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87화 〉 에필로그(1) (387/429)

〈 387화 〉 에필로그(1)

* * *

****

마르텔 대모는 이미 죽었다.

뇌사상태에 빠졌다는 것은 그런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하지만 하인즈는 자신의 독단으로 연명치료를 강행하고 있었다.

주변에서는 이미 죽은 사람의 영혼을 육신에 무리하게 붙잡아두지 말고 편하게 보내주자는 의견이 지배적이었지만 그는 마지막까지 고집을 꺾지 않았다.

왜냐면 3년 전에 죽었다고 생각한 후계자가 살아서 돌아왔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아슈킬 가문의 주치의로서 할머니와 손자를 마지막으로 만나게 해줘야 한다는 사명감.

동시에 평온의 검사 애쉬가 떠나지 못하게 잡아두기 위해서라도 마르텔 대모를 반드시 살려두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오늘, 기적이 일어났다.

지이이이잉­

클레어의 손아귀에서 눈 부신 빛이 뿜어져 나오자 창백하기 이를 데가 없었던 마르텔 대모의 안색이 회복되면서 혈기가 돌았다.

스으으읍­ 하아아아­ 스으으읍­ 하아아아­

차츰 차분해지는 숨결.

“산소마스크를 벗겨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터무니없는 광경을 목격한 하인즈는 마치 인턴 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힘차게 대답하면서 그녀의 지시를 따랐다.

“호흡과 맥박, 신체 리듬이 모두 정상으로 돌아왔습니다…도대체 어떻게 이럴 수가…”

“깨어나면 목이 마르실 테니까 물수건으로 입술을 적셔주세요. 식사는 위장이 충분히 회복될 때까지 부드러운 죽과 미음을 준비해주시고…아니, 저보다 잘 알고 계실 테니까 긴말은 하지 않겠습니다.”

털썩!

“부디 저를 제자로 받아주십시오, 성녀님!!”

“네? 아, 아니. 저는 그게…”

“일어나세요, 하인즈 선생님. 성녀님을 곤란하게 하지 않는다는 계약이라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아, 네! 그랬었죠. 죄송합니다, 도련님. 제가 잠시 이성을 잃어버려서 터무니없는 실례를…부디 용서해주십시오. 성녀님!!”

“괜찮습니다. 그러면 저는 이만 물러가 보겠습니다.”

덥썩!

“부하들을 시켜서 댁까지 안전하게 모셔다드리겠습니다. 정말로 감사합니다, 성녀님. 이 은혜는 아슈킬 가문의 이름을 걸고 반드시 보답해드리겠습니다.”

“넷! 네에에에…”

리한이 클레어의 두 손을 강하게 움켜잡으면서 말하자 베일 너머의 얼굴이 홍당무처럼 새빨개져서 힘없는 목소리로 대답해 왔다.

이 모습을 보고 성녀가 후계자를 좋아하는 것 같다고 소곤거리면서 호들갑을 떠는 하녀들.

팔짱을 끼고서 구석에 삐딱한 자세로 기대어 있는 애쉬가 전음으로 비아냥거렸다.

[황당한 촌극이군. 네놈은 도대체 뭐가 무서워서 자신의 능력을 숨기며 이렇게 번거로운 짓거리를 하고 있는 거냐?]

[세상일이라는 게 그렇게 단순무식하게 굴러가지는 않으니까 말이야. 기왕이면 영리하다고 표현해줬으면 좋겠군. 그리고 애쉬, 말투는 조심해야지? 주인님에게 네놈이 뭐야?]

[웃기시네.]

코웃음을 치면서 고개를 돌려버리는 모습을 보아하니 지금 상황이 어지간히도 불만스러운 모양이었다.

두 사람이 그렇게 티격태격하는 사이에 마르텔의 눈썹이 움찔거렸다.

“마님께서 깨어나십니다!!”

“마님!”

“할머님!!!”

하녀의 외침에 지켜보는 사람들이 걱정과 기대 섞인 시선으로 손에 땀을 쥐었다.

“읍, 으으음…여, 여기는…쿨럭, 쿨럭!!”

“물수건을 가져와, 어서!!”

목을 축이자 시야가 돌아오면서 흐릿한 초점이 맞춰졌다.

