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6화 〉 홀로세 대멸종(10)
* * *
“이 빌어먹을 애새끼가!”
“썩어도 귀족이라고 더럽게 끈질기네.”
“죽어, 죽어!!”
퍽퍽! 퍽! 퍽퍽퍽!!
데일이 금강투합체를 사용하며 웅크리자 수십 명의 병자들이 달려들어서 거북이 등껍질을 두드리듯이 몽둥이와 돌멩이를 휘둘러댔다.
평범한 성인 남성의 절반도 되지 않는 힘을 가진 나약한 자들의 물매.
하지만 몸과 마음이 약해질 대로 약해진 소년은 공포에 질려서 스스로를 감쌌다.
“도와주세요, 선생님! 제발 누군가…”
절벽 위에 크라테스와 무장들을 간절하게 쳐다보면서 도움을 요청했지만 싸늘한 눈초리는 오히려 책망하는 것처럼 바라보고 있었다.
[어째서 당신은 거기에 있는 겁니까?]
[자신의 신분을 잊어버리지 마십시오.]
[폴리를 좋아하신다고요? 사자의 아들이 어떻게 시궁창 쥐새끼와 짝을 이룰 수가 있다는 말입니까? 착각에 빠져도 단단히 빠지셨군요.]
[처음부터 태어나지 말았어야 하는 자들이라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죽이십시오, 모두 죽이십시오, 하나도 남기지 말고 죽이십시오, 죽이십시오! 죽이십시오!! 죽이십시오, 죽이십시오, 죽이십시오, 죽이십시오, 죽이십시오, 죽이십시오, 죽이십시오, 죽이십시오, 죽이십시오, 죽이십시오, 죽이십시오, 죽이십시오, 죽이십시오, 죽이십시오, 죽이십시오!!!]
“나는…”
쏟아지는 시선을 버티지 못하고 무엇인가를 말하려는 순간.
뻑!
막무가내로 휘두른 막대기가 금강투합체가 엷어진 사이를 노리고 들어와서 소년의 뺨을 세차게 후려쳐버리고 말았다.
주르르륵
찢어진 입술로 한 줄기 피가 흘러내렸다.
“…”
묘한 정적.
꿀꺽
[하악, 하악, 크하하하하하! 드디어 기운이 빠지셨구만. 그러면 이제 슬슬…]
백내장으로 하얘진 눈동자 곰보투성이 주름진 남자가 흘러내리는 땀을 훔치며 비열한 웃음을 터트리면서 바짓가랑이를 풀어헤치려고 했다.
철그럭
고오오오오오오
[힉?!]
하지만 그 순간에 데일로부터 소름 끼치는 살기가 뿜어져 나오는 바람에 소스라치게 놀라서 그대로 주저앉아버리고 말았다.
오줌을 지리는 남자를 무시하고 조용히 일어서는 소년.
병자들은 심상치 않은 기세를 알아차리고 주춤거리며 물러섰고 그사이를 뚜벅거리며 헤치고 지나갔다.
“크라테스!”
[네, 도련님!]
“지금 당장 이 빌어먹을 시궁창에서 나를 끄집어내라!”
[존명!]
지이이이잉
웅성웅성
[뭐, 뭐시여 시방?!]
[기적???]
갑작스럽게 돌변한 상황.
데일의 몸이 하늘로 떠오르자 화들짝 놀란 병자들이 우르르 물러섰다.
“퉤!”
그것을 증오스럽게 노려보면서 피가 섞인 침을 뱉어내는 소년.
순수하고 어리숙했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싸늘한 표정으로 독기를 품었다.
벼랑 위로 사뿐히 착지하자 일제히 오체투지하는 크라테스와 무장들.
“나를 치료해라, 크라테스.”
“알겠습니다!”
지이이이잉
곧바로 치유와 정화마법을 사용해서 데일이 입은 상처와 더럽혀진 모습을 원래대로 되돌려 놓았다.
“살려달라고 애원할 때는 눈썹 하나도 까딱하지 않더니 강압적으로 명령하니까 고분고분 따르는구나. 이것이 네가 그토록 말하고 싶었던 아랫것들을 다스리는 올바른 방법이라는 것이냐?”
“바로 그것입니다, 도련님. 마침내 깨달으셨군요.”
“그래, 드디어 정신을 차렸다. 어머님께서 나를 그토록 걱정하시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구나. 쓸데없이 태어나지도 말았어야 하는 더러운 버러지 년에게 정신이 팔려있었으니까 말이다.”
터무니없는 발언이었지만 이 말을 들은 크라테스의 표정은 오히려 환하게 밝아졌다.
“각성을 경하드립니다.”
“경하드립니다!”
“무장들을 지휘하고 있는 것은 누구냐?”
“블랙락 기사단의 단장, 헤이스팅스 준남작입니다.”
사신처럼 검은 갑옷을 입은 남자가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지금 당장 부하들을 이끌고 이 땅에 태어나지 말았어야 하는 사람을 모조리 죽여라.”
“사람을 말입니까?”
“아니, 잘못 말했군.”
실수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고개를 흔든 소년은 자신의 말을 정확하게 수정했다.
“버러지 새끼들을 한 마리도 남기지 말고 모조리 박멸해라. 천년 가문의 이름으로 저주받은 이 땅을 정화하고 희망이 씨앗이 되살아나도록 조치해라.”
“존명!!!”
채채채채챙!
힘차게 대답한 헤이스팅스를 필두로 자리에서 우르르 일어난 무장들이 병장기를 일제히 뽑아 들었다.
그리고 대학살이 시작되었다.
[꺄아아아아악!]
