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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88화 〉 질풍가도(8) (288/429)

〈 288화 〉 질풍가도(8)

* * *

지상의 수상한 움직임을 감지한 그녀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활시위를 당겼다.

퉁!

슈우우우우우우웅!

퍽!

병사의 미간을 관통해서 뇌 수액을 흩뿌리면서 빠져나오는 화살.

“…불꽃…놀이…”

털썩!

최후의 유언으로 의미불명의 말을 남긴 그의 손에서 불이 붙은 도화선이 바닥에 떨어졌다.

치지지지지직­

순식간에 여러 갈래로 퍼져나가는 불꽃.

‘저게 뭐지?’

매의 눈을 발동한 헤스티아가 조금 더 집중해서 주변 일대를 살펴보니 위장포로 가려진 수십여 개의 발사 장치가 자신들을 겨냥하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매복입니까?”

“아니, 적은 하나뿐이야. 하지만 경계를 늦추지 마라. 수상한 장치를 작동시켰다!”

하지만 그녀는 밀집해 있는 라이더들에게 구태여 대피하라는 지시를 내리지는 않았다.

이유는 하나.

본능적으로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고도로 발달한 기감을 가지고 있는 무장들은 자신들에게 위협이 될 수 있는 공격을 육감적으로 캐치해내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특히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은 마나의 움직임.

구름 속으로 진입을 시도했던 라이더가 자신의 반사 신경을 뛰어넘는 낙뢰에도 즉각적으로 대처할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그것 때문이었다.

아무런 위험이 느껴지지 않는 지상의 발사통보다는 오히려 다양한 정령들이 활발하게 날뛰며, 마나의 움직임을 혼란하게 만드는 머리 위쪽의 악천후가 더 거슬리고 신경 쓰이는 것이 현실.

그것이 올바르면서도 안일한 판단이었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는 그렇게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피유우우우우웅­

“뭔가 발사되었습니다!”

“가까이 접근하지 마라! 상슬 고도를 높여서 거리를 둬라!!”

힘없이 올라온 발사체가 라이더들에게 도달하지 못하고 아래쪽에서 폭발했다.

펑!!!

순간적으로 터져 나오는 엄청난 소리에 반사적으로 눈살을 찌푸리는 동맹군.

아름다운 불꽃이 꽃잎처럼 퍼져나가는 모습에 하나같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했다.

이어서 연달아 쏘아져 올라오는 무수한 숫자의 발사체.

피유우우우우우웅­

펑! 펑! 펑! 펑! 퍼퍼퍼퍼퍼퍼퍼펑!!!

[뭐야 이게?]

[불꽃놀이?]

[누가 불꽃놀이를 몰라서 물어? 내 질문은 어째서 이런 일을 벌이냐는 거잖아!]

[글쎄? 우리를 환영해주려는 거 아니야? 축제라도 열어주려나 보지.]

[장난하지 마! 이건 축제가 아니라…]

[마치 누군가에게 보내는 메시지 같군.]

흠칫!

‘메시지라고???’

다른 라이더들과 마찬가지로 멍하니 불꽃놀이를 감상하던 헤스티야가 이 말에 무엇인가를 깨닫고 경악하면서 소리를 질렀다.

“전원 산개!!! 지금 당장 이곳을 벗어나…”

투콰아아아아아아앙!!

하지만 그녀의 외침이 끝나기도 전에 시야 전체가 사나운 폭풍과 어둠 속에 잠겨버리고 말았다.

****

사태가 일어나기 1분 전.

리한이 이끄는 아스트라세 가문의 그리폰 부대는 처음부터 감시탑 상공의 구름 위에 머무르면서 꼼짝도 하지 않고 있었다.

대동하고 있는 인원은 1600.

그리폰을 조종하는 라이더 600명을 제외한 나머지 수행 인원을 모두 마법사로 데려온 비정상적인 구성을 이루고 있었다.

기동력을 완전히 포기하고 마법 화력에 모든 것을 쏟아붓는 극단적인 편제.

우우우우우우웅­

적이 도착할 타이밍을 계산해서 이미 최대 출력으로 뽑아낸 전술 마법이 발사 임계치에 도달하고 있었다.

“마법진을 유지하는 것도 한계입니다, 후계자님! 앞으로 10분! 아니, 5분도 버티지 못하고 술식이 깨져버릴 겁니다!”

아스트라세 가문 휘하의 최고 마법사.

6서클 유저인 아놀드 남작이 우는 소리를 해왔다.

“인내심을 가지고 아슬아슬한 타이밍까지 버텨라. 낚시는 워래 인내심과 끈기가 중ㅇ하지 않느냐? 대어를 낚아 올리고 싶다면 겨우 이 정도로 징징거리지 마!!”

“하하하하하! 도련님의 말씀대로다. 하필이면 좋아하는 낚시에 빗대서 훈계를 듣다니 네가 한 방 제대로 먹었구나!!”

“큭…아, 알겠습니다!”

껄껄거리는 루돌프의 조롱에 잠시 표정을 일그러트렸던 그는 마음을 고쳐먹고서 전술 마법 유지에 전력을 다했다.

아닌 게 아니라, 완벽한 기습 공격을 감행하기 위해서 무리하고 있는 것은 그만이 아니다.

파지지직­ 파지지직­ 파지지지지지직!

“크윽!”

“괜찮으냐? 이리나!”

얼굴을 일그러트리는 그녀를 보고 놀란 리한이 물었다.