그리고 자신의 손을 붙잡고 있는 사람의 정체를 확인하고 소스라치게 놀라며 소리를 질렀다.

“리한…? 저, 정말로 네가 맞니? 아니면…내가 죽어서 천국에 온 거야?”

“진짜 접니다, 할머님. 귀가가 늦어서 죄송합니다.”

“정말로 네가 맞구나!!”

와락!

어디에서 그런 기운이 났는지 앙상한 몸으로 힘차게 끌어안았다.

“고맙다, 애야…살아있어 줘서 고마워! 흑흑흑…데피리스님의 은혜로구나! 이 할머니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아느냐? 네가 이미 죽은 줄 알았어. 종말의 마수들이 어슬렁거리는 그 끔찍한 대지에 차가운 주검으로 묻혀있다는 생각에 편하게 잠들어본 적이 없단다. 이런 매정한 녀석 같으니라고…”

“…죄송합니다, 할머님.”

감동적인 재회의 순간.

마지막까지 마르텔의 곁을 지켜온 충성스러운 하인들답게 누구나 예외 없이 눈시울을 붉히며 훌쩍거렸지만, 정작 당사자인 리한이 데피리스라던가 종말의 마수를 언급하는 부분에서 인상을 찌푸렸다는 사실을 알아챈 사람은 애쉬밖에 없었다.

“그러고 보니 래리와…돌로레스는 어디에 있느냐? 어째서 모습이 보이지 않아???”

“그건…”

집사 로니가 입을 열려고 하자 멈춰 세우고 앞으로 나섰다.

“두 분 모두 사정이 있어서 참석하지 못했습니다. 그 이야기는 나중에 하시죠, 할머님. 지금은 안정을 취하시는 게 먼저입니다.”

“…그래? 됐다! 녀석들이 무슨 이유로 불참했는지는 안 봐도 뻔하구나! 이런 천하에 몹쓸 녀석들 같으니라고…걱정하지 말거라, 이 할미가 병상을 떨치고 일어나면 날을 잡아서 제대로 혼쭐을 내주마!”

‘혼쭐을 낸다라…’

마르텔의 으름장에 리한은 자신도 모르게 속으로 피식 웃어버리고 말았다.

그녀가 말하는 ‘처벌’이라는 것은 말 그대로 잔소리 몇 마디로 끝내버리겠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일어난 전후 사정을 조금도 모르기 때문에 나오는 헛소리지만, 자세한 내막을 알게 된다고 해도 지금까지 으레 그래왔듯이 솜방망이 처벌로 어영부영 넘어가 버릴 것이 틀림없었다.

하지만 절대로 그렇게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리한은 속내를 숨기고 가식적인 미소를 지으면서 그녀에게 거리를 두었다.

애쉬의 모습이 마르텔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그때의 일이었다.

“애쉬님!”

“…흠.”

반갑게 이름을 불렀지만 퉁명스러운 표정으로 살짝 고개를 까딱해 보일 뿐이었다.

“제 곁을 지켜주셨군요!”

“그런 계약이니까 말이야.”

“후후후후. 퉁명스러운 모습은 여전하시군요. 기분 탓인지 굉장히 오랜만에 얼굴을 보는 것 같은…애쉬님?”

소녀처럼 들떠서 말을 이어나가던 마르텔은 그에게 평소하고 다른 이상한 점을 발견하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물어보지 마라.”

“아니,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물어보지 말라고 하지 않았느냐!”

“애쉬! 할머님에게 무슨 말버릇이냐? 공손하게 예의를 갖춰라!”

“큭! 네놈이 무슨 낯짝으로…”

“정식으로 명령해 줄까?”

“치이이이잇!”

리한이 능글맞게 웃으면서 놀리는 것처럼 말하자 분한 표정으로 이를 갈면서 표정을 찌푸렸다.

“세상에…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니? 할미는 도저히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겠구나…”

“별 것 아닙니다. 애쉬님과 제가 새로운 1대 1 계약을 체결했거든요. 단지 지금까지처럼 대등한 관계가 아니라 명확한 상하 관계를 정립했을 뿐입니다.”

“명확한 상하 관계라니…휴우…아무래도 내가 의식을 잃어버린 사이에 생각보다 많은 일들이 일어났던 모양이구나.”

