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55화 〉 완벽한승리(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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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레팔스령으로 떠났다고 생각한 아스트라세 가문의 군대가 스톰 가드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도 수십 척의 함선을 이끌고.
단순하게 군대를 회군시키는 것만이라면 불가능한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배를 강에 띄우는 작업이 하루 이틀 만에 이루어졌을 리가 없었다.
수천 명의 마법사를 동원해도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는 일.
래리군이 이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사실이 의미하는 것은 하나뿐이다.
아르고스 라인이 이미 한참 전부터 리한에게 장악되어 있었다는 것이었다.
수비군 전체에 걷잡을 수 없는 동요가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스톰 가드로 공격을 퍼부어라. 전하를 엄호해!]
[마나를 쓸데없이 낭비하지 마라! 총안으로 모든 화력을 집중시켜. 적들이 성벽 바깥으로 고개를 내밀 엄두도 내지 못하게 해라!]
[우리 아스트라세 가문의 충의??를 증명할 시간이 왔다. 공격, 공격!!]
퍼퍼퍼퍼퍼퍼펑!!
루돌프와 지휘관들의 호령과 함께 천지를 진동하는 포성이 스톰 가드 전체를 뒤흔들었다.
[다, 당황하지 말고 맞서 싸워! 이쪽에서도 원거리 공격으로…크아아아악!]
[적의 숫자가 너무 많아!]
지금까지 스톰 가드가 원거리 전투에서 상대를 압도할 수 있었던 이유는, 좌우 면적이 다리보다 두 배나 넓은 성벽에서 좁은 다리로 몰려오는 적에게 화력을 집중한다는 일방적으로 유리한 전투를 진행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 상황은 그야말로 정 반대.
판달 대교를 포위하고 학익진을 펼치는 아스트라세 가문의 함선들과 그물망을 펼치듯이 하늘을 장악해버리는 그리폰 라이더.
거기에 제4 성벽 위로 모습을 드러낸 본대까지 합세해서 육해공으로 퍼부어대는 공격에 압도당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가뜩이나 부족한 병력을 쥐어짜서 성문 밖으로 내보낸 것도 커다란 실수였다.
[크아아아아아악!]
마카로프가 이끄는 3천 원군이 사방에서 쏟아지는 집중포화에 속수무책으로 죽어 나갔던 것이다.
[후퇴! 후퇴!!]
[어서 빨리 제5 성벽으로 돌아가야 한다. 서둘러!!]
서둘러서 회군하려고 했지만 뒤뚱거리면서 느릿느릿하게 몸을 돌리는 중무장 보병들은 같은 편의 발목을 잡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망치는 아군을 수용하려고 문을 열고 버티는 제 5성벽.
이런 절호의 기회를 리한이 놓칠 리가 없었다.
“도망치는 적을 추격해서 단숨에 제5 성벽을 돌파하도록 하겠다. 누가 나의 뒤를 따르겠느냐?”
“제가 수행하겠습니다, 도련님! 그리고 팔콘 전사들이 함께할 것입니다!”
크오오오오오오!
아스트라세 가문의 함대에서 그리폰을 타고 날아온 이리나가 그의 곁으로 착지해 뛰어내리며 힘차게 대답했다.
루돌프와 함께 달려온 그녀.
투두두두두둑!
동시에 은색 매의 투구를 착용한 팔콘 전사들이 하늘에서 우르르 떨어져서 쐐기 형태의 돌격 진형을 갖췄다.
파지지지지직!
이 모습에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마스터 코어의 힘을 끌어올리는 리한.
스톰 가드에 마나를 빼앗기지 않도록 아키텍트를 이용해서 만들어지는 생체 갑옷이 돌격 부대를 감쌌다.
“돌 격!!”
[무투기. 비월신기!]
투콰아아아앙!
힘차게 뛰어오른 리한과 팔콘 전사들이 쏟아지는 유성군처럼 밤하늘을 가르며 제5 성벽으로 쇄도해 날아갔다.
목표는 오직 하나.
성문이 닫히기 전에 내부로 진입하는 것.
[성문을 닫아! 어서!!!!]
이 모습을 목격한 마카로프가 수비군에게 소리를 질렀다.
동시에 6서클 마법인 멀티플 아이스 볼트를 발사해서 격추하려고 했지만 약해진 위력으로는 팔콘 전사들의 금강투합체를 뚫을 수 없었다.
게다가 사방에서 쏟아지는 엄호사격 때문에 요격은 꿈도 꾸지 못하는 상황.
리한과 이리나, 그리고 팔콘 전사들은 거침없이 판달 대교를 질주해서 단숨에 제5 성벽의 성문 앞까지 육박해 들어갔다.
쿠구구구구궁!
[어, 어서 빨리 닫아!]
[시간에 맞출 수가 없습니다. 너무 빠릅니다!]
[수비군은 무엇을 하는 거냐? 들어오지 못하게 막아! 막으란…으아아아악!]
퍼퍼퍼퍼퍼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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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후.
후우우우우웅
전송 마법을 사용한 하이잘이 측근들과 함께 제10 성벽의 텔레포트 에어리어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휴우이렇게 짧은 거리를 이동하는데도 터무니없이 오래 걸리는군. 이래서야 오히려 걷는 것이 빠를 지경이 아니냐?”
“적의 방해 때문에 좌표 구축이 어려워서 그렇습니다.”
“나도 알고 있다. 그래도 지금 시국에 성문을 열어달라고 할 수는 없으니까 불편해도 참아야지. 하늘에서 적의 그리폰 라이더들이 날아다니고 있으니까 말이야.”
