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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29화 〉 홀로세 대멸종(3) (329/429)

〈 329화 〉 홀로세 대멸종(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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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 방백의 군대가 오르드리에 주둔한 다음부터 아시에스타 궁전 주변은 자욱한 분홍색 안개로 둘러싸였다.

칼센 사막의 주술사들이 만들어낸 망각몽忘夢.

이 진법에 홀린 사람들은 자신들이 무엇을 하려고 했는지 잊어버리고 저항할 수 없는 귀소본능에 사로잡힌다.

[내가 여기는 왜 왔지? 이런 이상한 피켓까지 들고서…]

[모르겠어, 도저히 기억이 나지 않아. 머릿속이 혼란스러워.]

[뭔가 맥이 빠졌어. 집으로 돌아가자.]

[그러는 게 낫겠어.]

눈이 풀려서 휘청거리는 시위대가 나른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터덜터덜 걸음을 돌렸다.

“오호호호호호! 파리 떼처럼 시끄럽게 앵앵거리는 녀석들의 꼬라지가 좀비가 따로 없네. 이렇게 좋은 방법이 있는 줄 알았으면 진작에 사용했을 텐데 말이야. 크레이그 가문의 솜씨가 대단하다니까? 깔깔깔깔!”

거나하게 취해서 입을 열 때마다 술 냄새를 풍기는 돌로레스가 허리를 꺾으며 웃음을 터트렸다.

“동감합니다. 보면 볼수록 놀라울 따름이군요.”

“사라는 천재야, 천재! 어떻게 매일 질리지도 않고 이렇게 마음에 쏙 드는 일만 해줄 수 있는지 모르겠어. 예뻐 죽겠다는 말이지!”

어지간히 마음에 드는지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황홀하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사막의 실크로드를 통해서 다양한 나라와 교류하다 보니 노하우가 역시 남다르…”

“아니야, 아니야. 단순하게 그런 수준의 이야기가 아니야! 그녀를 처음 봤을 때부터 전기가 통하는 것처럼 짜릿했어. 우리에게 뭔가 통하는 것이 있다는 것을 느꼈다니까? 마치 잃어버린 영혼의 반쪽을 찾은 것처럼 말이지.”

돌로레스가 마음에 드는 상대에게 이런 소리를 지껄이는 것은 처음이 아니었다.

“…그건 조금 질투 나는군요.”

그래서 루시타는 지금까지 늘 그래왔듯이 시샘하는 표정을 지으며 분하다는 메소드 연기를 펼쳐보였다.

하지만 평소하고는 반응이 달랐다.

“어쩔 수 없잖아? 그게 사실이니까.”

슬그머니 자신의 어깨를 밀어내면서 거리를 두었던 것이다.

‘돌로레스가 나를 거부하다니?’

펑, 퍼퍼펑, 펑, 펑, 펑!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당황할 사이도 없이 밤하늘을 아름답게 수놓으면서 터져 나가는 불꽃놀이 포성 때문에 대화를 이어나가는 것이 불가능해져 버리고 말았다.

[와아아아아아!]

터져 나오는 사람들의 환호성.

바깥세상하고는 완전히 별세계처럼 궁전 내부는 떠들썩한 축제 분위기로 소란스러웠다.

아름다운 자수에 정열적인 빨간 의상을 입고 춤을 추는 칼센 사막의 무희들.

연못의 물고기들은 보금자리를 잃어버렸고 그 자리에 육감적인 몸매의 수영복 미녀들이 물장구를 쳐대며 꺄르르륵 웃음을 터트렸다.

중후한 석조 양식의 건축물로 항상 조용하고 정적인 분위기를 유지하던 궁전 내부는 열대 야자수와 관목으로 뒤덮인 남국의 휴양지로 완벽하게 변모.

실코르드를 넘어서 도착한 이국의 진귀한 동물과 풍물들이 걸음을 붙잡고, 악사들이 연주하는 흥겨운 음악에 맞춰서 곡예를 부리는 동방의 서커스단이 사람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았다.

거기에 산더미처럼 쌓여 올려진 술과 요리는 덤.

이 놀라운 파티의 주최자이자 들어가는 모든 경비를 지불한 사람을 두말할 필요도 없이 오늘의 주인공인 사라다.

“제가 준비한 약소한 파티가 마음에 드세요?”

빨간 이브닝 드레스에 굽이 높은 하이힐을 또각거리며 다가오는 그녀.

“모든 것이 완벽합니다, 각하! 이보다 좋을 수는 없어요!!”

“어머♡ 그렇게까지 기뻐해 주시다니 분발한 보람이 있군요.”

“앗? 소, 손이…”

사라가 자연스럽게 자신의 어깨를 감싸자 돌로레스가 얼굴을 붉혔다.

마치 학창시절에 동경하던 선배를 만난 것처럼 수줍어하는 그녀.

평소의 오만방자한 모습을 알고 있는 루시타로서는 할 말을 잃어버리게 만드는 어처구니없는 광경이 아닐 수가 없었다.

“어머! 죄송해요, 사모님. 거리감이 너무 가까웠나요?”

“아니요, 아닙니다! 너무 갑작스러워서 놀랐을 뿐이에요. 조금도 싫지 않았습니다! 정말로 좋았어요!”

“후후후후. 그렇게 필사적으로 말씀하시지 않아도 되는데. 소문으로 듣던 것보다 귀여운 분이셨군요♡”

“귀, 귀엽다니…헤헤헤.”

배시시 웃으며 좋아하는 모습이 못 봐줄 지경.

