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93화 〉 에필로그(7) (393/429)

〈 393화 〉 에필로그(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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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강의 검사 VS 세계 최강의 용사

천급의 무장들이 정면으로 격돌하는 것도 백 년에 한 번 일어날까 말까 한 대사건이지만 그 전투가 실시간으로 중계되는 것은 그야말로 사상 초유의 일이었다.

뛰어난 실력자들일수록 자신의 기술이 미디어에 노출되는 것을 꺼리기 마련.

누군가가 그것을 분석해서 파훼법을 알아내거나 기술 자체를 훔쳐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차원이 다른 강자들의 충돌은 일반인들의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다.

다급하게 수비군에게 연락한 에밋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지크프리트를 막으라고 소리를 질렀지만, 음속을 돌파해 주변 사물을 제트분사로 날려버리며 지상을 질주하는 푸른 유성을 사로잡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아니, 군인들은 애초에 책사의 명령에 따를 생각이 없었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

[반드시 승리하고 돌아오십시오, 지크프리트님!]

[빛의 용사에게 승리를! 달미나 왕국이여 영원하라!!]

국민 모두 아니, 대다수가 한마음 한뜻으로 지크프리트의 출전을 응원하면서 모자를 던지고 쌍수를 들어 올리며 환호성을 질렀다.

수뇌부조차 호랑이 등에 올라탔으니 어쩔 수 없다며 방송을 지켜보자고 하자 에밋만이 외롭게 좌절해서 화병으로 쓰러져버리고 말았다.

쿠구구구구궁!

전운이 감도는 아스마 화산.

창창하게 맑은 하늘로 갑작스럽게 먹구름이 몰려오면서 뇌성벼락이 울려 퍼졌고 수천 년 동안 잠잠하던 용암지대가 거칠게 진동했다.

화강암 바위에 앉아서 명상에 빠져 있던 쥬란은 자신의 적수가 나타났다는 사실을 직감하고 조용하게 검을 뽑아 들었다.

카메라로 현장을 중계하는 제국의 배틀 메이지들이 허둥지둥 5km 바깥으로 물러났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 너무 가깝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10km까지 거리를 뒀다.

그리고 화산이 폭발하는 것 같은 사나운 노호성이 울려 퍼졌다.

“쥬라아아아아아아안­!!!”

목울대로 핏줄을 세우며 달려오는 지크프리트는 그를 발견하기가 무섭게 지축을 힘차게 밟아 누르며 창을 집어던졌다.

결투 시작을 알리는 신호도 없이 갑작스럽게 이루어진 기습.

퍼퍼퍼퍼퍼퍼퍼퍼펑!

산의 일각을 단숨에 날려버리며 터져 나오는 흙먼지와 돌덩어리들이 해일처럼 쏟아져 내려왔지만, 사뿐하게 일격을 피해버린 쥬란은 그 거대한 재해를 배경으로 등에 지고도 산책이라도 나온 사람처럼 여유로웠다.

“저돌적으로 달려드는 모습이 멧돼지가 따로 없군. 너에게는 용사라는 칭호 앞에 야만이라는 단어를 추가하는 것이 어울리겠어.”

“네이노오오오오오옴!!”

투콰아아아아아앙!

지크프리트는 양손으로 그람을 휘둘러서 산허리를 날려버렸다.

“!!!”

하지만 쥬란은 어느새 그의 검신에 올라타 있었다.

“냉정하게 싸워라. 비겁하게 격장지계로 도발해서 승리했다는 소리를 듣고 싶지는 않으니까 말이야.”

“큭! 네 녀석…”

그제야 적수가 생각보다 만만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고 식은땀을 흘렸다.

“지금부터 3수를 양보해주지.”

“나를 얕잡아보는 것이냐?!!”

“오히려 경의를 표하는 것이다. 물론, 네 녀석이 아니라 하나는 인류를 구원한 초대 용사에게 바치는 존경의 의미고 또 하나는 용감하게 싸운 군인들에게, 그리고 마지막 하나는 존경받아 마땅한 달미나 왕국의 국민들에게 양보하는 것이다.”

쥬란은 눈앞에 있는 지크프리트는 신경 쓰지도 않는다는 것처럼 자신을 촬영하는 카메라를 똑바로 바라보면서 그렇게 말했다.

10km 바깥으로 떨어져 있다고 해도 메시지는 똑똑하게 전달이 된다.

그것은 결투를 빙자하는 연설이나 마찬가지였다.

달미나 왕국의 국민들은 지금까지 정부의 프로파간다에 세뇌되어서 제국을 절대적인 악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쥬란은 그 편견을 철저하게 때려 부수려고 하고 있었다.

상대를 무시해도 터무니없이 무시하는 처사였지만 국민 전체의 이목이 쏠려있는 순간에 뱉어내는 스피치의 영향력은 어마어마한 것이다.

게다가 정의의 용사는 반드시 승리한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 사람들에게 승자(강자)는 정의나 마찬가지.

쥬란이 뱉어내는 말 한마디, 한 마디가 센세이션할 수밖에 없었다.

에밋이 화병으로 쓰러져버리지만 않았다면 지금 당장 방송 송출을 중단하라고 소리를 질렀을 테지만, 안타깝게도 나머지 수뇌부들은 화면 너머에서 펼쳐지는 터무니없는 전투의 스케일에 압도당해서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지 못하고 있었다.

“사람을 얕잡아보는 것도 정도껏 해라아아아아아아아!!!”

투콰아아아아아아앙!!

