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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78화 〉 정상결전(2) (378/429)

〈 378화 〉 정상결전(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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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알겠어? 나에게 금제는 의미가 없어. 잠재기억까지 모조리 지워버릴 수 있으면 모르겠지만 얼굴의 흉터와 세멜레의 지팡이가 존재하는 한 몇 번이라도 천마신공을 떠올릴 테니까.”

“…그렇다면 비밀을 지키기 위해서 너를 죽여버리는 수밖에 없겠군.”

고오오오오!

조용하게 살기가 피어올랐지만 리한은 태연한 모습으로 너스레를 떨었다.

“아슈킬 가문이 멸망하는 모습을 보고 싶으면 마음대로 해 봐.”

우뚝­

“뭐라고?”

“내가 아무런 보험도 없이 찾아왔다고 생각하는 거야? 만약에 내 신변에 문제가 생기면 아슈킬 가문은 끝장이야. 래리 일가는 물론이고 마교의 피를 물려받은 사람을 모조리 죽여버리라고 명령해뒀지”

“허, 허세 부리지 마! 거짓말도 적당히…”

“믿지 못하겠으면 한 번 해보시지? 네 실력이라면 건곤대나이를 파훼하는 것쯤은 우스운 일이잖아?”

“큭!”

완벽한 블러핑.

처음부터 인질 따위는 잡고 있지도 않았을뿐더러 외부 소통이 차단되어있는 아공간으로 끌려와 버렸기 때문에, 이곳에서 사망한다고 해도 바깥에 있는 부하들이 알 턱이 없었다.

조금만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순식간에 알아차릴 수 있는 허세.

하지만 애쉬는 이 협박에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

비록 마르텔 대모를 마지막으로 계약이 끝나버린다고 해도 여전히 그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혈통이 아슈킬 가문이었기 때문이다.

만에 하나라도 그들의 신변이 위험해질지도 모르는 도박을 시도할 수는 없었다.

이 모습에 리한은 더할 나위 없이 의기양양해졌다.

“모순 투성이구나, 애쉬. 우리 가문을 그렇게 사랑하면서도 초대 천마의 원한과 미련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니 말이야.”

“닥쳐!”

“아직도 모르겠느냐?”

“닥치란 말이다!!!”

쿵!!

공격이 날아왔지만 오히려 금강투합체를 풀어버리면서 맨몸으로 받아내려고 하자 화들짝 놀라서 공격의 궤도를 틀어버리고 말았다.

콰콰콰콰콰콰쾅!

죄없는 대지에 불도저로 밀고 지나간 것처럼 크레이터가 만들어졌다.

“주원장은 죽었고 명나라는 망했어. 비록 당대의 복수는 실패했지만 마교는 수차례 정마대전을 일으키면서 그들의 후손을 추적해서 모조리 몰살해버렸다고 하더군. 그렇게까지 하고도 무슨 미련이 남아있어서 다시 혈겁을 일으키려는 거냐? 중원에 살아 숨 쉬는 생명을 모조리 잡아 죽여야 속이 시원하겠느냐?!”

“입 다물어라! 네까짓 놈이 무엇을…우리에 대해서 무엇을 안다고!!!”

“그래, 아무것도 몰라! 하지만 따지고 보면 너도 마찬가지가 아니냐, 애쉬? 너는 도대체 누구를 대변하고 있지? 어째서 모든 천마의 업?을 혼자서 짊어지고 있냐는 말이다!!

“그, 그건…”

“네가 품고 있는 감정은 모두 가짜야. 당사자들의 죽음과 함께 재가 되어서 사라져버려야 하는 부질없는 미련들이지. 그렇게 케케묵은 원한을 언제까지 끌어안고 있을 것이냐, 애쉬? 아니…”

잠시 숨을 고른 리한이 다시 입을 열었다.

“성화령?火?.”

“!!!!”

대대로 교주들에게 계승되어 내려오는 명교 최고의 신물.

그 희대의 아티팩트를 호문클루스로 만들어낸 것이 바로 애쉬의 진정한 정체였다.

“크크크큭, 크크크크큭! 하하, 하하하, 하하하하하하하하!! 정말로…정말로…대단하구나. 무려 천 년이다! 천 년 동안 누구도 풀지 못한 아슈킬 가문의 비밀이 이렇게 낱낱이 까발려지다니. 그것도 외부인이나 다름이 없는 너에게…하하하, 하하하하하하…”

가면 갈수록 낮아지는 웃음소리는 공허하기 이를 데가 없었다.

“절반 정도는 네 반응을 보면서 추측해서 끼워 맞췄을 뿐이다. 게다가 천마신공도 일부밖에 습득하지 못했으니까 엄밀하게 따지면 시험을 통과했다고 할 수도 없지.”

“아니, 그 정도만으로도 조건은 충분히 클리어했어. 나머지 녀석들은 월환쌍극만으로도 만족해버려서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았으니까 말이야. 정말로 하나같이 어리석고…자신들에게 주어진 인생을 즐겼지. 몸속에 어떤 피가 흐르는지도 모르고 마교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어.”

“역시 교주들의 기억을 계승하고 있었군.”

“기억뿐만이 아니야. 나는 사념의 집합체야. 역대 천마들의 기억과 감정, 심지어는 그들이 깨우친 심득과 성취까지도 다음 세대의 천마에게 고스란히 계승해주는 것이 가능하지.”

터무니없는 스케일의 이야기에 리한의 동공이 커졌다.

