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9화 〉 (H이벤트 포함)전쟁 준비(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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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씀은 배후에 다른 누가 있다는 뜻으로 받아들여도 되겠습니까?]
“거기에 대해서는 아직 조사 중입니다만 실체를 밝혀내는 대로 관계자 전원을 신속하게 체포해서 법과 정의의 심판대에 세울 것을 약속드립니다.”
이미 주모자가 하이잘이라는 결론에 도달했지만 리한은 구태여 그를 언급하지 않았다.
[말씀 자체는 구구절절 옳으시군요. 하지만 조금 더 구체적으로 사태 해결을 약속해주시지 않으면 곤란하다고 생각합니다만…]
“…질문의 요지가 뭡니까?”
소냐의 도발에 그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아카이아의 시민들은 지금, 이 순간도 랭캐스터 연합의 무자비한 폭력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시위대가 해산하면서 강제 진압도 중단되었다고 하지만, 도시를 봉쇄하고 잔당을 색출한다는 명목으로 강제 연행과 약탈, 고문, 살인, 강간, 등의 온갖 범죄들이 자행되고 있지 않습니까?]
“말뿐인 약속이 아니라 먼저 행동으로 보여달라는 말씀으로 들리는군요.”
[제 말이 틀렸습니까? 시민들은 후계자님을 위해서 거리로 나왔습니다. 그런데 다른 누구도 아닌 후계자님께서 그들을 외면하고 안전한 장소에 숨어 대의명분을 운운한다면 그것이야말로 눈먼 정의가 아니고 뭐겠습니까?]
웅성웅성
거침없이 쏟아지는 발언에 기자단 전체가 술렁거렸다.
[저 여자 미친 거 아니야? 자기가 뭐라고 저렇게 나대는 거야!]
[앵커리지 공화국에서도 유명한 싸움닭이잖아. 최근에는 성질이 많이 유순해졌다고 들었는데 보아 하니까 그렇지도 않았던 모양이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여기가 공화국인 줄 알아? 귀족한테 못하는 소리가 없어.]
[그러게 말이야. 쓸데없이 우리한테까지 불똥이 튀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모난 돌이 정을 맞는다는 것처럼 대부분이 좋지 않은 결말을 예상하며 눈살을 찌푸리는 가운데, 아니나 다를까 리한이 굳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실례지만 기자님의 이름과 소속을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제니아 방송국의 소냐입니다.]
“…솔직히 놀랐습니다. 우리 왕국에 당신처럼 용감하고 소신 있는 기자가 있다니 제니아 방송국을 다시 보게 되는군요.”
웅성웅성웅성
예상하지 못한 호의적인 반응에 장내가 술렁거렸다.
“말씀하신 대로 아카이아는 사나그에서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말을 달리면 꼬박 하루가 걸리고 그리폰 부대를 보낸다면 3시간 안으로 도착할 겁니다.”
[그렇다면 어째서 구원부대를 보내지 않으시는 겁니까? 충성파와의 정면충돌을 피하시는 건가요?]
이번에 질문을 던진 사람은 소냐가 아닌 다른 남성 기자였다.
“경쟁사에 뒤처져서 조급해지셨군요. 하지만 자신의 발언 순서를 지켜주시기 바랍니다. 용감하고 소신이 있다는 것과 무례한 것을 혼동하시는 분까지 배려해드릴 생각은 없으니까요.”
하하하하하하하!
리한의 말에 좌중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고 창피를 당한 남자는 얼굴을 붉히며 자신의 자리로 되돌아갔다.
돌발 상황이기는 했지만 센스있는 대응으로 한결 가벼워지는 분위기.
“…그래도 기왕 나온 질문이니까 답변해드리겠습니다. 아카이아를 도와주는 것은 확실히 어렵습니다. 오르드리로 이어지는 최단 루트에 있습니다만 충성파의 세 영지, 다섯 남작의 연합군이 완강하게 버티고 있으니까요. 스톰 가드로 우회할 수 있는 다른 경로가 있는데 이곳으로 진군하는 것은 벌집을 쑤시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군사 전문가라도 어리석다고 생각하겠죠.”
웅성웅성
[하기야 그건 그렇지.]
[다섯 남작 중에서 둘이 중립을 선언했어. 하지만 그것하고는 별개로 서로 동맹을 맺어두었으니까 말이야.]
[하나가 공격당하면 모두 똘똘 뭉쳐서 대항해 온다…그야말로 벌집을 쑤신다는 표현이 딱 어울리는군.]
[거꾸로 사나그가 위험해질 수도 있어. 게다가 이쪽으로 진군해 나가면 스톰 가드에서도 마음 놓고 원군을 보내올 테지.]
[운이 좋아서 그들 모두를 물리친다고 해도 마지막 난관으로 기다리고 있는 장소가…]
[제니아 최대의 요새도시, 바렌탈!]
[천년 가문의 역사에서 스톰 가드와 함께 한 번도 함락된 적이 없다고 일컬어지는 난공불락의…안 돼, 안 돼. 아카이아를 도와주는 것은 멍청한 짓이야. 괜히 긁어서 부스럼이라고!]
열심히 쑥덕거리며 자신들이 알고 있는 정보를 주고받은 기자들은 하나같이 부정적인 결론에 도달했다.
쿵!
