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7화 〉 폭풍속으로...(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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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전 뒤편의 병자들은 사회에서 철저하게 버려진 사람들이다.
라티푼디움과 산업화로 일자리를 잃어버렸고 피지컬 자체도 월등하게 뛰어난 이종족과 몬스터에게 밀려서 일용직이나 노예조차 되지 못한 레드 벨트의 슬럼가 출신.
그곳에서 하루 벌어서 하루도 먹지 못하는 비참한 삶을 영위하다가 몹쓸 병에 걸려서 공동체에서 추방되었기 때문에, 그야말로 벼랑 끝으로 몰릴 때까지 몰린 부류라고 할 수가 있었다.
그들이 마지막으로 찾아가는 장소가 데피리스 교단의 신전.
하지만 루크레스 3세는 돈 낭비라는 이유로 자체적인 구제소 운영을 완전히 중단해버렸고, ‘구원’받는 사람이 너무 많으면 상품 가치와 희소성이 떨어진다며 성찬식 선발 인원을 10명에서 3명으로 줄여버렸다.
이렇게 매몰차게 버려진 사람들은 열에 아홉 아니, 만 명 중에서 9999명이 사회로 복귀하지 못하고 그곳에서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다.
오르드리의 신전 대학살은 제니아 방송국에서 하루종일 뉴스 특종으로 떠들어댔다.
역설적으로 지금까지 철저하게 외면당하던 자들에게 매스컴과 사회의 관심이 쏟아진 것은 굉장히 오랜만이라고 할 수가 있었다.
그 반향은 아카이아의 비극하고는 분명하게 달랐다.
일단 당시 상황을 촬영한 영상 자체가 없어서 초기에는 여러 가지 추측과 소문이 난무했다.
사람들은 겨우 7살짜리 남자아이가 이렇게 참혹한 사건을 일으켰다는 사실을 믿지 않았다.
대부분은 돌로레스가 사주했을 거라고 의심했지만, 여러 가지 목격 증언과 상황 증거가 드러나면서‘그 어미에 그 자식’이라는 손가락질하며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어댔다.
제니아의 수많은 기자들 가운데 신전 뒤편을 방문한 사람은 극소수.
병자들과 직접 접촉해서 인터뷰를 진행한 사람은 세 사람밖에 없었는데 그나마 하나는 주작으로 밝혀졌으며, 그들이 촬영한 영상은 방송국에서 몇 번이나 재활용해서 우려먹을 정도로 접촉하는 것을 꺼렸다.
가까이 접근하기만 해도 몹쓸 병이 옮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쌀쌀맞은 반응은 주변 도시와 마을도 마찬가지.
병자들을 환영하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었으며 모든 관문이 일제히 문을 걸어 잠갔고, 망토나 후드를 뒤집어써서 피부를 노출하지 않는 사람을 발견하면 화살을 쏴서 쫓아버렸다.
일반적인 여론도 6대 4의 4 정도가 전염병을 일으키는 골칫덩어리 병민(병자 + 난민)들을 이번 기회에 박멸해버려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떠들어대는 수준이었다.
이렇게 여론이 나쁜 이유는 7살짜리 데일을 병자들이 둘러싸서 공격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 것도 한몫했다.
언론에서는 리한이 지난번처럼 기자회견을 열어서 속 시원하게 입장을 밝혀주기를 바랬지만, 그는 스톰 가드를 공략할 준비로 바쁘다는 핑계로 인터뷰를 사양하고 대신에 간단한 성명문 하나를 발표했다.
[오르드리 신전의 학살은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 되는 끔찍한 일이었다. 내전이 끝나면 정확한 진상조사를 통해서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밝힐 것이며 그것을 토대로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대책을 마련하고 조치를 하겠다.]
지나치게 원론적이고 재미없는 대답.
덕분에 세간의 관심은 오르드리로 쏠렸다.
자신의 아들이 신전 뒤편에서 끔찍한 학살을 저질렀다는 소식을 들은 래리는 부정, 분노, 협상, 우울, 수용의 싸이클을 여러 번 되풀이하면서 반나절을 넘게 제정신이 아닌 것처럼 날뛰었다고 한다.
그리고 장례식 이후 처음으로 돌로레스에게 연락해서 지금 당장 데일을 스톰 가드로 데려오라고 윽박질렀다.
당연하지만 귓등으로도 듣지 않고서 코웃음을 쳐버린 그녀.
하지만 이번만큼은 그도 용서할 수가 없었는지 레스터 장군에게 아시에스타 궁전을 포위하라고 명령하고, 지금 당장 자신의 아들을 내놓지 않으면 불바다로 만들어 버리겠다고 협박했다.
덕분에 크레이그 가문의 군대와 오르드리의 수비군이 대치하는 초유의 사태로 발전.
일촉즉발의 사태에 화들짝 놀란 돌로레스가 어쩔 수 없이 그에게 사과하고 데일을 스톰 가드로 보내고 나서야 레스터도 포위를 풀고 아시에스타 궁에서 물러났다.
순식간에 일어난 등골 오싹한 사건.
사라는 이 틈을 놓치지 않고 그녀의 불안을 부추기면서 두 사람 사이를 이간질했다.
“큰일이군요. 이대로 가다가는 래리님에게 버려지겠습니다.”
“터무니없는 말씀이에요, 각하. 그이가 그럴 리가…”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듣자 하니 그분께서는 자신의 조카하고 싸우게 된 것을 사모님 탓이라고 여기는 모양이던데요.”
