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80화 〉 정상결전(4) (380/429)

〈 380화 〉 정상결전(4)

* * *

“미안하지만 나는 그만두겠어. 저런 괴물을 상대하려면 목숨이 몇 개 있어도 부족하니까 말이야.”

“진심으로 하는 소리야?”

“저도 레이디 나이트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저도 미세한 위화감을 느끼기는 했습니다만 말씀을 듣고 자세히 살펴보니 손아귀에서 식은땀이 흐르더군요. 마치 심연??을 들여다보는 것 같았습니다.”

“브라더 기간테스까지…”

두 사람이 약한 모습을 보이며 기권해버리자 라 호라크티는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다.

“믿을 수가 없군. 셋이 뭉치면 신조차 두렵지 않다는 공화국 최고의 슈퍼히어로들이 이렇게 나약한 소리를 지껄이다니 말이야. 너희들하고 동료라는 사실이 창피해. 그렇게 생각하시지 않습니까? 미스 주피터.”

“후후후후. 나는 그냥 사랑에 살고 사랑에 죽는 평범한 여자일 뿐이야. 걱정하지 마세요, 달링♡ 당신을 위해서라면 저 하늘의 별이라도 따다 줄 테니까.”

“성과를 기대하도록 하지.”

“아잉~시크한 모습도 멋져♡”

“…”

어느 틈엔가 리한의 품에 찰싹 달라붙어서 앙탈을 부리는 그녀를 목격한 동료들은 일제히 할 말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소스라치게 놀라서 두 사람을 허둥지둥 떼어놓는 카밀라.

“읏! 떠, 떨어지세요! 애초에 여러분이 소집된 이유는 국가의 의무를 다하기 의해서입니다. 이 작전은 정부로부터 승인을 받은 공무집행이라고요! 절대 사사로운 이유로 참여하고 말고를 독단적으로 정하실 수는 없습니다!!”

“칫.”

“알고 있다고 젠장…”

“도대체 국가가 나한테 해준 것이 뭐가 있다고 이래라저래라 간섭해대는 거야?”

“여러분!!”

구시렁거리는 히어로들에게 소리를 질렀지만 리한이 그녀의 어깨를 붙잡아 다독이면서 앞으로 나섰다.

“약속대로 보수는 지불할 테니까 걱정하지 마라. 나라의 힘이 약해서 어쩔 수 없이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는 처지라고 해도 계산은 깔끔해야 뒤탈이 없으니까 말이지.”

“오오오오!!”

“멋져♡”

“역시 귀족들은 도량이 넓어서 좋다니까? 쩨쩨한 우리나라 정치인들은 보고 배워야 해!”

“…”

환호성이 터져 나왔지만 브라더 기간테스는 어렵다는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거렸고 레이디 나이트는 혀를 차며 입을 다물어버렸다.

리한은 그런 두 사람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입을 열었다.

“너무 그렇게 걱정하지 마라. 승산이 없는 싸움에 죽으라고 몰아넣는 것도 아니니까 말이지.”

“…진심으로 하는 소리냐?”

“그래, 솔직하게 말하면 거짓말로도 성공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는 없어. 그래도 저 괴물에게 제대로 한 방 먹여줄 수 있는 비장의 수단이 있지. 너희들이 전력으로 도와준다면 가능해. 아니, 불가능하다고 해도 해내고야 말겠어. 반드시…”

“쯧…”

가볍게 혀를 찬 그녀는 어쩔 수 없다는 것처럼 한숨을 내쉬며 팔짱을 풀었다.

“그렇다면 거기에 걸어보는 수밖에 없겠군. 아무래도 도망칠 길조차 막혀버린 모양이니까 말이야.”

“레이디 나이트! 하지만…”

“너도 협조하도록 해, 브라더 기간테스. 나머지 세 명은 자신들이 무엇을 상대하는지도 모르고 있으니까 기대할 수가 없다고. 최대한 버텨보려면 우리가 전력으로 서포트를 해줘야 해.”

“…알겠습니다.”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여 수긍하면서 만장일치로 대결이 성사되었다.

잠시 후.

리한과 슈퍼 히어로들이 지면으로 뛰어내렸다.

“무운을 빌겠습니다!”

후우우우웅­

카밀라의 외침과 함께 공화국 비공정이 전투에 휘말리지 않도록 자리를 벗어났다.

바위에 걸터앉은 애쉬는 세상 느긋했다.

리한이 모든 준비를 끝낼 때까지 그 자리에서 조금도 미동하지 않고 기다려줬을 뿐만 아니라, 입가에는 앞으로는 일어날 일이 기대된다는 것처럼 미소까지 걸려 있었다.

그야말로 압도적인 강자의 여유.

“그리운 광경이 아니냐? 애쉬. 이만한 실력자들에게 둘러싸이는 것도 천마에게는 익숙한 풍경일 테니까.”

“하하하하하! 정말로 놀랐어. 뭔가 믿는 구석이 있다고 생각하기는 했지만 설마 무리 십대 고수에 필적할만한 실력자들을 다섯 명이나 데리고 오다니 말이야.”

“그래. 언제나 마교의 패배로 끝났던 정마대전을 재현해봤지.”

