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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71화 〉 재의 귀인(H이벤트 포함)(5) (371/429)

〈 371화 〉 재의 귀인(H이벤트 포함)(5)

* * *

쾅!

후우우우우웅­

첫 번째 충돌에서 발생한 바람이 폭풍처럼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하지만 두 사람은 계속해서 공격을 이어나가지 않고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흐릿하게 잔상으로 사라져버렸다.

다음 순간.

퍼퍼퍼퍼퍼펑!!

대련장에서 무수한 파공성이 동시다발적으로 울려 퍼졌다.

[무투기. 비월신기!!]

두 사람이 만들어낸 수많은 분신이 사방에서 격돌하며 맹렬하게 쌍검을 휘둘렀다.

완벽한 백중세.

대련이라고는 생각할 수가 없을 정도로 처음부터 급발진해서 탑기어 풀악셀을 밟아버리는 것처럼 치열하게 공격을 주고받았지만, 놀랍게도 모든 분신이 서로에게 우위를 점하지 못하며 교착 상태를 이어나갔다.

“제법이구나, 리한! 설마 신월보와 비월신기를 극성까지 수련했다니 말이야!”

“싸우는 와중에도 한가하게 떠들어대시는 것을 보니까 아직 여력이 남아있는 모양이군요.”

“하하하하! 사돈 남말하시네!!!”

마치 활을 쏘려는 것처럼 오른팔을 뒤로 잡아당긴 래리가 찌르기를 하려는 자세를 취했다.

무투기를 사용하려는 예비 동작.

“어딜!”

휘오오오오오!

저지하려고 했지만 내력이 모이는 속도가 상상 이상으로 빨랐다.

[무투기. 혼섬뢰!!!]

투콰아아아아아앙!

직선으로 쏘아져서 날아가는 충격파가 대련장 바닥을 도미노처럼 뜯어내면서 사방으로 흩뿌렸다.

벽을 부수고 연못을 증발시키며 수십 그루의 나무와 바위를 부숴버리는 것으로도 모자라서, 시야 밖으로 사라져버릴 때까지 자신의 앞길을 가로막는 모든 것을 파괴해버리는 무시무시한 일격.

‘월환쌍극의 혼섬뢰가 이런 위력을 발휘한다고?’

피해서 망정이었지 정통으로 받아내려고 했다면 금강투합체를 부수고 신체 절반을 날려버렸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식은땀을 흘릴 틈도 상식을 벗어나는 위력에 놀랄 여유도 없었다.

마치 빗나갈 것을 예상하기라도 했다는 것처럼 신체를 회전시킨 래리가 곧바로 다음 초식을 전개해 들어왔기 때문이다.

[무투기. 월륜폭산月???!!]

[무투기. 천강등원무?????!!]

타타타타타탕!!!

유성우처럼 쏟아져 내려오는 무수한 공격에 폭포수를 거슬러 올라가는 것처럼 맞받아치는 쌍검무.

쾅!!!

지이이이이이이이잉­

마지막으로 주고받는 일 합이 정면으로 충돌하면서 사방으로 진동이 퍼져나갔다.

“크으으으윽!”

펑! 퍼퍼펑! 퍼퍼퍼퍼펑!

하인들은 귀를 막고 비명을 질렀고 유리로 만든 물건들이 폭발하듯이 깨져나갔다.

초식 대결은 무승부.

아니, 마지막 합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무리하게 공격을 받아낸 리한이 낭패를 당했다.

부르르르­

‘손아귀가 찢어지는 줄 알았어. 월환쌍극이 이렇게까지 패도적인 무공이었단 말인가?’

원래 파괴력보다는 속도와 기교, 그리고 은밀함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것이 월환쌍극의 미덕이다.

하지만 눈앞에서 보여주는 래리의 초식은 도저히 같은 무공을 사용하고 있다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강력하기 이를 데가 없었다.

파괴력 하나만큼은 루크 장군도 인정하던 아토스의 수왕벽력도를 상대하는 기분.

거기에 앞서 언급한 월환쌍극의 모든 장점이 가미되어서 단점을 찾아볼 수가 없는 완벽한 무공으로 재탄생했다.

“휴우, 정말로 대단하구나. 조카야. 네가 지난 3년 동안 바깥세상에서 무슨 일을 당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무공 수련 하나만큼은 꾸준하게 거르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겠다.”

“빈정대시는 것으로밖에 들리지 않습니다만…”

“초식의 완성도에서 차이가 나는 것은 어쩔 수가 없지 않느냐? 이게 바로 연륜의 힘이라는 것이다. 크하하하하하!”

허리에 손을 얹으며 호탕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하지만 래리는 곧바로 언제 그랬냐는 것처럼 매서운 눈초리로 노려보았다.

“그런데 말이야…이상하게도 뭔가 석연치가 않다는 말이지, 조카야. 틀림없이 너는 최선을 다해서 대련에 임하고 있는데도 어째서 여력을 남겨두고 있는 것처럼 보일까?”

‘예리하군. 무인으로서의 감이라는 녀석인가?’

그의 말처럼 리한은 이번 대련에서 전력을 발휘하고 있지 않았다.

현재 자신의 무장 등급을 객관적으로 평가하면 래리하고 똑같은 A+

거기에 연륜을 무시할 수 없다는 말대로 실전 경험과 초식의 완성도에서 뒤떨어지기 때문에, 대련에서 압도당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여기에 마스터 코어와 세멜레의 지팡이의 힘을 더하면 완벽하게 이야기가 달라진다.

