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4화 〉 폭풍속으로...(8)
* * *
“공격 개시.”
[공격 개시!!!!]
부우우우우우우!
기수들의 우렁찬 후창과 함께 울려 퍼지는 나팔 소리에 중무장 보병들이 데스투도로 진형을 갖추며 전진해 나아갔다.
본대는 움직이지 않고 대기.
엑스 요새의 서문과, 북문, 남문을 각각 1만 5천의 군대로 포위했다.
[빨리빨리 움직여!]
촤아아아악!
크오오오오오오!
3대의 아리에스(공성망치)와 12대의 공성탑.
마물사들이 채찍을 내리치면서 호령하자 철갑으로 완전무장한 오우거들이 공성 병기들을 느릿느릿하게 앞으로 밀면서 전진했다.
스톰 가드하고는 다르게 엑스 요새의 성벽은 단순한 석재 구조물이다.
게다가 요수 군단의 90%는 지성이 존재하지 않는 꼭두각시 개조 몬스터.
양쪽 모두 전략적인 가치가 없는 단순한 소모품에 불과할 뿐이었다.
끼기기긱 철컥!
기계장치들이 맞물리는 소리와 함께 투석기, 쇠뇌들의 발사 준비가 끝났다.
“단숨에 무너트려라.”
[발사!!!!]
투타타타타탁!
지면을 들썩거리게 만드는 격발과 함께 아름드리 두께를 자랑하는 바위, 어른 키만큼 커다란 화살이 일제히 쏘아져 올라갔다.
동시에 궁수들이 발사하는 화살이 하늘 전체를 새카맣게 뒤덮어서 엑스 요새를 덮쳤다.
투투투투투투투투!!!
크아아아아아악!!
마물사의 명령에 일제히 방패를 들어 올리는 요수 군단.
하지만 피해는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볼링공처럼 데굴데굴 굴러가는 바윗돌이 수십여 마리의 몬스터를 벌레처럼 으깨버리고, 커다란 화살에 맞고 날아가서 벽에 꽂혀버리거나 장대비처럼 쏟아지는 화살 세례에 고슴도치처럼 변해버리고 말았다.
크오오오오오!!
고블린 마법사와 리자드 궁수들이 괴성을 내지르면서 응사했지만 화력의 차이는 명백.
골렘 슈츠에 마법 내성이 강한 아다만타이트제 파비스를 앞세운 데스투도의 행군 속도는 조금도 늦추어지지 않았다.
“쉬지 말고 발사해라! 엑스 요새를 벌집으로 만들어 버려라!”
투콰콰콰쾅!
슈슈슈슈슈슉!
무장과 마법사들은 공격에 나서지 않았다.
하지만 훈련받은 병사들이 사용하는 재래식 병기에도 저마다의 내력이 실리고 스킬들이 발동되고 있어서 그 위력은 절대로 가볍게 업신여길 수 있는 게 아니었다.
하물며 압도적인 수적 우위를 이용하는 총공세는 엑스 요새를 순식간에 걸레짝으로 만들어버리는데 충분하고도 남았다.
그 맹렬한 파상공세를 버티지 못한 것일까.
지이이이이이잉
투석기의 공격으로 휘청거리는 망루 하나에서 실드가 전개되었다.
“저런 멍청한!”
스톰 가드의 망루에서 비명을 내지르는 하이잘.
아니나 다를까 회심의 미소를 지은 리한이 다음 지시를 내렸다.
“적의 사령탑을 발견했다! 저곳으로 모든 화력을 쏟아부어라!!”
[충!!!!]
우우우우우우웅
후방에서 마나를 온존하며 대기하고 있던 마도사 부대가 일제히 마법진을 발동하면서 주문을 영창했다.
크아아아아아악!
동시에 하늘로 날아오르는 그리폰 부대.
[으아아아아아악!]
상공에서 넘실거리는 불꽃과 함께 거대한 마나가 응집하는 것을 감지한 적병들이 마치 개미굴에서 도망치는 것처럼 사령탑 바깥으로 우르르 빠져나왔다.
하지만 전술 마법의 발동이 한발 빨랐다.
[피닉스 레인!]
[메테오 샤워!]
[파이오 스톰!]
[플레임 론도!!]
…
수십 개의 마법진이 층층이 중첩되면서 올라가는가 싶더니 수직으로 일제히 낙하했다.
퍼퍼퍼퍼퍼퍼펑!
후우우우우우웅!!
눈부신 섬광과 함께 가문들의 깃발을 일제히 휘청거리게 하는 맹렬한 바람이 폭발하듯이 터져 나왔다.
터무니없는 위력.
[히히히히히힝!]
놀란 말들이 사납게 날뛰고 리한이 서 있는 언덕 위까지 거세게 흔들리면서 충격이 느껴질 정도였다.
8층 높이의 사령탑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고 거대한 크레이터가 만들어졌다.
주변 일대도 초토화.
[으어어어어어]
즉사는 면했지만 공격에 휘말린 사람들의 모습은 처참하기 이를 데가 없었다.
고막이 터지고 공황 상태로 휘청거리며 걸어가는 병사들.
자신의 신체가 불타는 것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좀비처럼 움직이다가 그대로 다리가 잿더미로 으스러지며 바닥으로 쓰러져 버렸다.
그런 식으로 옮겨붙은 불길이 사방으로 퍼져나가서 성내를 불태웠다.
화르르르
“…”
생각 이상으로 끔찍한 광경에 자신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리는 리한.
상황도 조건도 완전히 달랐지만 둥지고래를 습격당한 그 날 기억이 자꾸만 플래시백해서 눈앞의 광경과 겹쳐 보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망설이거나 공격의 고삐를 늦추지는 않았다.
