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25화 〉 스페셜 H이벤트. 낙월(9)
* * *
****
후계자의 선전포고로 안돌할 가문에는 비상이 걸렸다.
스페셜 코스가 세 번째 스테이지까지 돌파당한 것도 처음 있는 일이었지만 한술 더 떠서 물러날 수 없는 최후 대결이 시작될 것이라고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가주의 정조와 자존심이 걸린 일생일대의 싸움.
측근이란 측근은 모조리 소집되어서 밤늦게까지 후계자를 (성행위로)쓰러트리는 작전을 토론하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이 회의에 중간까지 참석한 벨라는 뒷일을 부하들에게 맡기고 혼자서 퇴근했다.
당사자가 위기의식이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지금까지 모든 스테이지를 진두지휘하면서 심신 모두가 지칠 대로 지쳐있었던 것이다.
마지막 결전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충분한 휴식이 필요한 시점.
게다가 이번 대결에 승리하기 위해서 환락 도시 최고의 전문가들이 집결해서 마지막 스테이지 구성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었다.
모두 자신의 분야에서 비교할 수 없는 실력을 자랑하는 사람들이다.
거기에 끼어들어서 쓸데없이 감 놔라 배 놔라 해봤자 방해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자연스럽게 빠져준 것이기도 했다.
“휴…오늘 하루는 길어도 너무 길었어.”
턱에다가 고개를 기댄 벨라가 한숨을 내쉬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욕조 안에는 목욕물 대신에 피처럼 새빨간 와인이 출렁거리고 있었다.
아직 한 잔도 마시지 않았지만 오늘따라 피곤해서 그런지 알콜 성분이 피부 속으로 스며드는 기분이 들었다.
불그스름해진 뺨이 괜스레 화끈거렸다.
어쩌면 알콜 탓이 아닐지도 몰랐다.
[나이 치고는 그럭저럭 귀여운 편이니까. 하렘의 일원으로 받아주마.]
촤아아아악!
“그 빌어먹을 후계자…”
목욕물 위로 떠올리고 싶지 않은 얄미운 표정이 아른거리는 바람에 자신도 모르게 물보라를 일으켜버리고 말았다.
“참자, 참아. 쓸데없이 생각해봤자 예쁜 내 얼굴만 망가지지. 정말로 얼마 남지 않았어. 이번에야말로 반드시 본때를 보여주도록 하지!”
몇 번이나 우려먹은 레파토리를 또다시 중얼거리며 스스로를 다독였지만 원래 코끼리를 떠올리지 말라고 하면 코끼리가 떠오르는 법이다.
게다가 그와 연관된 기억이라고는 대부분 [그것]이다 보니 조용히 눈을 감으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장면들이 모조리 19금 동영상이었다.
[아앙♡ 아앙, 아아아아앙♡ 굉장해요, 후계자님! 안에다가 한가득 싸주세요!!]
[대단해엣♪ 이런 기분은 태어나서 처음이야아앗!!]
촤아아아악!
“아오 XXX!”
자신도 모르게 육두문자를 뱉어버리는 벨라.
더 짜증 나는 사실은 쓸데없이 묘한 기분이 들면서 얼굴이 뜨거워진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여자를 버리고 경영가로서 살아온 그녀.
사춘기 시절에는 또래의 여자아이답게 성에 관심을 가졌던 시절도 있었지만, 매춘의 민낯을 누구보다 노골적으로 목격하며 살아온 성장 환경 때문에 파트너에 대한 환상을 일찌감치 접어버린 터였다.
‘이 세상 남자들은 모조리 변태야. 얌전한 체하며 성인군자 행세를 하는 녀석들이 부뚜막에 가장 먼저 올라간다니까?’
100% 그렇다고 할 수는 없었지만 창관을 찾아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의 욕망을 채우는 데 급급해 있다.
남자든 여자든 파트너를 배려하지 않고 오로지 성욕 해소의 도구로밖에 보지 않는 사람들.
때문에 창부들은 웃음을 팔고 쾌락을 연기해야만 했으며 벨라 또한 남녀의 관계라는 것이 어차피 그러한 것에 지나지 않으리라 냉소하며 자신에게서 밀어내었다.
그런데 갑작스럽게 리한이라는 남자가 지금 그 결심을 흔들리게 하고 있다.
처음에는 그도 다른 남자들하고 다를 바가 없어 보였다.
자신의 성욕을 채우기 위해서 막무가내로 여자를 덮치는 귀축.
문제는 행위를 마치고 나니까 오히려 기녀들이 그에게 반해서 매달리고 있다는 것이다.
무려 수백 명을 범했는데 그중에 태반이 넘게 함락당한 상태.
심지어 나머지가 넘어가는 것도 시간문제에 불과해 보였다.
더 황당한 사실은 후계자 본인이 자신이 안은 여자를 모조리 책임지고 기적에서 빼내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뛰어난 테크닉으로 기녀를 정복하고 반하게 하는 남자들이라면 예전에도 있었다.
그중에는 정말로 상대방을 사랑해서 거금을 지불하고 기적에서 빼내는 경우는 있었지만, 이렇게 대량으로 그것도 한 번밖에 안지 않은 상대를 일일이 기억해서 내놓으라고 깽판을 부리는 사례는 안돌할 가문 역사에 유례가 없는 일이었다.
거기에 기녀들까지 동조하고 있으니 황당해 미칠 노릇.
