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9화 〉 완벽한 승리(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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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한은 엑스 요새를 점령한 기세를 몰아서 스톰 가드를 공격하자고 주장하는 귀족들의 요구를 모조리 묵살해버렸다.
연이은 승전으로 기세가 오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들 대다수는 초조해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세운 전공은 후계자와 측근들이 독점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게다가 적의 세력은 날이 갈수록 약화되었기 때문에 이대로 가다가는 아무런 공적도 세우지 못하고 끝나버릴 것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 초조함이 끝내 화를 불렀다.
엑스 요새를 점령한 당일 밤.
마우스, 슈바인 남작이 몰래 가신과 병사들을 불러모아서 야습을 시도햇다.
발상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그날 밤은 신월의 희미한 달빛마저도 구름에 가려져서 세상 전체가 어둠에 잠겨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르고스 라인은 그들의 병력이 요새 동문으로 집결하는 시점부터 이미 모든 움직임을 포착하고 있었다.
5천의 군대가 자세를 최대한 낮추고 판달 대교를 따라서 은밀하게 전진해 나아갔지만, 사정거리에 들어가기가 무섭게 성벽의 무수한 서치라이트 조명이 켜지며 전술 마법이 병사들을 덮쳤다.
[레인 오브 블레이드!]
투투투투투투툭!!
“크아아아악!!”
하늘에서 장대비처럼 쏟아져 내리는 진공의 칼날.
성벽을 몰래 타고 오르기 위해서 가뜩이나 가벼운 장비를 착용하고 있었던 병사들이다.
순식간에 사지가 갈기갈기 전달되어서 피를 뿌리고 비명을 내지르며 데굴데굴 굴렀다.
기습을 시도했다가 오히려 기습에 당해버린 어처구니없는 상황.
그나마 다행인 사실이 있다면 정체불명의 금속으로 만들어진 판달 대교가 적이 사용한 전술 마법의 위력도 반감시켜줬다는 것이다.
덕분에 수백 명이 사망했을 피해를 수십 명으로 줄일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상황이 나아진 것은 조금도 아니었지만.
“반격해라, 공격! 공격!!”
두 사람은 작전은 실패로 돌아갔는데도 불구하고 무모하게 맞서 싸웠다.
[익스플로전!]
슈우우우웅
배틀 메이지 하나가 다급하게 5서클 공격 마법을 사용했지만 화염은 성벽에 고스란히 흡수되어서 아무런 피해를 입히지 못했다.
“쓸데없는 범위 공격으로 마나를 낭비하지 마!”
“그렇군. 우리는 다리 위에 완전히 노출되어 있는 반면에 적들은 이 정체불명의 금속 전체를 엄폐물로 사용할 수 있는 거야! 세상에 이런 불공평한…”
“냉정하게 분석할 때냐?! 성벽에 흡수되지 않도록 정확하게 조준해서 공격해!!”
“큭, 라이트닝 스피어!”
파지지지직!
어쩔 수 없이 4서클 마법을 사용해서 적의 머리를 노렸지만 목표에 도달하기도 전에 위력이 10분의 1로 줄어버리는 데다가, 그마저도 잽싸게 웅크려서 피해버리는 바람에 다시 한번 쓸데없이 마나를 소비해버리고 말았다.
화력의 차이는 그야말로 절망적이었다.
스톰 가드의 성벽에는 얼굴 하나가 간신히 통과할 수 있는 작은 총안??이 무수하게 배치되어 있었다.
그 속에 안전하게 숨어서 마법과 화살을 발사하는 적들.
숨을 곳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다리 위에서 쏟아지는 집중포화에 두들겨 맞는 셈이다.
이런 불공평한 전투에 승산이 있을 리가 없었다.
두 남작의 병력은 불과 수 분 만에 반 토막이 나버리고 말았다.
성문 근처에는 접근해보지도 못하고 일어난 대참사.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우리 뒤를 따라라! 경공술을 사용해서 단숨에 성벽 위를 제압하도록 하겠다!!”
우오오오오오오!!
쿵!
수십 명의 무장과 마법사들이 지면을 박차고 뛰어올랐다.
하지만 성벽 위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은 그럴 줄 알았다는 것처럼 무투기를 사용할 준비를 마쳐놓고 있었던 투크 가문의 무장들이었다.
“하! 일부러 조준하기 쉽도록 하늘로 뛰어오르다니 그야말로 바보 멍청이들이잖아!!”
화르르르륵!
“구, 구양신공! 투크 가문의 거인 여장군…”
퍼퍼퍼퍼퍼펑!
그것이 슈바인과 마우스가 남긴 마지막 말이었다.
마지 화려한 폭죽처럼 홍련의 불길에 휩싸여서 전멸.
임무를 마친 에스메랄다는 개미 떼처럼 앞다퉈서 도망치는 패잔병들에게 용무가 없다는 것처럼 자신의 병기를 회수하고 계단을 따라서 내려갔다.
“어디로 가시는 겁니까?”
“오늘부터 10번 성벽을 지키라고 하더라. 에레팔스가 언제 함락될지 모르니까 후방으로 빠져있으라고 하더군. 우리로서는 거절할 이유가 없지.”
