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97화 〉 에필로그 최종화 (397/429)

〈 397화 〉 에필로그 최종화

* * *

“두 사람은 여기에서 대기해라.”

“무슨 일이지?”

“기분 탓이라고 생각하지만 아무래도 내 개인적인 인연하고 얽혀있을 것 같은 생각을 지울 수가 없어서 말이야.”

“개인적인 인연이라니. 네가 천사하고 얽힐 일이 뭐가 있다고…”

딴지를 걸던 애쉬는 리한의 표정이 평소답지 않게 어두운 것을 보고 목소리를 줄였다.

“나도 그게 궁금해.”

“잠깐!”

지이이이이이잉­

촤아아아악!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다급하게 불러세웠지만 그는 기다리지 않고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수면 아래는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검은 액체로 뒤덮여서 칠흑처럼 어두웠다.

하지만 지금의 리한에게는 아무런 장애물이 되지 못했다.

‘혼자가 되는 것도 오랜만이군.’

최근에는 무슨 일을 하더라도 애쉬를 데리고 다녔다.

그녀만이 아니라 항상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보디가드(라고 쓰고 애완용 흡혈귀라고 읽는)질과 아스타로트를 소지품(?)으로 지참했지만, 오늘만큼은 모두 떼어놓고 왔다.

목표로 접근할수록 가슴의 술렁거림이 커졌다.

‘모든 것이 우연의 일치라고 생각하고 싶지만 말이야…’

리한은 라프텔 호수에 대한 정보를 조사하는 도중에 3년 전에 하늘에서 별똥별이 떨어졌다는 소문을 들었다.

단순하게 그것뿐이라면 어디에나 흔히 있을법한 이야기다.

하지만 문제 해결을 위해서 파견한 애쉬가 이곳에서 천사가 만든 결계를 발견했다는 보고를 하자 더 이상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3년 전에 떨어진 별똥별, 그리고 천사.

크오오오오오오!!

“비켜라.”

퍼퍼퍼퍼퍼퍼퍼펑!

자신을 발견하자 무수하게 꿈틀거리면서 달려드는 검은 형상의 괴물들을 천마신공으로 모조리 제거해버렸다.

리한의 표정이 자연스럽게 험악해졌다.

왜냐면 달려드는 괴물들의 모습이 하나같이 더 원의 형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사실은 하나밖에 없었다.

‘빌어먹을…’

자신의 가정이 들어맞았다는 생각에 입술을 깨물며 속도를 높였다.

펑!

그리고 천사의 결계를 돌파해서 중심부로 단숨에 뛰어들었다.

*****

더 원의 여왕 오르피나는 이 행성에 착륙한 후에 자신의 뒤를 이을 후계자로 퍼스트 선을 만들어냈다.

그녀가 낳은 아이들은 무수히 많았지만 그는 특별했다.

왜냐면 지금까지 더 원이 자신들의 일원으로 받아들인 어떤 종족하고도 다른 이질적인 외모와 불안한 정서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인간.

‘정작 처음으로 만난 인간에게는 괴물이라고 불렸지만 말이지.’

퍼스트 선이 인간하고 다른 점이 있다면 손등에서 어른 상반신만큼 기다란 가시가 튀어나오고 피부가 회색이라는 것이 전부다.

더 원의 사회에서는 외모의 차이는 문제가 아니지만, 자신의 외모에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었던 리한은 오르피나처럼 크고 멋지게 자라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그하고 비슷하게 생긴 구성원이 한 명도 없었던 것은 아니다.

바로 눈앞에 서 있는 존재.

목덜미에 거대한 쇠기둥이 박혀서 고통스러워하는 수호룡.

그런 그를 조용히 재워가며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오염된 피로 괴물을 만들어내는 천사가 바로 그녀다.

“역시 너였군. 리사엘…”

“살아계셨군요, 전하! 아니, 폐하!!”

리사엘이 커다란 날개를 접으면서 무릎을 꿇었다.

“예전하고는 모습이 변했구나. 머리부터 발끝까지 깨끗한 순백이었던 네가 머리카락의 절반과 날개 한쪽을 검은색으로 물들이고 있다니 말이야.”

이야기로만 들었던 타락한 천사가 눈앞에 있었다.

심지어 그녀는 자신이 가장 오랫동안 알고 지내온 존재 중 하나.

“폐하야말로 마스터 코어가 아니었다면 알아보지 못 할 뻔했습니다. 인간으로 변하시다니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아니, 살아계신 것만으로도 다행이기는 합니다만…”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느냐?”

“…폐하?”

리한의 모습이 자신을 달가워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자 리사엘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나저나 수호룡 엑케라곤의 오염된 피로 금주 술법을 사용하다니 너답지 않군. 언제나 사랑과 박애를 부르짖었던 예전 모습은 어디로 사라진 것이냐?”

이 말에 그녀의 표정이 굳어졌다.

“죄송합니다, 폐하. 저도 이런 행위가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럴 수밖에 없습니다. 썩어빠진 인간들을 모조리 쓸어버리기 위해서 커다란 군대가 필요합…”

으드드드득!

“그 인간들에게 우리 더 원을 팔아넘긴 것이 바로 네년이 아니냐!!!”

투콰아아아아아아앙!

리한이 내지른 포효로 라프텔 호수 전체가 뒤흔들렸다.

