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91화 〉 에필로그(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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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크프리트…”
“물론, 알고 있습니다만 그게 그렇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실력도 실력이지만 백성들이 금이야 옥이야 감싸며 생쥐처럼 요리조리 도망쳐다니는 녀석을 어떻게…”
“멍청한 녀석들! 누가 어려운 임무라는 것을 몰라서 이러는 것이냐? 그래도 해냈어야 한다는 말이다! 제국 최강의 기사단인 우리가! 젠장, 네놈들이 이렇게 한심해 빠졌으니까 그분께서…빌어먹을!”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평소답지 않게 감정적으로 화를 내는 상관의 모습에 제레미가 미간을 좁히며 물었다.
“…대원수님께서 오셨다.”
“쥬란님께서요? 도대체 무슨 일로…서, 설마?”
“그래. 그분께서 직접 이 지리멸렬한 싸움에 종지부를 찍으려고 행차하셨다. 총사령관께서 전장에 나오게 하다니 야전사령관으로서 이렇게 한심할 수가…”
분한 마음을 억누르지 못하고 입술을 깨무는 발터를 보고 부하들의 표정이 아연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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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사의 나라 달미나 왕국은 인류 연합을 결성해 종족전쟁의 승리를 주도한 세력으로 유명했다.
특히 빛의 왕자 지크프리트와 동료들이 힘을 합쳐서 드래곤 로드 니다그와 하이 엘프의 마왕 나르디나스를 쓰러트린 일화는, 대륙에서 가장 유명한 서사시로 나라를 불문하고 교과서마다 수록되어 있을 정도다.
물론, 인류가 선이고 이종족은 악이라는 프레임은 지나치게 승자 위주로 과장하고 미화했다는 비판은 있다.
그래도 확실한 사실은 이 사건으로 인간들이 대륙의 패권을 차지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달미나 왕국에서는 이런 용사 파티의 활약을 기려서 10년마다 정기적으로 무투회를 개최해서 승자에게 지크프리트라는 이름을 계승시켰다.
마왕을 쓰러트린 나라라는 브랜드 가치를 내세워서 수백 년 동안 인류를 대표하는 상임이사국으로서의 지위를 누렸던 것이다.
테르할 제국과 앵커리지 공화국이라는 초강대국들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그들이 대륙을 이끌었다.
하지만 흥망성쇠는 세상의 이치.
새로운 해가 떠오르면 눈치가 빠른 달은 떠나는 걸음을 재촉해야 살아남을 수 있었지만, 달미나 왕국은 그런 시대의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품위 있는 국제사회의 수장으로 인류를 선도해온 그들로서는, 끝없는 탐욕을 드러내면서 마치 땅따먹기를 하는 것처럼 주변 나라들을 침략해 정복하는 야만적인 제국이 세계 최강대국이라는 사실을 죽었다가 깨어나도 인정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달미나 왕국은 대륙의 국가들에게 열변을 토해서 그들을 인류의 적으로 규정하고 힘을 합쳐서 토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자신이 직접 총대를 메고 반 제국연합을 결성해서 선전포고를 했다.
힘의 차이는 명백.
하지만 테르할 제국은 생각보다 훨씬 더 오랫동안 그들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다.
썩어도 준치라고 옛날보다 위세가 약해지기는 했어도 여전히 상임이사국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을 정도로 만만한 나라가 아니었던 데다가, 제국을 싫어하는 수많은 군소국가들이 이때다 싶어서 우르르 몰려가서 연합에 합류한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앵커리지 공화국은 웬 떡이냐 좋아하면서 이역만리 떨어진 그들에게 아낌없이 무기와 물자를 지원해주었다.
덕분에 달미나 왕국은 무려 50년 동안이나 집요하게 국경을 침략하면서 집요하게 제국을 괴롭혀 왔다.
이번 원정은 그 오랜 악연을 완벽하게 끝내버리기 위한 군사 작전이었다.
3개의 집단군, 무려 300만이라는 대군을 동원해서 달미나 왕국은 물론이고 대륙 동남부를 모조리 평정해버릴 계획이었던 것이다.
이것이 대륙 전쟁의 전초전이라는 사실은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후방을 정리해서 앵커리지 공화국을 공격할 때 후환을 남겨두지 않으려는 속셈이었지만, 공화국은 그것을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내부 갈등이 심화되어서 군대를 움직이지 못했다.
덕분에 어마어마한 제국 군대의 규모를 보고 좌절한 수많은 연합국들이 싸워보지도 않고 백기를 들었다.
하지만 달미나 왕국은 달랐다.
이미 50년 전부터 제국하고는 같은 하늘 아래서 공존할 수가 없다고 생각해왔던 그들이다.
자신들의 싸움을 대륙의 평화를 위협하는 악의 세력에 맞서는 성전이라는 프로파간다로 전국민을 하나로 결속시켰으며, 초대 용사의 환생이라고 불리는 12대 지크프리트를 우상으로 내세우며 철저 항전을 준비해 왔다.
전쟁이 시작되자 곧바로 국가 총동원령을 선포해서 군민 전체를 대상으로 징집을 시작했고 무려 1천만이라는 거대한 규모의 병력을 순식간에 소집해버리고 말았다.
테르할 제국은 물론이고 300만이라는 숫자에 겁을 먹어서 항복해버린 주변 나라들의 어안이 벙벙해지는 순간이었다.