굉장히 놀랐는지 자신을 진정시키려는 것처럼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래도…기왕에 이렇게 되었으니까 실례를 무릅쓰고 물어보겠습니다, 애쉬님.”

“크으으윽!”

마르텔 대모의 말에 주먹을 불끈 쥐면서 부들부들 떨었지만 그녀는 무럭무럭 솟아오르는 질문의 유혹을 도저히 떨쳐낼 수가 없었다.

“도대체 어쩌다가 여자가 되어버리신 건가요???”

****

마르텔 대모가 뇌사상태에서 회복해서 살아났다는 소식은 일파만파로 퍼져나갔다.

리한이 기적의 성녀에게 도움을 받았다는 이야기가 나왔지만, 아슈킬 가문으로부터 철저한 함구령이 떨어졌기 때문에 소문만 무성하게 여러 가지 추측과 낭설이 난무할 뿐이었다.

놀라운 일은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제니아의 모든 무장들에게 이름을 말할 수 없는 공포의 대상으로 군림하고 있는 평온의 검사 애쉬가 리한과 새로운 계약을 체결해서 호위가 되었다는 소식도 귀족들에게 빠른 속도로 퍼져나갔다.

이것으로 후계자의 지위는 감히 누구도 흔들 수 없는 단단한 반석에 올랐다.

누구도 거스를 수가 없는 거대한 무력에 명분까지 손에 얻은 리한.

그의 등장을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불만 세력들은 모조리 입을 다물어버렸고, 이른 시일 안에 자신들의 새로운 주인으로 등극할 그를 열렬하게 환영하며 앞다퉈서 아첨해오기 시작했다.

게다가 내전에 협력한 사라 방백과 굳건한 동맹을 체결했으니 그녀를 도와서 동쪽으로 치고 나갈 명분을 확보했을 뿐만 아니라, 단숨에 오팔 왕국 최강의 세력으로 급부상하게 되었다.

여기에 앵커리지 공화국으로부터 엄청난 지원까지 약속받았으니 그야말로 탄탄대로가 열려있는 셈.

모든 것이 순조롭게 풀려나가고 있었지만 카밀라로부터 보고를 듣는 차양 너머의 여인, 엠프리스는 불만스럽게 얼굴을 찌푸렸다.

[…그러니까 아공간에서 일어난 일이…이게 전부라는 겁니까?]

“네, 그렇습니다!”

[진심으로 하는 소리인가요?]

“실례지만 무슨 문제라도…”

[문제가 너무 없어서 문제입니다! 잘 들으세요, 카밀라! 1억 대륙 은화입니다. 그 후계자가 무려 1억 대륙 은화라는 거액을 제시하면서 우리에게 협력을 요청한 사안이라고요!그래서 공화국 최강의 영웅들을 다섯 명이나 보내준 건데…아무런 충돌 없이 평화롭게 계약을 체결했다고요? 저보고 지금 그 말을 믿으라는 겁니까???]

〈 387화 〉 에필로그(1)

* * *

****

마르텔 대모는 이미 죽었다.

뇌사상태에 빠졌다는 것은 그런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하지만 하인즈는 자신의 독단으로 연명치료를 강행하고 있었다.

주변에서는 이미 죽은 사람의 영혼을 육신에 무리하게 붙잡아두지 말고 편하게 보내주자는 의견이 지배적이었지만 그는 마지막까지 고집을 꺾지 않았다.

왜냐면 3년 전에 죽었다고 생각한 후계자가 살아서 돌아왔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아슈킬 가문의 주치의로서 할머니와 손자를 마지막으로 만나게 해줘야 한다는 사명감.

동시에 평온의 검사 애쉬가 떠나지 못하게 잡아두기 위해서라도 마르텔 대모를 반드시 살려두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오늘, 기적이 일어났다.

지이이이잉­

클레어의 손아귀에서 눈 부신 빛이 뿜어져 나오자 창백하기 이를 데가 없었던 마르텔 대모의 안색이 회복되면서 혈기가 돌았다.

스으으읍­ 하아아아­ 스으으읍­ 하아아아­

차츰 차분해지는 숨결.

“산소마스크를 벗겨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터무니없는 광경을 목격한 하인즈는 마치 인턴 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힘차게 대답하면서 그녀의 지시를 따랐다.

