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81화 〉 정상결전(5) (381/429)

〈 381화 〉 정상결전(5)

* * *

“이렇게 빠르게 내상을 치료하고 뒤틀린 기혈을 바로잡다니…”

“응급처치는 끝났으니까 이제 전투에 복귀해라.”

“정말로 저 괴물을 쓰러트릴 생각이냐?”

“쓰러트릴 필요는 없어. 아까 말했던 것처럼 너희들의 임무는 나에게 기회를 만들어주는 거야. 딱 한 번, 딱 한 번으로 승패의 명암이 갈린다. 거기까지만 해주면 계약 종료야.”

“그게 쉬울 리가 없다는 거잖아! 진짜 빌어먹을 고용주로군…”

쿵!

버럭 소리를 지른 레이디 나이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깨를 돌리고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가볍게 자신의 컨디션을 확인하고 난 후에 다시금 입을 열었다.

“회복기술을 사용할 수 있으면 플래시 보우도 전투에 복귀시켜. 녀석의 원거리 지원이 필요하니까 말이야.”

“알겠다.”

“하이아도스의 빛이여 우리를 승리로 이끌어주소서! 나의 신념은 그대의 방패요, 나의 육신은 전처녀戰??의 위광을 담아낼 그릇일지니! 지상만마를 앙복시키고 이 땅에 찬란한 빛의 정의를 실현해 내겠나이다!!!”

콰아아아아아아­!

하늘로 사자후를 내지르자 눈부신 빛이 쏟아져 내려왔다.

쏴아아아아아아아아아­

아공간 전체를 덮어버릴 기세로 뻗어 나가는 빛의 장막이 아군의 상처를 치유하고 신체 능력을 강화했으며 반대로 애쉬를 약화시켰다.

지상에 현현하는 전쟁여신의 기적.

덕분에 전투도 잠시 중단되었다.

“하악, 하악, 하악, 하악…지, 지금까지 뭐하다가 이제야 오는 거야? 어서 빨리 전투에 합류해! 이 녀석…괴물이야!!”

온몸이 너덜너덜해져서 만신창이가 되어버린 라 호라크티가 당장이라도 숨이 넘어갈 것처럼 뒤늦게 투덜거렸다.

“후우, 후우, 후우, 후우. 지원에 감사합니다!”

“살아났어요…솔직히 조금 버거운 참이었는데…지원 고마워요.”

전자보다 덜하기는 했지만 기간테스나 미스 주피터도 초췌해 보였다.

전투를 시작하고 겨우 5분도 지나지 않았다고 생각하기 어려운 상태.

반면에 애쉬는 상처하나 없이 멀쩡하게 산책이라도 나온 것처럼 뒷짐을 지면서 여유를 부리고 있었다.

“이제 네 명으로 늘어났으니까 조금 더 재미있게 해줄 수 있겠지?”

“이 자식이…”

“적의 도발에 넘어가지 마! 지금은 침착하게 연계해서 싸워야 해!”

“맞는 말이야. 그나마 너는 머리가 돌아가는 모양이구나. 너희들의 건투를 빌게. 우리 후계자가 뭐처럼 거금을 들여서 준비한 비장의 수단이니까 말이야. 최소한의 체면은 세워줘야지.”

“이런 빌어먹을 녀석이!”

“지금 우리가 남의 집안싸움에 말려들어서 이런 고생을 하고 있는 거야???”

“마운틴 자이언트!!!”

쿠오오오오오오오오!!

다른 사람들이 대화에 열중하고 있는 사이에 혼자서 은밀하게 상공으로 올라간 브라더 기간테스가 양 팔을 X자로 교차하며 수직으로 낙하해 왔다.

자신의 육체를 한계까지 강화.

한 줄기 유성처럼 맹렬하게 가속도를 붙이는 육탄 돌격을 시도했다.

“기습을 하고 싶다면 조금 더 조용하게…”

“올림푸스의 그물!!”

“사자의 주박!!”

촤아아아아아악!

미스 주피터와 라 호라크티가 곧바로 구속마법을 발동시켰다.

검은 그물과 새하얀 천으로 칭칭 휘감기면서 순식간에 고치에 갇혀버린 애쉬.

“…”

“죽어라, 괴물!!!”

거기에 눈동자가 붉은색으로 충혈된 기간테스가 고함을 내지르면서 회심의 일격을 날렸다.

하지만 다음 순간.

핑그르르르르르르르르­

엄청난 충돌이 일어날 거라고 예상했던 것과는 다르게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가볍게 튕겨 나가버린 그가 공중에서 빙글빙글 돌아가기 시작했다.

터무니없는 회전 속도로 투명하게 보일 지경이지만 어떤 소리도, 바람도 흘러나오지 않는다.

“브라더 기간테스!”

동료의 외침에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마치 죽은 햄스터를 쳇바퀴 속에 가둬놓고 기계장치로 돌리는 것처럼 제자리에서 끝없이 돌아가고 있을 뿐이다.

“건곤대나이는 이런 식으로 사용할 수도 있어. 힘의 방향을 살짝 바꿔주는 것만으로도 무식하게 돌격해오는 상대를 간단하게 제압하는 게 가능하지.”

어느새 바깥으로 빠져나온 애쉬가 고치를 살며시 즈려밟으며 그렇게 말했다.

리한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무공을 가르치는 것처럼 보이는 유유자적한 태도.

“이런 개자식이!!”

“네 녀석…우리 동료에게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냐?!”

“평범하게 기절시켰을 뿐이야. 약자를 괴롭히는 취미는 없으니까 안심해. 목숨이 붙어있는 것을 고맙게 생각하라고?”

“이런 개자식이!!”

