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6화 〉 질풍가도(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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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우드 가문에게 알린다. 지금 즉시 랭캐스터의 도망자 요아힘을 넘기고 투항해라! 무기를 버리고 산시아 성문에 백기를 내걸지 않겠다면 굴복할 의사가 없다는 뜻으로 받아들이고 천년 가문의 분노와 마주하리라!
지이이이이이잉!
앵거스 전체로 퍼져나가는 후계자의 선전 포고.
동시에 전략 규모의 통신 방해 마법이 지역 전체를 덮쳤다.
우당탕쿵쾅!
“무, 무슨 일이냐?!”
갑옷 차림으로 흔들의자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던 카슨 남작이 혼비백산 넘어지면서 소리를 질렀다.
“아카이아 시 방면의 감시탑에서 봉화가 올라왔습니다! 적의 공습, 스크램블 경보입니다!”
“버, 벌써 쳐들어온다고? 아카이아를 점령하고 겨우 하루도 지나지 않았잖느냐?!”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맞서 싸우시겠습니까?”
“다, 다, 당연한 소리! 마법사들이 사로잡혔다고 해도 그리폰 라이더의 숫자는 우리가 압도하고 있다. 지금 당장 소집 알람을 울려라! 거꾸로 받아쳐 주마!!”
“네, 알겠습니다!”
위이이이잉! 위이이이잉! 위이이이잉!
두두두두두두
산시아 성의 복도에서 요란하게 울려 퍼지는 무장들의 발소리.
[서둘러서 준비해. 우물쭈물하지 마! XX새끼들아!!]
[걷지 말고 뛰어! 이게 지금 훈련 상황으로 보이냐?!]
[3분 내로 활주로에 집합하지 못하는 한심한 녀석은 그리폰의 먹이로 던져주마!!]
고참들이 내지르는 고함과 욕설에 군기가 바짝 들어간 후임들이 허둥지둥 통로를 달렸고, 측근들을 대동하면서 그룹을 뒤따라가는 카슨 남작은 군기가 바짝 들어간 라이더들의 모습에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다행스럽게도 사기는 좋아 보이는군.”
“당연합니다. 무장 중에서도 엘리트만 선별한 그룹이 아닙니까?”
산시아 성의 성주, 카슨의 최측근 해링턴이 그렇게 말했다.
“민심은 어떻지?”
“별로 좋지 않습니다. 후계자의 방송 훈계가 통했는지 폭동으로 발전할 기미는 보이지 않지만 영지 전체에서 적어도 수만 명의 영민이 시위 행렬에 합류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통제하는 일반 병사들의 사기는 말할 것도 없고요.”
“빌어먹을 구스타프! 도대체 일을 얼마나 망쳐놔야 속이 시원한 거냐? 녀석에게 마법사들을 싸그리 내주는 바람에 이쪽은 원군조차 제대로 불러올 수가 없는 상황이란 말이다!!”
후계자의 다음 표적이 될 수밖에 없는 앵거스였기 때문에 영지의 마법사란 마법사는 끌어모아서 전이 마법진을 구축해 원군을 불러오고 있었지만, 서로 마법사가 부족한 것은 마찬가진 데다가 마나 소모도 극심하기 떄문에 난관에 부딪혀 있었다.
급한 대로 아카이아 같은 사태를 피하려고 동맹 전체의 라이더를 소집한 상황.
“래리님에게는 아무런 연락이 없었습니까? 하다못해 하이잘 님의 지원이라도 받을 수 있다면 상황이 훨씬 호전될 거라고 생각합니다만…”
“통신 자체가 안 돼! 스톰 가드는 물론이고 충성파 전체가 우리 동맹의 구원 요청을 무시하고 있다. 우리가 자기들을 위해서 얼마나 열심히 일해왔는데 이렇게 냉정하게 내쳐버리다니 배은망덕하기 짝이 없는 녀석들 같으니라고!!”
우당탕탕!
카슨 남작이 그렇게 투덜거리고 있을 때 계단을 굴러 넘어지면서 내려온 녹색 머리의 청년이 사색으로 그에게 달려왔다.
“아빠, 아빠아아아!”
“요아힘! 여기는 무슨 일이냐? 안전하게 자신의 방에 있으라고 하지 않았느냐?!”
“아빠도 방송 들었잖아! 후계자님이 공격해 온데! 나를 죽이려고 오는 거라고!!”
“알고 있다. 하지만 미리 대비하고 있었으니까 걱정하지 마라! 그리폰 라이더의 숫자는 우리가 우세해. 게다가 동맹의 지상군도 이미 출발했어. 며칠 안으로 산시아 성에 도착해서 힘을 보태줄 것이다!!”
“그, 그래도 우리가 열세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잖아? 뉴스를 봤는데 후계자님의 휘하로 제니아의 거의 모든 귀족이 소집되고 있대! 게다가 제니아 최강의 선봉 가문을 우리 동맹의 힘만으로 어떻게 당해낼 거야???”
“거, 걱정하지 말라고 하지 않았느냐? 전쟁은 기세 싸움이야. 이번 전투에서 승리한다면 충성파도 생각을 달리할 거다! 너는 이 아빠가 반드시 지켜줄 테니까 쓸데없는 생각하지 말고 얌전히 있어라. 아, 그리고 그리젤다에게 잘해주는 것도 잊지 말거라! 우리 다섯 남작이 서로를 지켜주는 이유는 결혼동맹을 공고하게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야. 어서 빨리 손자의 얼굴을 아비와 균터 남작에게 보여주거라!”
