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5화 〉 홀로세 대멸종(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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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피리스 교단은 인간의, 인간을 위한, 인간 제일주의를 교리로 내세웠다.
창교?초기에는 모태교에서 분리한 소수의 사제들이 빛의 자손은 모두 평등하므로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똑같이 구원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성찬식 구원 의식의 시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 소문은 사방으로 무섭게 퍼져나가서 구름처럼 많은 병자가 몰려왔다.
당연하지만 소수의 인원으로 그것을 감당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신도는 빠르게 늘어났고 동참하는 사제도 많아졌지만 돈과, 인력, 물자, 등 모든 것이 턱없이 모자랐기 때문에 얼마 가지 못해서 파산할 위기에 처했다.
그대로 자연소멸했다면 역사에 기록되었을 미담일 것이다.
하지만 당시의 시대 상황이 그들을 예상하지 못한 방법으로 구원했다.
종족전쟁에서 승리하고 패권을 잡은 인간 세력.
여세를 몰아서 선주 문명에 열등감을 타파하려고 다방면으로 운동이 일어나던 시기였기 때문에 교단이 주장하는 인간 제일주의가 권력자와 민중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인간 왕국 연합은 데피리스 교단을 적극적으로 후원하며 그들의 포교 활동을 지원했다.
그야말로 순식간이라고 표현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빠르게 유레시아 대륙 최대의 종교 세력으로 성장한 것이다.
초대 교황으로 추대를 받은 성자 라피스는 이러한 교단의 성공에 고무되어서 자신의 즉위식 연설로 ‘세상 모든 인간이 가난과 질병에서 해방되도록 하겠다!’는 말을 떠들어댔다.
물론, 두 가지 공약 중에서 실현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오히려 빈부격차는 날이 갈수록 심해졌고 병자들의 숫자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어째서 그런 겁니까, 선생님?”
“병이 생기는 근본적인 원인은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했는데 인구는 폭발적으로 증가했습니다. 교단 하나만의 책임은 아니지만 자업자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자업자득이라니…”
“교단이 인간 제일주의 정책을 밀고 나가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음식을 나눠주고 병을 고치지 않았습니까? 죽을 사람들이 죽지를 않고 수명도 늘어났으니 인구가 늘어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죠. 게다가 당시에 사람들은 소위 말하는 베이비 붐 세대였습니다. 그게 무슨 뜻인지 아십니까?”
데일이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애새끼들을 미친 듯이 싸질렀다는 말입니다! 도련님은 상상도 하지 못하실 겁니다. 자기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운 가난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자식을 낳아대는지 말입니다! 농촌에서는 해가 떨어지면 아이를 만드는 것밖에 할 일이 없다고 하지만 단순하게 한가해서 그러는 것도 아닙니다. 공짜 노동력을 확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인간 녀석들은 연중무휴로 발정해서 달라붙는 새끼들이란 말입니다! 도시의 빈민조차도 형제자매가 6~7명인 경우가 수두룩한데 오죽하겠습니까? 열 명, 스무 명씩 마구잡이로 싸질러댄다는 말입니다! 마치 역겨운 암세포들이 분열하는 것처럼!!!”
“하, 하지만 인구가 늘어나는 것은 국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고 배웠습니다만…”
무시무시한 표정으로 소리를 지르는 크라테스에게 소년은 소심하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지만 다시 한번 윽박질러질 뿐이었다.
“그건 국가의 입장에서 늘어놓는 개소리에 불과합니다! 이웃 나라보다 병사가 부족하면 안 되니까요! 그 사태가 벌어지기 전까지 제니아의 인구는 200만에 불과했습니다. 수백, 수천 년 동안 그 숫자를 유지하면서 크게 늘어나지도 줄어들지도 않았죠. 하지만 지금은 1500만입니다. 1500만! 영지 전체의 병사가 5만 남짓하던 세력이 이제는 수십만이 집결하는 내전조차 우습게 여기는 지경이란 말입니다. 도련님의 눈에는 이 수치 변화가 정상으로 보이십니까?”
“배, 배움이 짧아서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쾅!
“대책 없는 인구 폭발이 이 세계를 종말로 끌어가는 겁니다. 그 뚜렷한 증거가 눈앞에 있지 않습니까?아시겠습니까??? 인간은 먹이사슬에 최상위에 군림하는 괴물입니다. 동물, 식물, 심지어는 생물이 아닌 광물과 무기질조차 탐욕스럽게 먹어치우며 생태계를 파괴하는 종말의 마수 자체란 말입니다! 그 숫자가 조절되지 않으면 지금 보시는 신전의 뒤편…바로 이 풍경이 우리 인류가 마지막으로 보는 모습이 되고도 남을 겁니다!!!”
“!!!!”
크라테스가 주장하는 이론은 홀로세 대멸종이라는 것이다.
이론 자체는 가정 교사들에게 엘리트 교육을 받은 데일이라서 들어본 적이 있었지만, 생태계 파괴가 대부분 인간에 의해서 일어난다는 사실은 인간 우월주의를 주창하는 교단이 이단시하고 있어서 세간에는 그렇게 널리 퍼지지 않았다.
직접 찾아보지 않는다면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았을 내용.