“호흡과 맥박, 신체 리듬이 모두 정상으로 돌아왔습니다…도대체 어떻게 이럴 수가…”

“깨어나면 목이 마르실 테니까 물수건으로 입술을 적셔주세요. 식사는 위장이 충분히 회복될 때까지 부드러운 죽과 미음을 준비해주시고…아니, 저보다 잘 알고 계실 테니까 긴말은 하지 않겠습니다.”

털썩!

“부디 저를 제자로 받아주십시오, 성녀님!!”

“네? 아, 아니. 저는 그게…”

“일어나세요, 하인즈 선생님. 성녀님을 곤란하게 하지 않는다는 계약이라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아, 네! 그랬었죠. 죄송합니다, 도련님. 제가 잠시 이성을 잃어버려서 터무니없는 실례를…부디 용서해주십시오. 성녀님!!”

“괜찮습니다. 그러면 저는 이만 물러가 보겠습니다.”

덥썩!

“부하들을 시켜서 댁까지 안전하게 모셔다드리겠습니다. 정말로 감사합니다, 성녀님. 이 은혜는 아슈킬 가문의 이름을 걸고 반드시 보답해드리겠습니다.”

“넷! 네에에에…”

리한이 클레어의 두 손을 강하게 움켜잡으면서 말하자 베일 너머의 얼굴이 홍당무처럼 새빨개져서 힘없는 목소리로 대답해 왔다.

이 모습을 보고 성녀가 후계자를 좋아하는 것 같다고 소곤거리면서 호들갑을 떠는 하녀들.

팔짱을 끼고서 구석에 삐딱한 자세로 기대어 있는 애쉬가 전음으로 비아냥거렸다.

[황당한 촌극이군. 네놈은 도대체 뭐가 무서워서 자신의 능력을 숨기며 이렇게 번거로운 짓거리를 하고 있는 거냐?]

[세상일이라는 게 그렇게 단순무식하게 굴러가지는 않으니까 말이야. 기왕이면 영리하다고 표현해줬으면 좋겠군. 그리고 애쉬, 말투는 조심해야지? 주인님에게 네놈이 뭐야?]

[웃기시네.]

코웃음을 치면서 고개를 돌려버리는 모습을 보아하니 지금 상황이 어지간히도 불만스러운 모양이었다.

두 사람이 그렇게 티격태격하는 사이에 마르텔의 눈썹이 움찔거렸다.

“마님께서 깨어나십니다!!”

“마님!”

“할머님!!!”

하녀의 외침에 지켜보는 사람들이 걱정과 기대 섞인 시선으로 손에 땀을 쥐었다.

“읍, 으으음…여, 여기는…쿨럭, 쿨럭!!”

“물수건을 가져와, 어서!!”

목을 축이자 시야가 돌아오면서 흐릿한 초점이 맞춰졌다.

그리고 자신의 손을 붙잡고 있는 사람의 정체를 확인하고 소스라치게 놀라며 소리를 질렀다.

“리한…? 저, 정말로 네가 맞니? 아니면…내가 죽어서 천국에 온 거야?”

“진짜 접니다, 할머님. 귀가가 늦어서 죄송합니다.”

“정말로 네가 맞구나!!”

와락!

어디에서 그런 기운이 났는지 앙상한 몸으로 힘차게 끌어안았다.

“고맙다, 애야…살아있어 줘서 고마워! 흑흑흑…데피리스님의 은혜로구나! 이 할머니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아느냐? 네가 이미 죽은 줄 알았어. 종말의 마수들이 어슬렁거리는 그 끔찍한 대지에 차가운 주검으로 묻혀있다는 생각에 편하게 잠들어본 적이 없단다. 이런 매정한 녀석 같으니라고…”

“…죄송합니다, 할머님.”

감동적인 재회의 순간.

마지막까지 마르텔의 곁을 지켜온 충성스러운 하인들답게 누구나 예외 없이 눈시울을 붉히며 훌쩍거렸지만, 정작 당사자인 리한이 데피리스라던가 종말의 마수를 언급하는 부분에서 인상을 찌푸렸다는 사실을 알아챈 사람은 애쉬밖에 없었다.

“그러고 보니 래리와…돌로레스는 어디에 있느냐? 어째서 모습이 보이지 않아???”

