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7화 〉 질풍가도(7)
* * *
휘오오오오오오!
높은 상공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귀청을 때리는 가운데 선두에 있는 그리폰 라이더들이 날개를 펼치는 새처럼 간격을 크게 벌렸다.
그들의 역할은 후방의 주력 부대가 기습당하지 않도록 초계 임무를 수행하는 것.
[적들이 보이나?]
[아직까지는 그림자도 보이지 않습니다!]
전략 규모의 통신 방해로 적과 아군 모두가 색적 탐지와 통신 마법의 사용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원거리는 마법사들의 발광 신호로, 근거리는 간단한 수신호와 전음을 통해서 서로의 의사를 전달했다.
‘설마 구름 위로 이동하고 있는 것인가?’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는 적의 모습에 눈살을 찌푸리는 카슨.
부하에게 올라가 보라는 신호를 보내자 곧바로 고개를 끄덕이면서 고삐를 잡아당겼다.
크오오오오오오오!!
사나운 포효와 함께 수직으로 상승하는 그리폰.
쿠구구구구궁
“큭!”
하지만 먹구름 속으로 진입하려던 라이더는 등골이 오싹해지는 감각에 다급하게 들고 있던 무기를 허공으로 집어 던졌다.
쾅!!!
엄청난 뇌성과 함께 번뜩이는 섬광이 시야를 가렸다.
투두두두둑!
새카맣게 타버려서 떨어지는 무장의 창.
꿀꺽
조금만 늦었어도 자신이 그렇게 되어버렸을 거라는 생각에 침을 꿀꺽 삼키며 하강해 왔다.
[번개 폭풍이 너무 심합니다! 아무런 준비 없이 진입하는 것은 어려울 것 같습니다!]
[마법사들은 방도가 없는가?]
[정령들이 너무 사납게 날뛰고 있습니다. 억지로 통과하려면 불가능하지는 않겠습니다만…]
[일단 말해보거라!]
[전술 마법이나 무장들의 무투기를 연계 발사해 먹구름을 통째로 날려 버리는 것이 가장 빠르고 효율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굳이 올라가려고 애쓸 필요는 없을 것 같군요.]
헤스티아가 슬그머니 조언해 왔다.
[나도 동의하오!]
사나운 그리폰을 제어하려면 비행하는 것만으로도 내력을 소모하며 피로가 누적된다.
별다른 이유가 없다면 무장과 마법사들의 마나를 무의미하게 소진하는 행위는 금물.
게다가 이런 상황에서 허공에다가 요란한 공격을 퍼부어대는 것은 적들에게 자신들이 있는 장소를 알려주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헤스티아 경의 퍼큘리어, 매의 눈으로 구름 너머를 꿰뚫어 볼 수는 없겠소?]
[죄송하지만 투시까지 되는 능력은 아니라서…]
[알겠소. 그렇다면 구름 위는 신경 쓰지 않아도 되겠군. 사정이 비슷하기는 적들도 마찬가질 테니까 말이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고개를 끄덕이면서 동의한 일행은 최초의 공습 봉화가 올라온 감시탑으로 향했다.
대략 1시간 전에 일어난 일.
탑 전체가 불타고 있었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병사들은 죽이지 않고 눈과 입을 가리고 장대에 묶어두고 간 것이 보였다.
[저들을 풀어줘서 정보를 얻어야겠군.]
[조심하십시오, 적의 함정일지도 모릅니다!]
[함정이라면?]
[감시탑이 세워진 언덕 주변의 숲이 너무 울창합니다. 지상에 숨어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일리가 있소!]
헤스티아의 말대로 키가 큰 나무들이 빽빽하게 밀집해 있어서 그리폰 부대를 충분히 잠복시켜 놓을 수가 있을 것처럼 보였다.
[지상 정찰이 필요하다!]
[저희가 하겠습니다.]
카슨의 외침에 라이더 그룹을 이끄는 대장 하나가 곧바로 손을 들어서 지원 의사를 밝혔다.
[크랑 경께서?]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아, 아니오! 버건디 남작가의 용사들이 임무를 맡아준다면 더할 나위 없이 든든한 일이지! 헤스티아 경. 이번에야말로 경의 능력을 사용해서 그들의 뒤를 지켜주시기를 바라오!]
[맡겨주십시오!]
[감시탑 병사들의 탐문은 내가 직접 진행하겠다. 너하고 너, 그리고 너까지 세 사람만 따라오도록 해라! 나머지 인원은 이곳에 남아서 혹시 모를 적의 공격을 경계하도록 해라!]
[네, 알겠습니다!]
무리를 빠져나온 카슨 일행은 감시탑으로 천천히 하강해 갔다.
한발 앞서서 주변 일대를 정찰한 버건디 가문의 라이더들이 착륙해도 좋다는 신호를 보내자 안심하고 속도를 높였다.
[정말로 의외로군. 버건디 남작의 무장들이 우리를 위해서 위험한 역할을 자처해 주다니 말이야!]
[동감입니다. 본의는 아니었다고 해도 균터 남작가와의 혼담을 빼앗은 것처럼 깨지게 만들어버리지 않았습니까? 틀림없이 우리 록우드 가문에도 앙심을 품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만…]
[말조심해! 그건 우리 잘못이 아니잖아!!]
[아니,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지. 몰랐다고는 해도 확실하게 알아보지 않은 우리 잘못도 있다!]