“그, 그렇다면 너는…”

“마교 자체. 아니…저주라고 해야겠지.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이상, 마교는 절대로 멸망하지 않아. 몇 번이라도 끊임없이 되살아날 테니까.”

“설마 역대 천마들이 하나같이 마성에 물들어서 중원을 침략한 이유가…”

“맞아. 전부 나 때문이었어. 주원장을 증오하는 초대 천마의 원한이 계승자들의 정신을 타락시켰으니까 말이야. 천마라는 이름을 물려받고도 제정신을 유지한 사람은 하나밖에 없었어.”

“그게 바로 시조님이었다는 거냐?”

“진짜 이름은 홍?이야. 이쪽으로 넘어와서는 다리안 아슈킬이라는 이름으로 개명했지만 말이지. 역대 최고의 천마였어. 마교가 멸망하지만 않았다면…아니, 오히려 그렇게 되어버린 것이 다행일지도 모르지. 유레시아 대륙으로 이주했기 때문에 내 주박에서 벗어날 수 있었으니까 말이야.”

“주박이라니?”

“성화령을 몸에 지니고 있으면 계속해서 들려오는 거야. 초대 천마의 광기와 증오에 가득한 목소리가 말이지. 다리안이 어째서 나라는 존재를 호문클루스로 만들었다고 생각해? 네 말대로 케케묵은 원한이 대물림되지 못하게 하려고 했던 거야. 성화령을 포기하는 대신에 자신과 후손들을 마교의 저주에서 해방시켰지.

“…그래서 네가 역대 천마들의 저주를 혼자서 떠맡았다는 거군.”

“맞아, 처음에는 그분이 미워서 참을 수가 없었어. 갓 태어난 나는 초대 천마의 화신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말이야. 호문클루스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창조주에게 거스를 수는 없었지만 귀신처럼 따라다니면서 끝도 없이 투덜거렸지. 버티지 못할 때까지 말이야.”

“그래서 그렇게 말도 안 되는 계약을 맺었던 거냐?”

“맞아. 한 세대에 한 명씩…마음에 드는 녀석을 찍어서 곁에서 지켜주라고 하더군. 가문이 망하거나 말거나 상관하지 않아도 되니까 천마의 혈통이 끊어지지만 않게 하라는 조건이었어. 그리고 가문의 일원 중에 누구라도 상관없으니 월환쌍극을 보완해서 천마신공으로 만들어내는 녀석이 나오면 그 녀석을 새로운 천마로 키워서 중원을 도모해도 된다는 약속을 받았지.”

“그게 딱 마르텔 대모까지였다는 거군.”

“맞아…영원히 기다릴 수는 없었으니까 말이야. 하지만 나중에 가서야 속았다는 사실을 깨달았지. 천년이라는 세월이 그렇게 길다니…게다가 한 세대만 더 기다렸으면 너 같은 별종이 나올 수도 있었다니…도대체 나는 얼마나 운이 없는 걸까?”

애쉬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었다.

“계약 기간은 끝났으니까 마음대로 하면 되는 것이 아니냐? 나를 납치해서 데리고 가면 되잖아? 물론, 마교를 재건하거나 중원을 도모하고 싶은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지만 말이야.”

“창조주의 명령은 절대적이라고 했잖아. 천마 후보가 될 수 있는 세대는 마르텔 대모까지야. 그 아래쪽으로는 안 돼. 계약 기간이 끝나면 자유롭게 살아도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선행 조건은 거스르지 못해. 이제 아슈킬 가문에서 천마를 만들어내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말이야!”

리한은 끌끌거리면서 혀를 찼다.

“정말로 융통성이 부족한 녀석이군. 덕분에 바보는 천 년이 지나도 고쳐지지 않는 불치병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뭐, 뭐라고?”

“시조님께서 너 같은 멍청이를 상대하느라고 얼마나 고생했을지가 훤히 보인다. 어리광도 작작 좀 부려라, 그렇게 오랜 세월 후손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도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 거냐? 마교의 주박에서 벗어난 사람들이 살아가는 평범한 인생을 말이야! 심지어 네가, 네 입으로 말하지 않았느냐? 하나같이 어리석고 자신들에게 주어진 인생을 즐겼다고. 어째서 너는 스스로 그렇게 살아갈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거냐?!”

“!!!!”

애쉬는 충격을 받은 것처럼 비틀거리면서 뒷걸음질을 치고 말았다.

“내가 보기에는 너는 이미 충분히 제정신이야.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하는데 초대 천마의 저주가 아무리 강력하다고 해도 천 년 동안 희석되지 않았을 것 같아? 아슈킬 가문의 차기 가주로서 명령하는데 마교나 중원 따위는 잊어버려라. 거부하겠다면…썩어빠진 근성을 지금 이 자리에서 철저하게 뜯어고쳐 주마!”

리한은 그렇게 말하면서 바닥에 꼳아두고 있었던 일극과 월극을 뽑아들었다.

“…어쩌면 네 말이 맞을지도 몰라.”

“당연하지.”

터무니없는 자신감.

“하지만…나는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법을 모른다는 말이다!”

“이제부터라도 배우면 돼. 걱정하지 마, 바보에게 잘 듣는 특효약을 알고 있으니까 말이야.”

“큭! S급도 되지 못한 조무래기 주제에…”

“길고 짧은 것은 대봐야 아는 법이지.”

얄미운 도발에 애쉬는 평온의 검사라는 이명이 어울리지 않는 표정으로 이를 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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