“침착해라, 라 호라크티! 우선은 상대의 역량부터 제대로 파악해야…”

“닥쳐, 레이디 나이트! 슈퍼 히어로로서 자존심이 있지. 이렇게까지 일방적으로 농락당했는데 참을 수 있을 것 같아?!”

쿠오오오오오오오오!!

노호성을 터트리는 것과 동시에 라 호라크티의 신체가 황금빛으로 빛나면서 어마어마한 마나가 집약되었다.

눈을 뜨기 힘들 정도로 휘몰아치는 기의 폭풍.

아공간에서 두 개의 무기가 소환되었다.

한 손에 죽음을 상징하는 갈고리, 한 손에 부활을 상징하는 도리깨를 움켜쥔 그는 자신의 육체로 신을 불러들이는 강신 의식으로 인간을 초월하는 신의 권능을 발동하려고 하고 있었다.

“지, 지금 당장 중단해! 의식을 잃어버린 동료들은 물론이고 후계자까지 위험하다고!!”

당황한 레이디 나이트가 다시 한번 소리를 질렀지만 이미 의식이 날아가 버려서 백색으로 빛나는 눈동자에는 사람의 지성이라고는 눈곱만큼도 남아있지 않았다.

[어리석은 필멸자에게 아문라의 심판을 내리겠노라!!]

“어리석은 필멸자에게 아문라의 심판을 내리겠노라!!”

하나의 입에서 겹쳐서 흘러나오는 두 개의 목소리.

다음 순간 라 호라크티의 육체에서 눈을 뜨기 어려울 정도로 눈부신 빛이 사방으로 폭사해서 뿜어져 나왔다.

[태양의 배여 천양의 겁화로 지상을 멸하라!]

“the solar boat!!!!”

“역천소수???手”

투콰아아아아아아앙!!

하늘로 떠오른 태양의 배에서 쏟아져 내려오는 화염 화살의 세례와 지상에서 쏘아져 올라가는 무수하게 쏘아져 올라가는 얼음 창날이 정면으로 충돌했다.

결과는 무승부.

서로의 공격을 완벽하게 상쇄시키며 소멸해버리는 바람에 레이디 나이트가 우려했던 주변 피해는 조금도 발생하지 않았다.

“저, 전략 마법에 필적하는 파괴력을 발휘하는 무공이라니…”

“필적하는 게 아니야. 처음부터 일부러 너희 수준에 맞춰서 모든 공격을 상쇄해왔던 거야. 우리 후계자가 다치면 곤란하니까 말이지.”

“히이이이익?!”

어느 틈엔가 등 뒤로 나타나서 속삭이는 애쉬의 목소리에 미스 주피터는 기겁하면서 비명을 질렀다.

곧바로 거리를 벌리면서 공격 마법을 발동.

“아스트라페! 케라우노스!”

“스카라브여!!!”

양손에 만들어낸 번개를 교차하듯이 날리자 강신 상태의 라 호라크티가 곧바로 무수한 벌레들을 소환해서 그녀를 지원해 주었다.

“천마 군림보?????.”

흐릿한 잔상과 함께 사라져버리는 애쉬.

퍼퍼퍼퍼퍼퍼퍼펑!!!

다음 순간에 모든 공격이 상쇄되어서 터져버리는가 싶더니 각각 다른 위치에 서있는 두 사람의 눈앞에 동시에 모습을 드러냈다.

“세멜레의 지팡이만큼은 아니지만 나도 제법 정교한 분신을 만들어낼 수 있지.”

“이, 이 녀석이…”

“천마 분뢰수???雪手”

두 손이 분리되어서 마치 천수관음처럼 무수히 늘어났다.

“오버레이 프로텍션!!”

“세트의 방패!!!”

라 호라크티와 미스 주피터 모두 최고의 배틀 메이지답게 무수한 보호막을 중첩시켜서 공격을 막아내려고 했지만, 어처구니없게도 애쉬의 공격은 실드라는 존재 자체를 무시해버리고 그대로 관통해 들어와서 두 사람을 두드려 팼다.

퍽! 퍼퍼퍼퍼퍽! 퍽퍽퍽! 퍽퍽퍽퍽퍽퍽퍽퍽퍽퍽!!

“끄아아아아아아아아악!!!”

“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정신이 아득해지는 폭풍 같은 권격.

온몸의 뼈라는 뼈는 모조리 박살이 나버리는 것 같은 고통에 눈동자를 뒤집어 기절해 버리면서 바닥으로 추락해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레이디 나이트는 동료들이 그렇게 일방적으로 당하는 상황을 가만히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아니, 사실은 눈길도 주지 못했다.

왜냐면 또 다른 애쉬가 자신의 눈앞에서 마치 군침이 도는 생쥐를 노려보는 뱀처럼 쳐다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처구니없는 사실은 두 사람을 쓰러트린 것은 단순한 분신의 소행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본체는 처음부터 여기에 있었다.

그야말로 차원이 다른 괴물.

“빌어먹을…내가 미쳐도 단단히 미쳤지…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후계자가 지껄이는 헛소리를 귀담아들었던 거지? 승산이 있을 리가 없잖아. 이런 상대를 어떻게 무력화시키란 말이야…”

“후후후후. 너무 그렇게 구시렁거리지 마라. 녀석이 그렇게 장담했다면 정말로 상상을 초월하는 비장의 수단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니까 말이야. 뭐, 무슨 수를 쓴다고 해도 부처님 손바닥이기는 하겠지만…”

애쉬는 그렇게 말하면서 초조한 표정으로 전투를 바라보는 리한을 곁눈질했다.

마치 눈앞에 있는 자신보다도 의식하는 눈치.

자존심을 있는 대로 구겨버리는 지독한 취급이었지만 너무나 절망적으로 느껴지는 격차를 실감해버리는 바람에 불만을 토로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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