 자랑하는 테르할 제국의 식민지, 총독부가 세워진 장소에 말이야!”
쿵!
리한은 그렇게 말하면서 벽에 걸린 지도의 도시 하나를 지휘봉으로 두드렸다.
마그놀리아.
[흠…어렵군요.]
신중한 네비로스가 곧바로 난색을 보였다.
인류의 힘은 3년 전에 뼈저리게 체험한 그들이다.
게다가 인간 세상 곳곳에 벌레들을 보내서 정보를 수집하고 있는 그는 제국 식민지의 강력한 군사력과 그곳을 통치하는 킬리안 총독의 두려움을 충분하게 인지하고 있었다.
[안타깝지만 현재 전력으로는 그곳으로 공략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지금까지는 그랬겠지.”
[…뭔가 방법이 있으십니까?]
“후후후후. 내가 인간 세계로 떠났을 때 했던 말을 기억하고 있느냐? 네비로스.”
[물론, 기억하고 있습니다. 인류에게 맞서 싸울 수 있는 힘을 배워서 돌아오겠다고…설마?]
리한은 웃음을 터트리면서 말했다.
“바로, 그 설마다.”
그리고 손짓으로 뒤에서 조용하게 대기하고 있는 여자들을 앞으로 나오게 했다.
[실례지만 이분들은 도대체…]
“애쉬와 질, 그리고 아스타로트라고 한다. 앞으로 우리를 도와줄 외부 조력자들이며 내 여자들이기도 하지.”
[그렇군요. 처음 뵙겠습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크라라락. 잘 부탁한다…”
“자, 잘 부탁합니다.”
끄덕
“뭐야 이 괴물들은???”
리한은 실례되는 소리를 지껄이는 아스타로트를 자신의 무릎에 올려놓고 엉덩이를 때렸다.
“살짝 버르장머리가 부족한 것이 흠이기는 하지만 실력만큼은 모두 나무랄 데가 없으니까 걱정하지 마라. 특히, 여기에 있는 애쉬는 혼자서 여기에 있는 알파 리더 전원을 상대할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지.”
“흥! 얕보지 마라. 여기만이 아니라 바깥에 있는 너희 괴물 무리를 단숨에 전멸시킬 수 있다.”
웅성웅성
[무슨 흉악한…]
[역시 인간은 잔인하기 이를 데가 없군.]
[하지만 폐하께서 데리고 오신 손님들이니…]
살기등등한 협박에 알파 리더들이 수군거리자 그는 골치가 아프다는 것처럼 머리를 붙잡으면서 한숨을 쉬었다.
“내 동족을 위협하지 마라, 애쉬. 그리고 너희들도 츤데레가 하는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그녀가 하는 말을 해석하면 “위험한 일은 내가 앞장서서 해결해줄 테니까 너희들은 안전하게 뒤에 물러나 있어라.”는 뜻이다.”
오오오오
[과연 그렇군요.]
“내, 내가 언제 그런 소리를 했다고…”
얼굴이 새빨개진 애쉬가 조그마한 목소리로 반박했지만 리한은 무시하며 입을 열었다.
“하지만 여왕 폐하를 구출하는 임무를 외부의 도움에만 의존할 수는 없다. 힘이 없는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 이참에 인류에게 우리의 생존 소식을 알리고 더 나아가서 예전처럼 만만하게 무찌를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가르쳐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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