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6화 〉 폭풍속으로...(10)
* * *
[공성 병기를 지켜라! 라이칸스로프가 달라붙지 못하게 막아!]
[방패를 고정해! 틈새가 벌어지잖아!!]
[으아아아악! 내 팔, 내 팔!!]
[대열을 흐트러트리지 마라! 침착하게 급소를 노려라!]
[동문이 뚫렸다!]
[제압 부대 돌격! 성내로 진입해서 몬스터를 조종하는 마물사를 가장 먼저 제거해라!!]
전투 양상은 학살이라고 표현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일방적으로 기울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절대로 쉽사리 결판이 나는 것은 아니다.
개전 2시간 경과.
전장의 혼란은 최고조에 달하고 있었다.
썩어도 준치라는 말처럼 2만 요수 군단이 목숨을 도외시하며 달려드는 것이다.
적들의 시체가 바닥에 쌓일수록 병사들의 피로도 극심해졌고 대열을 흐트러트리기 시작했다.
크아아아아아아!
그 틈을 놓치지 않고 필사적으로 데스투도의 내부로 비집고 들어온 라이칸스로프들이 날카로운 발톱을 휘두르며 병사들의 목덜미를 물어뜯었다.
지나치게 신을 내면서 일기당천의 활약(?)을 보여준 귀족들도 하나씩 리타이어.
내력이 바닥나면서 전장을 이탈했고 그렇게 생겨난 틈새는 후방에 대기하고 있던 경무장 호플리테스들이 신속하게 팔랑크스를 전개해서 틀어막았다.
그리고 이렇게 혼란스러운 상황을 틈타서 탈출을 감행하는 무리가 있었다.
남문을 빠져나온 수십여 기의 기병이 포위망이 가장 얇은 곳으로 질주하기 시작한 것이다.
[어디를 감히!]
호플리테스를 지휘하는 귀족 지휘관이 빠르게 방패벽을 전개해서 앞길을 막아섰지만, 그 순간에 적들의 손아귀에서 눈부신 섬광이 뿜어져 나왔다.
[무투기. 구양신권!]
퍼퍼퍼퍼펑!!
[끄아아아아아악!!]
전장 전체가 후끈거리며 달아오를 정도로 뜨거운 열기와 함께 기병들을 막아선 보병들이 거대한 화염에 집어 삼켜졌다.
그 불길을 막무가내로 돌파해서 달아나는 무리.
알아보지 않으려야 알아보지 않을 수가 없는 유명한 무공을 목격한 병사들이 비명에 가까운 목소리로 외쳤다.
[구양신공이다!]
[적의 총사령관이야, 성과 부하들을 버리고 비겁하게 달아나고 있다!!]
[쫓아, 쫓아!!!]
도망자들의 정체는 다름 아닌 지브릴 투크와 그를 따르는 측근 무장들이었다.
벌떡!
“아드님께서 살아있었군요!”
“아, 아무래도 그런 모양이군. 하지만 저 녀석…총사령관의 임무를 방치하고 혼자만 살겠다고 도망치다니. 게다가 저쪽 방향은…”
래리가 환하게 웃으며 그렇게 말했지만 하이잘은 오히려 못마땅한 표정으로 달아나는 자식을 노려봤다.
아니나 다를까 그의 불길한 예감은 고스란히 적중했다.
“아토스!”
“네, 주군!!!”
“기병 2만을 주겠다. 지금 당장 달아나는 적의 총사령관을 쫓아라! 반드시 에레팔스에(투크 가문의 영지)로 도달하기 전에 사로잡아라!”
“충!!”
“루돌프!”
“네, 주군!!!”
“8만의 군대를 주겠다. 아토스를 지원해서 투크 가문의 근거지를 제압하도록 해라! 투항을 권고하고 따르지 않으면 본때를 보여주도록 해라!!”
“하하하하하! 그 말씀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부우우우우우우
출진을 알리는 나팔 소리와 함께 본대 병력이 썰물처럼 빠져나가서 지브릴을 추격하기 시작했다.
웅성웅성
[무슨 일이야?]
[달아난 총사령관을 추격한다고 하더라.]
[지금, 이 시국에???]
예상하지 못한 전개에 피아를 구분하지 않고 모두가 의아해했다.
쿵!!
“빌어먹을! 역시 그렇게 나오시는군…”
“무슨 일입니까? 하이잘 옹.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인 겁니까!”
뭔가를 알아차린 것 같은 노인의 반응에 래리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캐물었다.
“처음부터 스톰 가드에는 30만 대군이 집결할 필요는 없었다는 것일세!”
“흥분하지 말고 차근차근 설명해주십시오.”
“자네는 정말…하아, 크흠. 알겠네! 일단 엑스 요새는 함락된 것이나 다름이 없네. 사령부가 박살 난 시점에서 대세는 일찌감치 기울어졌고 퇴로가 막히는 바람에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달려들고 있었지. 그런 상황에서 죽었다고 생각한 총사령관이 자신만 살겠다고 도망쳐버렸네. 이 광경을 목격한 병사들이 어떻게 생각하겠나?”
“그건…”
[항복!]
[항복하겠습니다!]
[제발 목숨만은 살려주십시오!!]
아니나 다를까 요수 군단의 공격이 일제히 멈췄고 마물사들은 앞다퉈서 투항해 오기 시작했다.
대화를 나누는 짧은 시간에 벌어진 사건.
