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1화 〉 홀로세 대멸종(5)
* * *
데일은 통로 안쪽에서 태어나서 처음으로 맡아보는 지독한 악취가 바람에 실려 오자 눈살을 찌푸렸다.
중간에 마주친 여사제.
“빛의 은총이 함께하기를 바랍니다.”
“섬기는 자에게도 그러하기를.”
수척한 얼굴로 피투성이 앞치마를 입은 그녀가 자리를 비켜주면서 성호를 그리자 크라테스도 가볍게 화답하면서 지나쳐 갔다.
웅성웅성
출구로 다가갈수록 소란이 커졌다.
이해할 수 없는 긴장감으로 신체에 힘이 돌아오자 부축을 밀어내면서 일어서는 데일.
“도대체 여기가 어디입니까? 선생님.”
“폴리를 좋아하셨습니까?”
“가, 갑자기 무슨 소리를…”
“부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사람을 좋아하는 마음이 자연스러운 게 아닙니까? 대상이 아무리 미천하고 볼품없는 출신이라고 해도 겉만 보면 그럴듯했죠. 제법 반반한 외모의 계집이 아니었습니까? 하하하.”
“선생님…?”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메마른 웃음을 터트리는 크라테스.
나이 어린 소년은 자신에게 늘 자상하게 대해주었던 주치의가 이러는 이유를 도무지 알아차릴 수가 없었다.
“받으십시오.”
출구 앞에서 마스크를 넘겨주는 무장.
“이것은…?”
“착용하세요. 여기서부터는 본격적으로 역겨워질 겁니다.”
“역겨워지다니 그게 무슨…윽?!”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바깥으로 나오자마자 허리가 껐였다.
세상 모든 종류의 음식 쓰레기를 모아서 발효시키는 것처럼 끔찍하기 이를 데가 없는 악취.
허겁지겁 마스크를 착용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톡 쏘는 자극적인 냄새가 천속을 뚫고 들어와서 사정없이 비강을 후드려 팼다.
[프로텍트 필터]
지이이잉
크라테스가 마법을 사용해서 투명한 막을 만들어서 씌워주자 간신히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고마워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도련님. 저 아래를 보십시오.”
“이, 이건…”
시야가 탁 트이면서 들어오는 광경.
그가 가리킨 언덕 아래쪽에는 수많은 사람이 운집해 있었다.
어림잡아도 수만이 넘어가는 숫자.
하나같이 초라하고 남루한 행색에 사지 멀쩡한 경우가 드물고, 수많은 파리가 앵앵거리며 날아다니는 더러운 하수처리장 같은 환경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져서 끙끙거리며 죽어가는 곡소리를 내고 있었다.
뼈만 앙상하게 남아서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모를 사람들이 대다수.
머리부터 발까지 더러운 오물과 먼지로 덮여서 눈동자만 반짝거리며 빛나는 모습이 마치 동굴 속의 짐승들이 웅크려서 뭉쳐 있는 것처럼 보였다.
악취의 근원지가 그곳이라는 사실을 짐작하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저 사람들은 도대체…”
“도련님께서 아무런 신경을 쓰실 필요가 없는 하찮은 아랫것들입니다. 폴리하고 마찬가지로 말이죠.”
“그, 그게 무슨…”
“그녀가 태어난 장소가 바로 이곳입니다.”
“네?!!”
뒤통수를 때리는 이야기에 데일의 눈동자가 휘둥그레졌다.
“앞으로 가시죠. 빈민 구제소가 저기에 있습니다.”
“자,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선생님! 그게 무슨 말씀이신가요? 폴리가 여기에서 태어났다니…”
“서두르지 않으면 성찬식에 지각하실 겁니다.”
질문을 무시하며 화제를 돌린 크라테스가 무장들을 이끌어 앞서가 버리자 어쩔 수 없이 뒤따를 수밖에 없었다.