[살려주십시오. 살려주십시오, 나으리!]
[저희가 도대체 무엇을 잘못했다고 이러시는 겁니까?]
[맞습니다! 저희는 그저 랭캐스터라기에 공격했을 뿐인데…]
[찢어 죽여도 시원치 않은 녀석들이 감히 누구를 랭캐스터로 착각하는 것이냐? 썩어빠진 귓구멍이 열려있다면 제대로 새겨들어라! 저 위에 있는 분이야말로 천년 가문의 진정한 후계자인 데일 폰 아슈킬님이시다! 감히 이 땅에 빌붙어 살아가는 버러지만도 못한 녀석들이 그분의 옥체에 손을 대다니…죽음으로 사죄해라!!!]
[그, 그럴 수가…]
[아이고, 죄송합니다! 나리!! 그런 줄도 모르고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도, 돌려드리겠습니다! 주제도 모르고 그분의 옷자락에서 뜯어낸 이 귀중한 장신구를 돌려드리겠으니 제발 한 번만…으아아아악!]
촤아아아악!
단칼에 베여버리고 말았다.
[필요 없다! 그분께서는 자신의 나약한 허물을 과거와 함께 통째로 불태워버리겠다고 하셨다! 그러니 자비를 원한다면 발버둥 치지 말고 얌전히 죽어라, 그게 바로 너희 버러지들이 위대한 천년 가문에 보일 수 있는 최소한의 충의??다!!!]
꺄아아아아아악!
최후통첩과 함께 일말의 자비도 없는 무자비한 공격이 시작되었다.
불과 십수 명의 무장이 사방의 퇴로를 차단하고 비명을 지르며 달아나는 수만 명의 병자들을 몰이 사냥하듯이 무투기를 퍼부어댔다.
구제소는 살려달라고 애걸하는 사람들이 몰려들어 초토화.
터무니없는 상황에 안색이 새하얗게 질린 노먼이 줄리아 교단의 성기사, 사제들과 함께 신전으로 달려가서 도움을 요청하려고 했지만, 그들은 학살이 시작되는 것과 동시에 신전 내부로 누구도 출입할 수 없도록 앞문과 뒷문을 모조리 잠가버렸다.
누군가에게 미리 언질을 받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수준의 대응 속도였다.
분노한 노먼은 사자후를 터트렸다.
“처음부터 모두 한통속이었다는 말이냐? 이런 제기랄 녀석들!!!”
우르르르
“친구로서 베푸는 마지막 자비다, 노먼! 줄리아 교단의 사람들은 놓아줄 테니 지금 당장 이 저주받은 땅을 떠나라!”
“야, 이 미친 새끼야! 도대체 무슨 정신 나간 소리를 지껄였기에 그렇게 착했던 꼬마가 이런 끔찍한 짓을 저지르는 거냐!”
“나는 미치지 않았다! 오히려 언제, 어느 때보다도 제정신이다!!”
“제정신이라고??? 의사의 본분은 첫째도, 둘째도 환자의 목숨을 구하는 거야! 그것 말고 쓰잘데기 없는 것들을 생각하면 사짜 들어가는 개새끼가 되어버리는 거고! 너 같은 새끼가 한때나마 우리의 동문이었다는 사실이 부끄럽고 수치스럽다!!!”
“마음대로 지껄여라! 내 생각은 절대로 변하지 않으니…”
“크라테스.”
두 사람의 대화를 조용히 듣고 있던 데일이 차가운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네, 도련님!”
“네놈은 도대체 누구의 허락을 받고 감히 저자들을 놓아주겠다, 말겠다를 떠들어대고 있는 것이냐?”
“네??? 아, 아니. 그것이…”
“죽여라, 헤이스팅스.”
“존명!”
푹!
다음 순간에 그의 등 뒤를 찌른 칼날이 단숨에 심장을 관통했다.
“크라테스!!!”
“크윽?! 어, 어째서 저를…도련님?”
바닥으로 풀썩 쓰러지면서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소년을 올려다보는 크라테스.
“네놈도 하찮은 신분에서 출세한 녀석이 아니냐? 하물며 이 버러지 같은 녀석들의 목숨을 구했다는 과거를 자백했으니 너야말로 이 수많은 죄악을 탄생하게 한 만악의 근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 지금 이 자리에서 죗값을 치르도록 해라.”
“과, 과연 그러하군요.”
사그라지는 목소리로 마지막 유언을 남기고 그대로 숨을 거뒀다.
“크라테스!!!!”
눈앞에서 허무한 친구의 죽음을 목격하고 절규하는 노먼.
“여전히 이해할 수가 없는 이상한 녀석이군. 자신을 배신한 친구의 죽음을 저렇게 애타게 슬퍼하다니 말이야. 버러지들은 모두 죽여라. 헤이스팅스.”
“존명!!!”
그로부터 블랙락 기사단의 매서운 공격이 펼쳐졌지만 노먼은 사제, 성기사들의 희생과 자신이 목숨을 구해준 병자들의 도움으로 그 지옥 같은 장소를 빠져나와서 도망칠 수가 있었다.
약 3만 명에 이르는 환자들 가운데 그날 하루 살해된 사람들의 숫자는 7천 명.
나머지는 아슈킬 가문의 직할령 전체로 뿔뿔이 흩어졌지만 그들 대다수가 다시는 신전 뒤쪽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숨을 거뒀다.
아카이아에 버금가는 대학살 소식이 다시 한번 제니아를 경악에 빠트렸다.
하지만 이 보고를 들은 돌로레스는 자식의 성장을 기뻐하며 웃음을 터트렸다고 한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