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0화 〉 (H이벤트 포함)결전전야 상편(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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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자신만만하게 떠들어대는 그와는 다르게 방진 전열에 공성 방패를 전개하고 있는 중무장 보병들은 평소하고는 다른 기묘한 위화감에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었다.
우드드드득
[저기 말이야, 말뚝이 제대로 고정되지 않는데 괜찮은 거야?]
[지면이 불안해. 허공에 삽질하는 기분인데…]
[위에다가 말해야 하는 거 아니야?]
[말해봤자 소용없을 거야. 불통不?의 노리스 몰라? 게다가 적의 공격이 코앞인데 다른 곳으로 이동할 수도 없잖아.]
[맞아. 그냥 쓰러지지 않게 단단히 붙잡고 있으라고!]
[제길…]
그리고 이 모든 광경을 능선에 집결한 별동대가 내려다보고 있었다.
“멍청한 녀석. 자신이 완벽한 함정으로 유도당했다는 사실도 모르고 저렇게 기고만장하다니 말이야.”
푸르르르르!
“너무 그러지 마세요, 오라버니. 평범한 지휘관이 평범한 판단을 내렸을 뿐이니까요.”
아토스에게 투레질하는 말을 몰아서 다가온 나디아가 그렇게 말했다.
균터 가문의 주력부대가 야영지를 세운 장소는 숲의 분지다.
낮은 위치에 중앙으로 움푹 들어간 평지.
사방이 빽빽한 나무와 수풀에 둘러싸여 있는 것과는 다르게 뻥 뚫린 공터다.
중앙으로 개울이 흐르기 때문에 식수를 확보하는 것이 쉬워서 1만 2천의 대군이 휴식을 취하기에도 안성맞춤.
화공을 당할 염려도 없으며 빽빽한 수목 사이를 통과하면서 대열이 흐트러지는 적들하고는 다르게, 진형을 단단하게 밀집해서 구축할 수 있는 방어가 용이한 군사 요충지였다.
한 마디로 노리스는 아주 정석적으로 충실하게 군사 교범을 따랐다는 소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매는 자신들의 승리를 확신하고 있었다.
“하기야 그렇지. 세상에서 가장 영리하고 똑똑한 네가 세운 작전이니까 저런 하찮은 범부凡?가 감히 어떻게 그 수를 헤아릴 수가 있겠어?”
“말조심하세요, 표면적으로 이 작전은 용병왕인 오라버님이 생각한 거라고요. 게다가 저는 조그마한 발상을 떠올렸을 뿐이죠. 그것을 현실적으로 가능하게 해주신 분들은 소월님과 질님이세요. 두 분의 활약과 헌신이 아니었다면 적들은 어떻게 여기로 유인할 수가 있었겠어요???”
“무, 물론 고맙게 생각하고 있지! 반란군이 시간을 벌어줘서 어제 하루 푹 쉬고 도착할 수가 있었으니까 말이야. 하지만 그거는 그거고 이거는 이거잖아? 순수하게 대단한 것을 대단하다고 칭찬했을 뿐인데 오라버니에게 지나치게 엄격하지 않니??? 게다가 주군께서도 무슨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용병왕이라는 낯간지러운 호칭을 사용하라고…”
“용병왕님! 모든 기수가 준비를 마쳤습니다!!”
조그마한 노움 용병이 쪼르르 달려와서 힘차게 보고했다.
초롱초롱 올려다보는 눈동자에는 선망과 동경이 담겨 있다.
“그래. 공작부대의 신호가 올라오는 것과 동시에 돌입을 시작한다. 모두에게 그렇게 전해라!”
“네, 알겠습니다!! 우효오오옷♡용병왕 포스 개쩔어!!”
“…”
신이 나서 폴짝거리며 뛰어가는 귀여운 모습에 순식간에 장내의 긴장이 풀어지며 키득거리는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들었냐? 순진무구한 노움 미소년이 우리 용병왕님에게 홀딱 빠져버린 모양이야.]
[그러게 말이야. 다 컸네, 다 컸어. 엊그제까지만 해도 아스트라세 가문의 연병장에서 내가 부는 호각소리에 따박따박 좌로 취침, 우로 취침하며 굴러다니던 모습이 선명한데 말이야.]
[그 악마 조교가 설마 너였냐???]
빠직!
남매를 호위하는 팔콘 전사들이 대놓고 앞담화를 하면서 놀려대자 나디아는 한숨을 내쉬고, 아토스는 얼굴이 시뻘개져서 관자놀이에 굵은 핏대를 세웠다.
“시끄러워 새끼들아! 쫑알쫑알 떠들어대지 말고 허릿심이나 빡 줘!! 낙마했다가는 그대로 밟고 지나가 버릴라!!!”
펑!!
그 순간.
어두컴컴한 밤하늘을 밝게 수놓는 푸른 신호탄이 화려하게 터져나갔다.
스으으으으읍
장난기를 순식간에 지워버리는 것과 동시에 폐가 터져나가기 전까지 숨을 힘차게 빨아들이는 아토스.
“전군!!!”
쾅!!
바닥을 내리찍는 말발굽 소리가 지축을 뒤흔들었다.
“돌격하라!!!!!”
****
두두두두두두두
땅과 하늘을 두드려대는 떨림이 균터 가문의 깃발을 세차게 흔들어대자 자신도 모르게 긴장해서 침을 삼킨 노리스가 부관에게 속삭이면서 질문했다.
[적의 숫자가 얼마나 된다고?]
[기병으로 1만이라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반란군과 합류했을 테니 조금 더 늘어났을 겁니다.]