“아, 알겠어! 하여튼 이런 상황에서까지 잔소리야…어, 어쨌든 제발 녀석들을 해치워줘! 나, 나는 정말로 몰랐단 말이야! 콜라 형이 그렇게 무시무시한 조직의 일원이었다니…”
“하하하하하! 그래, 그래! 아빠만 믿어라! 사랑하는 거 알지?”
“몰라! 부하들 앞에서 창피하게 정말…”
자식 앞에서 허세를 부리는 카슨과 꾸부정한 자세로 구시렁거리며 도망치듯이 자리를 떠나는 요아힘.
한심하기 이를 데가 없는 부자의 꼬락서니에 해링턴의 눈매가 가늘어졌지만 그런 표정 변화를 알아챈 사람은 현장에 아무도 없었다.
“가자! 천년 가문의 후계자에게 다섯 남작 동맹의 저력을 보여주자!!”
우오오오오오!!
남작의 외침에 뒤따르는 라이더들이 무기를 들어 올리며 소리를 질렀다.
크오오오오오오!
활주로에 도열한 그리폰들은 본능적으로 전투가 임박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사나운 포효를 내지르며 흥분해 날뛰고 있었다.
덕분에 사육사들을 그들을 달래고 진정시키느라 진땀을 흘렸다.
그 숫자는 무려 1200.
아스트라세 가문에서도 추가로 소집한 그리폰들을 보내올 테지만 서둘러도 지나치게 서두른 공습이었으니 적어도 배 이상은 앞서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길 수 있어.’
이곳에는 동맹 전체에서도 내로라하는 무장과 마법사들이 집결해 있었다.
모두 B급 이상의 실력자.
그중에서도 제일 눈에 띄는 사람은 자신의 키보다 거대한 파란색 활을 등으로 짊어지고 있는 여성, 남작 동맹 최강 A급 무장으로 명성이 자자한 마탄의 사수 헤스티아 경이었다.
“오오오오! 헤스티아 경, 그대가 와주실 줄은 몰랐소! 균터 남작의 아낌없는 지원과 후의에 감사드리오! 이것이야말로 천군만마를 얻었다는 표현이 과장이 아니올시다!!”
그녀의 나이는 40대 후반.
하지만 무슨 이유 때문인지 아직 미혼을 고수하고 있는 데다가 겉모습만 보면 20대 초반이라고 과언이 아닌 앳된 외모와 미모의 소유자다.
궁수가 착용하는 가슴 보호대.
시야를 가리지 않기 위해서 천으로 단단히 묶어 올린 하늘색 머리카락.
근접전에 대응하기 위해서 허리에 착용하고 있는 짧은 단도 두 자루와 양손에 착용한 슈팅 핑거 같은 장비들이 인상적이었다.
“위기에 빠진 동맹을 지원하는 것은 당연한 의무가 아니겠습니까? 그리젤다 아가씨를 위해서라도 목숨을 아끼지 않고 싸우겠습니다!”
“하하하하하! 말씀만으로도 든든하구려! 하지만 전위는 우리가 설태니 경께서는 안전한 후위에 머무르면서 신기에 이르렀다는 활 솜씨를 뽐내주시기를 바라오. 왕국 전체에 명성이 자자한 그대의 위도우 메이커가 우리를 지켜주기를 기대하겠소!”
“물론입니다, 미력한 솜씨로나마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카슨은 힘차게 대답하면서 경례하는 그녀를 흐뭇하게 바라보면서 고개를 끄덕인 직후에 시종의 어깨를 밟으며 뛰어올라서 그리폰의 안장에 올랐다.
코끼리처럼 커다란 체구를 자랑하는 이 짐승은 단독으로 C급 무장에 맞서 싸울 수 있는 강력한 몬스터인 동시에, 수톤의 바위를 짊어지고 하루 내내 날아도 지치지 않는 근력과 스태미나를 소유하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너무 많은 인원이 탑승했다가는 밸런스가 불안정해져서 기동력에도 영향을 주기 때문에 보통은 단독으로, 많아도 2~3명까지만 태우는 것이 기본이다.
한 손에 고삐를 잡고 공중 전투를 동시에 수행할 수 있는 베테랑 무장들이 혼자서 탑승.
라이더를 따로 두고 상대적으로 완력이 약한 사제와 마법사들이 2인 1조로 후방에서 지원해주는 것이 기본적인 편제 방식이었다.
투구를 질끈 동여맨 카슨은 자신의 시그니처 무기인 커다란 언월도를 힘차게 들어 올리면서 소리를 질렀다.
“전군, 출격하라! 목표는 앵거스 영공을 침략한 자들에게 본떄를 보여주는 것이다! 시건방진 풋내기 후계자와 아스트라세 가문에게 다섯 남작 동맹의 저력을 보여줘라! 다시는 우리를 무시하지 못하도록 싸워라, 죽여라! 한 녀석도 살려서 돌려보내지 마라!!!”
우오오오오오오오오오!!
크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위이이이이이이잉!
스크램블을 알리는 요란한 사이렌 소리와 함께 산시아 성의 공중 활주로에서 1200마리의 그리폰들이 힘차게 날개를 펼치며 날아올랐다.
봉화가 올라온 아카이아 방면의 감시탑으로 향하는 전사들.
하지만 이번 전투가 순탄하지 않을 것이라는 암시하는 것처럼 그들이 향하는 하늘에는 짙은 먹구름과 불길한 뇌성벼락의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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