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3화 〉 (H이벤트 포함)결전전야 하편(3)
* * *
“성은이 망극합니다!!”
환한 표정으로 절을 하면서 물러났다.
‘괜찮은 녀석들이군.’
리한은 오스왈드의 측근들을 그렇게 평가했다.
그들이 해링턴의 전철을 밟는 것을 두려워했다는 사실은 누가 봐도 명백했다.
그것만으로 좋은 경향이었다.
원래 배신이라는 것이 가볍게 받아들여져서는 안 되는 법.
충성을 맹세한 주인을 달면 삼키고 쓰면 뱉어버리는 껌처럼 취급해버리는 풍조가 만연한다면, 부하들의 사기와 기강에도 나쁜 영향을 주고 자신의 사리사욕을 위해서 어떤 나쁜 짓을 해도 상관없지 않느냐는 빌미를 제공해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리한은 카슨 부자를 정중하게 예우해주고 해링턴을 매섭게 처벌하여 본보기를 보여주었다.
누가 더 예쁘고 싫어서가 아니라 통치자로서 기강을 바로 세웠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녀석들의 태도는 나무랄 데 없이 바람직했어.’
오스왈드 남작의 측근들은 비록 주인을 배신했을지언정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그것을 실행으로 옮기는 것을 고민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게다가 백성들이 희생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자신들의 목숨을 걸었다는 것도 가산점이다.
이런 자들은 모시는 주인을 바꿨다고 해서 충성이라는 단어를 절대로 가볍게 생각할 자들도 아니다.
심지어 배신자라는 자신들의 입장도 제대로 알고 있을 테니 어떤 일을 시키더라도 성실하게 열심히 일할 터.
‘쓸만한 녀석들을 거둬들였군.’
간디, 손다인, 미하엘
줄여서 간손미.
리한은 세 사람의 이름을 눈여겨보고 난 후에 이번에는 오스왈드의 차례로 넘어갔다.
“녀석의 재갈을 풀어라.”
“네, 주군!”
힘차게 대답한 아토스가 받은 명령을 실행으로 옮겼다.
쿵!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후계자 전하!! 불초한 소신을 부디 용서해…”
“시끄럽다! 죽을죄를 지었으면 죽어야지.”
“?!!”
“네놈의 쓸데없는 궤변을 들어주려고 재갈을 풀어준 것이 아니다! 감히 무고한 백성을 인질로 잡으면서까지 최후의 발악을 이어나가려고 했던 녀석이 무슨 낯짝으로 자비를 구걸하는 것이냐?”
“그, 그렇다면 어째서…”
“너에게 마지막으로 만나게 해주고 싶은 사람이 있었을 뿐이다.”
짝짝!
손뼉을 쳐서 신호를 보내자 아름다운 드레스 차림의 그리젤다가 대전으로 들어와서 차례대로 인사를 올렸다.
“부르셨습니까? 서방님. 그리고 강녕하셨는지요, 아버님.”
“그, 그리젤다! 후계자 전하에게 서방님이라니 그게 무슨…”
“이리로 와서 앉아라.”
리한이 자신의 무릎을 두드리면서 부르자 그녀는 수줍게 얼굴을 붉히면서도 거절하지 못하고 조그마한 엉덩이를 기대며 그에게 안겼다.
그 찰나의 순간.
오스왈드의 눈동자에서 질투와 분노의 불꽃이 피어오르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보다시피 그녀를 내 측실로 받아들였다. 불만은 없겠지?”
“여부가 있겠습니까? 전하! 지아비를 잃어버리고 불쌍한 과부가 되어버린 소신의 딸을 거두어주셨으니 그 은혜, 지극히 황송하고 망극…”
“정말로 두꺼운 낯짝을 가지고 있구나. 마음에 없는 말을 그렇게 유창하게 떠들어대는 것도 재능이라면 재능이로군. 혐오감과 역겨움을 유발하는 대회가 있다면 한 번 출전해보는 것이 어떻겠느냐?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을 것 같은데.”
“?!!”
엄청난 독설에 당황하는 그를 무시하고 그리젤다에게 질문을 던졌다.
“녀석을 어떻게 처벌하면 좋겠느냐? 어차피 중형은 면하지 못할 테지만 네가 원하면 어느 정도 선처를 베풀어주마.”
“서방님의 뜻대로 하시옵소서.”
“그리젤다?!”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하는 딸의 모습에 오스월드가 당황했다.
“하하하하하하! 정말로 대단한 가정교육이로구나. 네놈이 그렇게 철저하게 때려 박은 종부종사의 교육 때문에 네놈의 유일한 구명줄이 잘려나갔으니까 말이야!”
“크으으으윽!”
“하지만 나는 자비로우니까 걱정하지 마라. 사랑하는 측실을 위해서 한 번만 더 물어보도록 하지. 정말로 괜찮겠느냐? 그리젤다. 저자가 아무리 못났다고 해도 너에게는 아버지가 아니냐? 그러니까 곧바로 대답하지 말고 조금 더 심사숙고 해보고 대답하기를 바란다. 너를 봐서라도 최대한 선처해주마.”
“…”
이 말에 잠시 고민하던 그리젤다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자신의 아버지 편에 서서 고개를 숙였다.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딱 하나만 청을 드리겠습니다.”
“말해 보거라.”
“부디 아버님의 목숨을 살려주십시오.”
“그리젤다!!”