“그렇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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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군의 무패 행진이 이렇게 어처구니없이 깨져버리는군. 근무지 이탈, 명령 위반, 불복종, 하극상! 게다가 우리 편의 사기를 떨어트리고 적의 사기를 올렸어. 이 분노를 어떻게 억눌러야 하지? 시체에 모가지라도 남아있으면 깃발에 꽂아서 효수해버리고 싶은데 말이야!!”
쿵!
[주,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전하!]
[어떤 벌이라도 달게 받겠습니다!!]
통신 화면 너머에서 납작 엎드린 사람들은 슈바인과 마우스의 후계자들이다.
이번 전쟁에 참여하지 않고 영지에 남아있었던 그들로서는 아닌 밤중에 홍두깨나 다름이 없는 상황.
하지만 가주가 저지른 죄는 가문의 죄나 마찬가지였다.
“아무렴. 당연히 벌을 받아야지! 이번 전쟁이 끝나면 아주 똑똑히 대가를 치르게 해주마. 이 처사가 부당하다고 생각하면 아버지들의 자리를 물려받을 생각은 꿈도 꾸지 마라! 영주와 영지 전체를 몰수해버릴 테니까. 알겠느냐?!!”
[무, 물론입니다. 전하!]
[관대한 처분에 감사드립니다! 이 오명은 가문의 이름을 걸고 반드시 씻어내도록 하겠습니다!]
통신은 그렇게 종료되었다.
그리고 노발대발하던 리한은 언제 그랬냐는 것처럼 안색을 바꿔서 피식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이것으로 귀족들이 멋대로 행동하는 것을 막을 수 있겠군. 모두 스톰 가드의 무서움을 똑똑히 알았을 테니까 말이야.”
“…전하는 정말로 무서운 분이로군요.”
지젤이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그렇게 말했다.
두 남작이 멋대로 그런 일을 공모할 수 있었던 이유는 리한이 모든 과정을 묵인해줬기 때문이다.
그런 조치가 지나치게 노골적이라서 허락을 받았다고 착각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다.
“대륙에 병신을 고칠 수 있는 치료약은 없으니까 말이야. 바보는 아무리 말로 해도 고쳐지지 않아. 그나마 호되게 당해봐야 정신을 차리지. 그것 때문에 아까운 병사를 3천 명이나 잃어버린 것은 입맛이 쓰지만 말이야.”
“확실히…”
리한은 지금까지 강박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아군의 피해를 최소화해왔다.
오죽하면 이번 전투가 규모가 제일 작은 편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자 숫자는 최고치를 경신해버렸을 정도다.
그렇게 말도 안 되는 연승을 이어오다 보니 밑에 있는 사람들까지 감각이 이상해져 버린 것이다.
희생 없는 승리가 가능하다는 착각.
그런 꿈에서는 일찌감치 깨어나 주는 것이 좋았다.
물론, 그런 것이 가능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말이다.
“하지만 스톰 가드는 정말로 난공불락이로군요. 이참에 그리폰 부대를 동원해보시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무장 숫자는 우리가 월등하니…”
“하나 두 개는 그렇게 점령할 수 있겠지. 엄청난 희생을 감수하면서 말이야. 참고로 저 성벽의 옥상 출입구는 문까지 저 정체불명의 금속으로 만들어져 있어. 안쪽에서 걸어잠궈버리면 무슨 수를 쓰더라도 안쪽으로 진입할 수가 없지. 오직 아다만타이트로 만든 정문을 파괴해야만 출입할 수 있지. 게다가 그 진입로마저 안쪽으로 진입하는 순간에 포위 협공을 당하도록 설계되어 있어.”
“무슨 악랄한…”
“괜히 천 년 동안 한 번도 함락되지 않은 요새가 아니라는 거야. 바렌탈은 운도 좋았고 싸우지 않고 항복해버린 경우도 많았지만 얘는 누구에게도 뚫려본 역사가 없어. 이런 성벽이 13개나 줄지어 있으니까 말이야.”
“하지만 후계자님은 공략하실 생각이죠?”
“물론이지. 래리를 사로잡아야 이 지긋지긋한 내전을 끝낼 수 있으니까 말이야.”
지금 상황에서 마르텔 대모를 만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문제는 평온의 검사 애쉬가 그녀의 수명을 바꾸는 행위를 절대로 용납하지 않을 거라는 사실이다.
정당한 절차를 밟아서 천년 가문의 가주를 계승하고 싶은 리한으로서는 그야말로 눈엣가시나 다름이 없는 존재.
때문에 지금은 차선책으로 래리와 돌로레스를 동시에 사로잡아서 내전 자체를 일찌감치 끝내버릴 생각을 하고 있었다.
최종보스를 상대하는 것은 그다음에 처리할 일이다.
게다가 리한은 평온의 검사 애쉬의 진짜 정체에 대한 흥미로운 정보를 입수해놓고 있었다.
“알고 있느냐? 제니아의 터줏대감이나 다름이 없는 우리 아슈킬 가문이 원래는 동양 출신의 이민자들이라는 사실을 말이야. 그것도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 수 있을 정도로 유명한 세력이었다고 하더군. 참으로 우스운 일이지? 따지고 보면 우리 모두 이 세상에 굴러온 돌이나 다름이 없는데 뻔뻔하게 네 땅, 내 땅 구분하면서 주인 행세를 해대고 있으니까 말이야.”
“그럴지도 모르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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