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3화 〉 폭풍속으로...(7)
* * *
꿀꺽
“엄청난 숫자로군요.”
스톰 가드의 망루에서 이 모습을 목격한 래리가 마른침을 삼키며 말했다.
“두려워하지 말게. 이 요새가 무적이라는 사실은 자네도 알고 있지 않은가?”
“…무서워서 하는 소리가 아닙니다, 하이잘 옹. 그저 놀라울 뿐입니다. 보십시오! 저렇게 많은 귀족이 조카를 위해서 모였습니다. 그야말로 천년 가문의 수장에 어울리는 지도력이 아닙니까?”
“그것이 자랑스러운가? 그 조카의 검이 자네의 심장을 겨냥하고 있는데 말이야!!”
“알고 있지만 그래도 마음 한편으로는 뿌듯한 마음을 지울 수가 없군요. 정말로 훌륭하게 성장해서 돌아왔습니다!”
여전히 현실 자각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모습에 하이잘은 깊은 한숨을 뱉어내었다.
“그래서 항복할 생각이라면 빨리 백기를 드시게. 나이를 먹었더니 참을성이 사라져서 말이야. 자네의 답답한 모습을 보고 있으면 심장 건강에 좋지가 않아.”
“…아내의 목숨만 걸려있지 않았더라면 성문을 열고 환영해줬을 겁니다.”
“싸울 생각이라는 거지? 제발 그렇다고 해주게. 그리고 쓸데없는 소리 좀 지껄이지 말게. 자네를 지켜보는 부하들이 얼마나 불안해하는지 아는가? 이미 떨어질 대로 떨어진 군대의 사기를 도대체 어디까지 떨어트려야 속이 시원하겠나!!”
“…죄송합니다.”
“말이 아니라 태도로 좀 보여달라는 말일세!!”
답답해서 미치겠다는 것처럼 소리를 질렀다.
때마침 리한의 진영에서 날아온 전서구 한 마리가 망루 횟대에 사뿐하게 내려앉았다.
거기에는 짤막한 최후통첩이 적혀있었다.
[지금 당장 무장을 해제하고 요새를 개방하면 숙부님에게는 죄를 묻지 않겠습니다.]
“조카는 여전히 조카로군요.”
“자네도 여전히 자네고 말일세.”
대답은 두말할 필요도 없는 거절이었다.
“전원 위치로! 스톰 가드의 방위 시스템을 작동해라! 폭풍에 정면으로 맞서는 행위가 얼마나 어리석지를 똑똑히 가르쳐주겠다!!!”
우오오오오오오!!
쿠구구구구궁
병사들의 우렁찬 함성과 함께 성문이 열렸다.
리한은 그 광경을 언덕 위에서 내려다보며 조용히 중얼거렸다.
“보는 것만으로도 숨이 막히는 광경이군.”
“정말입니다.”
루돌프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대답했다.
스톰 가드는 고대 문명의 기술력이 집약된 철벽의 요새다.
육로를 통해서 아슈킬 가문의 직할령에 진입하려면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관문.
제니아의 수도 오르드리는 베르디 강의 지류인 플레게톤 강이 Ω(오메가)형태로 둘러싸는 중앙에 위치하고 있다.
그리고 이 강은 도하하는 것이 불가능에 가깝다.
단순하게 유속이 강하다거나 수심이 깊고 강폭이 넓다는 수준의 이야기가 아니다.
사이사이에 오벨리스크 형태의 고대 유적이 세워져 있는데 마치 운디네처럼 흐르는 강의 무한한 마나를 흡수해서 도하를 시도하는 적에게 8서클 블리자드 마법을 난사하기 때문이다.
이 시스템을 통제하는 것이 오르드리의 관제 센터.
아르고스 라인의 레이더 탐지로 확인한 적에게 발사하는 것이다.
게다가 이 오벨리스크는 파괴하는 것도 불가능했다.
도대체 언제 지어졌는지도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오래되었는데도 불구하고 한 번의 보수작업 없이 멀쩡하게 원형을 유지하고 있는 데다가, 마나를 사용하는 공격을 모조리 흡수해서 빨아들이는 배리어에 둘러싸여 있기 때문이다.
이 능력이 얼마나 사기적이냐면 전략 마법을 통째로 집어삼키는 것조차 모자라서 부차적으로 발생하는 마나 오염까지 흡수해서 자신의 동력원으로 삼아버릴 정도다.
그야말로 무적의 방어 타워.
오벨리스크에 공격당하지 않고 강을 도하하려면 관제 센터가 자신의 역할을 하지 못하거나, 블리자드 마법의 사정거리가 닿지 않는 높은 상공을 이동해서 통과하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것도 좋은 방법이 아니라는 사실을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옛날에 천년 가문을 두려워한 델링거 왕실에서 모든 방백과 밀약을 맺고 제니아를 침략한 사례가 있었다.
당시에 무려 5배가 넘는 그리폰 부대가 플레게톤 강의 상공을 날아서 도하를 시도했다가 전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었던 것이다.
당시에 아슈킬 가문은 지상군과 그리폰 부대가 연계해서 움직였으며 아르고스 라인으로 적의 위치를 정확하게 파악해서 완벽한 기습, 교란에 성공하여 역사에 남을 대승을 거둘 수 있었다.