그것은 인류가 대륙의 패권을 차지한 후로 처음으로 경험하는 미지의 규모였다.
하지만 비현실적인 숫자도 아니다.
실제로 군사 전문가들의 계산에 따르면 테르할 제국이 앵커리지 공화국을 정복하기 위해서 동원하는 병력이 5천만에 이른다.
그것도 전쟁이 순조롭게 진행된다는 가정으로 산출한 것이기 때문에 실제로 투입하는 숫자가 1억이 될지, 2억이 될지 모른다는 게 지배적인 중론이었다.
덕분에 제국이 동원한 300만이라는 병력은 오히려 세계 3위의 국력과 2억이 넘는 인구를 보유하고 있는, 달미나 왕국의 저력을 지나치게 얕잡아보는 바람에 일어난 실책이라는 소리가 자연스럽게 흘러나오게 되었다.
하지만 무조건 비난할 수만도 없는 것이 양쪽 모두가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던 것이다.
1천만이라는 병력을 소집한 달미나 왕국도 자신들의 역량에 놀라기는 마찬가지였고, 테르할 제국도 현대 전쟁의 양상과 매커니즘이 완전히 달라졌다는 사실을 깨닫고 자신들의 전략에 대대적으로 수정을 가할 수밖에 없었다.
어쨌든 한 번 꺼낸 칼은 쉽사리 꽂아 넣을 수가 없는 것이다.
테르할 제국 300만 VS 달미나 왕국군 1000만의 대전쟁.
그리고 6개월이라는 시간이 흘러서 현재에 이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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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는 우리가 유리합니다, 각하. 굳이 여기까지 왕림하실 필요는…”
원정군 총사령관 한켈 원수는 자신보다 새파랗게 어린 대원수의 행보에 쩔쩔매면서 보조를 맞췄다.
그의 말대로 지금까지의 전과를 보면 제국이 압도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지난 6개월 동안의 전쟁으로 왕국군은 150만 명이 전사했다.
사상자는 배가 넘으며 사로잡은 포로만 200만.
하지만 이 전쟁은 그런 수치를 내고도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자네를 해고하려고 찾아온 것이 아니니까 걱정하지 말게. 수적인 열세를 극복하고 훌륭한 전과를 세운 장군이 뭐가 그렇게 두려운 것인가? 사소한 문제가 있다면 아직도 승리하지 못했다는 정도일 뿐이지.”
“그, 그것에 대해서는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만…”
“드릴 말씀이 없다면 닥치고 있게. 제국회의에서는 이미 반전을 주장하는 세력이 다수야. 이번 전쟁을 한 달 이내로 끝내지 않으면 강화를 맺고 물러나게 될 걸세. 제국이 패배한다는 소리야.”
이 말을 들은 한켈이 펄쩍 뛰었다.
“말도 안 됩니다! 정치인 나부랭이들이 뭐라고 마음대로 그런 결정을 내린다는 말입니까? 이건 다 이긴 싸움입니다! 지금까지 희생된 장병들을 생각해서라도 절대로 그럴 수는…”
쥬란이 다물라는 신호를 보내자 목소리가 작아져 갔다.
“내가 찾아온 이유가 그것 때문이네. 이번 전쟁을 한 달 이내로 끝내기 위해서 말이야.”
“하지만 그게 말이 쉽지. 도대체 어떻게…”
현재 전황을 요약하면 그야말로 끝이 보이지 않는 장기화에 늪에 빠져버렸다고 할 수가 있다.
제국군은 강했다.
300만으로 1000만을 격파하고 초반에 기선을 제압한 것이다.
그런 놀라운 성과를 낼 수 있었던 이유는 군대의 질이 월등하게 뛰어났기 때문이다.
무장과 마법사들의 수준 차이는 두말할 필요도 없었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차이가 났던 이유는 병사들의 기본 장비와 훈련상태가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좋았다는 것이며, 지휘관들의 전략과 전술이 적들을 원시인으로 만들어버릴 정도로 뛰어났다.
모두 쥬란 신이 진행한 군사개혁이 빚어낸 성과다.
그래서 전쟁 초반에 양쪽 대군이 시원하게 격돌해서 압승할 때만 하더라도 전쟁의 조기 종결하는 장밋빛 미래를 꿈꿨지만, 적들이 정면 대결을 피하며 장기전을 유도하자 상황이 이상해지기 시작했다.
왕국군은 전략적으로 중요한 거점 요새에 틀어박혀서 걸어오는 싸움을 피했다.
그리고 게릴라 부대를 적극적으로 운용하면서 후방 보급을 차단하고 국지전을 유도해서 제국군을 괴롭히기 시작했다.
게다가 점령지가 늘어나기 시작한 것도 문제가 되었다.
원래부터 병력이 부족했던 제국이다.
그에 비해서 달미나 왕국은 국가의 프로파간다에 세뇌당한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레지스탕스에 합류해서, 정말로 2억 명의 적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것처럼 시도 때도 없이 공격을 받았다.
덕분에 추가 파병을 피할 수 없었던 제국은 처음 계획하고는 비교할 수도 없이 병력을 늘려서 현재는 무려 1200만의 대군이 투입되어 있었다.
사상자도 100만 명을 넘어가서 적의 피해를 우습게 바라보는 것도 불가능한 상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