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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28화 〉 홀로세 대멸종(2) (328/429)

〈 328화 〉 홀로세 대멸종(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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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명을 요구하는 여론의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기자 회견을 개최했지만 결과는 처참했다.

애초에 귀족이 아닌 일반 대중을 상대하는 경험 자체가 부족한 래리다.

준비한 연설 자체는 나쁘지는 않았지만, 민심을 휘어잡을 카리스마와 쇼맨십이 부족했고 기자들의 돌발 질문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며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였다.

백성들의 요구는 단순했다.

악의 축인 돌로레스와 랭캐스터를 처단하라는 것.

하지만 래리는 랭캐스터와 충성파가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주장했으며 돌로레스 또한 과거의 품행을 반성해서 자숙하고 있으니 너그럽게 이해해달라는 말을 되풀이할 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되는 질문에 슬그머니 화제를 돌려버리려고 하자, 보다 못한 기자 하나가 회견장에 숨겨서 반입한 마도구를 사용해서 아카이아의 학살 영상을 거대한 홀로그램 화면으로 재생해버리고 말았다.

[주변 사람을 엄청나게 아끼시는군요! 그 반만이라도 백성의 심정을 헤아려보십시오! 당신 같은 학살자는 천년 가문의 주인으로 군림할 자격은 없습니다!!]

덕분에 장내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허겁지겁 달려간 병사들이 마도구를 몰래 반입한 기자를 몽둥이로 두드려 패고서 끌고 가는 최악의 장면을 마지막으로 생방송 송출이 중단.

지지율은 날개 없이 추락했다.

뒤늦게 2차 기자 회견을 열어서 불미스러운 사고가 일어났다며 [운영 미숙]을 사과했지만, 이미 광장으로 달려간 민중들은 돌로레스와 랭캐스터 옆에 [래리]라는 이름을 추가해두고 있었다.

상황이 좋지 않은 것은 충성파도 마찬가지.

남작 동맹이 무너지고 바렌탈마저 항복(실질적으로)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침몰하는 난파선에 빠져나가는 쥐새끼들처럼 우르르 도망쳐버리고 말았다.

대부분이 리한의 진영에 귀순하거나 중립을 선언.

그나마 남아있는 자들도 의견을 통일하지 못하고 니탓내탓을 해대며 자중지란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러니까 제가 말하지 않았습니까? 현재 상황에서 여론을 반전시키려면 돌로레스를 쳐냈어야 합니다!]

[닥치시오! 사모님을 향해서 그런 망발을 지껄이다니 그러고도 귀관이 충성파를 자처한다는 말인가?!]

[어처구니가 없군요. 우리가 언제부터 이렇게 일반 백성의 눈치를 살폈단 말입니까?]

[맞습니다! 이번 기회에 다시는 건방지게 지껄이지 못하도록 본때를 보여줍시다. 10만으로 교훈이 부족했다면 100만, 200만 명이라도 떠들어대는 목소리를 막아버리면 되는 것 아닙니까!!]

[내 귀를 믿을 수 없군. 이런 상황에서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그따위 소리를 지껄이다니 그야말로 랭캐스터 아닌가? 귀관이 혹시…]

[무, 무슨 소리를…나를 어떻게 보고 그따위 모리배들과 똑같이 취급하는 것이오?!]

[똑같이 취급받고 싶지 않다면 입조심하시오! 지금 상황에서 민심을 자극해봤자 좋을 것이 없소.]

[말씀대로입니다. 현재 병사들의 사기가 말이 아닙니다. 탈영병의 숫자는 헤아릴 수도 없고 어제 하루 동안에 사표를 제출한 지휘관의 숫자만 38명입니다. 여러분의 의기가 아무리 충만하다고 해도 세상에 어떤 군대가 병사와 지휘관 없이 싸울 수 있다는 말입니까?]

[큭…]

[여, 여기서는 역시 래리님께서 한발 양보해보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맞습니다! 세상 모든 바다보다도 깊다는 것이 혈육의 정인데 리한 도련님과 차분하게 대화를 나눠보시는 것이…]

쿵!

목소리가 높아진 온건파가 슬그머니 그런 말을 꺼내자 화면 너머에서 등을 돌리고 앉아있던 초로의 노인 하나가 집무실 책상을 주먹으로 내리쳤다.

[…이대로 계속해봤자 진전이 없을 것 같군. 오늘 회의는 여기에서 마치도록 하겠소.]

[하지만 레스터 장군!]

[이의 있소?]

흠칫!

[아, 아닙니다.]

슬그머니 고개를 돌리며 드러나는 날카로운 맹수의 눈동자에 침을 삼킨 귀족이 손사래를 치면서 물러섰다.

결국, 비대면 화상회의로 이루어진 충성파들의 회합은 싱겁게 끝나버리고 말았다.

잠시 후.

레스터를 제외한 모든 측근이 통신을 종료하자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는 래리.

“대체 어쩌다가 이런 일이…”

[…]

“아까 들었던 말이 사실이오? 어제 하루 동안에 사표를 제출한 지휘관이 38명이라는 이야기 말이오.”

[아닙니다, 주군.]

“그러면…”

살짝 희망 어린 표정으로 쳐다봤지만 뒤이어 흘러나오는 보고에 입술을 깨물 수밖에 없었다.