지금까지 배운 상식하고는 너무도 상충되는 소리였기 때문에 터무니없는 궤변이라는 외침이 데일의 입안을 맴돌았지만, 이상하게도 크라테스의 주장을 반박할 근거가 머릿속으로 떠오르지 않았다.
“아시겠습니까? 저들은 불쌍히 여겨질 가치가 없습니다. 저 또한 미몽에 빠져서 죽어가는 병자를 살리는 것이야말로 절대적인 선이라고 믿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책임지지 못할 목숨을 무턱대고 구하는 것은 세상 전체에 죄를 짓는 겁니다. 오히려 죽이는 것으로 살리는 경우도 있다는 말입니다!”
“죽이는 것으로 살리는 경우가 있다…제 손으로 죽인 폴리도 마찬가지라는 말씀입니까?”
“물론입니다. 그 증거로 그녀는 자신의 목숨만이 아니라 어머니까지 구하려고 하지 않았습니까? 게다가 혼기도 찼으니 얼마 가지 않아서 결혼했을 테죠. 도련님이 아닌 다른 남자의 아이를 낳았을 것이란 말입니다! 무려 다섯 명이나 낳고 싶다고 하더군요. 그 후손은 또 얼마나 늘어나겠습니까?!”
데일의 어깨가 부르르 떨렸다.
그야말로 악마의 속삭임이나 다를 바가 없었던 것이다.
“…하, 하지만 저는 그냥 그녀가 좋았을 뿐인데…”
“살기 위해서 사람 시체를 먹고 자신의 몸을 팔았던 여자를 말입니까?”
“…네?”
깜짝 놀라서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크라테스는 그런 소년에게 가까이 다가가서 양쪽 어깨를 잡았다.
“오히려 어째서 아니라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도련님. 이 더러운 시궁창에서 살면서 그녀가 고고한 학처럼 우아하게 날아서 당신의 곁으로 왔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살기 위해서 얼마나 더러운 짓거리를 했을지 누가 알겠습니까?”
“그, 그만하십시오!”
머릿속을 스치는 끔찍한 상상에 주치의를 밀쳐내려고 했지만 오히려 자신의 어깨를 강하게 쥐어 잡으며 힘을 넣었다.
“미리 사죄드리겠습니다, 도련님. 가능하면 말로 설득하고 싶었습니다만…아무래도 사모님이 지시하신 것처럼 직접 당해보셔야 정신을 차리실 것 같군요.”
“그게 무슨…”
“이 사실을 명심하십시오. 도련님은 저 더러운 버러지들하고는 다릅니다! 살아남기 위해서 이 세상을 끝없이 망치고 더럽히는 것밖에 할 수 없는 자들하고는 다르게 그 힘과 권력으로 세상을 올바른 모습으로 이끌어갈 수 있는 귀족이란 말입니다! 자신이 서있을 발판을 착각하지 마십시오!!!”
“크, 크라테스 경! 헉?!”
퍽!
다음 순간에 크라테스는 데일을 있는 힘껏 절벽 아래로 던져버리고 말았다.
아무것도 붙잡히지 않는 허공.
그곳을 자유 낙하하여 십수 미터 아래로 추락해버린 소년.
쿵!
금강투합체를 사용해서 간신히 살아났지만 수많은 병자가 당황한 표정으로 쳐다보는 가운데 주치의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랭캐스터다!! 저기에 랭캐스터 소년이 있다아아!! 가지고 있는 물건을 모조리 빼앗아서 죽여라!!!”
“무, 무슨…헉?!”
당황할 사이도 없이 하이에나처럼 돌변한 병자들의 시선이 일제히 데일에게로 향했다.
[죽여라!!]
[랭캐스터라고? 으하하하하하! 멍청한 새끼, 그렇게 좋은 정보는 혼자서 알고 있었어야지!]
[저 옷과 장식을 봐! 하나만 팔아도 이 빌어먹을 시궁창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포동포동한 고기…흐흐흐흐!]
[서두르지 마! 죽이기 전에 먼저 귀족 나리의 속살을 맛봐야지!]
돌맹이와 몽둥이.
차마 무기라고 표현하기도 애매한 것들이었지만 광기로 번뜩이는 병자들이 가까이 다가오자 소년은 패닉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역겨운 냄새는 기본이고 끔찍한 몰골 자체가 자신하고 같은 인간이라고는 도저히 믿기 어려운 생김새.
“지, 진정하세요! 뭔가 착오가 있는 겁니다. 저는 랭캐스터가 아니라…”
[덮쳐!!!]
“으아아아악!!”
퍽!!
누군가의 외침과 동시에 달려드는 남자 하나를 반사적으로 무공을 사용해서 죽여버리고 말았다.
물컹물컹한 고기를 주먹으로 통째로 관통하는 감각.
“끄어어어억”
또다시 사람을 죽였다는 충격보다는 그 더러운 환자에게서 주르륵 흘러나오는 더러운 체액이 자신에게 달라붙는 감각이 더 소름 끼쳤다.
“내, 내가 다시 사람을…사람을???”
이게 정말로 사람인 것일까?
그런 의문이 뇌리를 스치는 가운데 데일이 넋을 잃어버렸다고 생각한 환자들이 일제히 달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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