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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89화 〉 질풍가도(9) (289/429)

〈 289화 〉 질풍가도(9)

* * *

구름 위.

리한의 눈앞에는 직경 5km의 구멍이 뚫려 있었다.

휘오오오오오오­

급격한 하강 기류로 만들어진 공간은 소용돌이처럼 회전하면서 주변 일대의 모든 바람을 빨아들인다.

카오오오오오오오!

그 엄청난 풍속에 조금이라도 방심했다가는 아군조차 끌려 들어갈 터.

때문에 팔콘 전사들은 바람의 영향을 덜 받는 높은 고도에 머무르면서 그리폰들의 고삐를 단단히 휘어잡고 있었다.

[으아아아아아아악!]

구멍 속의 상황은 그야말로 아비규환.

사납게 날뛰는 바람과 정령들의 폭주, 그리고 먹구름 속에 갇혀버린 적들은 시야와 균형 감각, 오감과 육감이 모조리 진탕되는 소용돌이에 무력하게 난도질당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 돌격 명령을 내리기에는 이르다.

지금 뛰어들었다가는 그 커다란 혼란에 함께 말려들어서 낭패를 볼 터.

폭주하는 바람이 순풍으로 바뀌고 먹구름이 사라지는 것을 기다려야 했다.

[모두 파상 공세에 대비해라! 위에서 온다!!]

그것을 알아차리고 소리를 지르는 여성 무장.

자기 자신조차 사납게 날뛰는 그리폰에 매달려서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와중에도 정확하게 상황을 파악하고 아군을 진정시키려고 애쓰는 모습이 보였다.

“틀림없이 그녀가 헤스티야겠군.”

“사로잡으실 겁니까?”

살짝 떨떠름한 표정으로 질문하는 이리나.

“물론이지. 유능한 부하는 아무리 많아도 부족하지 않으니까 말이야.”

“유능한 부하로군요.”

“하여튼 질투하는 모습도 귀엽다니까♡”

“…”

얼음처럼 차가운 표정으로 투덜거리면서도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손길은 거절하지 않는다.

마치 도도한 고양이를 달래는 기분.

원래는 자신의 동생인 코제트를 제외한 다른 여자들하고 꽁냥거려도 불만을 드러내지 않던 그녀지만, 잠자리를 가진 다음부터는 이렇게 소심하게 질투 비스무리한 것을 해오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성가실 정도는 아니다.

왜냐면 다른 여자에게 손을 대는 것 자체를 나무라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빌미로 자신에게 관심을 가지고 달래주라는 의사 표현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공식적으로 연인이 되었으니까 대놓고 꽁냥거리고 싶지만 대놓고 부탁하면 창피하기 때문에 빙 돌려서 우회적으로 요구하는 복잡한 여심.

솔직히 말해서 귀찮은 성격이지만 귀여워서 모든 것이 것이 용서되었다.

잠시 그녀의 어리광을 받아준 리한은 다시 부녀의 명문혈에 손을 대고 격체전력을 마무리 지었다.

“두 사람 모두 자신의 그리폰으로 돌아가도록 해라. 이 정도 내력이면 충분히 싸울 수 있겠지?”

“물론입니다.”

“스으으읍­ 휴우. 정말로 엄청난 마나 보유량이시로군요. 도련님 덕분에 저희 부녀의 내공이 오히려 증진된 것 같습니다.”

호흡을 갈무리하면서 평정을 되찾은 루돌프가 흡족한 표정으로 말했다.

“하악­ 하악­ 하악­ 하악­ 그, 그러면 저희는 이제 방해가 되지 않도록 물러나 있겠습니다! 무운을 빌겠습니다. 후계자님!”

반면에 최대 출력으로 전술 마법을 사용하느라 크게 지친 아놀드가 천여 명의 마법사들과 함께 레비테이션(levitation)으로 하늘에 떠올랐다.

“그래, 수고가 많았다! 뒷일은 우리에게 맡겨라!!”

크오오오오오!

리한은 그리폰을 조종해서 자신이 직접 돌입부대의 선두에 섰다.

“아스트라세 가문의 팔콘 전사들이여!!”

후우우우우우웅­

“긴말할 필요가 없겠지. 우리 앞의 적들은 완전히 무력화되었다! 녀석들은 고강한 힘을 가지고 있는 무장과 마법사들이 아니다. 그저 함정에 빠져서 죽음을 기다리는 가련한 사냥감에 지나지 않는다. 내 말이 틀렸는가?!”

[충?!!!!]

“하지만 사자는 토끼를 사냥할 때도 전력을 다하는 법이다! 강자가 계속 강자로 있을 수 있는 이유는 아무리 연약한 상대라도 방심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제군들도 모두 그러하리라 믿는다! 제군들은 제니아 최강 선봉 가문의 정예들이 아닌가?!”

[충?!!!!] [충?!!!!] [충?!!!!]

퍼져나가는 바람에 먹구름이 걷혀 나간다.

지옥에서 간신히 빠져나오기는 했지만 기진맥진해서 혼란을 수습하지 못하는 동맹군들.

이것이 바로 완벽한 돌입 타이밍이었다.

후우우우우우웅­

챙!!!

리한은 햇살에 반사되어 빛나는 일극을 힘차게 앞으로 휘둘렀다.

“승리의 바람이 불어오고 있다! 전군 강하하라!!”

우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

슈우우우우우우우욱!!

