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11화 〉 2번째 번외편: 왕의 게임(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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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전은 종식되었지만 제니아는 한동안 바람 잘 날이 없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소란스러웠던 지역은 투크 가문이 다스리는 에레팔스령.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면서 배다른 자식들을 무수히 만들어낸 하이잘이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기에 어떻게 보면 당연한 혼란이라고 할 수 있었다.
수백 명의 형제, 자매들이 골육상잔을 펼치는 장미 전쟁의 시작.
그리고 그 중심에는 에스메랄다가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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펑! 퍼퍼퍼퍼펑! 펑! 펑! 펑!
야심한 밤.
어둠을 틈타서 조용하게 도시를 빠져나가려고 하는 마차에 사방에서 눈부신 서치라이트 조명이 조사??되었다.
“제기랄! 포위당했어.”
마부석에 앉은 에스메랄다가 분한 표정으로 입술을 깨물었다.
“어디를 그렇게 급하게 가시는 겁니까, 누님?”
굽이 높은 부츠를 뚜벅거리면서 나타난 남자가 으르렁거리면서 물었다.
빨간 장교 모자에 가면으로 얼굴을 감추고 화를 억누르는 것처럼 자신의 손바닥에 지휘봉을 두드려대고 있었다.
하지만 에스메랄다는 상대방의 정체를 단숨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지브릴!”
“…수많은 형제자매가 죽었습니다. 대부분은 제 손으로 보내버렸죠. 뭐, 애초에 우리 가문이 끈끈한 가족의 정으로 넘쳐나는 화목한 집안은 아니었다고 하지만 그래도 너무하지 않습니까? 누님 때문에 집안이 정말로 개판이 되어버렸습니다!!”
“시끄러워! 네놈들이 서로 멋대로 죽여댄 것이 아니냐? 내가 알 바가 아니야!”
“정말로 무책임하군요! 우리 가문의 군사권을 장악하고 있는 누님께서 진작에 저에게 굴복하셨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비극입니다! 당신은 양심도 없습니까?”
“세 살배기 동생을 독살한 놈이 지껄일 말이냐?!”
“그 세 살배기 때문에 제 얼굴이 이렇게 되어버렸단 말입니다!!!”
지브릴이 발작하듯이 소리를 지르며 쓰고 있는 가면을 집어던졌다.
꿈틀꿈틀, 꿈틀꿈틀꿈틀
“큭!”
처참하기 이를 데가 없는 모습에 에스메랄다는 자신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리면서 입술을 깨물었다.
그도 그럴 것이 손가락 두께의 지렁이 같은 벌레들이 얼굴 절반에 달라붙어 있었던 것이다.
꿈에 나올까 두려울 정도로 괴기스럽고 흉측했다.
“산전수전 다 겪은 누님이 보기에도 그렇게 끔찍합니까? 그래도 조금 더 똑똑히 쳐다보시지요? 빌어먹을 전부 당신 때문에 이렇게 되어버렸으니까 말입니다! 듣자하니 이 저주는 마나 오염으로 누구도 치료할 수가 없다고 합니다. 어떻게 책임지실 겁니까? 네??? 어떻게 책임지실 거냐고요!!!”
“닥쳐!! 더 이상 나를…아니, 우리 모녀를 역겨운 투크 집안의 문제에 끌어들이지 마! 가주의 자리 따위는 눈곱만큼도 관심 없으니까 마음대로 가져가 버리면 되잖아!!”
“크크크크큭. 크큭! 하하하하하하하하하!!!”
지브릴은 우스워서 참을 수 없다는 것처럼 허리를 젓히며 광천대소를 했다.
“어림없습니다, 누님! 아무렴 어림없고 말고요. 보아하니 어디 한적한 곳으로 도망쳐서 오순도순 살고 싶은가 본데…거인족과 하프 모녀에게 그런 일이 가능할 거라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우리 가문에서 내버려 둔다고 해도 노예 사냥꾼들이 절대로 내버려 두지 않을 겁니다!!”
“그, 그건…네놈이 신경쓸 문제가 아니야!”
“닥쳐, 이 빌어먹을 멍청한 년!”
“!!!”
“오냐오냐했더니 감히 은혜도 모르고 뒤통수를 쳐? 대가리가 나쁘면 눈치가 빠르기라도 해야지! 알아서 꼬리를 흔들었으면 적당히 사료라도 던져주려고 했는데 네 발로 걷어찬 복이니까 후회하지 마라, 얘들아!!”
“네, 주군!!”
“마차 안에 저년이 끔찍하게 아끼는 애미년이 잠들어 있다! 반드시 산 채로 잡아라. 혹시라도 저항하려고 하면 본보기로 팔이나 다리 한쪽을 잘라서 혼쭐을 내줘라!!”
“네, 알겠습니다!!”
“머, 멈춰!”
잔인하기 이를 데가 없는 명령에 에스메랄다의 안색이 새하얗게 질려버리고 말았다.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무장과 마법사들의 실력은 하나하나 살펴보면 대수로운 수준이 아니었지만, 지나치게 숫자가 많은 데다가 임신한 어머니까지 인질로 붙잡힌 상황이었다.
승산은 제로.
압도적으로 우세한 상황에 지브릴 투크는 비열한 웃음을 터트리면서 그녀를 조롱했다.