측근의 설명에 짜증 내듯이 대꾸한 노인은 걸음을 서둘러서 사령부로 이동했다.
“오셨습니까? 아버님.”
“그래, 에스메랄다! 전황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느냐?”
경례하는 딸에게 물었다.
“제4 성벽과 제5 성벽이 함락당했습니다. 지금은 제6 성벽에서 전투가 펼쳐지고 있습니다.”
“벌써???”
텔레포트 술식 구축이 오래 걸리기는 했지만 불과 20분이 걸렸을 뿐이다.
터무니없는 돌파 속도에 눈동자가 휘둥그레지는 하이잘.
“아스트라세 가문이 함대를 끌고 등장했습니다. 마치 노린 것처럼 절묘한 타이밍에 나타나서 제4 성벽으로 이동하는 원군을 그리폰 부대와 합세해서 일제히 덮쳤다고 하더군요. 덕분에 아군은 수적으로도, 화력으로도 열세에 몰릴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게다가 후계자 스스로 돌격 부대를 지휘해서 제5 성벽의 성문이 닫히기 전에 성내로 진입. 저항하는 수비군의 전의를 순식간에 꺾어버리고 항복을 받아냈다고 합니다.”
“터무니없군. 설마설마했지만 스톰 가드를 정말로 하룻밤에 함락시킬 기세가 아니냐? 후계자는 정말로 괴물이구나…”
“아르고스 라인이 장악당한 걸까요?”
“아마도…아니, 틀림없이 그렇겠지. 이만한 함대를 플레게톤 강에 띄울 수 있을 정도라면 하루 이틀 관리한 것도 아닐 거야.”
“그것참. 다행이로군요.”
“다행이라고???”
“말이 헛나왔습니다. 무시해주십시오, 아버님.”
“…”
이상한 표현에 눈살을 찌푸렸지만 지금은 그런 것에 신경을 쓰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래리님께서 제7 성벽으로 원군을 보내 달라고 요청해 왔습니다만…어떻게 할까요, 아버님?”
“무시해라! 지금 상황에서 도와주러 가봤자 얼마 버티지 못해. 쓸데없는 개죽음을 당할 뿐이다!”
이 말을 들은 에스메랄다의 눈매가 미세하게 가늘어졌다.
“그러면 도망치시겠다는…?”
“당연하지! 적들이 래리를 생포하는 데 혈안이 되어 있는 틈을 노려서 서둘러 빠져나가야 한다. 투견대와 함께 퇴로를 열어라! 다행스럽게도 포위망은 완성되지 않았고 공격도 중앙으로 집중되고 있으니까 지금이 마지막 기회야!”
하이잘의 말대로 아스트라세 가문의 함대는 래리가 있는 제7 성벽을 집중적으로 포위하고 있다.
게다가 투크 가문의 군대는 병사들의 가족이 인질로 사로잡힐 것을 염려해서 제10 성벽부터 제13 성벽을 담당하는 후방 수비를 명령받은 상황.
마지막까지 배신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서 믿고 맡긴 임무였지만, 처음부터 불리해지면 달아날 생각이었던 하이잘이라는 고양이에게 생선을 지켜달라고 구워서 입에다가 물려준 꼴이었다.
“전선을 이탈해서 은요호 기관에 망명을 부탁할 생각이다. 걱정하지 마라! 테르할 제국은 무장들에게 관대한 나라니까 말이야. 네 정도 실력이라면 금방 출세할 수 있을 거다!”
“그것 참 좋은 생각이로군요. 아버님! 하지만 하나 문제가 있습니다.”
“뭐지?”
“이렇게 서둘러서 도망치시면 제 어머니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어머님…? 아, 아만다!! 아, 크흠! 그, 그렇구나. 네 어미에 대한 문제가 남아있었지.”
반응을 보아하니 조금도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을 지적당한 모양이었다.
쿵!
“설마 어머니를 버려두고 가시겠다는 말씀은 아니시겠죠?”
에스메랄다가 살벌한 표정으로 가까이 다가왔다.
반사되는 조명을 완전히 가려버리면서 그림자로 자신을 덮어버리는 거대한 체구.
자신도 모르게 압도당한 하이잘은 침을 꿀꺽 삼키면서도 억지스럽게 웃음을 터트리며 허세를 떨었다.
“무, 물론, 나중에 데려올 생각이었다! 소중한 마누라니까 말이야. 너야말로 감히 다른 생각을 품지 말도록 해라! 어미의 목숨이 누구의 손에 달려 있는지 잊어버린 것이냐? 만에 하나라도 내 몸에 문제가 생겼다가는 부하들이…커허어어억!”
노인의 머리통을 단숨에 움켜잡은 에스메랄다가 그대로 바닥으로 돌진시켜서 세차게 찍어버렸다.
쾅!!
“하, 하이잘 님!”
“빌어먹을 년이 감히 가주님에게 무슨 짓을…”
“죽여라.”
“네, 사령관님!”
하이잘의 측근들이 일제히 무기를 빼 들자 그녀는 자신의 부하들에게 명령을 내려서 그들을 제압하도록 했다.
결과는 에스메랄다의 압승.
“크아아아아악!”
“크으으윽. 네 녀석들! 모조리 배신에 가담해버린 것이냐?!”
“제 직책을 잊어버린 겁니까? 아버님. 총사령관이라는 직함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매일 주색잡기에 빠져서 흉계를 꾸미는 일에만 머리를 쓰는 당신하고는 다르게, 저는 군인들과 숙영지에서 한솥밥을 먹으며 동고동락했다는 말입니다. 이 차이를 아직도 모르시겠습니까?”
“네, 네녀어어언…”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