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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85화 〉 질풍가도(5) (285/429)

〈 285화 〉 질풍가도(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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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먹 하나로 대륙 최강의 무장으로 칭송받았던 권황은 이런 말을 남겼다.

최고의 무기는 자신의 신체라고.

실제로 그 표현이 틀리지 않았던 시대가 있었다.

아직까지도 대체할 수단이 없다고 알려진 금강투합체는 오러 블레이드와 무투기를 막아내는 최고의 호신공이다.

지금은 최하등급의 모험가조차 기본적으로 수행하는 무공이 되어버리고 말았지만, 한 때는 무력괴승이라고 불리는 밀교 집단의 배틀몽크들이 비밀스럽게 전승해 내려오던 절세의 신공이었다.

처음에 그들이 유레시아 대륙에 등장했을 때 일어난 컬처 쇼크는 상상을 초월했다.

그도 그럴 것이 강철은 물론이고 미스릴, 다마쿠스, 아다만타이트로 제련한 병기들이 피와 살로 이루어진 그들의 육체를 관통하지 못하고 오히려 맨손 박투에 종잇장처럼 찢겨버렸기 때문이다.

겨우 200명에 불과한 무력괴승은 순식간에 일곱 나라를 멸망시켰고 그곳에 서방정토의 극락세계를 건설하겠다면서 만타라국이라는 나라를 세웠다.

처음에는 금욕적이고 검소한 생활을 관철하면서 종교적인 신념과 교리에 충실한 것처럼 보였던 자들.

하지만 얼마 가지 못해서 탐욕스러운 본색을 드러내며 육욕과 사치, 향략에 빠져서 허우적거리다가 불과 50년도 버티지 못하고 나라 자체가 역사 속으로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이 혼란스러운 과정에서 그들이 비밀스럽게 전승해오던 금강투합체의 무공서가 대륙 전체를 이리저리 떠돌아다녔는데, 그것을 독점하려는 귀족들이 서로 죽고 죽이는 혈투를 벌이는 사이에 돈 냄새를 맡은 장사꾼들이 엄청난 숫자의 필사본을 만들어서 유통해버리는 바람에 한 시대를 풍미한 절세의 신공이 이제는 돈만 주면 누구라도 쉽게 구할 수 있는 물건으로 전락해버렸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무공 자체의 가치까지 떨어진 것은 아니다.

오히려 가치가 떨어진 것은 종래의 주류를 차지하고 있던 냉병기들이었다.

강철 = 금강투합체보다 약하다.

강철처럼 단단하지만 훨씬 가벼운 미스릴 = 당연히 금강투합체보다 약하다.

다마쿠스(운철) = 금강투합체를 수련한 C급 무장보다 약하다.

다이아몬드처럼 단단한 아다만타이트 = 금강투합체를 수련한 B급 무장보다 약하다.

한때는 최고의 금속이라고 칭송받은 것들이 피와 살로 이루어진 사람의 육체에 패배한다는 사실은 병기의 존재 의의 자체를 흔들어버리는 것이었다.

최고의 무기는 자신의 신체.

일시적으로나마 권황의 말이 농담처럼 들리지 않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물론, 언제나 그렇듯이 예외는 있었다.

신의 금속이라고 불리는 오리하르콘.

단단함과 강도 측면에서도 여타 금속과 비교가 되지 않지만 가장 큰 차이는 마나 저항력이 제로.

오히려 크게 증폭시켜주는 특성에 있었다.

단적인 예로 다마쿠스는 100의 마나를 주입하며 80의 출력밖에 내지 못한다.

마나와 가장 상성이 나쁜 아다만타이트의 경우에는 고작 50.

반면에 금강투합체는 자신의 신체를 강화하기 때문에 마나저항 자체가 존재하지 않고, 100을 주입하면 100만큼 강해져서 성취가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종래의 병기보다 효율이 월등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오리하르콘은 무려 10배, 1000%까지 출력을 강화해준다.

아주 단순하게 비교하면 같은 B급 무장이 대결할 때 무기의 성능만으로도 10배가 차이가 나버린다는 소리다.

문제는 이 금속이 터무니없이 희귀하다는 것.

지금까지 서술된 어떤 역사기록에도 오리하르콘이 매장되어 있는 광산은 존재하지 않는다.

채굴로는 절대로 발견되지 않기 때문에 금속 자체가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고대의 연금술로 만들어낸 신의 금속이라는 전설로 전해져 내려오고 있으며, 전 세계의 보유량이 겨우 400kg정도 밖에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마저도 대부분이 아티팩트 제작에 사용되었기 때문에 오리하르콘으로 제작한 병기는 유레시아 대륙에 3개, 동양에 2개가 있을 뿐이다.

소유자들은 모두 세계 최강으로 우위를 점칠 수 없는 카테고리 아웃.

이처럼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면 일반 병기가 금강투합체를 수련하는 효율을 따라잡지 못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냉병기와 그것을 수련하는 것을 전제로 하는 무공들이 한꺼번에 몰락할 거라고 예상했다.

그 시기에 주목받기 시작한 금속이 바로 마나타이트였다.

현대에 이르러서는 병기 제작에 빠질 수 없는 소재로 사용하기 때문에 보유량 자체가 국력의 지표로 여겨지는 광물.

