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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33화 〉 홀로세 대멸종(7) (333/429)

〈 333화 〉 홀로세 대멸종(7)

* * *

거의 열댓 바구니가 넘어가는 음식이 쏟아졌지만 석 달 동안 굶주린 사람들의 허기를 채워주기에는 턱없이 모자란 양이다.

곧이어 얼마 되지 않는 식량을 차지하기 위한 진흙탕 싸움이 펼쳐졌다.

빵 한 귀퉁이를 빼앗으려고 새빨간 피로 물들어가는 돌과 몽둥이.

수많은 시체가 땅 위로 널브러지는 모습은 성찬식이 아니라 지옥의 만찬이라고 불러도 과언이 아니었지만, 이렇게 터무니없는 분쟁의 원인을 제공한 당사자들은 강 건너 불구경을 하는 것처럼 태평하기 이를 데가 없었다.

“저 음식들은 모두 ‘앞쪽’손님들이 먹고 남긴 것들입니다. ”

“…네?”

“쉽게 말하면 음식물 쓰레기라는 거지.”

노먼이 중간에 끼어들어서 부연 설명을 했다.

“그럴 수가…저 사람들은 겨우 그런 것을 위해서 저렇게 끔찍한 다툼을…”

“평생 먹을 걱정 없이 살아온 너에게는 겨우 그런 것에 지나지 않을지 모르겠지만 여기에 있는 사람들은 절실해서 말이야. 그래도 교단이 잘못하는 것은 아니지. 돈도 없고, 몸으로 때울 능력도 없는 밑바닥 축생들에게 은혜를 베풀어주는 거잖아? 위대한 데피리스님 만만세라는 거지.”

“적당히 하라고 하지 않았는가!”

비아냥거리는 그를 크라테스가 엄하게 다그쳤다.

“이해할 수 없습니다, 선생님! 교단은 어째서 이렇게 끔찍한 짓을 저지르는 겁니까? 도대체 무엇을 위해서…”

“대답해드리겠습니다. 하지만 먼저 성찬식을 지켜보시죠.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쿵! 쿵! 쿵!

먹을 것을 차지하기 위한 아귀다툼이 어느 정도 진정되는 기미가 보이자 주교는 스태프를 바닥에 두드려서 군중들의 이목을 끌어보았다.

[지금부터 구원 의식을 진행하도록 하겠다. 하늘에서 천계?가 내려올 것이니 경건한 마음으로 열과 성을 다해서 기도하도록 하라!]

환호성은 나오지 않았다.

대신에 사제와 군중을 가리지 않고 장내에 있는 모든 사람이 일제히 무릎을 꿇어서 성호를 그리고 기도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크라테스도 무릎을 꿇자 엉거주춤 뒤따르는 데일.

“자네는 기도하지 않을 건가?”

“미안하지만 나는 우리 여신님 말고는 누구에게도 고개를 숙일 생각이 없어서 말이야.”

“이단이라도 불려도 할 말이 없는 녀석이군.”

사이비 같고 장난스럽게 느껴지던 지금까지 하고는 다르게 경건한 태도로 축성 기도를 진행하는 주교.

그리고…

지이이이이잉­

하늘에서 내려온 빛이 스포트라이트처럼 세 사람을 감쌌다.

[젠장!]

[큭, 이번에도 글러 먹은 건가?]

[어째서야? 빌어먹을 시궁창에서 3년이나 악착같이 버티고 버텼는데 어째서 선택받지 못하는 거냐고?!]

시기, 증오, 분노, 절망, 한탄, 좌절, 등.

당첨되지 못한 사람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질투심에 몸부림치며 울분을 터트렸다.

반면에 찬란한 빛에 휩싸인 사람들은 껑충껑충 뛰면서 환호성을 질렀다.

[으아아아아악! 됐다, 됐어!! 드디어 사면받았어. 이제야 사면받았다고! 으하하하하하하! 개자식들아 잘 먹고 잘살아라! 나는 두 번 다시는 여기로 돌아오지 않을 거야!!]