“그, 그건…”
“스톰 가드에 얼씬도 하지 못하게 하고 연락도 끊어버린 지 오래되었다면서요? 게다가 레스터 장군의 군대로 아시에스타 궁전을 포위하지를 않나, 이제는 대를 이을 하나뿐인 아드님마저 빼앗아 버리다니…”
“설마…설마 그이가 정말로??? 어, 어떻게 하죠? 각하! 도대체 저는 어떻게 하면…”
“후후후후. 걱정하지 않아도 방법이 있습니다, 사모님.”
다음날.
크레이그 가문의 군대가 오르드리의 관제 센터를 습격해서 아르고스 라인을 장악해버렸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돌발 사태.
아르고스 라인은 제니아 방위의 핵심 시스템이며 스톰 가드가 무적의 요새라고 불리는 데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기도 했다.
덕분에 깜짝 놀라서 화가 머리 꼭대기까지 나버린 레스터 장군은 관제 센터와 아시에스타 궁전을 다시 한번 포위하고 군대를 물려서 텔파이프로 돌아가지 않으면, 크레이그 가문을 세상에서 지워버리겠다고 윽박질렀다.
하지만 그의 앞에 모습을 드러낸 사람은 돌로레스였다.
그것도 인질을 줄줄이 끌고서.
“지, 지금 뭐 하는 짓입니까? 사모님!”
경악한 레스터는 그렇게 소리를 지를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데리고 나온 사람들은 천년 가문에 충성을 맹세하는 의미로 제니아의 모든 귀족 가문에서 보내온 볼모들이다.
거기에 4대 세경가가 포함되어 있는 것은 물론이고 가주를 제외한 일가 전체가 수도에 하사받은 저택에서 생활하는 경우도 있었기 때문에, 돌로레스는 제니아 전체를 인질로 잡고서 레스터를 협박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래리가 마음만 먹으면 리한을 압도할 수 있는 최후의 수단.
하지만 사소한 집안싸움이라는 미련을 버리지 않았기 때문에 마지막까지 꺼내지 않았던 비장의 카드를 이렇게 어처구니없이 들고나와 버린 것이었다.
“이쯤 되면 제가 진지하다는 사실을 아시겠죠, 레스터 장군? 지금 당장 남편에게 통신을 연결하세요. 협상에 응하지 않으면 이분들과 함께 동귀어진을 각오하겠습니다!”
“협상이라니 무슨 소리를…방백입니까? 방백의 꼬드김에 넘어가서 이러시는 겁니까?!”
“아니요. 어디까지나 자주적으로 생각해서 이러는 겁니다!”
그렇게 외치는 돌로레스의 곁으로 사라가 슬그머니 다가가 섰다.
“꼬드김이라는 표현이 굉장히 거슬리는군요, 장군. 동맹을 이렇게 홀대해서 되겠습니까? 이쪽 주장은 들어보지도 않고 두 번이나 우리 가문의 군대를 포위해서 위협하다니…아무리 제가 온화해도 이런 부당한 처사에는 화를 낼 수밖에 없답니다?”
“닥쳐라, 이년! 감히 전시상황에 심장부로 쥐새끼처럼 파고들어서 인질을 붙잡고 협박이라니…지금 당장 군대를 이끌고 텔파이프로 돌아가지 않으면 아시에스타 궁전을 네년의 무덤으로 만들어 버리겠다!!”
“하! 제가 정말로 배신할 생각이었다면 스톰 가드에서 전쟁이 일어난 순간을 노려서 관제 센터를 장악하지 않았을까요? 아니면 지금 당장 박살 내버려도 되고 말이죠. 그랬다면 궁지에 몰린 당신들을 이번 내전에서 죽었다가 깨어나도 이기지 못할 것 같은데. 이렇게 고집불통이니까 사모님께서 이토록 화를 내시는 거라고요!!”
“닥쳐라, 이년!”
“장군이야말로 닥치세요! 나는 장군하고 떠들고 싶은 것이 아니라 장군의 상관인 내 남편하고 대화를 원하는 겁니다. 통신을 연결하지 않으면 이대로 다 같이 죽는 거예요. 그래도 좋다는 말입니까?!”
“크으으윽!”
웅성웅성
터무니없는 요구에 수비군은 동요할 수밖에 없었다.
눈치를 보고 있다가 슬그머니 레스터에게 다가가서 조언하는 부관.
[요구를 들어주십시오, 장군! 이러다가 정말로 관제 센터와 볼모들의 신변에 무슨 일이라도 생겼다가는…]
[절대로 안 돼! 이런 터무니없는 협박에 굴복했다가는 다음에도 두 사람이 공모해서 똑같은 수작을 부려올 거야. 그것도 더 쉽게 말이다! 게다가 사모님은 지금 극도로 불안한 상태야. 래리님에게 터무니없는 억지 요구를 할 것이 틀림없다, 래리님은 받아들이실 수밖에 없을 테고! 전군이 똘똘 뭉쳐서 적에게 맞서 싸워도 어려운 시기에 내부 문제로 무너지는 것만은 막아야 한다!!]
[하지만 이대로 가다가는…]
[빌어먹을!!]
그의 판단은 정확했다.
하지만 문제는 알고 있어도 손을 쓸 도리가 없었다는 것이다.
아르고스 라인, 제니아 귀족들의 볼모.
어느 한쪽이 화를 입어도 이번 전쟁은 끝난 것이나 다름이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에는 볼모 하나의 목덜미로 사형집행수의 검이 올라가고 나서야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었고 래리와의 통신이 연결되자, 사라는 남몰래 회심의 미소를 지어보였다.
‘이겼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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