“그건…”

집사 로니가 입을 열려고 하자 멈춰 세우고 앞으로 나섰다.

“두 분 모두 사정이 있어서 참석하지 못했습니다. 그 이야기는 나중에 하시죠, 할머님. 지금은 안정을 취하시는 게 먼저입니다.”

“…그래? 됐다! 녀석들이 무슨 이유로 불참했는지는 안 봐도 뻔하구나! 이런 천하에 몹쓸 녀석들 같으니라고…걱정하지 말거라, 이 할미가 병상을 떨치고 일어나면 날을 잡아서 제대로 혼쭐을 내주마!”

‘혼쭐을 낸다라…’

마르텔의 으름장에 리한은 자신도 모르게 속으로 피식 웃어버리고 말았다.

그녀가 말하는 ‘처벌’이라는 것은 말 그대로 잔소리 몇 마디로 끝내버리겠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일어난 전후 사정을 조금도 모르기 때문에 나오는 헛소리지만, 자세한 내막을 알게 된다고 해도 지금까지 으레 그래왔듯이 솜방망이 처벌로 어영부영 넘어가 버릴 것이 틀림없었다.

하지만 절대로 그렇게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리한은 속내를 숨기고 가식적인 미소를 지으면서 그녀에게 거리를 두었다.

애쉬의 모습이 마르텔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그때의 일이었다.

“애쉬님!”

“…흠.”

반갑게 이름을 불렀지만 퉁명스러운 표정으로 살짝 고개를 까딱해 보일 뿐이었다.

“제 곁을 지켜주셨군요!”

“그런 계약이니까 말이야.”

“후후후후. 퉁명스러운 모습은 여전하시군요. 기분 탓인지 굉장히 오랜만에 얼굴을 보는 것 같은…애쉬님?”

소녀처럼 들떠서 말을 이어나가던 마르텔은 그에게 평소하고 다른 이상한 점을 발견하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물어보지 마라.”

“아니,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물어보지 말라고 하지 않았느냐!”

“애쉬! 할머님에게 무슨 말버릇이냐? 공손하게 예의를 갖춰라!”

“큭! 네놈이 무슨 낯짝으로…”

“정식으로 명령해 줄까?”

“치이이이잇!”

리한이 능글맞게 웃으면서 놀리는 것처럼 말하자 분한 표정으로 이를 갈면서 표정을 찌푸렸다.

“세상에…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니? 할미는 도저히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겠구나…”

“별 것 아닙니다. 애쉬님과 제가 새로운 1대 1 계약을 체결했거든요. 단지 지금까지처럼 대등한 관계가 아니라 명확한 상하 관계를 정립했을 뿐입니다.”

“명확한 상하 관계라니…휴우…아무래도 내가 의식을 잃어버린 사이에 생각보다 많은 일들이 일어났던 모양이구나.”

굉장히 놀랐는지 자신을 진정시키려는 것처럼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래도…기왕에 이렇게 되었으니까 실례를 무릅쓰고 물어보겠습니다, 애쉬님.”

“크으으윽!”

마르텔 대모의 말에 주먹을 불끈 쥐면서 부들부들 떨었지만 그녀는 무럭무럭 솟아오르는 질문의 유혹을 도저히 떨쳐낼 수가 없었다.

“도대체 어쩌다가 여자가 되어버리신 건가요???”

****

마르텔 대모가 뇌사상태에서 회복해서 살아났다는 소식은 일파만파로 퍼져나갔다.

리한이 기적의 성녀에게 도움을 받았다는 이야기가 나왔지만, 아슈킬 가문으로부터 철저한 함구령이 떨어졌기 때문에 소문만 무성하게 여러 가지 추측과 낭설이 난무할 뿐이었다.

놀라운 일은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제니아의 모든 무장들에게 이름을 말할 수 없는 공포의 대상으로 군림하고 있는 평온의 검사 애쉬가 리한과 새로운 계약을 체결해서 호위가 되었다는 소식도 귀족들에게 빠른 속도로 퍼져나갔다.

이것으로 후계자의 지위는 감히 누구도 흔들 수 없는 단단한 반석에 올랐다.

누구도 거스를 수가 없는 거대한 무력에 명분까지 손에 얻은 리한.