열화판이 아니라 자신과 똑같은 힘을 발휘할 수 있는 분신을 추가.

거기에 기본적인 신체 능력을 폭발적으로 상승시키는 맥시멈 부스트를 사용하면 일시적으로 준S급까지 실력을 올리는 것이 가능했다.

거기에 얼마 전에 완성한 또 하나의 비장의 수단까지 사용한다면 래리 따위를 쓰러트리는 것은 자랑거리도 되지 못했다.

하지만 이번 대련에서는 승리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었다.

리한이 원하는 것은 단서.

이번 전쟁에서 아직 쓰러트리지 못한 세계 최강의 무장에게 도달하기 위한 퍼즐 조각을 완성하는 것이 진정한 목표였다.

“여력 따위는 없습니다. 현재로서는 이게 저의 한계입니다. 벽을 넘어섰지만 또 다른 벽에 부딪혀버린…가문의 무공을 독학으로 수련하는 바람에 어디에선가 해석을 잘못해버린 거겠죠. 월환쌍극에 중검??의 묘리를 살릴 수 있는 방법이 있었다니…”

“크흠! 걱정하지 마라. 아니, 오히려 나는 네가 자랑스럽다! 솔직히 너만 한 나이에 그 정도 경지에 올라갔다는 사실만으로도 왕국 전체가 놀랄만한…”

“하지만 숙부의 무공도 반쪽짜리기는 마찬가지더군요.”

“…응???”

래리가 눈동자를 끔뻑거렸다.

“우리 아슈킬 가문이 잃어버린 반쪽의 무공, 일천진경을 말하는 겁니다.”

“일천월환쌍극진경…아니, 뭐. 나도 어렸을 때부터 이야기는 들었지만 말이야. 존재하지 않는 무공에 대해서 미련을 가지는 것도 어리석은 일이고…”

“저는 월환쌍극에서 부족한 중검의 묘리가 일천진경에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으음…그럴싸한 발상이기는 한데…”

같은 무공이라도 해석하는 방식에 따라서 형?과 위력이 극명하게 달라질 수가 있다.

래리는 월환쌍극 자체를 하나의 완성된 무공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초식을 온전하게 다듬었지만, 리한은 반쪽짜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채워지지 않는 여백을 그대로 남겨두었다는 것이다.

“정말로 그렇게 생각했다면 오히려 대단하구나. 반쪽짜리 무공으로 그만한 경지에 도달하다니 말이야.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정말로 존재하는지도 불분명한 무공에 집착하는 것은 부질없는…”

“정말로 존재하지 않을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데 말입니다.”

“…흠, 뭔가 짐작이 가는 것이라도 있다는 말이냐?”

“우리 가문에 딱 한 명. 일천진경에 대해서 알고 있다고 해도 조금도 이상하지 않은 존재가 하나 있지 않습니까?”

“그, 그건 설마…네가 말하려는 사람이 혹시…”

“평온의 검사, 애쉬. 우리 아슈킬 가문의 가주를 수백 년 동안 지켜온 정체불명의 객원 무장. 그것을 바꿔 말하면 세계 최강의 수신 호위, 가디언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애쉬님의 강함이 일천월환쌍극진경 때문이라는 것이냐???”

“제 생각은 그렇습니다.”

“말도 안 돼!! 어째서 애쉬님께서 우리 가문의 무공을 익히고 있다는 말이냐? 그분이 사용하는 무공은…그, 그러니까 그분이 사용하는 무공은…”

격렬하게 부정했지만 말을 잇지 못하고 더듬거렸다.

어딘가 불안해 보이는 래리의 태도.

격렬하게 흔들리는 눈동자는 이상할 정도로 동요를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모르신다는 거군요?”

“어, 어쨌든 아니야! 애초에 그분이 뭐라고 우리 가문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무공을 수련하고 있다는 말이냐?!!”

“아무런 관계도 없는데 수백 년 동안이나 가주를 지켜주는 것도 이상하지 않습니까?”

“그건…그럴지도 모르겠지만…”

“지난 며칠 동안 오르드리에 머무르면서 우리 아슈킬 가문의 역사를 공부했습니다. 송구스럽지만 가주밖에 출입할 수 없는 금서고에 들어가서 정사와 야사, 그리고 외인부전의 개인사에 흑역사까지 샅샅이 조사했습니다만…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흥미롭고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즐비해 있더군요.”

리한의 말을 듣고 질려버렸다는 표정을 지었다.

“쿨럭, 그 두껍고 무거운 책들을 전부 읽었다는 말이냐? 어지간한 도서관 하나만큼의 분량이 있는데…”

“반나절쯤 걸렸습니다.”

“괴물이냐?!!”

“하지만 충분히 가치가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덕분에 우리 아슈킬 가문의 ‘진정한 정체’는 물론이고 애쉬님의 정체가 무엇인지도 유추할 수가 있었으니까요.”

“지, 진정한 정체라니…”

래리의 눈동자가 다시 한번 격렬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것을 목격한 리한은 비로소 확신할 수 있었다.

자신의 얼굴에 새겨진 불꽃 모양의 흉터, 사라진 기억.

그것과 비슷한 방법으로 래리에게도 애쉬가 걸어놓은 정신적인 금제??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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