[38이라는 숫자는 그자가 배속된 부대에 한정되어 있습니다. 군대 전체에서 올라온 보고를 취합하면 어제 하루 동안에 사표를 제출한 지휘관은 모두 131명입니다.]

“망할…”

꿈도 희망도 없는 내용이 아닐 수 없었다.

누가 말했던 것처럼 정말로 병사와 지휘관 없이 전쟁을 치러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죄 없는 머리카락을 쥐어뜯으며 괴로워하는 래리.

“솔직하게 대답해주시오, 장군. 온건파 귀족들의 말대로 지금 상황에서 조카에게 화평을 요구하면 어떻게 되겠소? 후계자의 자리를 양보할 테니 우리 가족의 목숨만은 살려달라고 말이오. 단전을 폐쇄당해도 한적한 시골에서 조용히 살아갈 수 있다면…”

[…적에게 자비를 기대하지 마십시오. 제가 드릴 말씀은 그것밖에 없습니다.]

“조, 조카는 적이 아니라 가족이지 않소?!”

[혈육끼리 죽고 죽이는 상잔의 역사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리한 도련님은 이미 칼을 빼 드셨고 우리의 심장을 정확하게 겨냥하고 있습니다. 거기에 저항 없이 찔리고 싶다면…저승이 쓸쓸하지 않도록 소장도 동행해드리겠습니다.]

“장군!!”

조용히 눈을 감으며 대답하는 레스터에게 소리를 질렀지만 그 또한 자신이 외통수에 몰렸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리한이 용서할 수 있는 상대는 자신과 아들인 데일까지다.

돌로레스하고는 물과 기름처럼 절대로 섞일 수 없는 관계, 철천지원수.

천지가 뒤집어져서 그가 자신의 부인을 용서한다고 해도 이번에는 그녀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신의 조카를 죽이려고 할 것이 뻔했기 때문에, 이 싸움은 누구 하나가 사라지지 않으면 절대로 끝나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것을 막으려고 하면 막으려고 할수록 수렁에 끌려들어 가는 것은 래리도 마찬가지.

[적의 존재를 외면하지 말고 단호하게 맞서 싸우십시오! 우리는 아직 패배하지 않았습니다. 어려운 길이기는 하지만…승산은 있습니다.]

“승산…이라면?”

[스톰 가드를 굳건히 지키십시오. 과거에 천년 가문을 시기한 왕국의 모든 가문이 합심해서 공략을 시도했는데도 함락시키지 못한 무적의 요새입니다. 아슈킬 가문이 아직 방백의 명맥을 유지하는 이유는 지금까지 한 번도 그곳을 적에게 내어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때와 같이…전쟁을 오래 끌어서 유리하게 협상을 끌어내라는 말이오?”

[그렇습니다.]

“하지만 내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백성들의 삶은 피폐해질 것이오. 게다가 다른 방백이나 외국의 군대가 개입할지도 모르는데 …”

[그런 결과를 두려워하는 것은 리한 도련님도 마찬가지가 아니겠습니까?]

“아…”

[게다가 외세라면 이미 우리의 안방에 들어와 있습니다. 이 사실을 염려하는 사람이 소장 하나밖에 없는 것 같아서 안타까울 뿐입니다만…]

사라 방백이 이끄는 10만의 군대는 현대 돌로레스의 격렬한 환영을 받으며 오르드리에 주둔.

레스터의 수비군과 불편한 동거를 시작한 상태다.

“크흠! 어, 어쨌든 덕분에 가장 중요한 수도의 방비가 튼튼해지기는 하지 않았소? 듣자 하니 지난번에는 폭도들이 아내의 거처 바로 앞까지 들이닥쳤었다고 하던데…”

여전히 돌로레스를 걱정하는 모습에 노장의 미간이 살며시 찌푸려졌다.

[수도 방비는 소장의 군대만으로도 충분했습니다! 오히려 집안에 맹수를 불러들이는 바람에 스톰 가드를 지원하지 못하고 병력을 낭비하고 있으니…득보다 실이 많은 결정이었습니다. 사모님이 돌발 행동을 일으키지 못하도록 철저하게 막았어야 했는데…]

드물게 후회하는 태도로 그렇게 말했다.

“크흠, 크흠…이야기가 나와서 말이지만 장군.”

[무엇입니까?]

“돌로레스와 내 아들 데일은…잘 지내고 있소? 계속 여기에서 지내다보니 얼굴을 보지 못해서 조금 걱정스러운데…”

지끈거리는 머리를 움켜잡은 레스터는 혀를 차면서도 주군의 질문에 고분고분하게 대답해 나갔다.

[죄송하지만 저도 아드님의 소식은 듣지 못했습니다. 다만…]

“다만?”

[돌로레스님은 아주, 아주, 아주, 아~~주. 잘 지내고 계십니다.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지 모르겠군요. 오늘까지 이틀…아니, 조금 있으면 사흘째로 접어들겠군요.]

“사흘째라니?”

[사라 방백을 환영하는 연회입니다. 도착하고 벌써 3일째…이제는 연회가 아니라 축제라고 불러야 할 겁니다. 둘이 아주 짝짜꿍이 맞아서…끄응.]

래리는 앓는 소리를 내는 장군만큼이나 황당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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