그의 등장을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불만 세력들은 모조리 입을 다물어버렸고, 이른 시일 안에 자신들의 새로운 주인으로 등극할 그를 열렬하게 환영하며 앞다퉈서 아첨해오기 시작했다.

게다가 내전에 협력한 사라 방백과 굳건한 동맹을 체결했으니 그녀를 도와서 동쪽으로 치고 나갈 명분을 확보했을 뿐만 아니라, 단숨에 오팔 왕국 최강의 세력으로 급부상하게 되었다.

여기에 앵커리지 공화국으로부터 엄청난 지원까지 약속받았으니 그야말로 탄탄대로가 열려있는 셈.

모든 것이 순조롭게 풀려나가고 있었지만 카밀라로부터 보고를 듣는 차양 너머의 여인, 엠프리스는 불만스럽게 얼굴을 찌푸렸다.

[…그러니까 아공간에서 일어난 일이…이게 전부라는 겁니까?]

“네, 그렇습니다!”

[진심으로 하는 소리인가요?]

“실례지만 무슨 문제라도…”

[문제가 너무 없어서 문제입니다! 잘 들으세요, 카밀라! 1억 대륙 은화입니다. 그 후계자가 무려 1억 대륙 은화라는 거액을 제시하면서 우리에게 협력을 요청한 사안이라고요!그래서 공화국 최강의 영웅들을 다섯 명이나 보내준 건데…아무런 충돌 없이 평화롭게 계약을 체결했다고요? 저보고 지금 그 말을 믿으라는 겁니까???]

〈 387화 〉 에필로그(1)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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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텔 대모는 이미 죽었다.

뇌사상태에 빠졌다는 것은 그런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하지만 하인즈는 자신의 독단으로 연명치료를 강행하고 있었다.

주변에서는 이미 죽은 사람의 영혼을 육신에 무리하게 붙잡아두지 말고 편하게 보내주자는 의견이 지배적이었지만 그는 마지막까지 고집을 꺾지 않았다.

왜냐면 3년 전에 죽었다고 생각한 후계자가 살아서 돌아왔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아슈킬 가문의 주치의로서 할머니와 손자를 마지막으로 만나게 해줘야 한다는 사명감.

동시에 평온의 검사 애쉬가 떠나지 못하게 잡아두기 위해서라도 마르텔 대모를 반드시 살려두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오늘, 기적이 일어났다.

지이이이잉­

클레어의 손아귀에서 눈 부신 빛이 뿜어져 나오자 창백하기 이를 데가 없었던 마르텔 대모의 안색이 회복되면서 혈기가 돌았다.

스으으읍­ 하아아아­ 스으으읍­ 하아아아­

차츰 차분해지는 숨결.

“산소마스크를 벗겨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터무니없는 광경을 목격한 하인즈는 마치 인턴 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힘차게 대답하면서 그녀의 지시를 따랐다.

“호흡과 맥박, 신체 리듬이 모두 정상으로 돌아왔습니다…도대체 어떻게 이럴 수가…”

“깨어나면 목이 마르실 테니까 물수건으로 입술을 적셔주세요. 식사는 위장이 충분히 회복될 때까지 부드러운 죽과 미음을 준비해주시고…아니, 저보다 잘 알고 계실 테니까 긴말은 하지 않겠습니다.”

털썩!

“부디 저를 제자로 받아주십시오, 성녀님!!”

“네? 아, 아니. 저는 그게…”

“일어나세요, 하인즈 선생님. 성녀님을 곤란하게 하지 않는다는 계약이라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아, 네! 그랬었죠. 죄송합니다, 도련님. 제가 잠시 이성을 잃어버려서 터무니없는 실례를…부디 용서해주십시오. 성녀님!!”

“괜찮습니다. 그러면 저는 이만 물러가 보겠습니다.”

덥썩!

“부하들을 시켜서 댁까지 안전하게 모셔다드리겠습니다. 정말로 감사합니다, 성녀님. 이 은혜는 아슈킬 가문의 이름을 걸고 반드시 보답해드리겠습니다.”

“넷! 네에에에…”

리한이 클레어의 두 손을 강하게 움켜잡으면서 말하자 베일 너머의 얼굴이 홍당무처럼 새빨개져서 힘없는 목소리로 대답해 왔다.