“자, 잠시 집중력이 흐트러졌을 뿐입니다. 오히려 격체전력으로 저희 부녀의 내공을 보충해주는 도련님 쪽이 걱정입니다만…”

“후후후후. 오히려 그거야말로 쓸데없는 염려야. 그렇게 걱정스럽다면 오늘 전투가 끝난 후에 네가 양기를 보충해주면 되지 않느냐?”

“…네.”

슬그머니 추파를 던지자 수줍게 얼굴을 붉히며 조그마한 목소리로 대답해 왔다.

“크흠, 크흠. 금실 좋은 모습이 흐뭇하기는 합니다만 아무리 그래도 제 앞에서 너무 그러시는 것은 자제를…”

[아버지는 닥치고 있으세요.]

“…딸자식 키워봤자 아무런 소용도 없다더니…”

장난치듯이 대화를 나누고 있지만 세 사람은 사실 여유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가 없을 정도로 전력을 다하고 있었다.

새하얀 백발을 휘날리면서 눈동자까지 백색으로 물들어버린 부녀.

두 사람이 전개하고 있는 무투기는 설영빙천공의 최고 절기인 천영풍천화였다.

하나하나가 강기를 머금고 있는 날카로운 수천 개의 얼음 파편들을 허공으로 띄워 올리고 있다.

엄청난 내력 소모와 집중력을 요구하는 기술이기 때문에, 부녀의 명문혈에 손을 얹은 리한이 밑 빠진 독으로 물을 쏟아붓는 것처럼 자신의 마나를 아끼지 않고 퍼부어대는 상황.

휘오오오오오옹오­

이미 주변 일대의 온도는 영하 30도까지 떨어진 상황.

아스트라세 가문은 무공은 날씨가 추우면 추울수록 그 힘이 고강해진다.

때문에 팔콘 전사들은 누구도 예외가 없이 빙공을 수련하고 있으며 내력을 끌어올리는 것만으로도 시너지 효과가 일어나서 주변 환경과 대기에도 이렇게 영향을 준다.

한껏, 무거울 대로 무거워진 차가운 공기.

펑!

그리고 기다림의 결실이 맺히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두꺼운 난층운을 투시할 수는 없다.

정령들이 일으키는 마나 교란 때문에 그 너머로 적의 마나를 탐지하는 것도 불가능에 가까운 일.

하지만 청력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리면 뇌성 벼락하고는 명확하게 다른 폭발음을 잡아내는 것은 간단한 일이다.

“키릴 녀석의 자신의 임무를 훌륭하게 완수했군.”

폭죽과 발사대를 설치해준 것은 아스트라세 가문이지만 도화선을 당기는 것은 녀석의 역할이었다.

블러드 디자이어가 보여주는 환상에 사로잡혀서 그저 한결같이 불꽃놀이를 과녁에 맞추고 싶다는 욕망에 사로잡혀버린 불쌍한 희생양.

물론, 그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은 오로지 리한 뿐이었다.

“대의를 위해서 목숨이 위험한 임무를 자처해서 수행하다니. 평민이지만 훌륭한 군인이었습니다. 부디 무사하면 좋겠습니다만…”

“나도 동감이다. 하지만…아무래도 어려울 테지. 녀석의 희생을 헛되이 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이번 전투는 반드시 승리하겠다. 랭캐스터를 처단하자, 정의는 우리에게 있다!!!”

챙!!

우오오오오오오!

격체진력을 중단하고 일극과 월극을 빼 들며 외치자 사기가 올라간 팔콘 전사들이 투구 끈을 질끈 동여매면서 돌입 준비를 마쳤다.

펑! 펑! 펑! 펑! 퍼퍼퍼퍼퍼퍼퍼펑!!!

연달아 울려 퍼지는 폭죽 소리에 적의 방향과 위치를 파악하는 것이 훨씬 용이해졌다.

그에 따른 전술 마법의 목표 좌표가 재조정.

아놀드 남작이 모든 준비가 끝났다는 신호를 보내자 리한이 검을 휘두르면서 공격 명령을 내렸다.

“전술 마법을 발사해라!!”

*****

[다운 스트림 버스트]

비정상적으로 강력한 하강 기류.

폭발하듯이 쏟아져 내려오는 먹구름에 집어 삼켜진 동맹의 그리폰 라이더들은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며 우왕좌왕했다.

휘오오오오오오오오!!!!

쿠어어어어어어억!!

정신없이 몰아치는 사나운 바람에 균형을 잡지 못하고 날뛰는 그리폰 무리.

[꺄아아아악♡]

[하하하하하하! 신난다, 신나! 엄청나게 빠르다!!]

[무­야호!!]

천진난만한 정령들이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처럼 즐거워하면서 날뛰는 바람에 동맹군 무장과 마법사들의 감각을 혼란스럽게 했고, 설상가상으로 그 속에서 만천화우처럼 쏟아져 내리는 강기가 그들을 덮쳤다.

퍼퍼퍼퍼퍼퍼펑!

낙하 가속도와 하강 기류까지 더해져서 그야말로 벼락처럼 내리꽂히는 공격.

[크아아아아아아아악!!]

공격 한 번에 백여 명이 넘는 라이더들이 목숨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메이데이! 메이데이! 적들에게 공격받고 있다! 어디가 위고 아래인지를 구분하지 못하겠…으아아아악!]

[사, 사람 살려! 그리폰들이 미쳐서 날뛰고 있어!! 히이이이익! 떨어진다아아아아아!!]

로데오처럼 폭주하는 자신들의 파트너에게 내동댕이쳐져서 지상으로 추락하는 라이더들, 그중에는 아예 흥분해서 날뛰는 녀석들의 먹잇감으로 전락해버리는 경우도 있었다.

그야말로 완벽한 대혼란.

하지만 진짜 공격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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