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2화 〉 (H이벤트 포함)결전전야 하편(2)
* * *
“도, 도망쳐…살고 싶으면 도망쳐!!!!”
“으아아아아악!!”
파도 같은 비명 소리가 전염되는 것처럼 퍼져나갔다.
들고 있던 기치창검을 내팽개치며 침몰하는 난파선에서 빠져나가는 쥐들처럼 사방팔방으로 달아나는 균터 가문의 병사들.
“대열을 유지해라, 대열을 유지하라는 말이 들리지 않는 것이냐?!”
“겁쟁이는 죽음뿐이다! 도망치는 녀석들의 목을 쳐라!!”
노리스가 본보기를 보이자 뒤따라서 검을 뽑아든 무장들이 새빨간 아군의 피가 흘러내리는 검을 휘두르면서 악다구니를 썼지만, 협박을 듣고 발을 멈추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했다.
쿵! 쿵! 쿵! 쿵! 쿵!
혼란을 부채질하는 연쇄적인 지반의 붕괴.
처음하고는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로 작은 구멍이 이곳저곳에 생겨났지만, 언제 어떤 발판이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병사들의 이성을 송두리째 날려버리며 데스투도로 달라붙게 했다.
[비켜, 비켜! 비키란 말이야!!]
[밀지 마, 새끼들아! 데스투도가 그런다고 무너질 것 같아?!]
[남의 이야기가 아니야. 골렘 슈츠를 버려!! 여기에서 벗어나야 해!!!
한때는 자신들을 지켜주던 든든한 지상성벽이 이제는 빠져나갈 수 없는 감옥으로 변해버리고 말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성을 상실해서 믿을 수 없는 괴력을 발휘하는 병사들.
아군을 밟고 밀치며 조금이라도 먼저 달아나려고 악다구니를 쓰다가도 거대한 벽과 마주치기가 무섭게 재빠르게 단합해서 힘을 모았다.
이 행렬에 골렘 슈츠를 착용한 중무장 병사들까지 합세.
단단하게 결합한 지상성벽을 비집고, 부수며, 쓰러트리며 만들어진 비좁은 틈새로 앞다퉈서 몸을 던지는 필사의 탈출이 사방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이루어졌다.
방진 붕괴.
이 광경을 무력하게 지켜보는 노리스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져 버렸다.
아니나 다를까 계속해서 쐐기 형태로 기병대를 돌격시키며 정면 돌파를 고수하던 후계자군이 이제 남작군 전체를 둘러싸기 시작했다.
대세는 기울어졌으니 이제 포위 섬며을 시작하겠다는 의사를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아, 안돼! 돌아와라!! 방진을 지켜! 대열을 무너트리지 말란 말이다!!”
“후, 후방에 적의 새로운 기병대가 나타났습니다!!”
“뭐라고???”
“숫자는 소수입니다! 하지만…”
[살고 싶다면 무기를 버리고 투항하십시오! 당신들에게는 이제 승산이 없습니다!!”
확성 마법을 통해서 분지 전체에 낭랑하게 울려 퍼지는 나디아의 목소리.
[후계자님은 관대하십니다. 여러분이 자신들의 의사로 천년 가문에 거스르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계십니다. 무기를 버리고 자신들이 아카이아 학살을 주도한 랭캐스터 무리와는 다르다는 것을 증명해주십시오! 안전하게 고향으로, 가족의 품으로 보내드릴 것을 약속합니다!!]
!!!!
강력한 호소력을 가지고 있는 여성의 외침에 움직임을 멈춘 병사들이 서로를 쳐다보며 머뭇거리다가 하나둘씩 무기를 버리며 양손을 들어 올렸다.
급속도로 퍼져나가는 투항의 물결.
“마, 마녀의 헛소리에 속아 넘어가지 마라! 저건 모두 거짓말이야, 싸워라! 싸우라는 말이 들리지 않느냐?!!”
“진정하십시오. 노리스님! 이 전투는 틀렸습니다, 후일을 도모하십시오!!”
“후일을 도모하라니???”
“키스마이어 성으로 도망치십시오! 최소한 여기에 있는 무장들만이라도 온존해 도망쳐야만 오스왈드님을 볼 면목이 있지 않겠습니까?!!”
“크으으윽!!”
투콰아아아앙!!
그 순간에 사령부를 호위하는 마지막 팔랑크스를 날려버리면서 아토스와 팔콘 전사들이 들이닥쳤다.
“도망치기는 어디로 도망친다는 것이냐?! 노리스!!!”
“저희가 발목을 잡겠습니다. 어서 빨리!!”
“아, 알겠다! 하지만 도망칠 때는 도망치더라도 마지막으로 저년 하나는 반드시 제거하겠다. 무장들은 나를 따르라!!”
“감히 내 여동생에게 저년이라고?!”
가까운 거리가 아니었는데도 불구하고 정확하게 알아들은 아토스가 말을 박차고 뛰어내려서 호랑이처럼 사납게 날뛰기 시작했다.
무장과 무장들의 충돌.
콰콰콰콰콰쾅!!
지금까지 힘을 온존하고 있던 자들이 전력을 발휘하면서 분지 전체가 뒤흔들리는 격렬한 싸움이 일어났지만, 그렇지 않아도 밀리는 전력으로 절반이 넘는 숫자가 노리스를 호위하며 달아나버렸기 때문에 싱거울 정도로 간단하게 승패가 결정돼버리고 말았다.
“하, 항복! 항복하겠소!!”
“투항하면 살려준다는 말은 거짓말이 아니었겠지?!”
적당히 시간을 벌었다고 생각하자 허둥지둥 무기를 버리며 양손을 들어 올리는 균터 가문의 무장들.