“후후후후. 네년 때문에 멀쩡하게 장가를 가기는 글러 먹었으니까 아버지 대신에 네년의 애미를 임신시켜주마. 물론, 뱃속에 들어있는 여동생도 키워서 따먹어주지. 그리고 너까지 말이야. 크크크큭! 영광으로 알아라. 내가 아니면 도대체 누가 제니아 최고의 추녀??로 소문난 네년을 거들떠보겠느냐?”
부르르르르
“네, 네놈…”
참을 수 없는 모욕에 분노로 떨면서도 감히 저항하지 못하고 입술을 깨물었다.
하지만 그렇게 승리를 확신하는 순간.
“정말로 제대로 말아먹은 콩가루 집안이로군.”
“!!!!”
“누, 누구냐!!”
소리소문없이 갑작스럽게 들려오는 목소리에 당황한 지브릴이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두 사람이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잠시 보지 못한 사이에 내 얼굴을 잊어버린 것이냐?”
“후, 후계자 전하!!”
“거기에 애쉬님까지…”
쿵!
“후계자 전하를 뵙습니다!!!”
경악한 무장과 마법사들이 일제히 행동을 멈추고 무릎을 꿇었다.
“에, 에레팔스령까지는 도대체 무슨 일로 행차하셨는지…”
“알 필요 없어.”
“네?”
“모두 죽여라, 애쉬.”
“뭣…”
스겅
찰나의 섬광이 번뜩였다고 생각한 순간.
투두두두두둑
수많은 머리가 목에서 분리되어 하늘로 날아올랐고 주인을 잃어버린 육체들이 썩은 나무토막처럼 바닥으로 우르르 쓰러졌다.
“조금 더 깔끔하게 처리할 수는 없어?”
“주문도 많군.”
화르르르르륵!
투덜거리면서도 삼매진화를 일으켜서 지브릴과 그의 수하 무장, 마법사들의 시체를 단숨에 소각해버렸다.
주변에 그을음조차 만들어지지 않는 깔끔한 일 처리.
마치 이 세상에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흔적도 없이 소멸해버리고 말았다.
부르르르
“이, 이게 도대체 무슨…”
공포에 질린 에스메랄다가 사시나무처럼 떨면서 바닥에 주저앉았다.
살아남았다는 생각보다는 자신의 눈앞에서 상상을 초월하는 신위를 발휘하는 터무니없는 괴물에게 완벽하게 압도당해버린 것이다.
“걱정하지 마라. 무서운 기억을 지워주겠…”
“시키지도 않았는데 쓸데없이 나서지 마. 걸핏하면 그렇게 금제에 의존하려고 하는 것이 나쁜 버릇이라니까?”
애쉬를 제지하면서 앞으로 나온 리한이 뒷걸음질 치는 그녀에게 손을 뻗었다.
파지지지지직
알 수 없는 기운이 신체로 흘러들어오자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으면서 진정되었다.
“이러면 되잖아?”
“…어차피 나는 자잘한 기술 따위는 사용하지 못해.”
“후후후후. 지금 마스터 코어의 능력을 질투하는 거야? 하여튼 의외로 귀여운 구석이 있는 아가씨라니까.”
“아가씨라고 부르지 마라!!”
“…”
어린아이들처럼 티격태격하는 모습에 할 말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잠시 망설이다가 용기를 내서 입술을 여는 에스메랄다.
“저기…이곳에는 무슨 일로…”
“당연히 너를 구하러 왔지.”
“네? 하, 하지만 오르드리에 계시지 않았습니까?”
“우리한테는 아르고스 라인이 있으니까 말이야. 제니아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손바닥 안에서 내려다보는 것이나 마찬가지지. 체스말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움직일지를 예측하는 것은 문제도 아니니까 말이야.”
“체스…말?”
당황했지만 자신을 무시하고 태연하게 마차 문을 열어서 더 당황해버리고 말았다.
“후, 후계자 전하!”
“흠, 포용력이라…확실히 이만한 포용력이라면 누구하고도 비교할 수가 없겠군.”
“네???”
“혼잣말이니까 신경 쓰지 마라.”
마차 안에는 조그마한 동산처럼 만들어진 쿠션 위로 임신한 거인 여성이 새근새근 잠들어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아만다.
숲의 여사제로서 종족 최고의 미녀라는 명성에 걸맞은 눈부시게 아름다운 외모와 몸매를 가지고 있다.
카트리나가 이야기한 포용력에 완벽하게 부합하는 존재.
유방 하나가 어지간한 더블사이즈 침대만큼 크고 아름다워서 다이빙으로 뛰어들어 전신을 파묻고 숙면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리한은 유혹을 참아냈다.
“약물로 재워져 있군. 지난번에 구출했을 때 하고 변함없이 말이야. 어째서 아직도 깨우지 않은 것이냐?”
“그, 그것이…”
“말하기 어려운 것이냐?”
“아, 아닙니다. 휴…다른 분도 아니고 전하의 질문이시니까 솔직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사실은…”
에스메랄다는 한숨을 내쉬며 자초지종을 이야기했다.
아만다를 수면제로 재우고 있는 이유는 임신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아서 자살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그만큼 하이잘을 뿌리 깊이 증오하고 있는 그녀.
다시 한번 범해져서 더러운 씨앗을 잉태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라는 게 에스메랄다의 설명이었다.
“일단은 출산하실 때까지 주무시게 하고 싶습니다. 태어난 여동생을 직접 보여드리면서 차분하게 설명해드리면 화도 훨씬 누그러지실 테니까요. 그래서 후계자 전하에게 부탁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만…”
가족을 생각하는 착한 효녀다.
“싫어.”
하지만 공과 사는 확실하게 구분하는 리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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