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47화 〉 완벽한 승리(1) (347/429)

〈 347화 〉 완벽한 승리(1)

* * *

****

현재 오르드리를 지키는 수비군은 5만 명이다.

나머지 4만은 직할령을 통제하고 있고 스톰 가드에 3만을 합쳐서 총 12만의 군대가 래리에게 남아있는 모든 전력이었다.

처음에는 훨씬 많았지만 줄어들고 줄어들어서 도달한 현재의 상태.

수도에 눌러앉은 크레이그 가문의 12만 대군을 합치면 총 24만 명으로 리한의 군세와 비교해도 크게 밀리는 숫자는 아니었지만, 레스터는 그녀가 높은 확률로 적과 내통하고 있을 거라고 확신하고 있다.

만약에 그들과 충돌한다면 5만 vs 12만의 불리한 싸움.

직할령을 지키는 병사들을 다급하게 불러들인다고 해도 여전히 9만 vs 12만으로 밀린다.

물론, 전투라는 것이 단순하게 숫자만으로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레스터는 수도에서 크레이그 가문의 군대와 충돌한다면 반드시 승리할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최대한 품위 없고 간략하게 설명하면 똥개도 자신의 집에서는 30%를 먹고 들어간다는 것이다.

문제는 싸워서 승리한다고 해도 미래는 없다는 것이다.

이미 대세는 완전히 기울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상황.

스톰 가드의 방어력 하나를 믿고 끈질기게 버티다 보면 유리하게 협상을 끌어낼 수 있다고 하지만, 해일처럼 밀려오는 홍수에 필사적으로 발버둥 쳐서 얼마나 되는 세간살이를 건져낼 수 있는지는 계산하면 계산할수록 암울하기 이를 데가 없었다.

이 전쟁은 절대로 이길 수 없다.

오랜 세월을 살아온 군인의 감이 레스터에게 그렇게 속삭이고 있었다.

“제니아에 새로운 태양이 떠오르는군.”

이 말을 들은 젊은 여성이 안경을 벗어서 먼지를 닦아냈다.

“바야흐로 저의 시대가 도래했다는 뜻이로군요.”

“…미안하지만 할애비는 요즘 젊은이들이 하는 농담을 이해하지 못하겠구나.”

“너무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손녀딸의 귀여운 재롱인데!”

짱구 머리에 포니테일로 묶어 올린 갈색 머리, 군청색 장교 복의 그녀가 뺨을 복어처럼 부풀리면서 팔짱을 꼈다.

그녀의 이름은 모니카.

제니아 칠소룡七小?의 한 명이자 레스터 장군의 손녀로 비서 겸 참모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무리하지 말거라. 솔직하게 말하면 끔찍하게 어울리지 않거든. 사람이 생긴 대로 살아야지. 너한테 ‘귀엽다’는 표현이 어울린다고 생각하느냐?”

“그, 그건 그것대로 충격인데요…”

“진지하게 자기 자신을 귀엽다고 생각했다고?”

“…”

주르륵 흘러내리는 안경을 고쳐 쓴 그녀가 불만스럽게 입술을 삐죽거렸고 레스터는 입을 가리며 몰래 웃음을 터트렸다.

현재 두 사람은 엑스 요새의 패전 소식을 전해 들은 상태다.

애초에 규모가 작은 지성??이었기 때문에 당연하다면 당연한 결과였지만, 이번에 도착한 보고서가 평소보다 특별한 이유는 전투 과정 전체를 영상기록장치로 녹화해서 보내줬기 때문이다.

지피지기면 백전불태라는 말처럼 승리의 지름길은 적을 얼마나 철저하게 분석하고 연구하느냐에 따라서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제로 역사에 이름을 남긴 전쟁 천재들이 패배하거나 궁지에 몰리는 이유는 수법을 들켜버렸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영상 기록은 후계자가 어떤 전략과 전술을 구사하는지 파악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였다.

두 사람은 그것을 다른 지휘관들과 공유하기 전에 한발 앞서서 감상했다.

그리고 소감은 다음과 같았다.

“훌륭하구나. 저만한 대군을 저렇게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지휘하다니 말이야. 사방에서 불러모은 오합지졸이라고는 생각할 정도로 완벽하게 통솔하고 있어.”

“새, 생각보다 조금은 하네요.”

“조금???”

“꽤…아니, 맞아요. 솔직히 대단합니다! 흠잡을 구석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요!”

“보아하니 할애비가 알아차리지 못한 사실을 똑똑한 손녀가 눈치챈 모양이군.”

“놀리지 마세요! 그러니까 예를 들면…전투가 끝나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본대 병력을 다른 곳으로 보내버렸잖아요! 완벽한 승리를 굳혀가는 시점에서 아군을 동요하게 하다니 미숙하다는 증거라고요!!”

“하지만 그것 때문에 부차적인 피해는 발생하지 않았지. 총사령관이 혼자 살겠다고 도망쳐버리는 바람에 요수 군단도 저항하는 것을 포기해버렸으니까 말이야.”

“그래서…실수가 아니라 의도한 결과물이라고요???”

모니카가 말이 되냐는 표정으로 레스터를 노려봤다.

“물론, 진실은 모르지. 하지만 거기까지 계산했다면 소름 끼치는 판단력이 아니냐?”

“말도 안 되는 소리예요.”

