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5화 〉 (H이벤트 포함)결전전야 상편(5)
* * *
“읍! 으으으읍?!”
재갈이 물려진 그녀가 거칠게 몸부림쳤다.
“둘이 가까운 사이였나 보지?”
“어릴 때부터 여동생처럼 다정하게 대해주셔서…”
“과거사 따위는 아무래도 좋아. 지금은 첫날밤에 집중하도록 해라.”
“네, 네! 실례했습니다. 서방님.”
따끔한 질책에 허둥지둥 사과해 왔다.
리한은 사랑을 나누는 데 방해가 되지 않도록 그녀의 머리카락을 올려서 묶어주고 백허그로 끌어안았다.
“앗…”
가녀린 허리만큼이나 가냘픈 신음.
하지만 단색 정장 위로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묵직한 가슴의 살집이 손가락 사이로 붙잡혀 왔다.
창피한 모양이었는지 뺨과 목덜미가 불그스름해지고 체온도 높아졌다.
흘러내리는 애교머리가 땀에 젖어서 달라붙은 모습이 굉장히 야했다.
단색의 상복.
하지만 귀족답게 화려한 문양이 수 놓여 있고 치마도 드레스에 가깝다.
그 사이로 늘씬하게 드러나있는 허벅지는 검은색 타이즈에 감싸져 있었고 구두를 벗기자 앙증맞은 두 발이 수줍게 모습을 드러냈다.
리한은 그녀의 상의 단추를 하나씩 풀어나갔다.
“지금까지 남자에게 알몸을 보여준 적이 있느냐?”
“네? 그, 그게…”
“요아힘?”
고개를 도리질했다.
“그렇다면 누구지? 설마 외간 남자에게 보여줬느냐?”
“아니에요! 그게 그러니까…아버지에게…”
멈칫!
잠시 주춤했지만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고개를 끄덕였다.
“흠, 하기야 어렸을 때부터 돌봐줬을 테니까 갓난아기 때라면…”
리한은 그녀가 굉장히 동요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말꼬리를 흐렸다.
“설마, 다 큰딸의 알몸을 본 거냐?”
“시, 시집가기 전에 발육 상태를 체크해주신 것뿐이에요!”
“웃기지 마라. 그런 문제라면 어머니나 경험이 풍부한 하녀들에게 맡기면 되는 일이야. 그리고 정말로 떳떳하다면 어째서 대답을 망설였느냐? 사실은 너도 알아차렸던 것이 아니냐? 그게 정상적이지 않다고 말이야!!”
“아버지는 잘못이 없어요! 틀림없이 신첩이 부족해서 염려를 끼쳤기 때문에…”
“헛소리! 녀석이 무슨 짓을 했는지 말해라. 설마 몸에도 손을 댔느냐?”
“그, 그게…”
망설이는 모습을 보아하니 정말로 그랬던 모양이었다.
거듭해서 다그치자 마지못해서 대답하는 그리젤다.
“예쁜 아기를 낳으려면 골반이 튼튼해야 한다고…엉덩이와 가슴을 주무르셨어요…지, 질구를 벌려서 처녀막 검사도…”
‘오스왈드, 이 개자식.’
형용할 수 없는 분노가 부글부글 끌어 올랐다.
“그런 일을 몇 번이나 당했지?”
“시집오기 전까지는 매년…평소에는 자상하신 아버지였는데 그때만큼은 굉장히 무서웠어요. 숨도 거칠어지고 눈까지 충혈되어서 아깝다는 말씀만 반복하시고…”
지초지종을 들은 리한은 트로예 남작에게 연락해서 절대로 그를 곱게 죽이지 말라고 엄포를 놓았다.
상품의 가치를 훼손하지 않기 위해서 마지막 선을 넘지는 않았다고 하지만 그가 저지른 행위는 미성년자 성추행일 뿐만 아니라, 자신의 딸에게 손을 댄 용서할 수 없는 근친 범죄였다.
이 폭로에 충격을 받은 것은 헤스티야도 마찬가지였던 모양.
