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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94화 〉 에필로그(8) (394/429)

〈 394화 〉 에필로그(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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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투에서 승리한 쥬란은 달미나 왕국에게 항복을 권고했다.

무기를 버리고 순순히 투항하면 아무런 불이익 없이 제국의 국민과 동등한 대우와 권리를 누리면서 살아갈 수 있게 해주겠다는 내용이었다.

전쟁에 대한 피로가 극에 달해있는 사람들에게는 귀가 솔깃해지는 제안.

거기에 꼴사납게 패배해서 포로로 사로잡혀버린 지크프리트하고 다르게 이번 결투에서 압도적인 강자의 풍모를 과시해 보인 쥬란은, 훤칠한 외모와 담백하지만 믿음이 가고 호감을 느끼게 하는 언변으로 왕국 국민들의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아버렸다.

우상에 매료당하기 쉬운 정부의 프로파간다 세뇌가 오히려 역효과를 일으켜버린 것이다.

제국에 대한 선입견은 여전히 떨쳐내기 어려운 것이었지만 쥬란이라는 인물의 약속은 믿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전반적으로 퍼져나갔다.

국민 전체가 일치단결해서 맞서 싸우는 결사 항전의 원동력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왕국의 수뇌부는 뒤늦게 사태의 심각성을 알아차리고 부랴부랴 방송을 차단하며 사태에 대처했지만, 이미 골든 타임을 놓쳐버린 후였다.

쥬란은 그로부터 3일을 더 기다렸다.

적들이 패배를 받아들이고 마음을 정리할 시간을 준 것이었다.

실제로 이 기간에 전투는 일어나지 않았지만 무려 70%의 레지스탕스와 게릴라 저항군이 백기를 들고 투항해버리고 말았다.

원정군 총사령관의 한켈 원수는 이 소식을 듣고 무릎을 치면서 탄식했다고 한다.

[대원수는 한 번의 싸움으로 1000만 대군을 굴복시키는구나.]

후방을 위협하는 세력이 사라지자 제국군은 마음 놓고 군대를 진군시켰다.

지금까지 완강하게 저항하던 왕국군은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맥없이 무너지면서 후퇴에 후퇴를 거듭했고 닷새 만에 수도를 함락, 열흘 만에 국토의 3/4를 점령해버리는 기염을 토했다.

에밋을 중심으로 똘똘 뭉친 잔존 세력이 계속해서 맞서 싸웠지만 이미 기울어져 버린 대세를 뒤집을 수는 없었다.

그들의 활약으로 제국군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한 달이라는 시간제한을 넘겨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이렇게 유리한 전황에서 강화를 맺고 물러나 버리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제국의 황제 카시우스 16세는 재빠르게 제국 회의를 소집했고 그 결과, 만장일치로 강화 논의를 폐기하고 달미나 왕국을 완전합병하는 것으로 방침이 전환되었다.

그것이 실현된 것은 그로부터 3개월 후의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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쥬란은 익숙한 기척을 느끼고 명상을 중단했다.

“무슨 일이냐?”

어둠 속에서 홀연히 나타난 아름다운 미녀가 한쪽 무릎을 꿇으면서 공손하게 절했다.

층층이 흘러내리는 회색의 머리카락.

퇴폐적으로 느껴진 공허한 눈동자와 새빨간 입술.

하지만 단정한 정장 차림으로 빈틈없이 예의와 격식을 차리는 모습은 첫날밤을 시중드는 새색시처럼 다소곳하기 이를 데가 없었다.

그녀의 이름은 로티나.

은요호 기관을 이끄는 제국 첩보조직의 수장이었다.

“대원수 각하의 하해와 같은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곤궁한 처지에 몰려있는 신첩을 이렇게 도와주시다니 지극한 성은에 어떻게 보답해야 할지…”

스르르르륵­

“적어도 몸으로 갚을 필요는 없으니까 다짜고짜 벗어던지지 마라.”

“아잉♡”

상의를 탈의한 그녀가 아쉬워하는 표정으로 교태를 부렸다.

“빚이라고 생각하지 마라. 오히려 너에게는 감사하고 있다. 지금까지 은요호 기관의 활약 덕분에 편하게 정무를 보면서 무공 수련에 집중할 수 있었으니까 말이야. 최근에 T­7 때문에 골치를 썩고 있다고는 하지만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지는 날이 있다고 하니까 알아서 대처할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아아아아아♡ 자비롭고도 은혜로운 말씀이 자궁 난소까지 스며들고 있습니다! 소녀를 안아주십시오, 대원수 각하! 인류 사회에 길이길이 남을 각하의 유전자를 이 세상에 보전하기 위해서!!”

“기어오르지 마라.”

“우에에엥!”

알몸으로 달려들었지만 보이지 않는 무형의 기운에 가로막혀버리고 말았다.

결국에는 포기하고 진지한 업무 모드로 돌아오는 로티나.

“그나저나 각하…이번 일에 직접 나서주신 것도 그렇고 최근 들어서 유난히 기분이 좋아 보이시는데 무슨 좋은 소식이라도 있는 겁니까?”

이 질문에 쥬란은 드물게 웃음을 터트리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후후후후. 역시 알아보는 것이냐?”

“물론입니다, 하루 25시간 각하만을 바라보는 해바라기니까요! 하지만 설마…여자 문제는 아니시겠지요?!”

“정말로 족집게로군.”

쿵!