오스왈드의 표정이 환하게 밝아지면서 기뻐하는 것도 잠시.
“정말로 그거 하나면 되겠느냐?”
“네, 그렇습니다. 사람이 죄를 지었다면 처벌을 달게 받는 것이 세상의 이치. 아버님께서는 평소 자신을 훌륭한 남자의 표본. 남자 중의 남자를 자처하셨으니 자신의 잘못을 회피하지 않고 어떤 처벌이 내려진다고 해도 기꺼이 받아들이실 겁니다.”
“그렇다는군, 트로예 남작.”
“?!!!”
이 말에 그늘 속에 조용히 숨어있던 트로예가 앞으로 나오며 예의를 갖췄다.
“참으로 훌륭한 따님을 두셨군, 오스왈드. 여러 가지 의미로 말이야.”
“트, 트로예!”
“조용히! 지금부터 처우를 결정하도록 하겠다!”
리한의 외침에 조용해지는 장내.
“오스왈드 균터! 오늘 이 시간부로 우리 천년 가문이 네놈에게 하사했던 상과 작위를 몰수하고 그 신분을 랭캐스터로 격하하겠다. 다만 모든 영지와 재산을 몰수하되 그 일부는 트로예 남작에게 위자료로 지급할 것이며 액수는 남작의 원청 그대로 행해질 것이다!”
“크으으윽!”
“성은이 망극합니다!”
선명하게 교차하는 희비.
하지만 판결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트로예 남작!”
“네, 후계자 전하!”
“약속대로 오스왈드 전 남작의 신병을 그대에게 인도하도록 하겠다. 하지만 앞서 이야기했듯이 무슨 일이 있어도 목숨에 해를 끼쳐서는 안 된다. 그리고 이것은 개인적인 부탁이지만…내 측실을 봐서라도 최소한의 격식과 예우를 갖춰주기를 바란다. 무슨 뜻인지는 알겠지?”
리한의 말은 그리젤다가 보는 앞에서 오스왈드를 너무 잔인하고 끔찍하게 고문하지 말라는 뜻이었다.
트로예 또한 눈치가 없는 자는 아니었기 때문에 곧바로 말뜻을 캐치.
“물론입니다, 전하! 염려하지 말아 주십시오, 그리젤다님. 전 남작님은 저희 가문에서 아주 극진히 대접하도록 하겠습니다!”
“죄인을 너무 극진하게 대접해주실 필요는 없습니다. 죄과에 따라서 응당한 처벌을 내려주십시오.”
“네, 알겠습니다! 끌고…아니, 정중하게 모셔라!!”
우락부락한 근육의 험상궂은 사내들이 오스왈드를 끌고 나갔다.
현재 그의 단전은 파괴된 상태고 가문의 무공 또한 압수절차를 밟았다.
그것은 그리젤다를 제외한 균터 가문의 누구도 피해갈 수가 없도록 행해진 조치였으며 성?을 몰수당한 순간부터, 일가 전체의 신분이 귀족에서 일반 평민으로 강등이 되었다.
랭캐스터까지 추락한 것은 오스왈드 하나뿐.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가족들의 고생이 가벼운 것도 아니었다.
수백 년 동안 지역사회에 막대한 영향력을 발휘한 귀족은 부자가 망해도 3년은 간다는 말처럼, 상당히 고집스럽게 따르며 충성을 바치는 자들이 많아서 세상과 완전히 분리되어있는 폐성촌으로 옮겨져서 죽을 때까지 철저하게 감시를 받으며 살아가게 된다.
이 조치는 무리 3대에 걸쳐서 이루어지며 무공 수련과 전수도 당연히 금지.
태중양생술은 기본적으로 임산부가 C급 무장 이상의 능력이 갖추고 있어야 해서 실행이 불가능하지만, 그 지식을 전수하는 것 또한 금지 사항으로 지정이 되어 있다.
만약에 누군가가 이 규칙을 어기고 몰래 시도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는 날에는 관계자 전원이 강력한 처벌을 받는 것은 물론이며, 일족 전체의 7살 이하의 아이들을 모조리 종교 시설의 고아원으로 보내버리는 강행 조치가 이루어진다.
한마디로 죽었다가 깨어나도 귀족 권력을 회복하지 못하도록 철저하게 밟아버리는 것이다.
지금까지 신과 같은 육체로 아무런 고통도 고생도 느끼지 못했던 자들이 비루한 평민으로 전락해서 죽을 때까지 자신들의 손에 흙을 묻히며 살아가게 된다.
이 사실만으로도 버티지 못하고 자살하는 자들이 속출할 정도로 강력한 조치였다.
“트로예 남작! 그대에게는 추가로 케테누스령의 서쪽 일부 지역을 하사하도록 하겠다!”
“성은이 망극합니다!”
“지나치게 고마워할 필요는 없다. 영지가 늘어난다는 것은 그만큼 통치 부담도 늘어난다는 뜻이니까 말이야. 네놈의 지난 실적을 살펴보니 크게 나쁘다고 할 것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눈에 띌만한 성과도 없더군. 백성들을 위해서 더 노력하도록 해라! 입에 발린 소리가 아니라 성과를 내지 못한다면 네놈도 거기까지다. 최악의 경우에는 잘려나가는 것도 각오하도록 해라!!”
“?!! 아, 알겠습니다!!”
예상하지 못한 냉정한 말에 당황하면서도 허둥지둥 대답해 왔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