협소한 소로는 길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할 정도로 형편없지만, 길가 그늘막에는 수많은 환자가 버섯처럼 다닥다닥 늘어서서 웅크리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귀족 나리의 행차에 허둥지둥 불편한 몸을 움직여서 엎드리고 고개를 조아렸다.
하지만 데일은 그런 사람들의 모습을 제대로 쳐다볼 수가 없었다.
왜냐면 너무 끔찍했기 때문이다.
눈코입이 제대로 달린 멀쩡한 얼굴은 극소수.
피부가 없어서 광대뼈가 고스란히 노출되어 있거나 눈이 있을 자리에 시커먼 어둠만 도사리고 있는 경우도 있었고, 얼굴 전체가 알 수 없는 이유로 울퉁불퉁하게 부풀어 올랐거나 고름인지 무엇인지 알 수 없는 끈적한 녹색 액체가 흘러내리는 경우도 있었다.
“무섭습니까? 아니면 역겹습니까? 도련님.”
“저, 저 사람들은 도대체 어쩌다가 저렇게 된 거죠?”
“모릅니다. 사연들이야 제각각이겠죠. 하지만 아랫것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봤자 어쩌겠습니까? 알고 싶지도 않군요.”
“선생님께서 고쳐주시면 안 될까요? 선생님의 치유 마법이라면…”
“죄송하지만 그것은 제 역할이 아닙니다, 도련님. 하지만 걱정하지 마십시오. 빈민 구제소가 코앞에 있으니까 거기에 있는 사제들에게 도움을 요청해보시는 것은 어떻습니까?”
“그러면…”
크라테스의 말에 일시적으로 표정이 밝아진 데일이지만 구호소 근처로 도착하기가 무섭게 터져 나오는 비명과 괴성을 듣고 그대로 굳어버리고 말았다.
[끄아아아아악!]
[피부가 타들어가고 있어! 살려줘, 살려줘어어어어어!]
[엄마! 엄마! 엄마아아아!!]
[미친 사제놈이 사람 잡는다. 으아아아아악!!]
[닥쳐 이 쓰레기 같은 새끼들아! 살고 싶으면 수건이나 악물어!]
[날뛰지 못하게 손발을 묶어! 저항하면 아예 톱으로 쓸어버려. 이런 XX같은 새끼들!!]
[그냥 머리통을 망치로 내려찍어! 이 새끼는 그냥 기절시켜버리는 것이 낫겠어!!]
촤아아아아아악!
“히이익?!”
분수처럼 터져 나오는 피와 고름이 자신의 발치로 튀자 소년은 기겁하며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그야말로 전쟁을 방불케 하는 광경.
머리부터 발끝까지 피투성이로 더럽혀져 있는 10여 명 정도의 사제들이 중상 환자들과 사투에 가까운 치료행위에 몰두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데일하고 시선이 마주친 한 남자 사제가 버럭하고 소리를 질렀다.
“너는…웬 밤톨 같은 녀석이 여기까지 굴러들어온 거야?! 여기는 너 같은 귀족 도련님이 올 곳이 아니야! 방해하지 말고 어른들에게 돌아가! 네가 있을 곳으로 썩 꺼져버리란 말이야!!!”
“저, 저는…”
“진정하게 노먼. 그놈의 불같은 성격은 여전히 여전하군.”
“크라테스!! 이 빌어먹을 배신자 새끼. 뻔뻔한 낯짝으로 잘도 살아있구나? 하하하하하!”
지인을 발견한 남자는 마스크를 벗어던지고 유일하게 빨갛게 물들지 않은 새하얀 이빨을 드러내면서 함박웃음을 터트려 보였다.
‘서로 욕하면서 반가워하고 있어???’
불알친구라는 개념을 모르는 데일은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쳐다봤지만 두 사람은 뜨거운 악수를 하며 서로의 어깨를 두드려댔다.
“노먼 선생님! 4번 환자가 또다시 기절했습니다! 지금 당장 조치를 하셔야…”
“13번 환자가 발작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붕대와 소독약이 부족해요, 선생님!!”