이 모습을 보고 성녀가 후계자를 좋아하는 것 같다고 소곤거리면서 호들갑을 떠는 하녀들.

팔짱을 끼고서 구석에 삐딱한 자세로 기대어 있는 애쉬가 전음으로 비아냥거렸다.

[황당한 촌극이군. 네놈은 도대체 뭐가 무서워서 자신의 능력을 숨기며 이렇게 번거로운 짓거리를 하고 있는 거냐?]

[세상일이라는 게 그렇게 단순무식하게 굴러가지는 않으니까 말이야. 기왕이면 영리하다고 표현해줬으면 좋겠군. 그리고 애쉬, 말투는 조심해야지? 주인님에게 네놈이 뭐야?]

[웃기시네.]

코웃음을 치면서 고개를 돌려버리는 모습을 보아하니 지금 상황이 어지간히도 불만스러운 모양이었다.

두 사람이 그렇게 티격태격하는 사이에 마르텔의 눈썹이 움찔거렸다.

“마님께서 깨어나십니다!!”

“마님!”

“할머님!!!”

하녀의 외침에 지켜보는 사람들이 걱정과 기대 섞인 시선으로 손에 땀을 쥐었다.

“읍, 으으음…여, 여기는…쿨럭, 쿨럭!!”

“물수건을 가져와, 어서!!”

목을 축이자 시야가 돌아오면서 흐릿한 초점이 맞춰졌다.

그리고 자신의 손을 붙잡고 있는 사람의 정체를 확인하고 소스라치게 놀라며 소리를 질렀다.

“리한…? 저, 정말로 네가 맞니? 아니면…내가 죽어서 천국에 온 거야?”

“진짜 접니다, 할머님. 귀가가 늦어서 죄송합니다.”

“정말로 네가 맞구나!!”

와락!

어디에서 그런 기운이 났는지 앙상한 몸으로 힘차게 끌어안았다.

“고맙다, 애야…살아있어 줘서 고마워! 흑흑흑…데피리스님의 은혜로구나! 이 할머니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아느냐? 네가 이미 죽은 줄 알았어. 종말의 마수들이 어슬렁거리는 그 끔찍한 대지에 차가운 주검으로 묻혀있다는 생각에 편하게 잠들어본 적이 없단다. 이런 매정한 녀석 같으니라고…”

“…죄송합니다, 할머님.”

감동적인 재회의 순간.

마지막까지 마르텔의 곁을 지켜온 충성스러운 하인들답게 누구나 예외 없이 눈시울을 붉히며 훌쩍거렸지만, 정작 당사자인 리한이 데피리스라던가 종말의 마수를 언급하는 부분에서 인상을 찌푸렸다는 사실을 알아챈 사람은 애쉬밖에 없었다.

“그러고 보니 래리와…돌로레스는 어디에 있느냐? 어째서 모습이 보이지 않아???”

“그건…”

집사 로니가 입을 열려고 하자 멈춰 세우고 앞으로 나섰다.

“두 분 모두 사정이 있어서 참석하지 못했습니다. 그 이야기는 나중에 하시죠, 할머님. 지금은 안정을 취하시는 게 먼저입니다.”

“…그래? 됐다! 녀석들이 무슨 이유로 불참했는지는 안 봐도 뻔하구나! 이런 천하에 몹쓸 녀석들 같으니라고…걱정하지 말거라, 이 할미가 병상을 떨치고 일어나면 날을 잡아서 제대로 혼쭐을 내주마!”

‘혼쭐을 낸다라…’

마르텔의 으름장에 리한은 자신도 모르게 속으로 피식 웃어버리고 말았다.

그녀가 말하는 ‘처벌’이라는 것은 말 그대로 잔소리 몇 마디로 끝내버리겠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일어난 전후 사정을 조금도 모르기 때문에 나오는 헛소리지만, 자세한 내막을 알게 된다고 해도 지금까지 으레 그래왔듯이 솜방망이 처벌로 어영부영 넘어가 버릴 것이 틀림없었다.

하지만 절대로 그렇게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리한은 속내를 숨기고 가식적인 미소를 지으면서 그녀에게 거리를 두었다.

애쉬의 모습이 마르텔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그때의 일이었다.

“애쉬님!”

“…흠.”

반갑게 이름을 불렀지만 퉁명스러운 표정으로 살짝 고개를 까딱해 보일 뿐이었다.