“하지만 전쟁이라는 것이 원래…”

“항상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야 한다고 하셨죠. 물론, 지당하신 말씀이지만 그래도 이건 말이 안 돼요. 세상에 누가 전투가 끝나는 타이밍을 정확하게 계산할 수가 있어요? 전쟁의 광기는 그렇게 만만하지 않아요. 만약에 요수 군단이 이때를 노려서 최후의 반격을 시도했다면 상당한 피해를 감수해야 했을 거라고요!!”

“그러니까 더 무서운 것이 아니냐? 그런 의심을 추호도 하지 않고 군대를 움직였다는 소리니까 말이야.”

“억지 좀 부리지 마세요!!”

“알겠다, 알겠어. 하여튼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고 성질부리는 것하고는…도대체 누구를 닮았는지.”

“할아버지를 닮았거든요?!!”

버럭 소리를 지른 그녀는 잠시 씩씩거리다가 흘러내리는 안경을 다시 고쳐 쓰고 난 후에 입을 열었다.

“그리고 또 있어요. 마지막에 요새 사령관을 그대로 달아나버리게 했잖아요. 보다시피 남문 방면에 이쪽의 포위망이 지나치게 얇게 형성되어 있었어요. 이래서야 마치 일부러 돌파해 도망치라고 꼬드기는 거나 다름이 없는…어라?”

“후후후후. 모순을 알아차렸구나.”

“이, 일부러 빠져나가게 해준 건가요?”

“아마도 그렇겠지. 가능성은 두 가지야. 추격하는 여세를 몰아서 에레팔스를 단숨에 정복해버리려는 속셈이거나 처음부터 그렇게 내통하고 있었던 거지.”

“당연히 전자겠군요.”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지?”

“썩어도 준치라고 지브릴은 투크 가문의 후계자라고요? 그런 사람을 포섭하고 있다면 주력이 빠져나간 에레팔스를 정복하는데 10만이란 대군을 동원할 필요가 없어요. 2만…아니, 저에게 맡겨주시면 1만으로도 충분하다고요!”

“그러면 용병왕이 이끄는 2만 명으로도 충분하다는 소리구나?”

“맞아요! 아스트라세 가문의 8만 대군이 남쪽으로 이동할 필요는 어디에도…? 아니, 서, 설마 지금 할아버지가 생각하고 있는 가능성이라는 것이 혹시…”

“그 군대가 플레게톤 강을 도하해서 오르드리를 공격해 오면 어떻게 될까?”

“부, 불가능해요! 오벨리스크가 버티고 있는데 어떻게 감히 그런 시도를…”

“하지만 그게 적을 자동으로 요격하지는 않아. 아르고스 라인의 레이더로 발견하고 난 후에 관제센터에서 수동으로 조작해서 격파하는 거지.”

모니카는 말도 안 된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확실히 할아버지가 지금까지 주장하셨던 대로 사라 방백이 적과 내통하고 있고 관제센터까지 장악한다면 불가능한 이야기는 아니겠네요. 하지만 그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우리가 메인시스템을 통제하고 있는 게 아니었나요? 저 쪽에게 협상 위반이라는 이야기까지 들어가면서 말이에요!!”

“그래…상식대로라면 네 말이 맞지. 하지만 솔직히 모르겠구나. 우리가 아르고스 라인을 정말로 완벽하게 통제하고 있는 것이냐?”

“당연하죠! 지금까지 한 번도 적의 위치를 놓친 적이 없잖아요?”

“하지만 후계자가 어떻게 아르고스 라인에 들키지 않고 제니아로 들어왔는지는 여전히 수수께끼가 아니냐?”

“그, 그건…”

말문이 막힌 그녀가 말을 더듬었다.

“세상에 완벽한 시스템은 존재하지 않아. 어딘가에는 반드시 흠이 존재하기 마련이지. 나는 아르고스 라인이야말로 고대인들의 실패를 증명하고 있다고 생각한단다. 그게 아니라면 이토록 놀라운 기술을 가지고 있었던 그들이 어째서 멸망해 자취도 찾아볼 수가 없는 것이겠느냐?”

“…다시 한번 시스템 전체를 점검해 보겠습니다. 필요하다면 관제센터를 모조리 뜯어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샅샅이 확인해 볼게요.”

레스터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고 싶다면 해보거라.”

“제 판단이 탐탁지 않으신가요?”

“아니. 그저 감상에 빠졌을 뿐이니까 걱정하지 말거라. 피곤하구나. 쉬고 싶으니까 이만 물러가도록 해라. 그리고 이 영상은 누구에게도 공개하지 말고 우리만의 비밀로 하자. 지금 분위기에서 보여줘봤자 쓸데없이 사기만 더 떨어질 것 같구나.”

“…알겠습니다.”

그의 말대로 군부의 사기는 바닥을 뚫고 지하로 내려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충성파는 사분오열.

오르드리의 시민들은 수비군을 독재자의 앞잡이라고 부르면서 규탄했으며 가신들의 가족을 인질로 사로잡다시피 연금해버리는 바람에, 이제는 귀족들까지 마음이 떠나버린 상태다.

설상가상으로 돌로레스와 함께 하루가 멀다 사고를 치는 크레이그 가문의 군대까지.

래리 세력이 아직까지 공중분해 되지 않은 이유는 레스터가 노구의 몸을 이끌고 밤낮없이 뛰어다니고 있기 때문이었다.

정말로 무겁고 무거운 짐이 아닐 수 없었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