“말도 안 됩니다, 각하! 정처인 소녀조차 성은을 입지 못한 마당에 감히 다른 년에게 혹하시다니요?! 영웅은 호색이라 다수의 처첩을 거느리시는 것은 나무라지 않겠습니다만 찬물도 위아래가 있는 법. 다른 년을 들이시더라도 우선은 소녀부터 안아주셔야…”

“내가 언제 너를 정처로 받아들였지?”

“그래요! 소녀만의 애처로운 주장입니다만 그래서 어쩌라고요? 어차피 누구하고도 결혼할 마음이 없으시니까 소녀라도 받아주시면 되잖아요! 이래 보여도 각하를 위해서 순결을 유지하고 있는데…”

“결혼할 생각이 없는 것은 아니야. 다만 나보다 약한 여자에게는 눈곱만큼도 관심이 없을 뿐이지.”

“그냥 거절해버리는 것보다도 100000000000만 배 잔인해! 하지만 좋아해!! 그런데…잠시만 기다려주세요, 각하. 지금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자기보다 약한 여자에게 관심이 없는 각하께서 누군가에게 흥미를 보이신다는 소리는 설마…?”

뜻하지 않게 어떤 결론에 도달해버린 로티나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평온의 검사 애쉬가 여자가 되었다고 하더군.”

“그, 그 정보를 도대체 어디에서…”

“후후후후. 나한테 보고하지 않고 몰래 폐기하려고 해도 소용없는 짓이다. 네가 생각하는 것쯤은 손바닥으로 훤히 들여다보고 있으니까 말이지.”

“아잉♡소녀를 수중에 두고 마음대로 다루시다니 변태~♡”

“…”

몸을 베베 꼬면서 부끄러워하는 그녀를 무시하고 말을 이어나갔다.

“10년 전에 나에게 처음으로 패배의 쓴맛을 알려준 존재. 애쉬에게 최근 들어서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다. 그 틈에 그…아니, 그녀의 존재마저도 기억할 수 없었던 금제에서 벗어날 수 있었지. 후후후후. 덕분에 마음에 뚫려버린 구멍이 이제야 메워졌어. 그동안 이유를 알 수 없는 두려움에 사로잡혀서 검을 수련해 온 목적을 찾아냈으니까 말이야. 모든 것은 애쉬! 그녀를 쓰러트리기 위해서였다!!”

쿠구구구구궁­

광기에 가득한 표정으로 웃음을 터트리는 쥬란의 모습에 로티나는 자신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켜버리고 말았다.

“펴, 평온의 검사 애쉬가 범상치 않은 인물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습니다만…설마…지금의 대원수 각하조차 승리를 장담하지 못할 정도로 강력한 존재라는 겁니까?”

“장담할 수 없는 정도가 아니다. 나에게 걸린 금제조차 자력으로 풀어내지도 못한 마당에 무슨 말이 필요하겠느냐? 현재 내 실력으로는 발끝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럴 수가…”

제국을 상징하는 무력의 상징.

천급에서도 틀림없이 1, 2위를 다투는 실력자의 말에 그녀의 표정이 창백해졌다.

“경계해야 하는 대상은 애쉬뿐만이 아니다. 모르겠느냐? 로티나. 그런 그녀를 혜성처럼 나타난 후계자가 굴복시켰다는 것이다. 그 실력은 나보다…아니, 어쩌면 애쉬보다도 뛰어날지 모르지. 후후후후후! 즐거운 일이 아니냐? 지루하기 짝이 없는 세상이 드디어 재미있어지기 시작했으니까 말이다.”

“지, 지금 당장 은요호 기관의 모든 전력을 투입해서 두 사람을 제거하겠습니다!”

“필요 없다.”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곧바로 조치하려고 했지만 쥬란이 멈춰 세웠다.

“하지만 각하…”

“이미 킬리안 총독에게 지시를 내렸다. 테오 방백을 도와서 오팔 왕국을 도모하라고 말이야. 은요호 기관은 지금까지 그래온 것처럼 제국의 영향력을 강화하면서 그를 서포트하는 데 주력해라.”

“그것만으로 충분하겠습니까? 게다가 하루 이틀이 걸리는 작업도 아니고 위험한 싹은 초기에 뽑아버리는 것이…”

“뽑아버릴 수는 있는 것이냐? 적의 전력도 미지수인 상황인데 말이야.”

“그, 그것은…”

“은요호 기관의 실전 병력이 모조리 당해버릴 수도 있어. 그게 더 큰 문제다. 그리고 지피지기면 백전불태. 적을 쓰러트리기 위해서는 우선 적이 얼마나 강한 상대인지를 확실하게 알아놓을 필요가 있지. 킬리안이라면 충분하게 그 역할을 해내고도 남을 것이다.”

꿀꺽.

‘이분은 도대체…’

테세트 평야에서 식민지 제국을 건설한 킬리안 제국은 쥬란의 가장 친한 친구이자 지급의 실력을 보유한 무장이었다.

그런 그를 망설이지 않고 버리는 말로 선택하면서 웃고 있었다.

친구의 죽음 따위는 안중에도 없이 앞으로 닥쳐올 전무후무한 대전쟁을 어린아이처럼 기대하면서…

부르르르르­

‘역시 내 눈은 틀리지 않았어. 당신은…당신이라는 괴물은 역시 최고야. 지옥 끝까지라도 따라가겠습니다, 쥬란님♡’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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