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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50화 〉 완벽한승리(4) (350/429)

〈 350화 〉 완벽한승리(4)

* * *

잠시 후.

그리젤다가 통신 마도구를 가지고 왔다.

“마담 로가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서방님.”

“바로 연결해라.”

지이이이잉­

금색 단발머리에 에메랄드빛 눈동자, 얼굴을 대각선으로 가로지르는 흉터의 로가가 화면 너머에서 무릎을 꿇었다.

[후계자 전하를 뵙습니다.]

“많이 늦었군.”

자연스러운 하대.

[…변명하지는 않겠습니다.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아직도 충성맹세를 망설이고 있으니까요.]

“그렇게 말하는 것 치고는 결연한 표정이군.”

[칼을 뽑았으면 낭심이라도 베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히이이익!]

이 말에 어째서인지 그녀의 곁에 있는 시바레가 아랫도리를 움켜잡으면서 몸서리를 쳤다.

출장 기간 동안에 마음고생이 심했는지 눈은 퀭하고 체중도 줄어든 모습.

물론, 리한은 가볍게 무시했다.

[전하께 충성을 맹세하겠습니다. 커딩가 가문만이 아니라 지금 이 자리에 참석하지 못한 루디아브를 대신해서 에윌루드 가문의 충성도 보증하도록 하겠습니다.]

“녀석은 도대체 무슨 일을 하고 있기에 얼굴도 비추지 못하는 거냐?”

[전부 라프텔 호수 때문입니다. 말씀드리면 길어질 테니 정리한 문서를 보내드리겠습니다.]

지이이이잉­

곧바로 전송된 보고서를 가볍게 훑어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생각했던 것보다 사태가 심각하군. 도대체 그곳에서 무슨 짓을 저지른 거냐? 래리…’

요약하면 라프텔 호수를 중심으로 퍼져나가는 부정 오염이 날이 갈수록 심해지는 바람에 처리하는 데 애를 먹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특히 부족한 인력이 마법사와 사제들.

퍼져나가는 오염이 처음에는 살아있는 생명체를 흑화시켰지만 이제는 처음 보는 기괴한 형태의 몬스터까지 출몰하고 있다고 한다.

호수에 다가가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정화는 실패.

오염 범위가 넓어지지 않도록 밤낮으로 화염 마법을 퍼부어대며 간신히 버티고 있는 상황이라고 적혀 있었다.

“어처구니가 없군. 오히려 이쪽에서 도와줘야 할 판이 아니냐?”

[면목 없습니다.]

“사과는 됐어. 어차피 아슈킬 가문에서 처리했어야 하는 문제였는데 방치해버린 것이 잘못이지.”

라프텔 호수 사태가 이렇게까지 심각해진 것은 돌로레스가 두 가문에게 하청을 맡겨버렸기 때문이다.

그 사이에 골든 타임을 놓쳐버린 것이 결정타.

정말 여러 가지로 민폐가 아닐 수 없었다.

덕분에 이번 내전에는 커딩가 가문과 에윌루드 가문이 참전하지 못하게 되었다.

루디아브는 둘째 치더라도 로가는 원래 이번 전쟁에 쐐기를 박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할 예정이었지만, 결국에는 합류하지 못하게 되어버렸으니 어쩔 수 없이 플랜 B로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위안으로 삼을 수 있는 내용이 있다면 두 가문이 전쟁이 끝나기 전에 충성을 맹세했다는 것이다.

정말로 일보 직전이었다는 사실이 마음에 들지 않지만 그래도 종전 후에 뒷북을 치는 것보다는 나았다.

게다가 합류한 귀족 중에는 두 가문의 눈치를 보는 자들도 많았다.

이제는 거리낌 없이 충성을 바칠 수 있게 되었다는 소리다.

“좋아. 사정이 사정이니만큼 이번 한 번만 눈감아주도록 하겠다. 지원군도 보내주지. 하지만 남들보다 늦게 충성을 맹세했으니 그만큼 뒤처져 있다고 생각하고 분골쇄신해라. 알겠느냐?”

[물론입니다! 그런데…]

“뭐지?”

[이번 일과는 별도로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발언을 허락하지.”

[…전하께서 제 딸을 임신시키셨더군요.]

“에에에엑?!”

갑작스러운 폭탄 발언에 놀란 지젤이 소리를 질렀다.

“엘리자베스도 임신한 것이냐?!”

[아니요, 다나입니다. 그런데 도라니…]

눈빛이 차가워졌지만 무시하고 의문을 표시했다.

“정말로 장한 일을 해냈군! 그런데 내가 알고 있기로는 다나는 시녀의 신분으로 알고 있는데 말이야.”

[네, 원래는 그랬습니다만 후계자 전하의 아이를 배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제 양녀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런데 굉장히 공교롭게도 제 친딸도 한날한시에 안아주셨다고요? 후후후후후후후후후후후후후후후.]

엄청나게 긴 웃음소리가 터져나왔지만 표정은 하나도 웃고 있지 않았다.

[히이이익!]

고오오오오오오오!

화면 너머로까지 고스란히 전달되는 로가의 살기.

하지만 리한은 그러거나 말거나 즐거웠던 오네쇼타 플레이를 회상하면서 웃음을 터트릴 뿐이었다.

“후후후후. 그때는 정말로 즐거운 시간을 보냈지. 엘리자베스가 임신하지 못했다는 소식은 굉장히 아쉽지만 기회는 얼마든지 있으니까 말이야.”