그만큼 광활한 창공에서 펼쳐지는 도그파이트는 피아의 정확한 위치파악이 무엇보다도 중요했다는 것이다.
이런 사례 때문에 플레게톤 강의 상공을 날아서 오르드리를 함락시킬 확실한 방법으로 언급되는 전략이라는 것이, 100만 대군을 한 번에 수송할 수 있다는 앵커리지 공화국의 비공정 군단을 총동원하는 수준의 허무맹랑한 이야기로 전락해버리고 말았다.
물론, 리한의 연줄로도 불가능한 이야기다.
다른 방법으로는 오벨리스크가 배치되어 있지 않은 육로를 통과하는 것.
앞서 말했듯이 Ω형태의 플레게톤 강 아래쪽에는 아슈킬 가문의 직할령으로 이어지는 협소한 육로가 있지만, 문제는 그 사실을 알고 있는 전대의 가주들이 외적의 침략을 미연에 방지한다는 명목으로 전략 마법을 쏟아부어서 출입할 수 없는 마법 오염지대로 바꿔버렸다는 것이다.
이런 조치 때문에 아슈킬 가문의 직할령은 외부 세계하고 완전히 고립되어 있는 섬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딱 하나의 통로가 남아있었다.
그것이 바로 스톰 가드가 중간에 버티고 서 있는 판달 대교다.
일단 다리 위에 그렇게 커다란 건축물이 세워져 있다는 자체가 일반 상식에서 벗어나 있다.
무거운 하중을 지탱하지 못할 것처럼 보이지만 스톰 가드가 정말로 그렇게 허술하게 설계되어 있었다면, 지금까지 한 번도 함락되지 않은 무적의 요새라는 타이틀을 손에 넣지 못했을 것이다.
일단 보이는 것과는 다르게 무너질 염려는 없다.
왜냐면 다리부터 요새의 성벽에 이르기까지 오벨리스크와 똑같은 합금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덕분에 상당히 기형적인 구조를 위풍당당하게 유지하고 있다.
오벨리스크하고 차이가 있다면 흡수한 마나를 특정 마법으로 전환해서 반격해 오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때문에 그나마 공격을 시도해볼 만한 구석은 있다.
물론, 공격하는 측에서 압도적으로 불리하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생명체가 가지고 있는 마나 자체를 빨아들이지는 않지만 여전히 주변 마나를 흡수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어서, 무장과 마법사의 모든 기술 위력이 반감되어버리고 특히 공격하는 진영의 내력 소모가 비정상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심하다.
다행이라면 성문은‘그 합금’으로 되어있지는 않다는 것.
평범한(?)아다만타이트 소재로 대체되어 있어서 이 사실이 스톰 가드를 공략할 수 있는 희망의 실마리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것조차도 교묘하게 설계되어 있는 함정이다.
애초에 전술적인 선택지가[정면 돌파]로 강제된다는 사실 자체가 문제인 것이다.
스톰 가드에는 무려 13개의 성문이 일렬로 늘어서 있다.
더 악의적인 기믹은 다리의 넓이는 50m인 데 반해서 성벽의 넓이는 그 두 배인 100m에 이른다는 것이다.
축차 공격을 시도하려고 해도 워낙 비좁은 통로라서 인원 교체가 어려워지고 혼선을 빚을 수밖에 없다.
투입할 수 있는 인원도 한계가 있어서 압도적인 수적 우위도 무의미.
심지어 수비측에서 넓은 공간을 차지하고 공세를 집중할 수 있으므로 공격하는 측에서는 무조건 피해가 속출할 수밖에 없는 구조로 되어있다.
게다가 성벽 하나를 돌파해서 간신히 그곳을 차지해도 기진맥진한 상태가 되어버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성벽에서 다른 성벽으로 공격이 닿을 뿐만이 아니라 2차 성벽에서 쌩쌩한 전력을 유지하는 수비군이 곧바로 반격을 시도하면, 간신히 빼앗은 성벽을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가볍게 내주는 것으로도 모자라서 비좁은 통로로 앞다퉈 도망치는 과정에서 또다시 희생자가 속출할 수밖에 없다.
강으로 떨어지면 곧바로 오벨리스크가 발사하는 블리자드의 희생양.
한 마디로 스톰 가드는 정면으로 돌파할 수 있는 희망을 주고 그것을 잔인하게 짓밟아버리는 악마의 던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요새를 지키는 숙부의 군대는 3만도 안 돼. 그런데 우리는 그 열 배가 넘는 30만 대군을 끌고 왔는데도 승산이 보이지를 않는군. 우직하게 정면 돌파를 시도했다가는 10년, 20년이 지나도 돌파하지 못할 거야.”
“하지만 도련님에게는 다 계획이 있지 않으십니까?”
“물론이지.”
리한은 웃음을 터트리면서 그렇게 말했다.
“우선 스톰 가드를 공격하기 전에 진로부터 클리어하도록 하지.”
판달 대교의 입구에는 스톰 가드의 조그마한 지성??인 엑스 요새가 건설되어 있었다.
그곳을 수비하는 사령관은 2만의 요수 군단을 이끄는 지브릴 투크.
포섭이 끝난 내통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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