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82화 〉 정상결전(6)
* * *
“솔직하게 말해서 너희들에게는 고마워하고 있어.”
“뭐라고?”
“그동안 자신의 분수를 모르는 우물 안 개구리들을 너무 많이 상대해와서 말이야. 덕분에 강함의 기준이 모호해져서 내 실력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가 없었어.”
“큭…”
“하지만 너희들을 상대하면서 확실하게 깨달았어. 아무래도 나는 역대 천마들 중에서 누구도 도달하지 못했던 경지에 올라선 모양이야. 후후후후. 그렇게 생각한다면 천 년을 기다린 것도 완전히 쓸모가 없었던 것은 아니라는 거지.”
애쉬는 자신의 실력이 대단히 흡족한 것처럼 만족스럽게 웃음을 터트렸다.
실제로 그는 강해도 지나치게 강했다.
어느 정도 고전할 것이라는 예상하고는 다르게 유레시아 대륙에서 내로라하는 최강자들을 단순한 전투력 측정기로 취급하면서 어린아이처럼 가지고 노는 모습은 리한의 계산을 벗어나도 한참을 벗어난 것이다.
‘정말로 혼자서라도 중원을 정복해버릴 기세군.’
애쉬가 말했던 것처럼 천마는 무림 십대 고수들에게 패배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정말로 10명, 100명이 한꺼번에 달려들어도 무찌를 수가 있을 정도로 압도적인 차이가 나는 것도 아니었다.
물론, 세상에는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힘숨찐(은거기인)들이 많다.
천마에게 마무리 일격을 날리는 것은 언제나 그들의 역할.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원에서 가장 강한 무림 십대 고수라는 타이틀은 거저 주어지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이들하고의 싸움은 언제나 예외 없이 천마를 극심하게 소모시켰다.
물밀 듯이 밀려드는 무수한 적들과 계속되는 전투, 쉽사리 회복할 수 없는 심각한 내상.
그렇게 약해질 대로 약해진 천마를 쓰러트려 놓고 천외천의 고수라느니, 무림 제일인이라느니, 무림 초신성이라는 찬사를 들으며 약삭빠르게 주워 먹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물론, 개중에는 정말로 무시무시한 실력을 보유한 은거기인들도 있었다.
천마가 무림 십대 고수보다 우위에 설 수 있었던 이유는 천마신공 자체가 그만큼 대단한 절세의 신공이기도 했지만, 성화령의 계승 의식을 통해서 세대를 거듭할수록 강해지는 것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쉽게 말하면 태중양생술하고는 비교할 수가 없는 금수저 중의 금수저.
시대에 따라서 오히려 앞선 세대보다도 기량이 떨어지는 경우가 비일비재한 십대 고수들하고는 다르게 끝없이 청출어람을 해왔다는 것이다.
이런 천마를 순수하게 실력으로 압도해버리는 은거 기인들이 있었다.
그야말로 천외천이라는 표현이 아깝지 않은 존재들.
무림의 저력은 끝이 없다는 말이 바로 여기에서 나온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유레시아 대륙도 마찬가지다.
무장들이 사용하는 대부분의 무공은 동방에서 유래되었으며 실력도 무림 고수들이 압도적으로 강하다고 이야기하던 시절이 있었지만, 이제는 옛날이야기에 불과할 뿐이다.
현재에 이르러서는 거의 동급 아니, 오히려 문파와 사문에 얽매여서 발전이 없는 답보 상태에 머무르고 있는 중원하고는 다르게 체계적인 엘리트 교육 시스템을 구축해서 국가 규모로 치열하게 경쟁하는 유레시아 대륙 쪽이 강하다는 것이 지배적인 중론이다.
리한은 이 생태계에서 정점에 있는 슈퍼 히어로들을 고용했다.
무림의 십대 고수들보다 강했으면 강했지 절대로 약할 리가 없는 실력자들.
하지만 그들조차도 애쉬에게는 단순한 하룻강아지에 불과할 뿐이었다.
“너도 저 녀석처럼 신의 권능을 빌려서 강해지는 타입이지? 게다가 이중에서는 틀림없이 제일 뛰어난 실력자…후후후후. 어디 한번 기다려 줄 테니까 진심을 발휘해 봐. 인생의 좋은 경험이다 생각하고 열심히 해야지. 방법이 없잖아?”
부르르르르
“깔보는 보는 것도…적당히 해라아아아아아아아앗!!!”
콰아아아아아아아아!!
분노한 레이디 나이트가 사자후를 터트렸다.
털이란 털은 모조리 곤두서는 무시무시한 잠력의 폭발.
하지만 애쉬는 웃음을 터트리면서 흐릿한 잔상만을 남기고 적당하게 거리를 벌렸다.
“위대한 전쟁 여신인 하이아도스여! 그대의 하찮은 몸종이자 순백의 전처녀 이사벨라가 감히 청하옵니다! 이 가슴에 불타오르는 승리의 갈망을 채워주소서, 두 손을 적들의 피로 물들일 요령격멸????의 힘을 내려주소서!!”
처절하게 울려 퍼지는 복수의 교향시.
까드드드드득!
쓸데없이 커다란 자신의 팔라딘 갑옷을 거추장스럽다는 것처럼 양손으로 뜯어버리자, 실오라기 하나도 걸치지 않은 아름다운 나신이 모습을 드러냈다.
‘처음부터 갑옷 안에 아무것도 입고 있지 않았던 거야?’
생각해보면 뜯어진 갑옷 속으로 손을 넣었을 때 비단처럼 부드러운 살결을 직접 만질 수 있었다.