“하지만…”
‘하지만?’
모두의 머릿속에서 의문 부호가 떠오르는 순간.
“그따위 것들이 백성을 구하고 정의를 실현하는데 무슨 걸림돌이 될 수 있겠습니까!!!”
[!!!!!]
예상하지 못한 외침, 기자단과 TV방송 생중계를 쳐다보는 제니아의 모든 사람이 자신도 모르게 숨을 죽이는 사이.
“천년 가문의 후계자인 리한 폰 아슈킬은 지금 이 자리에서 다시 한번 선언하겠습니다. 백성의 적은 나의 적이니 정의 집행은 한 시도 주저 없이 이루어질 것이며 천년 가문의 이름으로 반드시 처단하고야 말겠노라고!!!”
오오오오오오오!!!
찰칵, 찰칵찰칵찰칵, 찰칵찰칵찰칵찰칵찰칵!!!!
사실상의 선전포고.
터무니없는 폭탄 발언에 탄성과 함께 플래시 세례가 미칠 듯이 쏟아졌다.
[그렇다면 아카이아에 곧바로 해방군을 파병하겠다는 말씀입니까?]
“아니,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고개를 저으며 말하자 사람들의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는 것도 잠시.
“이미 보냈으니까.”
딱!
촤아아아아아악!
리한이 손가락을 튕겨서 신호를 보내자 부하들이 그의 배후에 있는 거대한 장막을 걷어내면서 대형 스크린이 모습을 드러냈다.
웅성웅성웅성
[이미 보내셨다는 것은 무슨 말씀이신지…]
“소냐 기자님의 걱정 자체가 기우였다는 뜻입니다. 앞서 말했듯이 그리폰 부대를 보내면 겨우 3시간 안에 도착할 수 있는 도시를 해방하는데 쓸데없는 시간을 낭비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그, 그렇다는 것은 아카이아는 벌써…]
놀란 기자가 말을 더듬으면서 머뭇거리자 손을 들어서 멈추라는 제스처를 보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지금 바로 결과가 어떻게 되었는지 보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딱!
지이이이이잉
다시 한번 손가락을 튕겨서 신호를 보내자 대형 스크린 화면으로 아카이아 중앙 광장으로 보이는 장소가 연결이 되었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
크오오오오오!!
방송 중계가 시작되기가 무섭게 아카이아의 시민들이 내지르는 환호성 소리와 하늘을 날아다니는 아스트라세 가문의 그리폰들이 내지르는 포효가 장내를 뒤흔들었다.
[아스트라세 가문 만세! 천년 가문의 후계자 만세!!]
[제니아여 영원하라!! 아카이아의 해방자들에게 축복을!!!]
전투에서 승리한 루돌프는 중앙 광장의 단상에서 백성들의 성원에 화답하면서 손을 흔들어 줬고, 학살극을 일으킨 구스타프 남작과 그의 둘째 아들 콜라는 이미 포박당해서 무릎 꿇려져 있었다.
그리고 대기하고 있던 부하 하나가 통신 마도구를 가져와서 리한과 현장을 연결해줬다.
[모두 진정하고 예의를 갖추시오, 지금 후계자님과 통신이 연결되었소이다!]
우르르르르르
루돌프의 외침에 그 자신과 팔콘 전사들, 그리고 아카이아의 시민들이 일제히 스크린을 향해서 무릎을 꿇었다.
“그만! 오늘 하루 누구보다도 고생한 백성들이 예의를 갖출 필요는 없다. 일단 상황 보고가 먼저다, 모두 무사한 것이냐?”
[…아뢰옵기 송구하오나 대단히 심각한 상태입니다. 적들은 모두 제압했지만 보다시피 멀쩡한 건물이 없을 정도로 도시가 망가져 버렸고, 사망자와 부상자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속출해서 함께 도착한 신관과 치료사들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지경입니다.]
“알겠다. 그렇다면 곧바로 후속 부대를 보내서 상황을 정리하도록 하지. 아카이아의 백성들이여! 희망을 버리지 마라, 천년 가문의 후계자는 그대들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오늘의 상처와 슬픔을 딛고 반드시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으마!!”
!!!!!!
리한의 외침은 모든 희망을 잃어버리고 절망에 빠져 있었던 도시의 사람들에게 더할 나위 없이 묵직한 울림을 가져다주는 희망의 메시지였다.
잠깐의 침묵.
그리고 폭발하듯이 환호성이 쏟아져 나왔다.
[후계자님 만세!! 천년 가문이여 영원하라!!!]
[만세!!! 만세!!!! 만세!!!! 만세!!!!!]
복받쳐 흘러내리는 뜨거운 눈물을 억누르지 못하고 두 팔을 연거푸 들어 올리면서 소리를 지르는 남자, 남편을 잃어버린 딸과 모녀가 서로를 얼싸안으며 한없이 울음을 터트렸고 백발이 성성한 노인인 천년 가문의 깃발을 흔들어 대면서 만세를 외쳤다.
말로 설명할 수가 없는 감동적인 울림을 가져다주는 현장의 모습에 기자단에서는 자신도 모르게 훌쩍거리며 눈가를 훔치는 자들이 속출했다.
하지만 상황은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다.
왜냐면 학살을 일으킨 주동자들에 대한 처벌이 남아있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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