리한은 가까이 다가가서 그녀의 재갈을 풀어줬다.
“헤스티야경도 이 사실을 알고 있었소?”
“모, 몰랐습니다. 주군께서 설마 그런 끔찍한 만행을…”
“그런 작자에게 충성을 맹세하다니 경도 어지간히 사람 보는 안목이 없군.”
“…”
할 말을 찾지 못하고 입을 다물어버렸다.
리한은 그리젤다를 끌어안고 최대한 상냥하게 머리를 쓰다듬으며 토닥거렸다.
“이런 불쌍한 녀석…”
“네? 아, 아니. 저기. 그게…가, 감사합니다?”
예상하지 못한 다정한 위로에 당황하면서 대답해왔다.
잔혹한 사실은 그녀는 자신이 무슨 일을 당했고 그것이 어디가 어떻게 잘못되었는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한가지 약속해주지. 앞으로 네 인생을 마음대로 휘두를 수 있는 남자는 나밖에 없을 것이다. 다른 남자는 쳐다보지 말고 나만을 보고 나만을 사랑해라. 그것 하나만 지켜준다면 너는 자유야. 누구에게도 휘둘리지 말고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도록 해라. 알겠느냐?”
“물론입니다, 서방님.”
고분고분 대답하기는 했지만 제대로 이해하고 말하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사람을 하루아침에 바꿀 수는 없지. 조금씩 천천히 교정해줘야겠군. ’
“저기 그런데…”
“뭐지?”
“머리는 이제 그만 쓰다듬으시는 건가요?”
“…마음에 들었느냐?”
“…그러니까…얌전하지 못하다는 사실은 알고 있습니다만…남성분에게 머리카락을 만져지는 것은 처음이었는데 그게…”
횡설수설하면서 하고 싶은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모습에 리한이 끼어들어서 말을 잘랐다.
“기분이 좋았다는 거지?”
“…”
빨개진 얼굴로 보일락말락 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렇게 자신이 워하는 것을 솔직하게 말하는 것부터 시작하도록 하지. 물론, 쓰다듬어주고말고. 어리광과 응석을 받아주는 것이 서방의 도리가 아니겠느냐?”
“이, 이렇게 탐욕스러운 신첩에게 질리지는 않으셨습니까?”
“아니. 전혀! 오히려 사랑스러워서 이렇게 해주고 싶군.”
쬭
리한은 그렇게 말하면서 그녀에게 입술을 맞췄다.
이번에는 단순한 점막접촉을 넘어서 더 길고 집요하게 이어지는 끈적하고도 농밀한 키스.
츄우우웁, 츄르르릅, 츄우우웁 츄으르릅, 츄우우우욱 츕!
“응크으으읏, 으으으읏, 흐으읏?! 그, 그런…햐윽?!”
태어나서 처음으로 경험하는 어른의 키스에 홍당무처럼 빨개진 그녀는 어찌할 바를 모르며 손가락과 발가락을 꼼지락거렸다.
부드러운 입술에서 슬며시 떨어지자 아쉬운 미련처럼 이어져 나오는 실타래가 툭하고 끊어져 버렸다.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것하고 어느 쪽이 좋았느냐?”
꿀꺽
“지, 짓궂은 질문이십니다…”
침을 삼키며 부끄럽다는 것처럼 시선을 돌렸다.
“크흠, 크흠!”
때마침 들려오는 헛기침 소리.
“누구인가? 누가 지금 신성한 초야 의식에 기침 소리를 내었어?”
“…무슨 흉내를 내시는지는 모르겠지만 시치미를 떼지 마십시오! 이게 지금 뭐 하는 겁니까? 백번 양보해서 두 분이 사, 사랑을 나누는 거야 개인의 자유라고 하지만 어째서 그 자리에 저를 데려와 묶어놓은 겁니까?!!”
“그거야 당연히 새로운 측실에게 성교육을 시켜주기 위해서지.”
“…뭐라고요?”
헤스티야의 표정이 멍청해졌다.