사령탑을 파괴한 효과도 확실했다.
그곳에 숨어 있었던 요수 군단을 통제하는 마물사 대부분이 일시에 전멸해버린 것이다.
크아아아아아아아악!!
애당초 이성을 제거하고 전투본능 하나를 남겨놓은 것이 업보다.
통제를 벗어나는 순간부터 파괴와 살육의 충동에 사로잡힌 몬스터는 주변에 살아 움직이는 것들을 모조리 적으로 인식해서 미쳐 날뛰기 시작했다.
게다가 사령탑이 무너지면서 지휘 체계도 완전히 무너져버렸다.
[모, 모두 도망쳐! 이 요새는 이미 틀렸어!!!]
[위치를 벗어나지 마! 아직 성문이 부서지지도 않았는데 벌써 후퇴해서 어쩌자는 거야?!]
[젠장! 몬스터를 제어할 수 없다고. 우리끼리 싸우고 있잖아!!]
[차라리 모든 성문을 개방해. 모조리 내보내서 적진에서 날뛰게 하는 편이 낫겠어!]
[지금 미쳤어???]
현장의 지휘관들이 자기들끼리 옥신각신하며 다투기 시작했다.
위계질서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모습.
귀족제도의 대표적인 폐해라고 할 수 있었다.
같은 투크 가문에 소속되어 있지만 수뇌부를 제외하면 똑같은 계급을 가지고 있는 어중이떠중이 귀족들이 워낙에 많다 보니, 누가 선임이고 후임인지를 구분하는 경계선이 명확하지 않고 지휘 체계가 혼란스러워지는 것이다.
사공이 많으면 배는 산으로 가는 법.
지금 요수 군단의 상황이 딱 그런 상태라고 할 수가 있었다.
‘꼴사납기 이를 데가 없군.’
한심한 모습에 한숨을 내쉬는 리한이지만 자신이 긁어모은 귀족 연합군이라고 해서 별다른 차이는 없기 때문에 마냥 비웃을수도 없었다.
봉건 제도는 시대에 뒤떨어졌다.
완벽하게 통일된 하나의 군대 조직과 체계를 가지고 있는 테르할 제국이나 앵커리지 공화국에 비교하면 오팔 왕국의 군대는 그냥 숫자만 많은 허수아비라고 불러도 과언이 아닌 수준이었다.
‘천년 가문의 가주 자리에 오르면 이 썩어빠진 귀족 새끼들의 서열을 제대로 정리해주지.’
완벽하게 정비된 관료 조직.
하나의 왕에게 충성하는 하나의 군대.
리한에게는 자신을 위해서 집결한 수많은 가문의 깃발이 그저 구조조정의 대상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혼란에 빠진 적은 자중지란을 일으키면서 무너지기 시작했다.
쿠구구구궁
동문을 개방하고 판달 대교로 도망치는 무리들.
크아아아아아악!
그 앞을 그리폰 라이더들이 가로막았다.
[순순히 항복하면 목숨은 빼앗지 않겠다!]
[크으으윽!]
시위를 겨냥하는 헤스티아의 호령에 유일한 퇴로가 막혀버린 적들은 무기를 버리고 투항했다.
이 모습을 보고 화들짝 놀란 래리가 소리를 질렀다.
“하이잘 옹! 엑스 요새에 구원을 보내야 하지 않겠습니까?”
“절대로 안 되네! 우리에게는 그럴 여력도 없을뿐더러 구하러 가봤자 저 그리폰 부대에게 반격을 당해서 모조리 개죽음을 당할 뿐일세. 지금은 스톰 가드의 방위 시스템에 의지해서 최대한 웅크려야 하네. 참게, 참게나!!”
“제 문제가 아닙니다! 저기에는 하이잘 옹의 아드님이 계시지 않습니까?!”
“괜찮아. 나는 자네하고는 다르게 뒤를 이을 자식이 얼마든지 있으니까 말이야. 그렇지 않느냐, 에스메랄다?”
“…말씀대로입니다.”
거구의 여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야심이 지나치게 많은 녀석이라서 예전부터 눈엣가시였어. 게다가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저질러서 아까운 요새를 허무하게 날려버렸으니까 죽어도 싸지.”
“제정신으로 하는 소리입니까? 자식의 목숨을 도대체 뭐라고…”
태연자약하기 이를 데가 없는 부녀의 모습에 래리는 컬처 쇼크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들은 꿈에도 몰랐다.
지금 일어나는 모든 상황이 바로 그 아들인 지브릴 투크와 리한이 내통해서 만들어진 결과물이라는 사실을.
이윽고 엑스 요새의 모든 성문이 일제히 개방되었다.
[몬스터를 내보내라! 대형 몬스터를 앞세워서 적의 데스투도를 일제히 짓밟아 버리겠다! 돌격, 돌격!]
크오오오오오오!!
궁지에 몰린 지휘관들의 악에 받친 고함과 함께 오우거, 트롤, 미노타우르스 같은 괴력을 자랑하는 몬스터들이 일제히 뛰쳐나왔다.
“서두를 필요 없다. 대세는 완전히 우리 쪽으로 기울었으니 데스투도를 전개해서 하나씩 침착하게 격파하라고 전해라.”
[네, 알겠습니다!]
콰콰콰콰콰콰쾅!
강철 말뚝을 전개해서 공성 방패를 땅바닥에 박아 넣은 중무장 보병들이 기다란 장창을 돌진해오는 몬스터 무리를 겨냥해 밖으로 내밀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