자신의 본분을 잊어버리고 상대방 진심으로 반해버리는 것은 프로로서는 있을 수 없는 태만이지만, 철저하게 조교하고 훈련시킨 최고의 정예들이 모조리 그렇게 되어버리는 것은 단순한 실격이라고 볼 수만도 없었다.
싫어도 같은 여자의 입장으로서 생각해버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후계자와 사랑을 나누는 것이 정말로 그렇게 기분이 좋은 일일까?’
꼴사나운 표정으로 쾌락에 몸부림치며 환희에 가득한 교성을 내지르는 기녀들을 보고 있노라면, 자신도 모르게 그녀들에게 이입해서 스스로를 투영시키는 한심한 시뮬레이션이 머릿속에서 일어나버리고 만다.
그에게 안기는 모습을 상상해버리는 것이다.
“빌어먹을…”
인정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지난 며칠 동안에 누구보다도 후계자의 행위를 유심히 관찰해 왔던 벨라는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그에게 자신의 육체를 맡겨보고 유혹에 시달리고 있었다.
물론, 이 사실을 인정하지는 않았다.
그런 생각이 머릿속 한편에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분하고 자존심이 상했기 때문이다.
촤아아아악!
“벌써 끝내시는 겁니까?”
“그래! 목욕은 이제 질렸으니까 안마사를 불러. 쓸데없는 잡생각…아니, 어깨가 뭉쳐있으니까 풀어서 털어버려야겠어!!”
목욕 시중을 들어주는 하녀에게 괜스레 화풀이하듯이 소리를 지른 그녀는 가볍게 샤워를 마치고, 물기를 닦아내고서 안마 침대에 알몸으로 엎드려 누웠다.
“바로 불러오겠습니다.”
그렇게 총총히 물러난 후.
사위가 묘하게 조용하고 시간도 오랜 걸린다고 생각할 무렵이 되어서야 간신히 되돌아 왔다.
“데리고 왔슙니다아~♡”
“왜 이렇게 오래 걸리고 목소리는 녹아???”
“하윽?!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각하! 바로 시작하시면 됩니다, 선생님♡”
안마사를 부르는 호칭에서 꿀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왜 저렇게 징그러운 목소리를 내는 거야? 둘이 사귀나???’
당연한 사실이지만 벨라의 거처는 금남 구역이었다.
안마사도 자신이 직접 노블 마크를 달아준 전속 여자 안마사였기 때문에 만에 하나라도 남자일 가능성은 없었지만, 이상하기 짝이 없는 하녀의 태도 때문에 엎드려서 상대를 보지 못한다는 사실이 괜스레 불안해졌다.
‘생각해보니까 오늘은 평소보다 경호 인력도 적지…?’
불현듯이 떠오르는 사실.
현재 가문의 주요 인사들은 내일부터 시작할 결전을 준비하느라 회의실에 집결해 있었고, 무장과 마법사들은 혹시 모를 후계자 측근들이 일으킬 돌발 사태에 대비해서 체류하고 있는 별장을 포위하고 24시간 경계 태세에 돌입해 있었다.
그렇게 이곳저곳으로 인력이 빠져나가다 보니 자연스럽게 숫자가 줄어버린 신변 경호.
물론, 썩어도 준치라고 어중이떠중이가 돌파할 수 있는 보안 시스템은 아니었지만, 지금까지 후계자가 보여준 신위를 생각하면 이곳에 침입하는 것은 일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기…”
“어깨에 힘을 빼고 편안히 누워주세요, 각하. 지금부터 마사지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다행스럽게도 평소에 알고 있던 안마사의 목소리였다.
가슴을 쓸어내리는 안도감.
‘그러면 그렇지. 내가 지금 무슨 황당무계한 상상을 해버린 거야?’
터무니없는 발언을 많이 하기는 했지만 한 번 뱉은 말을 무조건 지키는 후계자다.
지금쯤이면 대나무의 집에서 집주인과 친구들을 한꺼번에 범하며 끝없이 이어지는 난교 정사를 즐기고 있을 터.
그것도 그것대로 열 받기는 했지만, 어차피 한여름 밤에 스쳐 지나가는 환상에 불과하리라는 생각에 스스로를 다독이면서 내일이야말로 본때를 보여주리라 다짐했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터무니없는 정력이라는 말이지. 드라이어드도 마찬가지니까 서로 잘 만났네, 잘 만났…’
물컹
“하윽♡”
엉덩이를 주물려진 벨라가 달콤한 교성을 뱉어냈다.
“괜찮으십니까? 각하?!”
“괘, 괜찮으니까 걱정하지 마! 그런데 손놀림이 평소하고는 다른 것 같은데?”
“새로운 기술을 터득했기에 시험해 봤습니다만…행여 기분을 상하게 해드렸는지요?”
“아니야, 아니야! 굉장히 좋았어. 그런데 조금 뭐라고 할까…크흠. 조금만 힘을 빼고 천천히 해줘. 평소하고는 다른 부위를 자극당해서 그런지 느낌이 조금…뭐라고 할까…크흠!”
적절한 단어를 떠올리지 못하고 얼굴을 붉히며 헛기침을 했다.
“후후후후. 금방 익숙해질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저에게 모든 것을 맡겨주세요,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한 극상의 체험을 선물해드리겠습니다.”
“그, 그래? 그러면 부탁하도록 할게.”
주르르르르륵
지퍼가 내려가는 소리가 들렸지만 그녀는 거기에서‘무엇’이 꺼내지는지는 상상도 할 수가 없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