“시끄러!!!!”
사제들이 여기저기에서 그를 불러댔지만 버럭 소리를 질러서 단숨에 다물어버리게 했다.
“한 시간 정도 친구하고 떠들다가 돌아올 테니까 당분간은 너희끼리 알아서 처리해!”
“하, 하지만 선생님이 자리를 비우면 목숨이 위태로운 환자가…”
“내가 없어서 뒈질 새끼라면 그냥 뒈져버리라고 해! 시체한테 낭비할 시간은 없으니까 끝나고 나면 깔끔하게 침대나 비워 놔. 다음 환자가 그 새끼 병균에 감염되지 않도록 깨끗하게 말이야!!”
“아, 알겠습니다.”
마지못한 대답이 돌아오자 노먼은 일행을 돌아보면서 손목에 끈적하게 달라붙어 있는 피투성이 위생장갑을 뜯어내듯이 벗어던졌다.
“구호소 2층에 내 개인 사무실이 있어. 씻고 돌아올 테니까 먼저 가 있게. 무슨 일로 이런 시궁창에 왔는지는 거기에서 이야기하도록 하지.”
“성찬식을 구경하고 싶은데 가능하겠나?”
“성찬식? 그따위 악취미 행사는 뭐하러…쯧. 하기야 내가 상관할 바는 아니지. 걱정하지 않아도 사무실 벽면은 통유리로 되어 있으니까 보고 싶으면 얼마든지 보게. 다른 곳보다는 전망이 좋아. 이 지긋지긋한 악취도 안 나고 말이야.”
“딱 좋군.”
잠시 후.
데일 일행은 여사제에게 안내받아서 노먼의 사무실에 도착할 수 있었다.
책상과 소파, 테이블까지 제법 그럴듯하게 구색이 갖춰져 있기는 했지만 단점이 있다면 남자 쉰내에 먼지가 수북하게 쌓여있다는 것이었다.
“바깥하고 여기가 다른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군요.”
[에어리어 클리닝]
후우우우웅
그렇게 중얼거린 크라테스가 마법을 사용하자 방 전체가 깨끗하게 치워지면서 악취도 단숨에 날아가 버렸다.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선생님.”
조용히 다물고 있던 데일이 슬그머니 입을 열었다.
“무엇이 말입니까?”
“아래층에서 일어난 광경 전체를 이해할 수 없어요. 그곳에 일하는 분들은 전부 사제잖아요? 어째서 치유 마법을 사용하지 않고 하나같이 그렇게 끄, 끔찍한 외과 수술을 하고 있는지…”
“아, 그것 말씀이군요.”
고개를 끄덕인 그가 재차 입을 열었다.
“도련님의 눈에는 그 환자들이 어떻게 보였습니까?”
“불쌍했어요. 어쩌다 그런 상태가 되어서 이런 곳으로 왔는지…”
“불쌍하다…맞는 말씀입니다. 피골이 상접해서 뼈다귀만 남아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영양 섭취를 제대로 하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아마 최근에 먹은 거라고는 들쥐나 사람 고기가 전부겠죠.”
“사, 사람 고기요???”
“저기에 먹을 것이 얼마나 보이십니까?”
크레테스가 통유리 너머로 가리킨 장소는 정말로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이었다.
그나마 신전에서 흘러나오는 시냇물 하나가 흐르고 있지만 터무니없이 더러워서 폐수와 다를 바가 없었다.
“치유 마법은 사람의 자연치유력을 활성화하는 기술입니다. 하지만 여기에 있는 사람들은 그것을 버텨낼 체력 자체가 없습니다. 힐을 사용하면 상처는 아물어도 기운이 빠져서 그대로 죽어버리니까요. 그들을 완치시키려면 충분한 영양 공급이 필요합니다. 외과 수술은 단순한 연명 수단에 불과합니다. 고쳐줘봤자 저기에서 금방 새로운 병에 걸려서 돌아와 버리니까요.”
“…”
데일은 아무런 말도 못하고 침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