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75화 〉 재의 귀인(H이벤트 포함)(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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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교?
백련교, 또는 일월신교라고도 하지만 본인들이 주장하는 정확한 단체 명칭은 해?와 달月을 하나로 합쳐서 부르는 명?교다.
하지만 마교는 그저 마교일 뿐.
좋은 마교는 죽은 마교뿐이라는 것이 동방 세계의 공통된 인식이었다.
무림에서는 정파와 사파를 막론하고 하늘 아래 공존할 수가 없는 불구대천의 원수로 백안시하고 있으며, 황실의 영원한 골칫덩어리, 백성들에게는 세상에 등장할 때마다 끔찍한 재앙과 혈겁을 일으키는 악마들이라고 불리고 있다.
물론, 그들이라고 해서 처음부터 이런 취급을 받았던 것은 아니다.
나쁜 개…아니, 조직은 없다는 말처럼 마교 또한 초기에는 수행에 힘쓰며 득도를 추구하는 평화로운 종교 집단이었다.
당시의 중원은 외세의 지배를 받고 있었다.
백성들은 자신들의 언어와 문화, 사회를 빼앗은 외국인들에게 굽신거리면서 살아가고 있었으며 다양한 불평등과 차별, 폭력과 수탈에 시달리면서 나라를 빼앗긴 서러움과 무력함에 몸서리를 쳤다.
이렇게 현실이 시궁창이다 보면 사람들은 가상의 세계에서 행복을 추구하는 법이다.
사람들은 마교를 선택했다.
하루가 다르게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신도.
하지만 이때 당시의 마교 아니, 명교는 백성들이 불행해서 자신들의 장사가 번창한다고 손뼉을 치면서 좋아하는 파렴치한 자들이 아니었다.
오히려 신도들의 삶과 인생을 망가트리는 불행의 근본적인 원인을 제거해야 한다고 믿는 행동하는 실천주의자들이었다.
마교는 시대의 부름을 외면하지 않고 궐기했다.
당시에도 이미 건곤대나이, 구음진경과 구양신공, 일원신공 같은 강력한 무공을 수련한 전투 승려들을 다수 보유하고 있는 막강한 전투 집단이었다.
거기에 자신들을 따르는 신도들을 훈련시켜서 무기를 들게 하자 순식간에 정규군을 위협할 정도로 강력한 세력으로 급성장하게 되었다.
이때 당시의 명교의 활약은 그야말로 눈부신 것이었다.
힘없는 약자를 보호하고 지배층의 부당한 횡포와 폭정에 맞서 싸우며 탄압받는 민중들을 해방시켰다.
그야말로 정의의 화신 그 자체.
이 활약을 인정받아서 얼마 가지 않아서는 거국적인 독립운동을 총지휘하는 최대 세력으로 성장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그런 명교에게도 불안 요소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이렇게 외세에 맞서 싸우는 과정에서 신도들의 힘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서 교주에게 너무 많은 권한과 권력을 몰아주기 시작했고, 종교 활동은 뒷전으로 적들에게 맞서 싸울 수 있는 강력한 힘을 추구하는 경향이 강해졌던 것이다.
그래도 이때 당시만 하더라도 외세를 몰아내고 나라를 되찾으면 모든 것이 정상 궤도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토사구팽만 당하지 않았더라면 정말로 그럴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명교는 오랜 투쟁 끝에 주원장을 도와서 외세를 몰아내고 독립을 쟁취하는 데 성공했다.
세상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엄청난 공적을 세웠기 때문에 나라 이름도 그들의 이름을 따서 명?나라라고 지어졌을 정도다.
엄청난 업적을 이룩한 명교는 어깨가 으쓱해졌다.
교주는 나라 최고의 국사國?로 임명될 생각에 입꼬리가 귀에 걸렸고, 오랜 세월 동안에 외세의 지독한 탄압과 단속을 피해서 쥐구멍 속에서 살아가야만 했던 과거를 청산하고 자신들이 믿는 종교가 밝은 햇빛 속에서 떳떳하게 국교로 정착될 수 있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나라를 위해서 독립운동에 투신한 그들의 활약을 생각하면 당연한 보답.
하지만 주원장은 지나치게 강력한 집단으로 성장해버린 명교를 두려워했다.
그들의 힘으로 외세를 몰아내고 새로운 나라를 세워버렸으니 마음만 먹으면 자신마저도 똑같은 방법으로 몰아내 버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실제로 이때 당시의 명교는 정말로 강력한 조직이었다.
백성들로부터 열렬한 지지를 받은 것은 물론이었고 정규군에게 단독으로 맞설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사설 군대를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을 섣부르게 제거하려고 했다가는 오히려 주원장이 거꾸로 당해버릴지도 모르는 수준이었다.
그래서 그들을 제거하기 위해서 조그마한 꾀를 궁리해 내었다.
모월 모일.
황실에서 건국 공신들의 노고를 위로하기 위해서 대대적인 축하연을 개최한다는 초대장이 명교에 도착했다.
죽음으로 초대하는 악마의 꼬드김.
