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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96화 〉 에필로그(10) (396/429)

〈 396화 〉 에필로그(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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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예를 목숨보다 소중하게 여기는 귀족들에게 거세는 죽음보다 잔인한 형벌이다.

단순하게 단전을 부수는 거라면 무장으로서의 생명이 끝날뿐이지만 대를 이을 능력을 잃어버리면 혈통의 상징성과 가치가 사라져버리기 때문이다.

평생 사교계의 놀림거리로 전락해버리는 것은 덤.

이번 조치로 래리 일파는 실질적으로 붕괴해버린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물론, 데일을 이용해서 불만 세력들을 규합해 일망타진하겠다는 계획도 물거품이 되어버리고 말았지만, 이렇게 더러운 정치판에서 일찌감치 물러나게 해주는 것이 리한이 베풀 수 있는 최소한의 자비였다.

“후계자 전하. 델링거 왕실에서 편지가 왔습니다. 정당한 지위를 되찾으신 것을 축하하는 의미에서 왕도 로즈풀에 초대한다는 내용입니다만…”

“정중하게 거절하도록 해라. 영지의 상황이 혼란스러워서 움직일 수가 없다고 말이야.”

“알겠습니다.”

보고를 마친 지젤이 공손하게 허리를 숙이며 물러났다.

“…무시해도 괜찮은 거냐?”

“축하는 개뿔. 자기들이 아쉬우니까 부르는 거야. 적당한 감투 하나 씌워주면서 날강도처럼 이것 내놔라, 저것 내놔라 요구하겠지. 그렇게 아쉬우면 최소한 자기들이 찾아오는 성의를 보이던가. 어디서 건방지게 오라 가라야?”

“흠…아무래도 내가 모르는 사이에 왕실의 위상도 많이 추락해버린 모양이군.”

애쉬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납득했다는 표정을 지었다.

현재 리한은 테르할 제국과 달미나 왕국에서 일어난 전쟁을 분석하고 있었다.

다양한 마도구들이 자연스럽게 상용화되는 시대다 보니 아무리 멀리 떨어진 곳에서 일어난 사건이라고 해도 알아보는 게 어렵지 않다.

하물며 카밀라를 통해서 T­7의 스파이들이 입수한 고급 정보까지 확보한 상태.

미래에 자신을 가로막을 최대 적수인 테르할 제국을 면밀하게 분석해 나갔다.

“…역시 제국의 육군 전력은 강하군. 원래도 강하기는 했지만 쥬란이라는 녀석이 실권을 장악한 다음에는 소름이 끼칠 정도로 성장했어. 왕국의 수준보다 100년은 앞서있는 것 같군.”

“그게 뭐가 문제라는 거지? 적들이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네놈이 사도를 양산해서 쓸어버리면 되는 게 아니냐?”

애쉬가 말하는 사도는 레이디 나이트 같은 사례를 말하는 것이었다.

공화국의 슈퍼 히어로들은 리한의 손에 개조되어서 지급??의 무장으로 급성장했다.

“칭찬해줘서 고맙지만 마스터 코어의 용량 제한이 있어서 안 돼. 사도로 만들 수 있는 대상은 9명이 한계야. 벌써 5명이나 만들어버렸고 말이야.”

“…귀찮은 제약이로군.”

“전부 너 때문이지. 얌전하게 항복했다면 녀석들에게 낭비할 필요는 없었는데 말이야.”

“꼴 좋다.”

기쁨 100%가 느껴지는 미소를 지으며 얄밉게 웃음을 터트리는 모습에 아랫도리가 분노했다.

사실, 단순하게 능력을 강화시키는 것뿐이라면 누구라도 가능하기는 했지만, 마스터 코어와 연결하는 것이 불가능해서 기본적으로 통제가 되지 않는 데다가 여러 가지로 부작용과 문제가 많았다.

“어쨌든 제국을 쓰러트리기 위해서는 군대 조직의 전체적인 개혁이 필요해. 솔직히 개인의 전투력만 놓고 보면 너와 나를 상대할 적수는 없을지도 모르겠지만 숫자 앞에서 장사가 없으니까 말이야.”

게다가 상식을 초월하는 어떤 괴물이 도사리고 있을지도 모르는 법이었다.

“그렇다면 에밋이라는 남자가 죽은 것은 아깝게 되었군. 솔직히 지크프리트라는 애송이보다는 이자가 펼친 활약이 인상적이다만…”

애쉬가 인물 파일을 두드리면서 그렇게 말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아슈킬 가문을 위해서라면 진지하게 도와주는 그녀다.

물론, 세상 물정에 어두운 편이라서 크게 쓸모가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나름대로 열심히 궁리해서 조언하려고 애쓰는 모습이 귀여웠다.

“의외로 그렇지도 않아. 물론, 아까운 인물이기는 하지만 에밋도 얌전하게 죽어준 것은 아니니까 말이야.”

“얌전하게 죽어주지 않았다고?”

“훌륭한 사람들은 떠난 자리도 아름답다고 하잖아. T­7의 요원들이 입수한 정보에 따르면 13대 지크프리트가 제국을 피해서 도피 중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어. 아직 새파란 애송이기는 하지만 무력으로는 12대를 뛰어넘을 장래성에 용병술은 에밋보다 뛰어나다고 하더군.”

10년마다 무투회를 개최해서 용사의 이름을 계승해온 달미나 왕국.

당연하지만 지크프리트라는 이름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은 시드 배정을 받아서 다음 대회의 토너먼트를 거쳐서 올라온 우승자와 대결하게 된다.

이 우승자가 자연스럽게 용사의 후보가 된다는 것이다.

