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52화 〉 완벽한승리(6)
* * *
보초는 성벽 위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불침번을 서는 소수의 병사가 층층이 복도를 거닐며 총안??을 통해서 엑스 요새의 동태를 확인하고 있지만, 그들의 능력으로는 어둠 속에 완벽하게 녹아들어서 접근하는 암살자들의 기척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리한의 뒤를 따르는 사람들은 모두 B급 이상의 실력자들.
타다다다닥!
외벽에 도착하기가 무섭게 지면을 박차고 뛰어올라서 스톰 가드의 성벽 위로 사뿐하게 착지해 섰다.
[1조는 적의 군복으로 갈아입어라. 계속해서 보초를 서는 것처럼 위장하고 나머지는 뒤를 따라라!]
[충!]
전음으로 대화를 주고받고 곧바로 작전에 돌입했다.
지이이이잉
다행스럽게도 적들은 옥상 문을 걸어 잠그지 않았다.
성벽과 마찬가지로 파괴할 수 없는 정체불명의 금속 재질로 만들어져 있었기 때문에 똑바로 잠가두었다면 외부 출입을 완벽하게 차단할 수 있었을 터.
규정대로라면 교대하기 전까지는 안쪽에서 잠그는 것이 FM이지만 그만큼 아르고스 라인을 믿고 방심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여실히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아무리 시스템이 완벽하다고 해도 똑바로 관리하지 않으면 이렇게 되는 거지.’
리한은 잠겨있을 경우를 상정해서 축골공???을 사용해 총안으로 돌입하는 방법을 생각해 왔다.
하지만 열려있으면 열려있는 대로 그대로 사용하면 되는 일이었다.
[입수한 정보에 따르면 적의 무장들은 4층과 5층에 집중되어 있다. 따라서 질과 내가 그곳을 담당한다. 소월은 3조를 이끌고 나머지 층을 정리해라!]
[충!]
타다다다다닷!
“누, 누구…커헉!”
침입자를 발견한 초병이 소리를 지르기 전에 달려들어서 입을 틀어막고 목덜미에 단도를 쑤셔박았다.
목소리를 낼 수 있었던 경우는 그나마 양반.
서걱 서걱 서걱 푸슉!
대부분은 갑작스러운 기습에 단말마도 지르지 못하고 추풍낙엽처럼 쓰러져 갔다.
아이러니하게도 스톰 가드의 내부의 보안 장치는 허탈할 정도로 별볼일이 없었다.
마나를 흡수하는 특수한 재질의 성벽 때문에 알람이나 트랩, 보안 마법을 발동하는 마법 장치를 설치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것을 아르고스 라인의 서포트로 보충하고 있었지만 현재는 완전히 무력화된 상태.
암살자들은 물을 만난 물고기처럼 자신들의 솜씨를 마음껏 뽐냈다.
[초병대기소를 제압했습니다. 항복한 적들은 마혈과 아혈을 짚어서 구속하겠습니다.]
[B구역 클리어!]
[알람 장치를 파괴했습니다. 계속 전진하십시오!]
제압 작전은 허무할 정도로 순조롭게 진행되었지만 난관이 없는 것은 아니다.
[멈춰!]
뒤따라오는 암살자들에게 정지 신호를 보내는 리한.
그의 눈앞에 무장들이 단체로 머무르고 있는 숙소가 보였다.
한 명, 두 명을 소리소문없이 제거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이렇게 집단으로 뭉쳐있으면 소란을 일으키지 않고 제압하는 것은 까다로운 작업이었다.
귀족 출신에 거느리는 종자마저도 일반인의 범주를 벗어나는 신체 능력을 소유.
청각은 물론이고 후각, 시야 같은 모든 감각이 터무니없을 정도로 예민하게 발달해 있으며 일부는 퍼큘리어로 육감을 초월하는 세븐센스를 발뷔하는 경우도 있을 정도다.
거기에 어지간해서는 죽지 않는 바퀴벌레 같은 생명력까지.
현재 전력으로 돌입해 싸워서 처치하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누구 하나라도 사자후를 터트려서 적들에게 야습 사실을 알렸다가는 오늘 작전은 수포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소리가 새어나가지 않도록 기막이라도 칠 수 있으면 좋은데 말이야. 이래저래 제약이 많아서 성가시기 이를 데가 없군.’
시간이 있으면 마스터 코어의 능력을 총동원해서 스톰 가드의 성벽 재질을 분석해보고 싶을 정도였다.
현재 리한이 이 정체불명의 금속에 대항해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헤스티아에게 해준 것처럼 병기에 주입하는 마나를 빼앗기지 않도록 보호막을 씌워주는 것이 전부였다.
물론,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사기라고 할 수 있지만.
게다가 투덜거리면서도 무장들을 제압하기 위한 손도 써놓은 상태였다.
치이이이이이익
[공작조가 성공했다. 모두 방독면을 착용해라!]
[충!]
리한의 명령이 떨어지자 암살자들이 일제히 입과 코를 가리는 마스크를 착용했다.
환풍구를 통해서 성 전체로 퍼져 나가는 무색, 무취의 산공독.
상당히 비싼 물건이지만 오늘 이 순간을 위해서 긁어모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기 때문에 공작조에게 아끼지 말고 마음껏 살포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그렇게 몇 분이 지났을까.
사위는 조용했다.
더할 나위 없는 청신호.