“항복한 자들은 모조리 구속해서 감옥에 가둬라. 제압 부대는 아직 저항하는 잔당을 소탕하고 성내를 샅샅이 수색해서 혹시 모를 적의 공성계를 방지해라!!”
[충!!!]
병사들은 신속하게 움직였다.
살아남은 요수 군단의 숫자는 7천 남짓.
피해 대부분은 몬스터에게서 발생했고 사망한 인간의 숫자는 극소수다.
하지만 몬스터는 그마저도 처분해버릴 수밖에 없었다.
재활용하기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살려놓는 것도 이래저래 골칫덩어리기 때문이다.
병사들은 낄낄거리면서 저항하지 못하는 몬스터들을 장난스럽게 학대하다가 처형해버렸고 리한은 눈살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빌어먹을 인간 녀석들…’
보면 볼수록 과거의 트라우마가 재연되는 광경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하찮은 감정에 사로잡혀서 대사를 그르칠 수는 없었다
마스터 코어를 사용하면 개조된 몬스터라고 해도 제정신으로 돌려놓을 수 있었지만, 이렇게 많은 인원에 그런 힘을 행사하는 것은 지나치게 눈에 띌 뿐만이 아니라 위험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전략적으로는 틀림없이 올바른 판단.
그래도 입맛이 쓴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엑스 요새는 함락되었고 래리와 하이잘은 다시 대화를 이어나갔다.
“30만 대군이 집결할 필요가 없었다는 것은 무슨 말씀입니까?”
“보급 문제야. 자네도 알다시피 스톰 가드를 공략하기 위해서는 좁은 다리 위에서 싸워야 하지. 전투에 참가할 수 있는 인원이 양쪽을 합쳐서 만 명도 안 돼. 그런데 30만이나 끌고 와서 주둔하고 있으려면 얼마나 물자 소비가 막심하겠나?”
“그러면 어째서 그렇게 많이 끌고 왔던 겁니까?”
“일종의 퍼포먼스네. 그만한 숫자를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 자체가 의미가 있었다는 말이지. 자네도 말하지 않았나? 저렇게 많은 가문을 휘하로 두고 있는 조카야말로 천년 가문의 주인으로 어울린다고 말이야. 압도적인 대군을 과시해서 스톰 가드를 지키는 병사들의 사기를 떨어트리는 것이 목적이고 보기 좋게 성공했지. 자네가 그런 소리를 지껄일 정도였으니까 말일세. 그리고 목표를 달성했으니까 미련 없이 군대를 분리한 거야!”
“도대체 무슨 목적으로…아니, 그건 설마! 하이잘 공!!”
리한의 목적을 알아차린 래리가 화들짝 놀라서 소리를 지르자 노인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입술을 깨물었다.
“그래. 후계자는 다른 누구도 아닌 나를 협박하려고 저런 퍼포먼스를 보여준 걸세. 투항하지 않으면 우리 투크 가문의 영지를 쑥대밭으로 만들어 버리겠다고 말이야!!”
쿵!
이번 전쟁에 사활을 걸고 있는 하이잘은 요수 군단을 포함해서 총 5만의 군대를 이끌고 래리 진영에 합류한 상태다.
사실상 주력 전체가 합류한 상황.
스톰 가드를 지키는 3만의 군대 중에서 1만이 투크 가문에 소속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 병사들이 태어나고 자란 고향은 에레팔스였다.
“나는 자네의 승리에 모든 것을 걸었네. 그래서 가문의 모든 식솔과 재산을 거느려서 오르드리로 피신해 왔지. 하지만 부하들은 아닐세. 세상에 그 누가 고향이…그것도 우리 가문을 증오하는 아스트라세 가문이 대군을 끌고 오는 상황에서 침착할 수 있겠는가?!”
“하이잘 옹…!”
현재 에레팔스에 남아있는 수비군으로는 죽었다가 깨어나도 10만 대군에 맞설 수 없다.
숫자도 턱없이 모자라지만 애초에 사기 자체가 바닥이었기 때문에 그나마 후계자에게 맞서 싸울 의사가 있는 사람을 모조리 긁어모아서 데려와 버린 것이다.
남아있는 사람들은 모두 리한을 지지하고 있었다.
10만 대군이 몰려오고 있다는 소식을 들으면 싸우기 전에 항복해버릴 자들이 대다수라는 것이다.
항복한 자들에게 관대한 처분을 보장하는 것이 후계자 군대의 정책이었기 때문에 학살이나 약탈이 일어날 확률은 낮았지만, 근거지를 빼앗기는 것은 이래저래 손해인 데다가 진짜 문제는 따로 있었다.
“만약에 후계자가 우리 가문 병사들의 가족을 인질로 잡는다면…미안하지만 자네를 도울 수 있는 것은 여기까지네. 투크 가문은 스톰 가드에서 물러날 수밖에 없어.”
“그럴 수가…”
팔짱을 끼고 조용히 두 사람의 대화를 경청하는 에스메랄다.
그녀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확실히 후계자가 한 수 위로군.’
하이잘의 통찰력은 틀림없이 훌륭했다.
터무니없이 고령에도 불구하고 늙은 요물이라는 별명에 걸맞게 자신 따위는 발끝조차도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놀라운 혜안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는 미완의 책사다.
대부분의 예측이 들어맞지만 언제나 나사 하나가 풀린 것처럼 결정적인 실수를 저지르는 것이다.
이번에도 그는 후계자의 노림수를 전부 파악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것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인 실수로 자신에게 부메랑처럼 되돌아오게 되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