12대가 살아있어서 13대를 자처하는 것은 성급해 보일 수도 있지만, 제국에 사로잡혀서 이미 반쯤 전향해버렸다는 소문이 자자한 선대가 달미나 왕국의 부활을 바라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런 인재라면…확실히 탐이 나는군.”

“원래 이름은 루이사라고 해. 차기 용사이자 동시에 달미나 왕국 최고의 미녀라는 소문이 자자하더군.”

“…역시 그쪽이 목적이었나?”

“후후후후. 겸사겸사라는 거지. 물론, 남자였다면 모티베이션이 99%정도 떨어져 버렸을 테지만 말이야.”

“거의 100%잖아! 도대체 얼마나 사심으로 움직이는 거냐? 젠장! 이런 녀석하고 진지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다고 생각했던 내가 바보지…읏!”

갑작스럽게 백허그로 사로잡힌 애쉬가 얼굴을 붉혔다.

“농담이니까 너무 그렇게 화내지 마라. 가끔은 네가 귀엽게 웃는 모습도 구경하고 싶은데 말이야.”

“귀, 귀엽게 웃는 모습이라니…누, 누가 너를 위해서…하읏♡”

여전히 앙칼지기는 했지만 이미 상당한 조교가 진행되어서 목덜미의 성감대를 가볍게 깨물어버리는 것만으로도 숨이 뜨거워지며 가랑이를 움츠렸다.

하지만 리한은 평소대로 범하지 않고 적당히 달아오르게 한 후에 물러나 버렸다.

이름하여 애태우기 작전.

“생각해보니까 할 일이 남았군.”

“…뭣?”

“라프텔 호수의 문제를 처리해야 해. 이블린에게 게이트를 만들어놓으라고 했으니까 서둘러서 움직이도록 하지.”

“네 녀석…”

“무슨 문제라도 있어? 아니면 설마…이렇게 벌건 대낮에 낯뜨거운 정사를 기대한 것은 아니겠지?”

“누, 누, 누가 기대했다는 거냐! 언제나 허락도 없이 제멋대로 굴었던 주제에…”

“그래? 그것참 미안하게 되었군. 그러면 앞으로는 허락을 구하도록 하지.”

우뚝­

“뭐라고?”

“앞으로는 네가 원하지 않으면 일방적으로 범하는 일은 없을 거야. 물론, 가벼운 터치나 애정 표현까지는 참을 수 없지만 그것만으로도 어디야?”

“지, 진심으로 하는 소리냐?”

“왜? 이제 생각해보니까 그냥 평소대로 안아주는 게 좋아?”

“그럴 리가 있느냐! 크흠! 이, 이제라도 네놈이 정신을 차리겠다면 다행이지! 애초에 네놈은 자중이 필요해. 어쨌든 잘 생각했다. 수신 호위로서 칭찬해주도록 하지.”

“후후후후후.”

리한은 제 발로 함정에 걸려드는 애쉬를 보며 쾌재를 불렀다.

천년이라는 세월을 살아왔다고 하지만 인간하고 교류를 최소한으로 억눌러왔던 그녀는 사람이라는 존재 자체의 이해가 근본적으로 모자랄 뿐만 아니라, 남녀의 ‘밀당’이라는 개념 자체를 조금도 모르고 있었다.

겉으로는 도도한 척을 하지만 실제로는 허당인 고양이과라고 할까.

그런 애쉬를 손바닥 위에서 가지고 노는 것은 간단한 일.

머지않아서 스스로 안아달라며 애원하는 그녀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사납게 부풀어 오르는 아랫도리를 다독여 진정시켰다.

어쨌든 지금은 앞서 말했던 것처럼 라프텔 호수에 집중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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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손의 후계자인 이블린은 공간 마법을 다루는 데 탁월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 실력이 어느 정도로 뛰어나냐면 애쉬가 만들어낸 아공간에 카밀라들이 침입할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그녀다.

세계 최강의 무장이 만들어내는 프라이버시 공간.

원래대로라면 그곳에 침투하는 것은 제국이나 공화국의 역량을 총동원해도 불가능한 일이었지만, 그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태연히 저질러버리는 바람에 애쉬도 놀라서 경악을 금하지 못했다고 한다.

만약에 이블린이 아니었다면 성화령을 손에 넣는 것은 불가능했을 터.

그리고 벤클리프 유파가 달손 유파를 전멸시키지 않았다면 지금쯤 공간 마법에 혁명이 일어나서 워프와 텔레포트 효율을 획기적으로 개선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성과는 이제 리한을 위해서만 사용되고 있었다.

슈우우우웅­

“후후후후. 이렇게 짧은 시간에 라프텔 호수로 이동할 수 있다니 역시 유능한 부하는 영입해두고 볼 일이야.”

“부, 부끄럽습니다.”

사악한 웃음소리에도 불구하고 순수한 이블린은 익숙하지 않은 칭찬으로 얼굴을 붉혔다.

“겉으로 보면 아무런 문제가 없군. 결계는 호수 아래에 펼쳐놓은 것이냐?”

“그래.”

애쉬가 담담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라프텔 호수의 문제는 공식적으로 종결이 되었다.

군대도 이미 철수한 상태.

반경 수십km가 생물이 살아갈 수 없는 오염지대로 변해버렸기 때문에 지역 전체가 출입 금지구역으로 지정되었다.

하지만 그것은 사람들을 물리게 하기 위한 표면적인 이유일 뿐이다.

왜냐면 이 아래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상상하지 못한 터무니없는 것을 발견해버렸기 때문이었다.

“천사의 결계라…”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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