그의 말대로 사납게 휘몰아치던 바람은 이제 그리폰들의 날개에 힘을 실어주는 순풍이 되어서 등을 떠밀어주고 있었다.

반면에 적들은 역풍에 거스르면서 대처해야 하는 불리한 상황.

[바, 반격! 적의 공격을 맞받아쳐라!!]

간신히 정신을 차린 지휘관급의 무장들이 부하들을 독려하며 소리를 질렀지만 대부분이 아직도 균형감각을 상실해버린 상태로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무투기. 천승아???!!]

[무투기. 혼섬뢰!!]

선두에서 누구보다도 빠르게 질주해 내려오는 리한에게 적의 무장 하나가 기다란 창을 휘두르면서 공격해 왔지만, 가볍게 흘려넘기는 것과 동시에 벼락 같은 카운터 공격이 상대방에게 꽂혀 들어갔다.

펑!

비명을 지를 사이도 없이 그리폰과 함께 상체와 하체가 반으로 분리가 되어서 날아가 버리는 적의 무장.

하지만 적을 베어 넘긴 리한의 질주는 조금도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너무 서두르지 마십시오, 도련님!!]

당황하는 루돌프의 목소리가 아스라이 들려왔지만 무시하면서 다음 적으로 향했다.

[죽어라, 가짜 후계자!!]

[감히 겁도 없이 혼자서 우리에게 덤벼들다니!!]

최소한 b급 이상, 지휘관급으로 보이는 세 명의 무장이 그렇게 외치면서 공격해 들어왔지만 리한은 문답 무용으로 월환쌍극의 절기를 사용했다.

[무투기. 환영월무!!]

[사라졌…]

퍼퍼펑!

당황한 적들이 마지막으로 확인한 광경은 목 없이 그리폰의 위에 앉아있는 자신들의 몸통뿐이었다.

[굉장해…]

터무니없는 신위에 넋을 잃어버린 이리나가 감탄을 금하지 못했다.

마치 물을 만난 물고기처럼 마주치는 적들을 단숨에 베어 넘기면서 거침없이 적진을 휩쓸어 버리는 리한.

[그래, 정말로 굉장하시구나! 하지만 감탄하고 있을 여유는 없다!! 모두 주군의 뒤를 따라라, 공격! 공격!!!]

[충?!!!!]

카오오오오오오오오!!

사납게 포효하는 그리폰을 다그쳐 속도를 높이며 지휘관과 싸울 의지를 잃어버리고 우왕좌왕하는 동맹군 라이더들을 단숨에 덮쳤다.

[으아아아아악!]

[항복, 항복!!]

[제발 목숨만은 살려주십시오!!]

추풍낙엽처럼 쓰러져 나가는 적들.

여기저기에서 무기를 버리고 투항 의사를 밝히는 자들이 속출하면서 동맹군의 전열은 제대로 저항하지 못하고 모래성처럼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암울한 전황 속에서도 침착하게 역전의 기회를 노리는 무장이 있었다.

“휴우우우우­”

우드드드득­

호흡을 가다듬으며 위도우 메이커를 들어 올리는 헤스티야.

그녀가 노리는 것은 오직 한 사람.

적의 심장이나 다름이 없는 주제에 겁도 없이 자신들의 진영 깊숙이 들어와서 날뛰고 있는 리한 뿐이었다.

‘내 활이 무정하다고 하지 말아주십시오, 후계자님. 전쟁이라는 것이 원래 이런 겁니다!’

가격이 비싸기 때문에 대부분은 일반적인 것을 사용하지만 특별한 가치가 있는 적을 상대할 때는 특수 제작한 7개의 마나타이트 화살을 꺼내 드는 헤스티야다.

지금까지 노린 사냥감을 한 번도 놓쳐본 적이 없는 필중, 필살의 병기.

그녀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7개의 화살 전부를 위도우 메이커의 시위에 걸고서 자신의 모든 내력을 쏟아부어 발사했다.

[무투기. 세븐 스타!!]

퉁!

시위를 놓아버리는 것과 동시에 모습이 사라져버리는 화살들.

쐐애애애애애애애액­

상식적으로는 있을 수가 없는 비정상적인 속도와 비정상적인 궤적을 그리며 나아가는 7개의 마탄이, 거침없이 질주하는 리한을 추격하면서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 왔다.

‘역시 최후의 장애물은 그녀로군.’

시위를 떠날 때만 하더라도 요란하게 소음을 냈던 기술이 이제는 기분이 나쁠 정도로 조용해 졌다.

보이지 않고 소리도 들리지 않는 7개의 화살.

기감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려서 탐지할 수 있는 숫자는 겨우 6밖에 되지 않는다.

자신의 목숨을 노리는 최후의 한 발.

그것은 완전한 무형시無??였다.

‘터무니없는 기술이로군. 이래서야 A급의 암살자 여섯 명과 S급의 암살자에게 동시에 목숨을 노려지는 형국이 아닌가?’

“후욱­ 후욱­ 후욱­ 후욱­ 후욱­”

자신의 모든 힘을 쏟아부었는지 완전히 기진맥진한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무투기 하나의 완성도만으로도 헤스티야의 무장등급은 과소평가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이런 곳에서 허무하게 당해줄 수는 없지!”

파지지지지직­

리한은 마스터 코어의 힘을 전력으로 끌어올리면서 그녀를 향해서 기수를 돌렸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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