“너무 똑같아서 트라우마가 되살아나 버릴 지경이야. 솔직하게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겠어. 정말로 대단해, 너는…뭔가 믿는 구석이 있다고 생각하기는 했지만 이렇게 단시간에 여기까지 준비하다니. 정말로 함께 중원으로 돌아갈 수가 없다는 사실이 안타까울 뿐이야.”

뱃놀이 도중에 루크 장군으로부터 애쉬에 대한 정보를 입수한 순간부터 리한은 이날 이때를 위해서 모든 것을 준비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 이 상황은 카밀라의 라인을 사용해서 엠프리스하고 독대를 신청해서 만들어낸 협상의 결과물이다.

정부 차원에서 그 신상과 일거수일투족을 철저하게 관리하고 있는 카테고리 아웃의 슈퍼 히어로들을 딱 한 번만 빌려달라는 것.

한 명, 한 명이 테르할 제국의 준동을 저지하는 억지력이라고 할 수 있는 존재들을 하나도 아니고 다섯 명이나, 그것도 생명이 위험할지도 모르는 임무에 요청하는 것은 어불성설이 아닐 수가 없었다.

하지만 리한은 불가능하다고 일컬어지는 제니아 공략을 별다른 외부 지원 없이 자력으로 해내는 기적을 선보이면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 보였다.

엠프리스는 그가 절대로 방백으로 끝날 그릇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어쩌면 자신들이 예상하는 것하고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아직도 봉건시대에 머무르고 있는 오팔 왕국을 통째로 집어 삼켜버리고, 공화국 위협할만한 거대 세력을 이끄는 지도자로 성장해버릴지도 모르는 일.

하지만 그것은 테르할 제국에게도 마찬가지일 것이었다.

지금까지 입수한 첩보에 따르면 무시무시한 기세로 군사력을 증강해나가고 있는 제국은 생각보다 빠른 시일 안으로 대륙 정복의 야욕을 드러내면서 거병해버릴 가능성이 농후했다.

그렇다면 자신들에게는 방파제가 되어줄 오팔 왕국을 수수깡처럼 허무하게 무너져버릴 약한 나라로 내버려 두는 것이 아니라, 강력한 지도자의 통치 아래서 단결된 중앙집권 국가로 만들어서 대비시키는 것이 나았다.

그 전략적인 포석을 완성하기 위해서라면 이만한 지원도 아까운 것은 아니었다.

양 세력의 이해관계가 완벽하게 일치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 순순히 투항해라, 애쉬. 내 밑으로 들어오면 매일 쌀밥에 고깃국을 먹게 해주지.”

“쌀밥에 고깃국이라…후후후. 굉장히 솔깃한 제안이기는 하지만 자신이 없어서 말이지.”

“자신이 없다고?”

“중원의 역사는 제대로 공부한 거야? 역대 천마들은 말이야…자기들 스스로를 십대 고수라고 자칭하는 것들하고 싸워서 져본 적이 없어. 하룻강아지들이 10마리가 모여서 짖어대거나 100마리가 짖어대거나 패배할 자신이 없는 싸움에서 어떻게 백기를 들어올리겠느냐!!!”

“!!!!”

“피해!!!!”

투콰아아아아아아앙!!

위기를 감지한 레이디 나이트가 앞으로 나서며 방패를 들어 올렸고 다음 순간에 온 세상이 하얗게 변하는 화이트 아웃 현상이 일어났다.

지이이이이잉­

귓속을 울리는 이명을 마스터 코어의 힘으로 진정시킨 리한이 시야를 회복해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쿵!

“빌어먹을 괴물…”

공격 한 방에 너덜너덜해진 레이디 나이트가 욕지거리를 뱉어내면서 무릎을 꿇었다.

플래시 보우는 뇌진탕이 발생했는지 거품을 물고 기절한 상태.

나머지는 보이지 않았다.

“모두 어디로 갔지?”

“눈앞에서 싸우고 있다. 크큭…보이지도 않는 것이냐? 그런 실력을 가지고 있으면서 잘도 이런 터무니없는 괴물에게 시비를 걸었군.”

자신을 비웃는 그녀의 말에 리한은 분한 표정으로 입술을 깨물 수밖에 없었다.

그야말로 차원이 다르다는 것은 이럴 때 사용하는 표현이리라.

레이디 나이트의 말대로 피부 전체가 따끔거릴 정도로 강력한 기운이 정면에서 충돌하고 있다는 사실은 알아차릴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 말고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틀림없이 가공할만한 대결이 펼쳐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모습도, 소리도, 충격파마저 발생하지 않아서 한가롭게 눈이 내리는 평화로운 풍경이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을 뿐이었다.

말 그대로 차원 자체가 다르다.

리한은 지금까지 자신이 이룩한 경지가 터무니없이 작고 왜소하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실감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니,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이 애쉬를 포기할 수가 없었다.

“금강투합체를 풀어라. 피부에 직접 접촉하겠어.”

“갑자기 무슨 소리를…흐야아앗?!”

파지지지지지직!

파괴된 갑옷 속으로 손을 집어넣어서 등 뒤로 손바닥을 가져다 대자 의외로 귀여운 비명이 터져 나왔다.

얼굴을 붉히며 매섭게 돌아봤지만 그 기운이 자신을 치료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순순히 몸을 맡기는 레이디 나이트.

그리고 그 놀라운 효과를 확인하고 눈동자가 동그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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