테세트 평야에 엄청난 양이 매장되어 있어서 대륙 전체의 국가들이 하나라도 많은 광산을 차지하기 위해, 군웅할거의 전국시대를 연상하게 할 정도로 치열한 식민지 전쟁을 일으킨 원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하지만 이런 마나타이트도 처음부터 귀한 대접을 받았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처음에는 병기 제작에 적합하지 않다는 판정을 받았다.

왜냐면 점토처럼 물러도 지나치게 물렁물렁한 성질 때문에 종래의 제련 방식으로는 도저히 무기 형태를 유지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연금술사들은 이 금속에서 가능성을 봤다.

오리하르콘과 마찬가지로 마나 저항이 없고 오히려 약간이나마 증폭해주는 마나타이트.

신기하게도 10, 20, 30 정도의 적은 마나는 아예 주입할 수도 없을 정도로 마나 저항이 심하지만, 100 정도의 대량의 마나를 주입하면 통로가 개방되는 것처럼 120의 출력을 한 번에 내는 특이한 성질을 가지고 있었다.

이것은 귀족들에게는 희소식이었고 마나 보유량이 상대적으로 적을 수밖에 없는 일반인들에게는 혀를 차게 만들 수밖에 없는 내용이었다.

신분의 차이를 공고하게 해주는 방파제.

연금술사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마나타이트의 특성을 그대로 유지하는 상태로 병기 제작에 적합한 특수 합금 소재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다만 불순물이 섞이는 바람에 마나 저항이 생겨버리는 것을 막지는 못해서 출력 효율이 90에서 110사이를 왔다 갔다 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금강투합체의 독주를 견제하기에는 충분한 수치.

피터 존슨이 제작한 일극과 월극은 그런 마나의 출력을 무려 150%까지 높여주는 비상식적인 물건이었다.

어떤 기믹을 사용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비결을 알아낼 수만 있다면 나라 하나만큼의 가치를 가지고 있을 터.

실질적으로 오리하르콘으로 제작한 삼신기를 제외하면 대륙 최강의 무기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었다.

물론, 세상에 이름난 명장이 그 하나뿐이 아니며 역사적으로 유명한 장인들이 만들어낸 작품은 모두 다 상식을 벗어나는 성능을 가지고 있어서 무엇이 위에 있다고 쉽사리 장담할 수는 없다.

그 우열은 소유자가 가리는 것이다.

리한은 월극과 일극의 이름이 세상 전체를 진동하게 만들겠다는 다짐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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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가 해방되고 겨우하루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아카이아는 빠르게 질서를 회복하고 있었다.

지이이이이잉­

마법사들이 사용하는 대규모 전이 마법을 통해서 속속들이 도착하는 아스트라세 가문의 후속 부대.

시민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도시 재건에 필요한 물자와 치료사들이 가장 먼저 현장에 도착했으며, 그들과 함께 오리나들과 라운드 시스터즈, 소냐 일행도 이동해 와서 곧바로 정액을 보급(?)해줬다.

이 행렬에 슬그머니 끼어든 기자단이 여기저기 성가시게 들쑤시고 다니는 바람에 눈살이 살짝 찌푸려지기는 했지만, 지금 당장은 활발한 언론 활동이 전황을 유리하게 만들어주는 것도 사실이기 때문에 일단은 내버려 두기로 했다.

문제는 그렇게 우선순위가 밀려버리는 바람에 전쟁을 수행할 병력이 턱없이 모자란다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리한은 진격을 늦출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었다.

“다음 차례로 마법사 부대가 도착하는 것과 동시에 지역 전체에 스크램블을 걸어라. 앵거스를 치겠다!”

앵거스는 다섯 남작 동맹에 소속되어 있는 록우드 가문이 통치하는 영지였다.

한때는 그들의 일원이었던 라독 가문은 이미 몰락해버린 상태.

블러드 디자이어의 환상으로 자결한 사람은 콜라뿐이며 구스타프 남작과 그의 식솔들은 목숨은 붙어있었지만, 차라리 죽는 것이 나을지도 모르는 비참한 신세로 전락해버리고 말았다.

우선 단전이 파괴당하고 랭캐스터 신분으로 강등한 것이 기본.

쇠고랑과 노예구를 차게 하고 도시의 재건 노동에 투입했는데 시민들이 화풀이할 수 있도록 썩은 계란과 과일을 집어 던질 수 있게 해줘서 온갖 욕설에 오물 범벅, 멍투성이로 성한 곳을 찾아보기가 어려울 지경이었다.

선을 넘는 행위까지는 허락하지 않았다지만 아무리 극악무도한 자라고 해도 동정심이 느껴질 만한 처분.

하지만 그들이 희망을 버리지 못하는 이유는 이 처벌을 사흘만 버텨내면 형량을 완화해주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이다.

‘생각 같아서는 목을 잘라버리고 싶지만 구스타프 남작은 하이잘의 학살 지시를 증언할 수 있는 유일한 증인이니까 말이지.’

교묘하게 자신의 범죄 증거를 남겨놓지 않은 늙은 요물을 단죄할 수 있는 와일드 카드.

물론, 지금 당장 중요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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