“그런데 옆에 있는 분은 누구죠? 꽤 친밀한 사이로 보이시던데 혹시…”

“단순한 메이드에 불과합니다! 루시타. 볼일이 끝났으니 이제 물러가도록 해라. 어서!!”

‘그런 이유 때문이었군.’

“실례했습니다, 사모님.”

눈치가 빠른 그녀는 돌로레스가 사라에게 커밍아웃을 숨기려고 한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빠르게 자리를 피해주었다.

당분간 연인 흉내를 내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후련하면서도 불쾌한 기분.

굴러온 돌에게 자리를 빼앗기는 느낌 썩 달갑지만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루시타는 얼마 가지 않아서 그런 생각이 눈곱만큼도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자신의 숙소로 돌아가서 혼자 남은 순간.

여느 때와 다름없이 동생 사진이 들어있는 로켓을 열어보려고 할 때 목덜미에 서늘한 단도의 칼날이 들이대어 졌기 때문이다.

“귀여운 쇼타로군요. 동생입니까?”

“누, 누구시죠??”

“당신이 L(루시타)이죠?”

“???”

“제가 바로 키라(killer)입니다.”

“??????”

황당해서 말을 잇지 못하는 순간.

휘리리릭!

현란한 손놀림과 함께 단도를 회수하면서 얼굴을 T자 가면으로 가리고 있는 엘프가 그녀의 뺨에 자신의 부드러운 뺨을 기대며 부비부비를 해왔다.

“아잉~~생각보다 유머 감각이 부족한 분이로군요. 저를 보낸 사람은 후계자 전하입니다. 카트리나라고 해요. 앞으로 친하게 지내요? 후우~♡”

“햐윽?!”

기습적으로 귓속에 뜨거운 숨을 불어넣는 바람에 자신도 모르게 가냘픈 교성을 토해 내버리고 말았다.

“돌로레스의 장난감 인형치고는 굉장히 민감하시군요??? 게다가 거유라니! 어머, 어머♡ 이런 굉장한 볼륨감에 속이 꽉 찬 부드러움이라니! 가슴은 역시 자연산(?)이라니까? 유두! 하우두유두를 보자!”

주물주물주물주물주물주물!

“히야아앙?! 초, 초면부터 다짜고짜 뭐 하는 짓입니까! 변태, 변태!!”

끈적하게 달라붙으며 성희롱을 해대는 바람에 새빨개져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평소대로라면 이쯤에서 누군가 달려와야 했지만 사위는 조용.

하지만 루시타는 집요한 손길에 필사적으로 저항하느라 그것이 기막이 펼쳐져 있기 때문이라는 사실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렇게 열락의 폭풍(?)이 지나간 직후.

“다, 당신이 누구인지 알고 있어요! 방백 각하의 측근 중에 하나죠?”

루시타가 흐트러진 옷매무새를 허겁지겁 고치면서 그렇게 외쳤다.

하지만 카트리나는 대답하지 않고 자신의 손가락으로 흘러내리는 투명한 이슬 같은 액체를 도발하듯이 핥아먹었다.

“시큼달콤하군요♡”

“벼, 변태!”

“첫 레즈도 아니면서♡”

“공과 사는 구분하고 있거든요? 아니, 쓸데없이 화제를 돌리지 말고 대답하세요! 후계자 전하께서 보내셨다고 하셨죠? 그러면 역시 방백 각하는…”

“맞아요, 주인님의 육변기예요!”

“…네???”

뒤통수를 얻어맞은 표정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그런 대답을 기대한 것 아닌가요? 은근히 밝힌다니까♡”

“도대체 누가 밝힌다는 거예요?! 그게 아니라 저는 협력자라던가 동맹 같은 대답을 기대하고서 물어본 건데…”

“후후후후. 철두철미한 우리 주인님께서 그렇게 얄팍하기 이를 데 없는 관계에 의지해서 이렇게 대담무쌍한 계획을 세울 것 같으신가요? 사라 방백은 주인님의 육변기입니다. 처녀만 개통 당하지 않았을 뿐이지 이미 몸과 마음에 그분의 정액이 새겨져서 타락해버리고 말았거든요. 뚫리는(?)것도 임신당하는 것도 단순한 시간문제에 불과합니다♡”

‘미친 게 아닐까?’

루시타는 눈앞의 엘프를 보고 그렇게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조, 좋아요. 백번 양보해서 당신 말이 맞다고 치고…위험을 감수하면서 저에게 접촉한 이유가 뭡니까? 뭐, 뭐예요! 가까이 다가오지 마세요!!”

말하는 사이에 먹이를 노리는 뱀처럼 슬금슬금 다가오는 바람에 뒷걸음질을 치면서 물러났다.

“별 것 아니에요. 하나는 장래에 주인님께서 거두실 육변기 후보를 슬그머니 기미상궁하려는 의도가 첫째고…”

“누, 누가 육변기 후보라고…히익?!”

“또 하나는 아르고스 라인의 핵심 시스템에 접근하는 방법을 알아내려고 찾아왔어요. 아아아아♡ 보면 볼수록 사랑스러운 메이드로군요. 주인님하고 너무 오래 떨어져 있어서 오랬동안 굶주렸거든요. 먹어도 되죠? 먹어버려도 되는 거죠??? 주인님 혼자만 잔스 시에서 즐겁게 지내는 것은 치사하잖아요!! 그렇게 어마어마한 위업을 달성하면서 어째서 저는 여기에에에에에!!”

“꺄아아아아악! 살려주세요, 미친 크싸레에게 덮쳐져버려어어어엇!!”

“크싸레가 아니라 언니라고 불러주세요오오오옷!!”

그날, 루시타라는 이름의 백합꽃 한 송이가 꺾여서 바닥에 떨어졌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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