카슨이 하는 말은 과장이 아니었다.
현재는 요아힘과 결혼한 그리젤다는 원래 버건디 가문의 후계자하고 혼담을 주고받고 있었다.
그런 말도 안 되는 더블 부킹이 이루어진 이유는 균터 가문에서 지참금을 탐냈기 때문.
귀족 가문 사이에서는 신부, 또는 신랑을 자신의 가문으로 데려오기 위해서 지참금(혼수)을 뇌물 형태로 보상해주는 것이 관례였는데, 이것을 악용해서 엄청난 돈을 뜯어낸 다음에 모르쇠로 일관해버리자 분노한 버건디 가문의 가주 트로예 남작이 당장에라도 균터 가문과 전쟁을 일으키겠다고 길길이 날뛴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게 결국에는 동맹의 중재로 흐지부지되어버리고 말았지. 이 사건 때문에 트로예 남작님께서는 작년의 회합에 얼굴도 비추지 않으셨잖아?]
[화날 만하지. 솔직히 나는 그 사건 때문에 우리를 배신하고 후계자 편에 붙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말이야. 아카이아에도 마법사를 보내준 것으로도 모자라서 이번에는 그리폰 라이더를 200기나 지원해 줬으니…]
[크흠, 크흠! 트루예 남작의 도량을 무시하는 발언은 멈춰라! 아무리 파혼 한 번으로 감정이 상했기로서니 그분께서 300년 동안 이어져 내려온 동맹의 의리를 저버릴 사람으로 보이는 것이냐?!]
[무, 물론 아닙니다! 시정하겠습니다!!]
뒷담화에 정신이 팔린 측근을 매섭게 다그친 카슨은 감시탑에 그리폰을 착륙시키고 곧바로 묶여있는 병사들을 풀어줬다.
“상황을 보고해라!”
“콜록, 콜록, 콜록! 후, 후계자가 키릴을 데려갔습니다!”
연기를 들이마셨는지 연신 기침을 멈추지 못하는 병사들 중 하나가 다급한 목소리로 외쳤다.
“키릴이라니?”
“이제 막 들어온 신참입니다! 다른 대원들은 모두 여기에 묶어뒀는데 어째서인지 녀석 하나만…”
“신참?”
카슨이 고개를 갸우뚱하자 측근이 버럭 화를 내면서 소리를 질렀다.
“무엄한 놈! 그따위 녀석의 생사 따위를 알려고 남작님께서 행차하신 것이 아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도움이 되는 정보를 이야기해라! 감시탑을 공격한 적의 구성과 규모, 행선지를 보고하란 말이다!!”
“쓰, 쓸모없는 녀석이라니…저희를 구해주려고 오신 게 아니었습니까?”
“이런 멍청한 새끼야, 닥쳐! 죄송합니다. 각하! 부디 이해해주십시오. 끌려간 녀석의 맞선임이라서 이러는 겁니다. 상황 보고는 탑장인 제가 대신하겠습니다.”
“말해라!”
최선임자가 앞으로 나와서 대신 머리를 숙이자 거드름을 피우면서 외쳤다.
“감시탑을 공격한 것은 틀림없이 후계자가 이끄는 라이더들이었습니다. 그리폰의 숫자는 대략 600! 하지만 적을 발견하는 것과 동시에 원거리 공격을 받아서 봉화를 올리기도 전에 제압당하고 말았습니다!”
“봉화를 올리지 못했다니? 공습경보는 네놈들이 보낸 것이 아니냐?”
“아닙니다! 공격 한 방으로 탑이 무너져버리는 바람에 그럴 여유가 없었습니다. 공습경보는 저희가 아니라 적들이 올리고 떠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생각한다니?”
“저희가 묶여있는 모습을 보지 않으셨습니까? 제압당하는 과정에서 눈가리개와 재갈이 물려졌습니다. 그래서 적들이 감시탑을 공격한 다음에 무슨 일을 했는지를 파악할 수가가…”
“그렇다면 후계자의 군대가 어디로 이동했는지도 모른다는 소리군. 떠난 방향조차도 말이야!”
“송구합니다!”
“이런 쓸모없는 녀석들!!”
“됐어, 일반 병사들에게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는 것도 어리석은 일이지! 어쨌든 적의 숫자가 우리의 절반도 되지 않는다는 정보를 알아낸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카슨 남작이 불같이 화를 내는 측근들을 말리며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적들이 어디로 이동했는지 몰라서야 아무런 의미가 없지 않습니까?”
“감시탑은 다른 곳에도 있다. 구름 위를 이동하지 않고서야 그들의 시야를 피해 가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지! 어쩌면 헤스티야 경의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군. 아무래도 적들은 우리를 이곳으로 유인한 것 같다!”
“숲에 매복해서 기습할 타이밍을 노리고 있다는 겁니까?”
“그렇다면 멍청한 짓이지. 오히려 독 안에 든 쥐나 다를 바가 없으니까 말이야! 버건디 가문이 주변 일대를 샅샅이 수색하고 있으니까 적들을 찾아내는 것은 시간 문제다. 매복을 풀고 조금이라도 날아오르려고 했다가는 헤스티야 경에게 탐지당할 테고 말이야!”
“아니면…”
“아니면?”
뭔가를 떠올렸는지 심각한 표정으로 중얼거리는 측근에게 되물어보는 순간, 헤스티야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적이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