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51화 〉 완벽한승리(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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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저녁.
리한은 에레팔스령으로 달려간 아토스에게 기다리고 기다리던 임무 성공 보고를 받을 수 있었다.
[인질을 무사히 구출했습니다, 주군.]
통신 화면 너머에는 3층 건물 크기의 아름다운 거인 여성이 새근새근 잠들어있었다.
승리를 위한 마지막 퍼즐 조각이 맞추어지는 순간이었다.
“이겼군.”
리한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웃음을 터트렸다.
그녀의 이름은 아만다.
투크 가문의 총사령관 에스메랄다의 모친이다.
“카트리나에게 연락을 보내라. 아르고스 라인을 무력화하라고 말이야! 작전 결행은 오늘 밤 00시 00분. 내일 아침 동이 트기 전까지 스톰 가드를 함락하고 래리를 사로잡아서 전쟁을 끝낸다!”
“충!!”
힘차게 대답한 부하들이 명령을 실행하기 위해서 사방으로 분주하게 흩어졌다.
레스터가 마지막까지 염려한 것처럼 아르고스 라인은 이미 리한의 수중에 떨어져 있었다.
관제센터는 현재 사라가 주최한 위로연으로 직원 대부분이 고주망태가 되어버린 상태다.
하지만 아르고스 라인이 무력화된 진짜 이유는 사람 문제가 아니다.
키워드는 인섹트 퀸.
이 성과는 카트리나와 임페리얼 가드의 보이지 않는 활약이 결정적으로 작용한 것이다.
돌로레스를 이용한 협상으로 크레이그 가문은 명목상으로나마 관제 센터에 마음대로 출입할 수 있게 되었다.
레스터는 이 사태에 학을 떼면서 아르고스 라인의 주요 시스템에 손도 대지 못하게 했지만, 설마 육안으로 확인하기 어려울 정도로 작은 벌레들이 기계 내부로 몰래 침입해 들어갔을 거라고는 꿈도 꾸지 못했다.
카트리나는 동맹이라는 입장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서 관제센터의 오퍼레이터에게 아르고스 라인을 조종하는 방법을 대략적으로나마 배울 수 있었다.
그리고 임페리얼 가드의 활약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카트리나에게 주어진 임무는 셋.
하나는 리한과 자유롭게 연락을 주고받을 수 있도록 통신 감청기능을 무력화할 것.
또 하나는 적들이 아군의 진짜 목적을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위치 탐지를 교란할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르고스 라인의 인물 검색 시스템으로 이번 전쟁에 도움 될 수 있는 사람들의 위치와 소재를 찾아내는 것이었다.
하나같이 쉬운 과제는 아니었지만 그녀는 특급 암살자답게 자신의 임무를 완벽하게 수행했다.
대표적인 성과가 달손의 후계자인 이블린을 찾아내고 아만다가 유폐되어있는 장소를 발견한 것이었다.
덕분에 아토스는 지브릴을 추격하는 것처럼 에레팔스령으로 달려가서 신속하게 그녀를 구출할 수가 있었다.
물론, 위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특히 산전수전으로 갈고 닦은 레스터의 감은 소름이 끼칠 정도라서 기계 속에 숨어 있는 임페리얼 가드의 존재를 몇 번이나 들켜버릴 뻔했다.
게다가 그의 손녀딸인 모니카가 총점검을 시행했을 때도 위기였다.
다행스럽게도 아르고스 라인의 몇몇 장치는 현대 기술로는 개봉하는 것조차 불가능한 블랙박스 형태로 되어있었기 때문에, 다급하게 그 속으로 도망쳐서 누구에게도 발각당하지 않고 무사히 넘어갈 수 있었다.
그리고 위기는 곧 기회.
심증은 있지만 물증은 없다는 사실이 레스터를 점점 더 깊은 수렁 속으로 빠져들게 했다.
크레이그 가문의 군대가 허구한 날 사고를 치고 다니기는 했지만 표면적으로 동맹으로서의 도리를 지키고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돈을 물 쓰듯이 쓰면서 귀족, 시민, 군인을 가리지 않고 환심을 사고 다녔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사고뭉치’라고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면서도 호감을 보이는 자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그것이 군대의 기강을 터무니없이 흐트러트리고 있는데도 말이다.
자신에게 무조건 잘해주는 사람과 무조건 엄격하게 구는 사람.
사람들이 어느 쪽을 좋아할지는 자명한 일이었다.
군대 기강이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해이해졌다는 사실을 깨달은 레스터는 이번 전쟁의 패배를 직감했다.
만약에 모든 전권을 가지고 있다면 억지를 써서라도 쫓아냈을 테지만 그에게는 그럴 권한이 존재하지 않았다.
유일한 실수는 충성을 맹세할 대상을 잘못 선택했다는 사실 뿐이었다.
그리고 그날 밤.
00시 00분.
수많은 선택과 판단이 하나로 집대성되어 결과로 나타날 순간이 찾아왔다.
달은 여전히 작았다.
그래도 실패한 전날보다 야습을 시도하기에 좋은 날씨는 아니었다.
하지만 비전 마법으로 살펴본 적들의 동태는 해이하기 이를 데가 없었다.
일단 성벽 위에 보초들이 경계를 하고 있기는 했지만 거의 허수아비나 다름이 없는 수준.