우뚝.

[…기회가 얼마든지 있다고요?]

“물론이다. 다음에 만나면 반드시 임신시켜주겠어.”

“주, 주군! 아무리 그래도 모친 앞에서 할 말이…”

기겁한 지젤이 소리를 질렀지만 로가는 어처구니없다는 것처럼 코웃음을 크게 치고는 곧이어 박장대소를 터트렸다.

[푸흐흡, 푸하하하하! 다른 것은 모르겠지만 정말로 뻔뻔한 만큼은 타고나신 분이로군요. 좋습니다! 천년 가문의 후계자라면 그 정도 배짱은 있어야죠. 하지만 딸의 처녀를 빼앗은 책임은 똑바로 져주십시오!]

“물론이다. 두 사람 모두 첩과 측실로 받아들일 생각이니까 걱정하지 마라.”

[영웅은 호색이라더니…뭐, 좋을 대로 하십시오. 솔직히 저도 천년 가문의 피를 물려받은 손자를 차기 후계자로 삼을 수 있다면 불만은 없으니까요.]

굉장히 직설적으로 태어날 아이를 내놓으라고 요구해 왔다.

그도 그럴 것이 아슈킬 가문과 커딩가 가문의 피를 동시에 물려받는다면 제니아에서는 최고의 금수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리한이 가주로 등극하면 틀림없이 그의 뒤를 계승할 차기 후계자로서도 서열 1, 2위를 다툴 터.

로가는 명백하게 차기 권력 욕심을 드러내고 있었다.

물론, 단칼에 거절해버렸다.

“어째서 내가 엘리자베스에게 태어날 아이를 너희 가문에게 순순히 넘겨줄 거라고 생각하는 거지?”

우뚝.

[그게 무슨 뜻이십니까?]

“출가외인이라는 말을 모르는 거냐? 태어날 아이는 어디까지나 나의 아이다. 마음대로 이용하는 것은 절대로 용납하지 못해.”

고오오오오오오!

다시 한번 뿜어져 나오는 로가의 살기.

[자신이 지금 무슨 말을 하는지 알고 있는 겁니까? 엘리자베스는 우리 가문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제 혈육이란 말입니다! 멋대로 데려가 버리는 것도 모자라서 대를 끊어버리려고 하다니…]

“후계자를 원하면 네가 직접 낳으면 되는 것이 아니냐? 아직 충분하게 임신할 수 있는 연령으로 알고 있는데 말이야.”

“주, 주군!”

[전하???]

쿵!

[어디서 그따위 개소리를…]

“내 아이를 낳아라, 로가.”

그 순간, 온 세상이 더 월드에 걸렸다.

[…뭐라고요???]

“내 아이를 낳으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아무래도 통신상태가 이상한 것 같은데…

“이리나의 복수전이다. 너에게 1대 1 대결을 신청하도록 하겠다. 내가 지면 엘리자베스가 낳는 아이를 커딩가 가문에 넘겨주도록 하지. 하지만 만약에 승리한다면 로가. 너를 측실로 받아들이도록 하겠다. 물론, 엘리자베스도 함께 말이야.”

[이상하군. 무슨 말인지 하나도 이해하지 못하겠어. 시바레! 너는 지금 전하께서 무슨 말씀을 하는지 알아듣겠느냐?!]

[저, 저도 모르겠습니다.]

“외면하지 말고 똑바로 대답해라. 로가! 나는 진심이다!”

[!!!!]

로가는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쳐버리고 말았다.

지금까지 어떤 강적을 상대로도 물러서지 않았던 그녀의 첫 경험.

상식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미지(?)의 공포에 평소 성격으로는 절대로 나오지 않을 소심한 발언이 늘어놓기 시작했다.

[보, 보아하니 저를 일부러 주눅 들게 만들어서 포기하게 하시려는 모양인데…어, 어림도 없습니다. 그, 그러고 보니까 전쟁터에서 대, 대단한 신위를 발휘하셨다는 말씀을 듣기는 했지만…]

“그러면 받아들인다는 소리겠지?”

[자, 잠시 생각을 정리할 시간을…]

리한은 화면 앞으로 다가섰고 로가는 물러섰다.

“나로는 불만이냐?”

[불만이라는 것은 아닙니다만…사, 상식적으로 말이 되는 소리를 하셔야…]

“충분히 말이 되는데? 너는 얼마든지 재혼할 수 있는 미망인이 아니냐? 게다가 충분히 임신할 수 있는 적령기의 여자기도 하지. 게다가 가문의 결속을 생각하면 너와 내가 결혼하는 것도, 그렇게 태어난 자식이 후계자가 되는 것이 계산적으로는 훨씬 더 구미가 당기는 이야기일 텐데?”

이 말을 들은 그녀의 눈동자가 순간적으로 차가워졌다.

[그러니까 어디까지나 정략적인 결혼을 원하신다는…?]

“물론, 아니지! 승부에서 승리하는 순간부터 딸과 함께 밤낮으로 사랑해주마. 자궁이 마를 틈이 없을 정도로 범하고, 범하고, 또 범해주겠어! 한 달 이내로 반드시 임신시켜주마!!”

[흥기야앗?!]

터져나오는 귀여운 비명.

“흥기야앗?”

[자, 잠시 생각해보고 다시 연락하겠습니다. 답변은 그때까지 보류할게요!!!!!]

새빨개진 로가는 허둥지둥 통신을 종료하고 그대로 도망쳐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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