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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30화 〉 홀로세 대멸종(4) (330/429)

〈 330화 〉 홀로세 대멸종(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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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아름다운(?)백합꽃이 피어나고 있을 무렵.

돌로레스와 사라는 vip관중석에 앉아서 쿠키 체이스를 구경하고 있었다.

마법사들이 인형 모양의 쿠키를 조종해서 도망치게 하고 트럼프 병정 옷을 입은 병사들이 추격해서 사로잡는 지극히 단순한 규칙의 게임.

제한 시간 안에 가장 많이 사로잡은 MVP 병사는 상금과 포상 휴가를 받을 수 있었고, 거기에 우승자를 맞추는 배팅 도박까지 허용되자 관중들도 열광적으로 몰두하며 선수들을 응원했다.

[야, 이 XX야! 뒤뚱거리는 오리도 너보다는 빠르겠다. 걷지 말고 뛰란 말이야!]

[힘내라, 힘내! 네 승리에 모든 재산을 걸었어!]

[메이드의 치마 속으로 도망치다니 저런 부러운…아니, 응큼한 녀석!]

[아이고 아까워라! 거의 다 잡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는데…]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에 일희일비가 오갔다.

생각보다 치열한 경쟁이 펼쳐지는 것도 볼거리지만 작고 날렵한 쿠키 인형들이 트럼프 병정들을 피해서 아슬아슬하게 달아나는 모습이 손에 땀을 쥐게 했다.

그것을 쫓느라 이리 구르고 저리 구르며 우스꽝스럽게 나뒹구는 모습에 여기저기에서 터져 나오는 박장대소.

태어나서 처음 보는 게임에 돌로레스는 손뼉을 치면서 즐거워했지만 사라는 지루하다는 표정으로 늘어지게 하품을 했다.

“피곤하신가요?”

“어머, 죄송합니다. 게임은 재미있는데 역시 보는 것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아서…크흠. 갑작스럽지만 사모님, 저하고 이 게임으로 대결 한번 해보시지 않겠어요?”

“대결이라면 어떤…”

“아슈킬 가문과 크레이그 가문의 자존심을 거는 친선 대결이죠. 무장은 제외하고 양 가문에서 선발한 병사 10명으로 시합을 합시다.”

“괜찮은 생각이군요. 두 가문의 화합을 위해서…”

“하지만 그냥 대결해서는 재미가 없겠죠? 그러니까 내기를 합시다. 진 사람이 이긴 사람의 소원을 들어주는 거예요.”

“소, 소원이라면 어떤…”

다양한 망상을 떠오르게 하는 발언에 침을 삼킨 돌로레스가 슬그머니 물었다.

“아무거나 상관없어요. 즐거운 파티 분위기를 망칠 무례한 요구는 곤란하지만 우리 사이라면…가볍게 키스 정도는 주고받아도 되겠죠?”

“우, 우리 사이??? 키, 키, 키스??????”

“어머, 어머♡ 혹시 진지하게 받아들이시는 거예요? 뭐 사모님이 원하신다면 싫지는 않지만…후후후♡”

꼬리 달린 여우처럼 눈웃음을 치자 유혹을 참지 못하고 한 번에 넘어가 버렸다.

“좋아요! 나중에 딴소리하기 없습니다!!”

“상당히 자신만만하시네요. 크레이그 가문을 얕보면 곤란합니다?”

“저야말로 절대로지지 않을 겁니다, 절대로!!”

화르르륵!

승부욕에 불이 붙은 돌로레스는 하트의 여왕이 되어서 병졸들을 이끌었고 사라는 다이아의 여왕으로 옥좌에 다리를 꼬고 앉았다.

쿠키 인형을 조종하는 마법사도 양쪽에서 절반씩 차출.

빨강과 파랑으로 색깔을 나누고 반대쪽 진영에서 조종하는 인형을 추격해서 사로잡아야만 득점으로 인정되는 시합룰이 추가가 되었다.

와아아아아아!!

[돌로레스님 파이팅!!]

[크레이그 가문의 저력을 보여주세요, 사라님!]

수장들의 자존심이 달린 한판 대결이 시작되려고 하자 가신들은 열광적으로 응원을 쏟아내었고, 충성 경쟁을 하듯이 앞다퉈서 가문의 승리에 배팅하면서 판돈 역시 최고치를 경신했다.

지금까지 한 번도 보여준 적이 없는 의욕을 불태우면서 게임을 준비하는 돌로레스.

하지만 시합 직전에 시종 하나가 헐레벌떡 통신 마도구를 가지고 달려오는 바람에 김이 새버리고 말았다.

“무슨 일이야?!”

“죄, 죄송합니다. 사모님! 하지만 도련님에 관한 일이라서…”

매섭게 쏘아보자 넙죽 엎드리면서 사과해왔다.

“칫!”

무시할 수 없는 이야기였기 때문에 마도구를 건네받자 주치의 크라테스와 연결이 되었다.

[밤늦게 실례합니다, 사모님. 하지만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실례라는 사실을 알면 용건부터 말해. 데일에게 무슨 일이 있어서 연락한 거야?”

[진찰 결과가 좋지 않습니다. 심신이 미약해진 것도 문제지만 물과 음식에 일절 손을 대지 않으시니 영양 부족이 심각한 상태에 이르셨습니다.]

“이런 한심한 녀석!”

분노한 돌로레스가 소리를 질렀다.