[저, 정말로 내가 선택된 거야?]

[아아아아! 데피리스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사면받은 자들을 지금부터 신의 거처로 초대하겠노라!]

주교의 외침과 함께 세 사람은 중력이 사라진 것처럼 떠올라서 절벽 위 발판으로 사뿐히 내려졌다.

스태프가 빛나자 더러운 때와 악취도 순식간에 씻겨져 날아갔다.

마치 새로운 사람으로 태어나는 것처럼 신비로운 광경.

[기적이다!]

[기적이야, 기적이 일어났어!]

[아아아아! 자비로운 데피리스님. 다음에는 모쪼록 이 버러지만도 못한 축생을 구원해 주십시오!]

“기적 같은 소리 하고 자빠졌네. 처음부터 끝까지 연출이야 연출. 사기도 적당히 쳐야지. 아니, 이제는 거짓말을 하도 해대니까 지들도 진짜하고 가짜를 구분하지 못하는 거 아니야?”

심사가 뒤틀린 노먼이 쉴 새 없이 구시렁거렸다.

하지만 데일은 그 말을 가볍게 흘려듣지 못했다.

“정말입니까? 선생님. 저 모든 것이 사기라는 게…”

“전부는 아닙니다. 선택받는 사람은 주교가 적당히 눈대중으로 고르는 것이 맞습니다만 그래도 구원받는다는 사실 자체는 틀린 게 아니니까요.”

“입은 삐뚤어져도 말은 똑바로 해라. 구원받는 게 아니라 구원받을 수 있을지도 모르는 거야.”

“그건 또 무슨…”

웅성웅성

재차 물어보려고 했지만 장내의 소란이 커지는 바람에 그곳으로 시선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지금 뭐라고 했는가?]

싸늘한 표정으로 물어보는 주교.

그의 앞에는‘구원’받은 남자 하나가 오체투지해 있었다.

[염치없는 부탁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주교님. 하지만 가엾고 딱한 처지를 헤아려주십시오! 제 천계를 홀로 남은 불쌍한 어머님에게 옮겨주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아직 젊고 튼튼하지만 어머님의 병세는 지나치게 위중합니다. 데피리스님의 기적이 아니면 오늘, 내일을 버티지 못하고 틀림없이…]

벌떡!

“저런 멍청한 새끼!!”

소파에 늘어지게 누워있던 노먼이 벌떡 일어나면서 외쳤다.

[어처구니가 없군. 그대는 지금 데피리스님의 천계가 잘못되었다고 의심하는 것인가?]

[아, 아닙니다. 제가 감히 어떻게 그런…]

[그게 아니라면 무슨 수작으로 그따위 망발을 지껄이는 것이냐! 지옥에 떨어져서 죽어라! 빌어먹을 불신자 녀서어어어억!!!]

쾅!

자신을 감싸는 빛이 사라져버리는 것과 동시에 주교의 발길질에 복부를 걷어차인 남자가 난간 아래로 추락했다.

충격과 경악, 그리고 불신.

촤아아아악!

모든 감정이 뒤섞인 눈동자로 지면에 충돌해서 터져나가는 과일처럼 뭉개져 버리고 말았다.

“멍청한 녀석! 저 빌어먹을 소시오패스 새끼들에게 그따위 감성팔이가 통할 것 같으냐?! 왜 자기 자신을 구할 유일한 기회를 날려버리는 거냐! 왜!!!”

흥분한 노먼이 짐승처럼 울부짖으며 유리 벽을 두드려댔다.

“괘, 괜찮으십니…”

“자극하지 마십시오, 도련님. 지금은 가만히 내버려 두는 것이 좋습니다.”

“하지만…”

하지만 남자의 죽음을 진심으로 애통하게 여기는 사람은 그밖에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완전히 다른 바깥의 분위기.