갑작스럽게 화가 난 리한이 아랫도리를 분기탱천시키고 있을 때.
쿠오오오오오오오!!
유령처럼 새하얀 전처녀의 실루엣이 레이디 나이트에게 덮어씌워 지면서 신의 권능으로 만들어진 순백 성기사의 갑옷이 모처럼(?)의 알몸을 가려버리고 말았다.
‘이런 빌어먹을…’
다시 한번 화가 나서 주먹을 불끈 쥐었다.
“프라가라흐! 란드가르드!!!”
지이이이이이잉
양손에 소환되는 검과 방패.
“후후후후. 신화 속에 나오는 발키리하고 싸울 수 있다니 영광이군. 정말로 대단해! 자신의 육체에 그 강대한 힘을 담아내는 인상적이지만 갑옷은 물론이고 검과 방패. 모두 오리하르콘으로 만들어진 신의 무기라는 사실이 말이야!”
“하이아도스님의 기적으로 잠시 빌려왔을 뿐이다. 하지만…너하고 결판을 내는 데는 충분하게 사용할 수가 있겠지!!”
투콰아아아아아아앙!
기합과 함께 레이디 나이트에게서 뿜어져 나온 빛의 충격파가 일직선으로 날아가서 애쉬를 덮쳤다.
“능파미보!”
“도대체 몇 개의 무공을 사용하는 것이냐?!”
“무림 역사에 존재하는 모든 무공이다!”
“이런 빌어먹을 괴물 녀서어어억!!”
펑! 퍼퍼퍼펑! 퍼퍼퍼펑! 펑! 퍼퍼펑! 펑펑펑펑!!
아공간 전체를 무대로 터무니없이 빠른 속도로 전투가 펼쳐졌다.
리한으로서는 팝콘을 가져다 놓고 감상하는 것조차 불가능한 수준의 차원이 다른 공방전이었다.
“프라가라흐!!!”
슈우우우웅!
레이디 나이트의 손아귀를 빠져나간 검이 흐릿한 잔상을 남기며 모습을 감췄다.
다음 순간에 애쉬의 배후로 나타나서 목덜미를 노렸다.
“제운종!”
“추격해!!”
슈슈슈슈슈슈슈슝!
구름을 타는 것처럼 미끄러지듯이 이동하면서 공격을 피해버리자 다시 한번 후방으로 도약해서 목덜미를 노렸다.
“후후후후. 제법 빠른데? 그렇다면 이건 어떨까…비월신기!!”
샤샤샤샤샤샤샤샥!
월환쌍극으로 수십, 수백 개의 분신을 만들어내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신검의 능력을 얕보지 마라!!!”
지이이이이이잉
레이디 나이트의 외침과 함께 프라가라흐 또한 비월신기로 만들어낸 분신의 숫자에 맞춰서 수십, 수백 개로 분열해 애쉬를 추격했다.
“하하하하! 정말로 기대 이상이구나. 마나가 얼마나 버텨줄지는 모르겠지만 제법 재미있는 능력이 아니냐?”
“큭…”
얄미운 외침이지만 정확하게 정곡을 찌르고 있었다.
게다가 애쉬의 분신들은 프라가라흐와 춤을 추는 것처럼 장난스럽게 스텝을 밟으며 쏟아져 들어오는 모든 공격을 종이 한 장 차이로 회피해내고 있었다.
‘자신의 능력을 시험해보려는 건가…? 아니야. 단순하게 수준 이하라고 놀리는 거야. 내 공격이…!!’
굴욕도 이런 굴욕이 있을 수가 없었다.
지이이이이잉!
“하이아도스의 빛이여!!!”
레이디 나이트 손아귀에 한 자루 창이 소환되었다.
“…새로운 신의 무기?”
“꿰뚫어서 죽여버려라. 게이볼그!!!!”
쉐에에에에에에에엑!!
소닉붐을 일으키면서 힘차게 내지르며 날아간 흑색의 창이 공간을 도약해서 애쉬의 심장을 노렸다.
“!!”
전투가 시작되고서 처음으로 당황한 눈치.
다음 순간에 프라가라흐와 게이볼그가 동시에 충돌하면서 터무니없는 규모로 일어나는 대폭발이 아공간 전체를 뒤흔들었다.
투콰아아아아아아아앙!!
“큭!!”
애쉬가 상쇄시키지 못한 공격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리한은 충격파로 날아가 버리지 않도록 지면에 엎드렸고 전투 지역에서 아득하게 떨어져 있는 공화국의 비공정마저 체공 자세를 제어하지 못하고 한참 동안을 휘청거렸다.
“하악, 하악, 하악, 하악, 하악…”
비장의 기술을 선보인 레이디 나이트는 기진맥진해서 헐떡거렸다.
아직 강신 모드가 끝나지는 않았지만 유지하는 것만으로 벅찬 모양이었는지 불빛이 깜빡거리는 것처럼 신의 무구들이 흐릿해지고 있었다.
하지만 회심의 공격을 완벽하게 성공시켰다는 생각에 입가로 미소를 그렸다.
“빌어먹을 괴물 녀석…깔보던 상대에게 한 방 제대로 먹은 기분이 어떠냐?”
“…신의 무구라고 해도 대단할 것은 없네.”
“…뭣???”
등 뒤에서 들려오면 안 되는 목소리가 들려오는 바람에 기겁하면서 뒤돌아섰다.
그곳에는 게이볼그와 프라가라흐를 자신의 무기인 것처럼 양손에 붙잡은 애쉬가 웃음을 터트리고 있었다.
“설렜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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