“제 곁을 지켜주셨군요!”

“그런 계약이니까 말이야.”

“후후후후. 퉁명스러운 모습은 여전하시군요. 기분 탓인지 굉장히 오랜만에 얼굴을 보는 것 같은…애쉬님?”

소녀처럼 들떠서 말을 이어나가던 마르텔은 그에게 평소하고 다른 이상한 점을 발견하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물어보지 마라.”

“아니,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물어보지 말라고 하지 않았느냐!”

“애쉬! 할머님에게 무슨 말버릇이냐? 공손하게 예의를 갖춰라!”

“큭! 네놈이 무슨 낯짝으로…”

“정식으로 명령해 줄까?”

“치이이이잇!”

리한이 능글맞게 웃으면서 놀리는 것처럼 말하자 분한 표정으로 이를 갈면서 표정을 찌푸렸다.

“세상에…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니? 할미는 도저히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겠구나…”

“별 것 아닙니다. 애쉬님과 제가 새로운 1대 1 계약을 체결했거든요. 단지 지금까지처럼 대등한 관계가 아니라 명확한 상하 관계를 정립했을 뿐입니다.”

“명확한 상하 관계라니…휴우…아무래도 내가 의식을 잃어버린 사이에 생각보다 많은 일들이 일어났던 모양이구나.”

굉장히 놀랐는지 자신을 진정시키려는 것처럼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래도…기왕에 이렇게 되었으니까 실례를 무릅쓰고 물어보겠습니다, 애쉬님.”

“크으으윽!”

마르텔 대모의 말에 주먹을 불끈 쥐면서 부들부들 떨었지만 그녀는 무럭무럭 솟아오르는 질문의 유혹을 도저히 떨쳐낼 수가 없었다.

“도대체 어쩌다가 여자가 되어버리신 건가요???”

****

마르텔 대모가 뇌사상태에서 회복해서 살아났다는 소식은 일파만파로 퍼져나갔다.

리한이 기적의 성녀에게 도움을 받았다는 이야기가 나왔지만, 아슈킬 가문으로부터 철저한 함구령이 떨어졌기 때문에 소문만 무성하게 여러 가지 추측과 낭설이 난무할 뿐이었다.

놀라운 일은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제니아의 모든 무장들에게 이름을 말할 수 없는 공포의 대상으로 군림하고 있는 평온의 검사 애쉬가 리한과 새로운 계약을 체결해서 호위가 되었다는 소식도 귀족들에게 빠른 속도로 퍼져나갔다.

이것으로 후계자의 지위는 감히 누구도 흔들 수 없는 단단한 반석에 올랐다.

누구도 거스를 수가 없는 거대한 무력에 명분까지 손에 얻은 리한.

그의 등장을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불만 세력들은 모조리 입을 다물어버렸고, 이른 시일 안에 자신들의 새로운 주인으로 등극할 그를 열렬하게 환영하며 앞다퉈서 아첨해오기 시작했다.

게다가 내전에 협력한 사라 방백과 굳건한 동맹을 체결했으니 그녀를 도와서 동쪽으로 치고 나갈 명분을 확보했을 뿐만 아니라, 단숨에 오팔 왕국 최강의 세력으로 급부상하게 되었다.

여기에 앵커리지 공화국으로부터 엄청난 지원까지 약속받았으니 그야말로 탄탄대로가 열려있는 셈.

모든 것이 순조롭게 풀려나가고 있었지만 카밀라로부터 보고를 듣는 차양 너머의 여인, 엠프리스는 불만스럽게 얼굴을 찌푸렸다.

[…그러니까 아공간에서 일어난 일이…이게 전부라는 겁니까?]

“네, 그렇습니다!”

[진심으로 하는 소리인가요?]

“실례지만 무슨 문제라도…”

[문제가 너무 없어서 문제입니다! 잘 들으세요, 카밀라! 1억 대륙 은화입니다. 그 후계자가 무려 1억 대륙 은화라는 거액을 제시하면서 우리에게 협력을 요청한 사안이라고요!그래서 공화국 최강의 영웅들을 다섯 명이나 보내준 건데…아무런 충돌 없이 평화롭게 계약을 체결했다고요? 저보고 지금 그 말을 믿으라는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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