만약에 누구 하나라도 무공을 수련하고 있었다면 갑작스럽게 흐트러지는 내공에 당황해서 소란을 일으켰을 것이었다.
그것이 발생하지 않았다는 것은 모두 세상모르고 새근새근 잠들어있다는 뜻.
암살자들과 함께 가만히 동태를 살피고 있던 리한은 고개를 끄덕이고 지시를 내렸다.
[살려둘 가치가 없는 녀석들은 모조리 죽여라. 항복은 받지 않는다.]
[충!]
쾅!
[누, 누구냐. 으아아아악!]
[항복! 살려줘, 아니 목숨만은 제발…커허어억!]
[적습…]
푸슉! 푸슉, 푸슉, 푸슉, 서걱! 촤아아아아악!
숙소를 박차고 들어오는 암살자들의 공격에 무장들은 허무할 정도로 무력하게 쓰러져 갔다.
애초에 마나가 없으면 일반인보다 신체 능력이 조금 더 뛰어난 사람들에 불과할 뿐이다.
B급 무장 이상의 전투능력을 가지고 있는 암살자들의 상대가 될 수 없었다.
리한은 대부분의 무장과 마법사들을 살해하라고 지시했다.
쓸데없이 살려뒀다가 소란을 일으키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도 있지만, 지금 이 상황에 이르러서까지 자신에게 맞서는 자들은 애초부터 같은 편이 되는 것이 글러 먹은 자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선택지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던 일반 병사들이 아니다.
다른 길을 고를 수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래리와 돌로레스에게 달라붙어서 사리사욕을 탐닉한 제니아의 암 덩어리 같은 존재들이라고 할 수가 있었다.
물론, 그들 중에서도 예외는 있다.
비록 이날 이때까지 자신에게 대적했지만 살려둘 가치가 있는 자들.
대표적으로 들 수 있는 사례가‘칠소룡’이다.
쿵!
어깨에 상처를 입고서 궁지에 몰린 여성 무장 하나가 자신을 몰아세운 리한를 표독하게 노려보았다.
그녀의 이름은 에이다.
레스터 장군의 가장 뛰어난 일곱 제자 칠소룡 중에 하나로 래리가 에스메랄다를 대신해서 스톰 가드의 첫 번째 성벽을 지키는 책임자로 임명할 정도로 유능한 여장군이다.
물론, 오늘은 형편없다는 표현으로도 부족할 정도로 처참하게 패배했지만.
이런 실수 한 번에 죽어버리기에는 아까운 인재였다.
게다가 미인이었다.
“큭, 죽여라!”
“물론, 죽여주도록 하지. 침대 위에서 말이야.”
“무, 무슨 헛소리를 지껄이는 것이냐! 너도 무장 나부랭이라면 패자를 모욕하지 말고 지금 이 자리에서 깨끗하게 죽여…꺄아악?!”
주물주물주물주물
리한은 양손으로 그녀의 가슴을 마구잡이로 주물러댔다.
“이 감촉은 틀림없이 꽉 찬 D컵! 게다가 그 나이를 먹을 때까지 처녀라니 천년 가문의 후계자로서 용납할 수 없다! 원래 먹고(?)죽은 귀신이 때깔도 고운 법이야. 그러니까 갈 때 가더라도 처녀는 헌납하도록 해라!!”
“진짜 미친 거…하윽?!”
파지지지직!
당황해서 소리를 지르던 그녀는 그대로 마스터 코어에 제압당해서 의식을 잃고 쓰러져 버렸다.
그것을 능숙하게 부축해서 받아 챙기는(?)한 명의 여성 암살자.
“지하 감옥에 가둬라. 장소는 알고 있겠지?”
“물론입니다, 주인님.”
그녀는 라운드 시스터즈의 일원으로 파타티카 음문이 완성된 완벽한 육노예였다.
그리고 에이다 또한 새로운‘자매’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질 터.
스톰 가드의 첫 번째 성벽은 그렇게 간단하게 제압이 되었다.
하지만 이제 시작에 불과할 뿐이다.
[노이즈 켄슬레이션!]
쿠구구구궁
아다만타이트 소재로 만들어진 정면 성문을 소음 제거 마법으로 최대한 조용히 개방했다.
신호를 받은 본대도 최대한 발소리를 죽여서 도착.
두 번째 성벽까지는 불과 300m도 떨어져 있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적들은 아직 이변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보초를 제대로 서고 있다면 이변을 알아차렸을 테지만 아르고스 라인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가 그들 모두를 눈뜬장님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게다가 스톰 가드의 총안??은 모두 외적의 침입에 맞서 싸우기 위해서 정면을 향해서 뚫려 있었다.
뒤쪽으로는 작은 창문 하나도 없는 것이다.
때문에 암살자들이 성내 복도를 달리며 아군을 학살하는 모습을 볼 수 없었던 것도 적들의 침입을 인지하지 못하게 만든 원인 중에 하나가 되었다.
“다시 네 차례가 왔구나, 헤스티아. 무형시를 발사해라.”
“적과의 거리가 너무 가깝습니다, 이대로 발사했다가는 적들이 알아차릴 거예요!”
“다 방법이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라.”
“어떤…으으읍? 으으으으으읍!!”
다음 순간에 그녀를 끌어안고 입을 틀어막은 리한은 지면을 박차고 로켓처럼 하늘로 솟구쳐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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