그녀는 이미 아들인 데일이 식음을 전폐하고 방에 틀어박힌 이유를 알고 있었다.

계기는 폴리라는 하녀를 자신의 손으로 죽인 것.

어머니의 명령에 따라서 시키는 대로 하기는 했지만 그 사건이 트라우마가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처음으로 저지른 살인.

그것도 첫사랑에 가까운 호의를 품고 있었던 여성을 자신의 손으로 죽여버렸으니 밤마다 악몽에 시달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하지만 데일의 증상은 거기에서 멈추지 않았고 한동안 시름시름 앓는가 싶더니 이제는 물과 음식마저도 입에 대지 못하는 지경에 도달했다.

평범한 어머니라면 자식의 이런 사정을 가엽고 딱하게 여기는 것이 당연했지만 돌로레스는 오히려 불같이 화를 내면서 길길이 뛰었다.

“장래에 천년 가문을 다스리는 가주가 되어야 하는 녀석이 어쩌면 그렇게 배포가 작다는 것이냐! 기가 차서 말이 나오지를 않는군. 도대체 가정교사는 그동안 무엇을 가르쳤기에 내 아들이 그렇게 비루하고 한심한 계집년에게 휘둘려서 이런 지경이 되어버리게 만들어?!”

[고, 고정하십시오. 사모님! 마음은 이해하겠지만 일단 도련님의 안위를 생각하셔서 뭔가 조치를 취하셔야…]

“조치? 조치라면 방도가 있지!”

[소인에게 부디 하교下?해주십시오!]

뭔가를 생각하듯이 검지로 마도구를 다가닥 두드리던 돌로레스가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내일이 마침 데피리스 교단의 성찬식 행사가 열리는 날이지?”

[네, 그렇습니다만…]

“좋아. 그렇다면 내일 오전에 내 아들을 신전의 뒤편으로 데리고 가도록 해라.”

[시, 신전의 뒤편으로 말입니까?]

“그래. 무슨 불만이라도 있느냐?”

[아닙니다! 하지만…도련님은 이제 겨우 7살밖에 되지 않았는데 그런 체험을 하시는 것이 과연 치료에 도움이 될지…]

“못하겠으면 오늘부로 주치의를 갈아치워야 하겠네. 정말로 못하겠어? 크라테스 경.”

[아, 아닙니다! 마님. 알겠습니다, 명령에 따르겠습니다!!]

“좋아. 그러면 부탁하도록 할게. 내 아들이 한심한 망상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똑똑히 보여주라고. 현실을. 알겠어?”

[네, 알겠습니다!!]

쿵!

거칠게 통신을 끊어버린 그녀는 사라가 자신을 쳐다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재빠르게 표정을 수습하며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각하. 본의 아니게 못난 모습을 보여드렸네요. 호호호! 그러면 이제 본격적으로 게임을 시작해 볼까요?”

****

다음날 오전.

무장들에게 방에서 끌려 나오다시피 밖으로 외출하게 된 데일은 크라테스와 함께 마법사들이 주문을 외우는 공간 이동의 마법진으로 올라가 섰다.

“지금…어디로…이동하는 건가요? 선생님.”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힘없이 물어보는 소년.

“오르드리 지부의 데피리스 신전입니다. 오늘 열리는 성찬식 행사에 참석할 예정입니다.”

“그렇…군요.”

모든 것을 체념한 표정으로 조금도 저항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도 모르게 연민의 마음이 솟구쳐 오르는 주치의였지만, 돌로레스를 떠올리면서 마음을 굳게 먹었다.

지금부터 자신은 악마가 하는 일을 해야만 했다.

신전은 오르드리에서 동남쪽으로 40km떨어진 허허벌판의 외딴 장소 언덕에 위치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찬식 행사에는 수많은 귀족과 부르주아 계급의 호화로운 마차 행렬이 줄줄이 이어져서 정문 입장을 기다리고 있다.

그곳에 신이 머무르고 있지는 않을지라도 첨탑 꼭대기는 하늘을 찌를 듯이 높디높았고, 웅장한 건축물의 위용은 마주 서고 있는 사람을 한없이 왜소하고 보잘것없는 존재로 격하시킨다.

물론, 아슈킬 가문의 후계자라면 은총을 구걸하는 행렬에 합류하지 않아도 교구장이 먼저 신발을 벗어 던지며 달려오는 것이 국룰이다.

하지만 그는 크라테스 경과 몇 마디 말을 주고받은 다음에 헛기침을 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크흠, 크흠! 과, 과연 그렇군요. 그런 이유로 방문하셨다면 알겠습니다. 문제가 없도록 세팅을 하겠지만…그래도 주의하십시오. 요즘 들어서 민심 자체가 워낙에 흉흉하다 보니…”

“알겠습니다.”

“…?”

데일은 두 사람이 주고받는 대화를 이해하지 못하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아직 어린 나이지만 평소에도 수차례 이곳을 방문했던 소년이다.

하지만 오늘 측근들이 자신을 데리고 향하는 곳은 지금까지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신전의 뒤편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지금 어디로…가는 겁니까? 선생님.”

“이 세계의 진실이 존재하는 장소입니다, 도련님.”

“진실이라고요?”

“그렇습니다. 가능하면 모르고 외면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속 편한 불편한 진실이 기다리는 곳이죠.”

그렇게 대답하는 그와 무장들의 표정은 싸늘하기 이를 데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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