거대한 십자 형태로 날아가는 에너지파가 쏟아져 내려오는 암석들을 날려버렸다.

“아직도 감정에 휘둘리는군. 이것도 3수에서 제외해줘야 하는 것이냐?”

사뿐히 날아올라서 회피한 쥬란이 그렇게 조롱했지만 지크프리트는 어느새 더 높이 뛰어올라서 2차 공격을 준비하고 있었다.

자신이 언제 성질을 부렸냐는 것처럼 냉정한 모습.

두 눈은 먹잇감을 포착한 매처럼 날카롭게 빛나고 있었다.

‘이 녀석이?’

그제야 쥬란은 지크프리트의 첫수가 페이크였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폴라 라이트!!!”

죽음의 여신이 손짓하는 것처럼 총천연색으로 펼쳐지는 오로라.

감탄이 저절로 터져 나오는 장관이었지만 하늘에서 쏟아져 내려오는 아름다운 빛의 물결의 정체는 하나하나가 강기를 담고 있는 검격이었다.

투쾅!!

채채채채채채채채챙!

화강암을 박살 내버리며 지상으로 추락한 쥬란의 두 발이 지면에 박혀 들었고 터무니없는 속도로 주고받는 검극이 대기를 날카롭게 찢어발겼다.

“훌륭한 솜씨구나, 쥬란! 하지만 용사의 저력을 얕본 것을 후회해라! 감히 나에게 선수를 양보하는 것만으로도 모자라서 하필이면 이곳을 전장으로 선택하다니 말이야! 네놈의 어리석은 결정을 지옥에서 반성해라. 일어나라, 불카누스여!!!!!”

쿠구구구구구궁!

지크프리트의 응답에 화답하는 것처럼 아스마 화산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지면에서…? 설마 아까 날려 보냈던 창이…!”

“알아차려도 이미 늦었다!!”

투콰아아아아아앙!!

폭발하듯이 뿜어져 나오는 용암이 쥬란을 덮쳤다.

그리고 새빨갛게 달아오는 불카누스의 창이 그의 심장을 단숨에 관통하면서 미사일처럼 날아 올라갔다.

“화이트 아웃!!!”

퍼퍼퍼퍼퍼퍼펑!

지크프리트는 그것으로도 모자라서 극음의 무투기를 사용해 분출하는 용암을 단숨에 식혀버렸다.

고오오오오오­

마치 거대한 버섯이 지면에서 솟아오른 것처럼 딱딱한 돌덩어리로 변해버리는 화강암 덩어리.

샤샤샤샤샤샤샤샥!

와르르르르르르!!

그것을 다시 한번 무수하게 잘라내서 붕괴시켜버린 지크프리트가 찬란하게 빛나는 금발을 쓸어넘기면서 앙천대소했다.

“하하하하하! 하하하하하하하하하! 꼴 좋다, 쥬란!! 잘난 척이라는 잘난 척은 모조리 해대더니 결국에는 이것밖에 안 되는 녀석이었구나!!!”

카메라는 여전히 돌아가고 있었기 때문에 명예로운 결투에서 패배한 상대를 조롱하는 모습은 용사로서도, 무장으로서도 바람직한 태도라고는 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승리에 도취해버린 지크프리트는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는 수많은 눈과 귀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급기야 선을 넘는 발언까지 서슴없이 퍼부어대기 시작했다.

“이것으로 끝이 아니다! 다음에는 제국의 수도 메테오폴로 쳐들어가서 네놈의 가족들을 모조리 토막내주마! 아비의 눈앞에서 어머니와 여동생을 강간해서 그 시체를 돼지 먹이로 던져주겠다! 지옥에서 두고 봐라!! 네놈이 사랑하는 모든 사람의 피를 비처럼 뿌려줄…”

“그 전에 나부터 먼저 제대로 쓰러트려야 하지 않겠느냐?”

“!!!!!”

배후에 나타난 쥬란의 목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라며 안색이 창백해졌다.

“네, 네놈이 도대체 어떻게…”

“제법 훌륭한 공격이었다. 피를 본 것은 그때 이후로 처음이군.”

뺨에 난 생채기에서 흘러내리는 피를 닦아내면서 그렇게 말했다.

“약속대로 3수를 양보했으니 이번에는 내 차례다.”

“크으으으으으윽! 순순히 당할 것 같으냐! 그람과 불카누스여 나를 감싸고…”

“무상신검.”

한순간 빛이 번쩍였다.

그리고 지크프리트는 그대로 정지해서 움직이지 못하게 되었다.

“나, 나한테 무슨 짓을 한 것이냐…”

창백한 안색으로 입술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죽지는 않았지만 완벽한 전투 불능으로 만들어버린 일검.

더 소름 끼치는 사실은 그 공격이 카메라에 기록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두 사람의 전투는 평범한 사람들은커녕 S급의 무장들조차 육안으로 따라잡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이루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프레임 속도에 상관없이 마법으로 시야 범위에 들어오는 모든 상황을 고스란히 촬영하는 카메라는, 기록한 영상을 한없이 느린 속도로 재생해서 아무리 빠르게 이루어지는 전투라고 해도 차분하게 되짚어보는 것이 가능했다.

그런데 쥬란이 사용한 무상신검이라는 기술은 카메라에 영상이 남아있지 않았다.

“심검心?의 경지라니. 이런 빌어먹을…”

지크프리트는 욕지거리를 뱉어낸 후에 의식을 잃고 끝없이 추락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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