모두 아르고스 라인 때문이었다.
공격을 시작하기도 전에 수상한 낌새를 알아차리고 경고해주는 시스템의 도움을 받아왔기 때문에, 그것이 지금 바로 이 순간에 완벽하게 꺼져있을 거라는 사실을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는 것이다.
게다가 바로 전날의 야습에서 일방적으로 승리를 거머쥐었기 때문에 20만 코앞에 마주하고 있으면서도 태연하기 이를 데가 없었다.
그야말로 절호의 기회.
리한은 여기에서 또 한 장의 비장의 카드를 꺼냈다.
“준비는 끝났느냐? 헤스티아.”
“네, 그렇습니다만…”
후우우웁
가볍게 숨을 몰아쉬면서 말했다.
“말꼬리를 늘이는 이유가 뭐지?”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제 무형시는 마나 소모가 심합니다. 게다가 저 수수께끼의 금속에는 접근하면 내력 소모가 더욱더 많아질 텐데. 이런 무모한 작전이 과연 성공할 수 있을지…”
“쓸데없는 걱정하지 마라. 이미 네 화살에 조치를 해두었다고 하지 않았느냐?”
“하지만…읍?!”
“한 번만 더 토를 달았다가는 20만 대군이 지켜보는 앞에서 기절할 때까지 범해버리겠어.”
“하, 하겠습니다!”
한다면 하는 리한의 성격(?)을 알고 있는 그녀가 소스라치게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
현재 두 사람이 서 있는 장소는 엑스 요새의 동쪽 성벽 위였다.
수만 명의 군대가 성문 앞에 집결해서 언제든지 박차고 뛰어나갈 준비를 마쳤다.
병사들은 적들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서 숨도 크게 내쉬지 않으며 기척을 죽였고 환영 마법을 사용해서 평소하고 다를 바가 없는 것처럼 위장하고 있었다.
거기에 갑옷과 병장기까지 모두 검은색으로 물들여놓은 상태.
그들 모두의 운명이 헤스티아의 손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아무리 그녀가 노련한 무장이라고 해도 부담되지 않을 수가 없는 상황.
“걱정하지 마라. 실패하면 다 같이 죽는 거야. 제니아의 운명과 수만 명의 목숨이 모두 네 활 솜씨 하나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안심하도록 해라!”
“조금도 안심할 수 있는 위로가 아닌데요???”
“됐으니까 빨리 쏘란 말이야! 이 둔해 빠진 암퇘지가!!”
짜악!
“하읏! 으으으으으으”
엉덩이를 얻어맞은 그녀는 눈물을 글썽거리면서 내력을 끌어모으기 시작했다.
잠시 한심한 모습을 보여주기는 했지만 호흡을 집어삼키기 무섭게 주변의 소리를 모조리 빨아들이는 것처럼 놀라운 집중력을 보여주었다.
후우우우우웅
새파랗게 빛나는 눈동자.
퍼큘리어로 발동되는 매의 눈이다.
헤스티아는 위도우 메이커를 단숨에 들어 올리며 마나타이트 화살 세 개를 시위에 걸었다.
더 많은 숫자를 날릴 수 있지만 선택과 집중의 결과물이라는 녀석이다.
적의 첫 번째 성벽까지는 1km가 떨어져 있었다.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그 거리에서 적을 공격한다는 사실이 있을 수가 없지만 마탄의 사수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그녀에게는 짧은 단거리일 뿐이다.
[무투기. 트리플 스타!]
퉁!
가벼운 소리와 대조적으로 사방으로 뻗어 나가는 무시무시한 살기.
하지만 너무 먼 거리에서 발사하는 바람에 적들은 누구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수수께끼의 금속이 가지는 장점이자 단점은 주변에서 마나를 빨아들이기 때문에 적의 공격을 예민하게 알아차리는 무장과 마법사들의 기척 감지도 둔해진다는 것이다.
성벽 위에서 보초를 서는 무장은 오직 하나, 그것도 B급.
나머지는 모두 일반 병사들이다.
S급 무장도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완벽한 무형시를 구사하는 헤스티아에게는 하나같이 손쉬운 먹잇감들에 지나지 않았다.
[?]
투투투투투투툭!
비명을 지르지 못하게 목의 급소를 단숨에 관통당한 성벽 위에 보초들은 자신들이 무엇에 당했는지도 모르고 도미노처럼 우르르 쓰러졌다.
수십 명의 보초가 전멸.
두 번째 성벽에서 경계를 서고 있는 병사들도 이변을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리고 그 결과에 가장 놀란 사람은 헤스티아였다.
“저, 정말로 성공했어. 게다가 내력 소모도…하읏?!”
리한은 명문혈에 손을 대고 그녀에게 격체전력을 시전했다.
“그러니까 말하지 않았느냐? 의심하지 말라고 말이야.”
“네!”
“먼저 가서 첫 번째 성벽을 제압하도록 하겠다. 신호를 보내면 건너와서 두 번째 무형시를 발사하도록 해라.”
그렇게 말한 그는 신월보를 사용해서 스톰 가드의 첫 번째 성벽을 향해서 질주하기 시작했다.
질과 소월, 그리고 수십 명의 암살자가 발소리를 죽이고 뒤를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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