[빌어먹을 불신자 새끼! 왜 쓸데없이 끼어들어서 구원받을 기회를 헛되이 날려버리는 거야?]

[젠장! 이 녀석만 아니었어도 내가 선택받았을 텐데.]

[이 새끼 애미가 누구야? 누구 아는 사람 있어?! 얼마 남지 않은 숨통 내가 찾아가서 끝장을 내버리겠어!!]

“어떻게 저리도 끔찍한…”

상상을 초월하는 잔인한 대화 내용에 데일의 안색이 새파랗게 질려버리고 말았다.

“천한 것들의 본성이라는 겁니다.”

“뭐라고 지껄이는 거야, 이 배신자 새끼가? 여기 사람들의 심성이 이렇게까지 뒤틀려버린 이유는 하나부터 열까지 빌어먹을 데피리스 교단 때문이라고! 루크레스 3세만 아니었어도…”

“도련님의 교육에 참견하지 마라. 쓸데없는 소리 지껄이지 말라고 했을 텐데?”

“너 이 새끼. 진짜로 무슨…”

우와아아아아아!

두 사람이 다투는 목소리는 바깥에서 터져 나오는 환호성에 묻혀버리고 말았다.

“아무래도 지난 성찬식의 탈락자가 나온 모양이군.”

“제기랄.”

한숨을 내쉬는 크라테스의 말에 노먼도 욕지거리를 뱉어냈다.

성기사들에게 신전 안에서 끌려 나오는 여성.

상당히 젊은 나이로 피골이 상접한 아래쪽 사람들하고는 다르게 생긴 것도 말끔했고 옷차림도 말끔했다.

“탈락했다는 게 무슨 뜻이죠?”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감지하고 침을 삼키며 질문하는 데일.

“보시면 압니다.”

다음 순간 겁에 질린 여성은 성기사들의 손길을 뿌리치고 주교 앞으로 달려가서 무릎을 꿇었다.

[살려주십시오, 주교님! 간절히 부탁드리건대 제발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십시오! 소녀입니다! 석달 전에 데피리스님에게 선택을 받아서 모든 죄를 사면받은 소녀란 말입니다! 간택에 실패한 것은 뭔가 착오가 있었던 겁니다. 소녀에게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시면…]

[그쪽이야말로 뭔가 착각하는 것 같군.]

[…네?]

[네 말대로 네가 지은 과거의 죄는 사면을 받았다. 그렇기에 지난 석 달 동안에 사람처럼 먹었고, 사람처럼 입었고, 몹쓸 병을 고쳐준 것으로도 모자라서 높은 분들을 섬길 수 있는 교육을 받게 해줬지. 간택 받지 못한 것은 대단히 유감스러운 일이지만 신전에서는 해줄 만큼 해주지 않았더냐? 이제는 네가 원하는 곳으로 떠나서 자유롭게 살아가면 되는 일이야.]

다정한 목소리로 말하고 있었지만 내용은 사형 선고다.

새파래진 안색으로 부들부들 떨던 그녀는 참지 못하고 폭발해버리고 말았다.

[웃기지 마! 그렇다면 최소한 저놈들이 있는 소굴로 돌려보내지는 말라고! 지금 상태로 강간과 식인에 미쳐 있는 놈들 사이로 떨어트리다니 제정신…꺄악?!]

지이이이이잉­

주교의 스태프가 빛나는 것과 동시에 하늘로 두둥실 떠올랐다.

[하여간에 천한 본성은 숨기지를 못하시는군. 그래도 잠자리 봉사는 그럭저럭 괜찮았는데 말이야.]

[잘못했어요, 주교님! 살려주세요, 제발 살려주세요!!!]

울며불며 애원했지만 그는 뒤틀린 미소를 지으며 여성을 천천히 공중으로 이동시켜 바닥에다가 사뿐히 내려놓았다.

그리고 수많은 짐승들이 그녀를 덮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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