“지금 장난하는 것이냐?!!!”
속이 뻔히 보이는 행동에 분노한 아토스가 사납게 포효했지만 팔콘 전사들이 허겁지겁 뜯어말렸다.
“진정하십시오, 용병왕! 어차피 예상했던 일이 아닙니까?”
“맞습니다, 걱정하지 않아도 여기는 우리가 정리하겠습니다! 당신은 서두르십시오, 아직 할 일이 남아 있지 않습니까?!”
“그, 그래! 뒤는 맡기마. 정리 인원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모두 나를 따라라! 기다려라, 나디아! 오빠가 지금 구하러 가마!!”
“…”
여지없는 열혈 시스콘 기질을 드러내면서 달려가는 모습에 뒤에 남은 무장들과 붉은 전마단은 황당함을 감추지 못했다.
‘구하러…’
‘간다고???’
‘도대체 누가 누구를 구하겠다는 건지…’
노리스는 포위망을 돌파해 달아나면서 나디아를 제거하겠다며 이를 갈았지만 아토스를 제외한 누구도 그녀의 안위를 걱정하지 않았다.
왜냐면 투항 권고 자체가 적의 총사령관을 사로잡기 위한 유인작전이었기 때문이다.
퍼퍼퍼퍼펑!!
“끄아아아아아악?!”
아니나 다를까 소수라고 생각해서 만만하게 여기고 덤벼들었던 균터 가문의 무장들은 예상하지 못한 강력한 저항에 부딪혀서 낭패를 면하지 못했다.
“도, 도대체 뭐냐?! 너희들은…도대체 뭐냔 말이다?!!”
“당신들에게 가르쳐줄 이름은 없습니다.”
“주인님을 위해서 죽어주십시오.”
새빨간 눈을 빛내며 자유자재로 그림자를 조종하는 흡혈귀.
커다란 절구공이를 빙글빙글 휘두르며 믿을 수 없는 속도로 움직이는 토끼 가면의 암살자.
그리고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펀치를 날려대는 나디아까지 세 여성의 연계가 자신들도 놀랄 정도로 눈부신 활약을 보여주었다.
물론, 성가신 것은 그녀들만은 아니었다.
팔콘 전사들과 미스릴 등급 이상의 노련한 용병들.
거기에 반란군에서 합류한 무장과 마법사들까지 힘을 보태서 그야말로 일방적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가차없이 적들을 압살했다.
“이런 전력을 온존하면서…처음부터 나를 노리고 있었다는 말이냐?!”
온몸이 너덜너덜해져서 질문하는 노리스.
최후의 도주 시도조차 수포로 돌아가면서 이제는 내력마저 바닥이 드러난 상태다.
“착각하지 마세요, 당신을 처단할 사람은 제가 아닙니다. 오늘부터 시작될 용병왕 전설…그 시금석으로 후계자님의 대의를 실현하기 위한 이 되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뭐라고?!”
[어디냐, 나디아?!! 걱정하지 마라! 여기에 오라버니가 왔다아아아아아아!!!]
“…당신의 저승사자가 도착한 모양이로군요.”
속삭이는 목소리가 지근거리에서 들려왔다고 생각한 순간.
투콰아아앙!
갑작스럽게 노리스의 눈앞에 나타난 그녀가 아토스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을 향해서 그의 신체를 걷어차 날려버렸다.
“크아아아아악!!”
쐐애애애애애애액!
“적의 총사령관입니다!! 처리하세요, 오라버니!!!”
[맡겨라, 동생아. 무투기. 수왕참!!!!]
서걱
커다란 장검에 맥없이 양분되어 잘려나가는 것을 마지막으로 길고 길었던 밤의 전투가 마침내 결말을 맞이했다.
총사령관의 최후를 목격하고 저항할 의사를 잃어버린 적들은 무기를 버리고 투항.
“우리의 승리다아아아아아!!!”
“용병왕 만세!! 후계자 전하 만세에에에에에!!!”
우와아아아아아아아아!!
노리스의 목을 들고 호랑이 같은 포효를 내지르는 아토스에게 수없이 쏟아지는 병사들의 환호와 함께 그날, 제니아에 새로운 용병왕이 탄생했다는 소문이 대륙 전체로 퍼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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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력 부대가 전멸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균터 가문은 놀라울 정도로 싱겁게 무너져버리고 말았다.
마지막까지 희망을 잃어버리지 않고 군사 거점을 수비하던 군인들이 속속들이 투항.
오스왈드 남작만이 고집스럽게 키스마이어성에 틀어박혀서 마지막까지 저항의 의사를 밝혔지만 비축 물자에 자원, 군사까지 모든 것이 부족했던 그는 무리하게 백성을 수탈하고 인질로 잡는 벼랑 끝 전술까지 선보이려다가 측근들에게 배신을 당했다.
털썩!
리한은 자신의 눈앞에 끌려온 그를 바라보면서 웃음을 터트렸다.
“카슨 남작의 사례가 도움이 되었군. 랭캐스터를 죽이지 말고 데려오라는 말을 충실히 이행했구나.”
“부, 부디 선처를 베풀어주십시오, 후계자님! 저희는 어쩔 수 없이 명령에 따랐을 뿐입니다!”
오스왈드를 배신한 측근들이 땅바닥으로 머리를 찍으며 그렇게 외쳤다.
“후후후후. 물론이지. 듣자 하니 너희들이 용기 있는 결단을 내려서 무고한 백성들의 목숨을 구해냈다고 들었다. 이자를 처분한 다음에 큰 상을 내려줄 테니까 일단은 물러나 있도록 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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