그 터무니없는 힘의 파동에 혼비백산했다가 내용을 듣고 창백해지는 리사엘.

“폐하…”

“감히 나를 그렇게 부르지 마라! 우리 종족을 배신한 더러운 년…!”

“오해십니다, 폐하! 저는 그저 이 세상의 화합과 평화를 바랐을 뿐인데…커흑!”

부르르르르르­

목덜미를 붙잡아서 강하게 움켜쥐었다.

리한이 리사엘의 배신을 알아차린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그녀는 처음부터 이 행성의 원주민이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데피리스를 섬기는 사랑의 대천사였던 그녀는, 하계를 내려다보던 도중에 우연히 둥지 고래를 타고 테세트 황무지로 내려오는 방문자들을 발견하고 천연덕스럽게 찾아와서 인사를 건넸다.

사랑의 전도사와 평화를 바라는 온순한 종족의 대화.

죽이 잘 맞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어느 정도로 잘 통했다면 리사엘은 자진해서 더 원의 일원이 되어버렸을 정도다.

신과 여왕 양쪽을 섬기는 것이 얼핏 이상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천사가 마음에 드는 생명의 수호자가 되는 것은 흔한 일이었고, 오르피나는 오르피나대로 그녀를 이 세계의 친선 대사쯤으로 생각하면서 우호적인 관계를 구축했다.

문제는 리사엘의 머릿속이 지나치게 꽃밭이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오르피나는 그녀가 특이한 케이스라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이 행성에 살아가는 모든 생명체가 조화롭고 평화롭게 살아가는 온순한 존재들이라고 착각해버리고 말았다.

퍼스트 선 또한 그런 리사엘의 유전자 데이터를 바탕으로 만들어낸 생명체였던 것이다.

하지만 그 믿음은 얼마 가지 못해서 산산이 깨져버리고 말았다.

“처음부터 이상하다고 생각했어. 아무리 우리가 평화를 사랑하는 종족이라고 해도 전쟁 대비를 게을리하지는 않았으니까 말이야. 하지만 인간은 아무런 전조도 없이 갑작스럽게 대군을 이끌고 우리를 공격해 왔어. 그것도 우리의 군사체계와 약점을 완전히 꿰뚫어 보고 말이야!!”

“폐…하!”

인류가 더 원을 그렇게 압도적으로 유린할 수 있었던 이유는 데피리스 교단의 활약이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성녀가 신탁이라는 이름으로 게시를 내려서 더 원의 군사기밀을 낱낱이 알려주었던 것이다.

당연하지만 그것은 신의 계시 따위가 아니었다.

오히려 더 원의 내부자가 아니라면 절대로 알아낼 수가 없는 정보였다.

“여왕폐하도 그랬지만 나도 믿지 못했어. 설마 우리 중에 배신자가 있을 거라는 사실을 말이야. 하지만 인간의 몸으로 오랫동안 살아가다 자연스럽게 깨닫게 되더군. 이 모순적인 존재는…사랑하는 존재를 오로지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죽음에 몰아넣는 것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말이야!”

“…”

리한이 눈물을 흘리면서 주먹을 떨자 리사엘은 모든 것을 체념한 표정으로 눈을 감으며 고개를 떨어트렸다.

악질적인 사실은 바로 그것이었다.

그녀는 진심으로 더 원을 소중히 생각하며 사랑하고 있었다.

당연하지만 배신할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문제는 천계로 돌아가서 자신이 발견한 놀랍고 사랑스러운 존재들에 대해 신이 나서 떠들어대며 이곳저곳에 경솔하게 소문을 퍼트리고 다녔던 것이다.

천사들의 사회도 인간만큼이나 복잡하고 불안정하다.

그리고 신들은 기계적인 중립을 지키며 누구의 편도 들지 않는다.

천사장 중에 하나가 천계의 규칙을 깨고 데피리스 교단의 교황, 루크레스 3세와 은밀하게 거래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아무런 제지를 하지 않을 정도다.

그리고 그 거래의 결과로 더 원이 멸망해버리고 말았다.

“아무리 동족이라고 해도 용서할 수가 없다! 네년의 경솔한 행동으로 여왕 폐하가 돌아가셨어! 그런데 이제 와서 뻔뻔하게 인간들을 몰살하겠다고? 머리를 검은색으로 물들였다고 해서 내가 네년을 용서할 수 있을 것 같으냐!!”

분노를 주체하지 못하고 사시나무처럼 떨었지만 리한의 손아귀에는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진심으로 꺾어버리려고 했다면 리사엘의 가냘픈 목덜미 따위는 진작에 꺾어버릴 수 있었을 터.

하지만 미워도 미워할 수 없는 것이 동족이다.

게다가 그녀가 진심으로 자신이 저지른 실수를 괴로워하며 신을 버리고 타락해버렸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폐하가 바라신다면…목숨 따위는 기꺼이 내어드리겠습니다. 스스로 손을 대기 어려우시다면 기꺼이 자결하겠습니다. 하지만 그 전에 폐하에게 반드시 알려드릴 일이 있습니다. 이것만큼은…부디 이것만큼은 말씀드리게 해주세요.”

“…뭐냐?”

다음 순간.

리사엘에게 흘러나오는 말이 리한의 심장을 멈추게 했다.

“여왕 폐하께서 살아계십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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