[병종 구성은?]
[제니아 각지에서 지원한 용병으로 구성된 혼성 부대라고 하더군요. 대장도 아토스라는 낭인이 맡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별 것 아닌 잡졸들이로군. 버리는 패로 우리 전력을 최대한 깎아보려는 수작이야. 혹시 모를 마법사 전력에 주의를 기울여라! 무장들은 녀석들을 최우선 타겟으로 대비하도록 해라!!”
“네, 알겠습니다!”
자신감을 회복한 그의 쩌렁쩌렁한 목소리에 부하들도 힘차게 화답했다.
하지만 그 순간.
천지를 울리던 기병대의 기색이 갑작스럽게 사라져버렸다.
휘오오오오오
“…뭐지?”
웅성웅성!
균터 가문의 병사들이 어리둥절하며 수군거리는 사이.
“가, 갑자기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이냐?”
“…아무래도 전술 마법 노이즈 게이트noise gate를 사용한 것 같습니다.”
“전술 마법을 그렇게 낭비했다고??? 우리 전열에 구멍을 뚫을 수 있는 화력을 자신들의 기척을 지우는 데 사용하다니 도대체 무슨 생각이라는 말이냐?!!”
“그, 그것은 저도 잘…”
“에잇! 무슨 속셈인지는 모르겠지만 두려워하지 마라! 어차피 우리는 모든 방향의 공격을 대비하는 방진을 구축하고 있다. 수풀의 흔들림을 유심히 관찰해라, 소리가 들리지 않으면 야간 투시로 확인하면 된다!!”
“동쪽 방향에서 적으로 생각되는 움직임을 발견했습니다!!”
“그래!!”
“서, 서쪽에서도 발견했습니다!”
“남쪽에서도 아니, 북쪽…모든 방향의 숲과 나무들이 격렬하게 흔들리고 있습니다!!”
“뭐라고?!!”
노리스의 어안이 벙벙해졌다.
“부관!!”
“아마도 기척을 흐트러트리는 사우전드 위스퍼thousand whisper를 사용한 것이 아닐까 하고…”
“그러니까 어째서냐는 말이냐?! 마나가 남아도는 것도 아니고 전술 마법을 그렇게 연달아 낭비하다니…”
둘 다 실질적으로는 아무런 효과가 없었지만 적의 의도를 알아차릴 수 없다는 사실 자체가 노리스와 균터 가문의 병사들을 불안하게 했다.
게다가 곧바로 공격해 들어올 것처럼 소리를 질러놓고 쥐죽은 듯이 잠적해버린 것도 신경을 거슬리기는 마찬가지.
“탐지 마법을 사용해서 적의 위치를 확인해라!”
“죄, 죄송합니다. 이미 시도하고 있지만 적의 방해 때문에 여의치가 않아서…”
마법사 부대의 대장이 쩔쩔매면서 사과해 왔다.
간단한 색적조차 불가능하다는 것은 마법사 숫자가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적다는 것을 의미했는데, 예상하지 못한 핸디캡은 아니었기 때문에 입술을 깨물면서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큭! 무장들은? 무장들은 어떤가가?!”
“거리가 너무 멀어서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십시오, 어느 방향에서 뛰쳐나온다고 해도 뒤통수를 맞을 염려는 없습니다!!”
“그것을 몰라서 물어보는 것이 아니잖느냐?!!”
웅성웅성
버럭하면서 소리를 지르자 병사들의 동요가 커졌다.
“지, 진정하십시오. 각하! 각하께서 불안해하시면 사기에 영향을 미칩니다. 녀석들이 노리는 것도 바로 이것일 것입니다!!”
“부, 불안해하기는 누가 불안해한다는 것이냐?! 나는 단지…”
쿵!!!!!!
그 순간.
균터 가문의 병사들이 서 있는 땅 아래에서 둔탁한 굉음이 울려 퍼지며 분지 전체가 거세게 뒤흔들렸다.
마치 의자에서 떨어지는 것처럼 낙하 쇼크.
“…이게 대체?”
“서, 설마…”
우르르르르르르르ㅡ
잠시, 안정되었다고 생각한 지면이 흙더미를 빨아들이는가 싶더니 거미줄이 갈라지는 것처럼 순식간에 허물어지며 시커먼 아가리를 벌렸다.
“무, 무너진다!!!”
“피해!!!!!”
“으아아아아아아악?!!!”
한쪽 대열이 우르르 무너지면서 골렘 슈츠를 착용하고 있던 수백의 병사들이 목책과 함께 바닥으로 추락해 버렸다.
하지만 다치거나 죽은 사람은 극소수.
높이 자체는 별 게 아니었기 때문에 빠르게 정신을 차린 사람들은 자신들이 분지 지하에 지반 침하로 만들어진 공동 속으로 낙하했다는 사실을 알아차릴 수가 있었다.
후드드드드득!
수백, 수천 마리의 박쥐들이 그들의 동체를 두드리면서 지상으로 날아 올라갔다.
그곳에서 반란군 병사들과 함께 새빨간 눈동자를 빛내며 자신들을 마중하는 흡혈귀 한 마리를 마주할 수가 있었다.
[쉬잇! 조용히 항복하지 않으면 당신들의 목숨은 보장할 수 없습니다.]
시커먼 그림자를 드리우면서 말하는 여성의 목소리에 침을 꿀꺽 삼킨 병사들은, 무심코 하늘의 균열을 올려보다가 그곳을 뛰어넘어가는 무수한 기병들의 행렬을 발견할 수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