하지만 주원장을 철석같이 믿고 있었던 교주는 자신의 가족들은 물론이고 명교의 핵심인사들을 모조리 이끌고 황실 연회에 참석해버리고 말았다.
적극적으로 술을 권하는 주원장의 잔을 넙죽넙죽 받아가면서 부하들에게는 취기를 날려버리는 것을 엄금하며 호탕하게 두주불사를 외쳤다.
그것이 죽음을 자초하는 길이라는 사실을 꿈에도 알아차리지 못하고 오히려 적의 술수에 협력해버린 것이다.
마침내 명교의 사람들이 거나하게 취해서 대부분이 곯아떨어진 시점.
신도 하나가 황실 인사들이 갑작스럽게 사라져버린 것을 의아하게 생각하면서 눈을 비볐다.
그가 무형무색의 산공독이 은밀하게 장내로 퍼져나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것은 얼마 후의 일이다.
하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명교가 주원장을 암살하려고 자객을 보냈다는 목소리가 사방에서 울려 퍼졌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교주가 함정에 빠졌다는 사실을 알아차렸을 때는 이미 수많은 금의위들에게 물샐틈없이 포위당해버린 상태.
필사적으로 맞서 싸웠지만 명교의 수뇌부는 대부분이 이 자리에서 죽음을 면하지 못했다.
살아서 황궁을 빠져나간 자는 소교주와 호법 세 명이 전부.
하지만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치가 떨리는 배신과 절망의 연속이었다.
이미 명교 자체를 중원에서 철저하게 박멸해버리기로 결심한 주원장은, 평소부터 지나치게 잘나가는 그들을 질투하고 있던 다수의 정파들을 끌어들여서 관과 무림의 연합군대를 만들어서 출동 대기시켜놓고 있었다.
그리고 거사를 일으키는 것과 동시에 명교의 모든 지부를 습격해서 쑥대밭으로 만들어버렸다.
잔인한 사실은 이렇게 처리된 조직 중에는 원나라에게 쫓겨서 죽을 위기에 처한 주원장의 목숨을 구해주고 은신처를 제공한 비밀 지부들까지 모조리 포함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자신이 직접 머물렀기 때문에 알 수가 있었던 그들의 위치.
그야말로 은혜를 원수로 갚는 배은망덕의 표본 같은 행위가 아닐 수 없었다.
게다가 주원장은 그것만으로도 모자라서 그들의 이름마저 빼앗아버리고 말았다.
[감히 은혜를 모르고 황제의 목숨을 노린 대역죄인들에게 우리나라의 상징인 명교라고 불릴 자격은 없다! 오늘부터 그들은 지상에서 사라져야 하는 악마의 종교, 마교?라고 칭해야 마땅할 것이다.]
달아난 소교주와 살아남은 명교의 신도들이 복수귀로 변해버린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주원장은 자신이 완벽하게 승리했다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수뇌부는 물론이고 조직 전체를 거의 궤멸시키는 데 성공한 것이다.
하지만 그는 마교의 저력을 지나치게 얕보고 있었다.
신념은 그렇게 간단하게 무너트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때 당시만 하더라도 헤아릴 수도 없는 수많은 백성이 황실보다 마교를 지지했으며 그들의 진정한 힘은 거기에서 나오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던 것이다.
마교는 놀라울 정도로 순식간에 세력을 회복해버렸다.
애초부터 외세에 저항해서 지하조직을 꾸리는 노하우라면 이골이 나 있는 자들이다.
게다가 십만대산이라는 천혜의 요새를 본거지를 삼고 있었기 때문에 연합군대의 습격에 살아남아서 재기에 필요한 모든 자원을 보유하고 있기도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소교주의 소름 끼치는 복수에 대한 집념이 그것을 가능하게 했다.
주원장의 손에 가족과 친구, 신도들이 눈앞에서 모조리 살해당한 것만으로도 미쳐버려도 이상하지 않은 일이었는데 배은망덕하게 자신들에게 모든 죄와 누명을 뒤집어씌워 버린 것이다.
소교주의 분노는 정당한 것이었다.
문제는 복수에 지나치게 눈이 멀어버린 나머지 완벽하게 이성을 잃어버리고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폭주해버리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때부터 마교는 더 이상 정상적인 종교 단체라고 부를 수 없는 비정상적인 모습으로 변해 나갔다.
교주에, 교주의, 교주를 위한 완벽한 독재 체제를 구축.
종교행사는 전투를 고양시키기 위한 광기로 가득한 사이비 행사로 바뀌어렸고, 휘하의 모든 조직이 경쟁적으로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적을 효과적으로 살해할 수 있을지를 연구해 나갔다.
덕분에 무력 자체는 더할 나위 없이 강해졌지만 이제는 정말로 마교?라는 이름에 어울리는 사악한 악의 조직으로 변모해버린 것이다.
백성들은 그들이 정의를 실현하고 자신들의 본래 모습으로 돌아가 주기를 바랬다.
하지만 소교주가 원하는 것은 오직 하나.
중원 전체를 시산혈해로 덮어버리는 처절하기 이를 데가 없는 복수 끝에 명?나라 존재 자체를 이 세상에서 지워버리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런 행보가 마교를 정말로 몰락시키는 계기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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