“아직도 모르고 있었느냐? 두 사람 모두 오늘부터 나의 측실로 들어오게 되었다. 후후후후. 행복하게 백년해로하도록 하지. 오래오래 귀여워 해주마.”
“어머나?”
“무, 무, 무, 무슨 헛소리를 하시는 겁니까?!”
귀여운 표정으로 깜짝 놀랐다는 얼굴을 하는 그리젤다하고는 다르게 새빨개진 그녀가 버럭하면서 소리를 질렀다.
‘그래, 그래. 이게 일반적인 반응이지.’
속으로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나오는 소리는 뻔뻔하게 철판을 깔았다.
“헛소리가 아니야. 너는 전쟁에서 사로잡힌 포로가 아니냐? 게다가 내 목숨을 노렸지. 원래대로라면 하극상으로 귀족 신분을 박탈하고 능지처참해야 마땅한 일이지만 하해와 같은 아량을 베풀어서 특별히 측실로 받아주겠다는 것이다. 너처럼 혼기를 놓친 여자에게는 상당히 짭짤한 이야기가 아니냐?”
“혼기를 놓쳤다니!!”
“정말로 다행이네요, 헤스티야 언니! 역시 후계자님은 남자 중의 남자. 진정한 영웅호걸이시군요. 그런 분의 측실로 들어가는 것은 영광스러운 일이죠! 사실, 언니가 지나치게 오래 독수공방하는 모습이 여러모로 보기 안쓰러웠는데…정말로 다행이네요!”
“아, 아가씨까지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애초에 저는 궁신??이 되기 위해서 여성을 버렸습니다! 결혼 따위는 생각해 본 적도…”
“궁신이라고? 그 나이를 먹고 19살밖에 되지 않은 나에게 패배한 주제에???”
“맞아요. 게다가 예전에는 외롭다고 술에 취해서 밤새도록 주사를…”
“으아아아아악! 잊어주십시오, 아가씨! 그리고 후계자님. 스, 승부는 삼세판입니다. 다음에는 패배하지 않을 거라고요!”
억지를 부리는 모습에 리한은 한숨을 내쉬며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전쟁터에서 패배는 죽음과 직결된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이냐? 승부는 이미 끝났어. 다시 싸운다고 해도 마찬가지야. 장담하는데 더 쉽게 패배할 거다. 무장으로서의 양심을 걸고 내 말이 틀렸다고 할수 있느냐?”
“윽…”
“맞아요. 게다가 후계자님이 도대체 어디가 불만이라는 거예요?”
“그래, 그래.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있다면 단도직입적으로 말해보도록 해라.”
그렇게 질문하면서 코앞으로 얼굴을 들이밀자 새빨개져서 잽싸게 고개를 돌려버렸다.
“그, 그건…특별하게 불만이 있다는 것은 아니지만 아, 아무리 그래도 마음의 정리가 있지 않습니까? 호, 혼인처럼 중요한 문제를 이렇게 번갯불에 콩을 볶아먹는 것처럼 결정하라니…”
“에휴. 그렇게 쓸데없이 재고 따지면서 우물쭈물하니까 아직까지 언니가 시집을 가지 못하신 거라고요!”
“아가씨?!!”
예상하지 못한 뒤통수에 얻어맞아서 휘청거리는 헤스티야.
“후후후후. 그렇게 몰아세우지 말도록 해라. 원하는 대로 생각을 정리할 시간을 주도록 하지. 우리가 첫날밤으로 알콩달콩 사랑을 나누는 모습을 보게 되면 마음도 달라지지 않겠느냐?”
“과연 그렇군요. 역시 서방님이세요, 훌륭한 명안이라고 생각합니다!”
“자, 잠시만 기다려 주시…으으읍?!”
벌써부터 부창부수로 정신없이 연합공격을 펼치는 바람에 당황해서 소리를 질렀지만, 재갈이 물려지고 꼼짝없이 자신의 눈앞에서 생생한 라이브 베드씬을 찍는 과정을 지켜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