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78화 〉 (H이벤트 포함)전쟁 준비(8) (278/429)

〈 278화 〉 (H이벤트 포함)전쟁 준비(8)

* * *

“랭캐스터 연합이라는 이름에 대해서 들어본 적이 있느냐?”

리한의 질문에 루돌프는 고개를 저었다.

“없습니다. 그러고 보니 낯선 조직이군요.”

“당연히 그렇겠지. 조직이라고 할 것도 없는 단순한 양아치 패거리에 불과하니까 말이야. 원래는 랭캐스터 기사단이라고 하는데 공식 단체가 아니야. 방송에 나온 저 콜라라는 녀석을 중심으로 친구 20명 정도가 뭉쳐서 만든 친목 모임이라는 거지.”

“…정말 애송이들이로군요. 도련님께서 알고 있다는 사실이 더 놀라울 따름입니다.”

“훗.”

가볍게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하지만 그런 녀석들이 어떻게 이런 대형 사고를 일으킨 겁니까?”

“바로 그게 문제라는 거야. 어지간한 뒷배가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지.”

“아카이아의 시장, 구스타프 남작의 사주가 아니라는…?”

“학살 자체는 남작군의 소행이 맞아. 하지만 혼자서 그런 결단을 내릴 수 있을 정도로 배짱이 있는 녀석은 절대로 아니야. 돌로레스에게 뇌물을 바쳐서 출세한 전형적인 탐관오리, 소인배 아첨꾼이니까 말이지.”

“그렇다면 도대체 누가…”

“이렇게 음험한 흉계를 꾸밀 수 있는 사람이라면 제니아에서도 하나밖에 없지. 아카이아에서 일어난 학살극의 배후는 투크 가문의 늙은 요물, 하이잘의 작품이 틀림없다.”

씰룩­

이름이 언급되기가 무섭게 루돌프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 빌어먹을 영감탱이…”

“아스트라세 가문에게는 별로 달가운 이름이 아니지?”

“언급할 가치도 없는 더러운 작자입니다. 도련님이 허락해주시면 제 손으로 숨통을 끊어버리고 싶군요.”

어지간해서는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그가 적의를 숨기지 않으며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과거에는 오필리아에게 몹쓸 짓을 하려고 했고, 최근에는 딸인 이리나에게까지 추근거리는 호색한이다 보니 가장으로서는 갈아 마셔도 속이 시원치 않은 더러운 해충에 불과했던 것이다.

“걱정하지 않아도 녀석은 이번 전쟁에서 자신의 업보에 어울리는 최후를 맞이할 거야. 천년 가문의 이름을 걸고서 맹세하지.”

“후후후후. 그렇다면 도련님에게는 더 큰 충성으로 보답해야겠군요.”

리한의 대답에 흡족한 웃음을 터트리면서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그자가 배후라면 어째서 이런 일을 사주했는지는 모르겠군요. 민심을 악화시키기만 할 텐데 말입니다.”

“당연히 그렇겠지. 녀석의 작전은 실패했으니까 말이야.”

“실패라고요?”

루돌프가 놀란 표정으로 되물어보자 뒷짐을 지고서 자리에서 일어난 그는 잠시 생각을 정리하는 것처럼 뜸을 들이다가 입을 열었다.

“스스로 이런 말을 하는 것도 우습지만 나는 지금까지 일어난 명분 싸움과 여론전에서 압도적인 승리를 거뒀다. 이유가 뭔지 아느냐?”

“영결식장의 폭로 때문이 아닙니까?”

“사건 하나로 보면 그게 결정적이기는 하지. 하지만 그건 구체적인 성공 요인이 아니야. 나는 누구라도 알 수 있는 간단한 선과 악의 대립 구도를 만들어냈고 표적화에 성공했다. 만악의 근원은 돌로레스이며 그녀의 범죄에 가담하는 것은 용서할 수 없는 행위라는 사실을 각인시켰기 때문에 사람들이 나를 지지해주는 거야.”

“…그렇군요.”

충성파의 대다수가 래리를 편들지 못하고 중립을 선언한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이었다.

왜냐면 귀족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자신의 체면이었고 악의 축으로 지목당한 돌로레스를 도와서 오명을 남기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면 오히려 역효과가 아닙니까? 그렇지 않아도 충성파의 평판이 바닥에 떨어진 마당에 군대를 동원해서 시위에 참여한 사람들을 학살하다니 그래서야…”

“맞아. 제니아의 민중 전체가 분노하겠지. 귀족의 군대가 학살을 자행했다는 소문이 퍼지면 돌로레스 한 사람이 아니라, 귀족 사회 전체를 향한 분노가 활화산처럼 끌어 오를 테고 말이야.”

“…서, 설마 하이잘의 노림수라는 것은???”

늙은 요물의 속셈을 알아차린 루돌프의 눈동자가 세차게 흔들렸다.

“바로 그거야. 녀석은 내가 만든 구도를 슬며시 비틀어버리려고 했어. 이 전쟁이 단순한 집안싸움에 불과하다면 중립을 선언해도 나무랄 사람이 없지만, 봉건 제도 자체를 무너트리기 위한 민중 봉기로 발전한다면 양상 자체가 완전히 달라져 버리니까 말이야.”

충성파는 물론이고 귀족 대다수가 이해관계자로 바뀌어버리는 셈이다.

대의는 민중에게 있을지라도 압도적인 군사력과 힘을 가지고 있는 기득권을 정면으로 쓰러트리는 것은 불가능한 일.

하이잘은 일부러 사태를 크게 키워서 리한을 귀족 사회 전체의 공공의 적으로 만들어버리려고 했던 것이다.

“빌어먹을 개자식. 정말로 상종 못 할 역겨운 늙은이로군요. 하지만…아까 말씀하시기를 이 전략은 실패했다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맞아. 이게 전부 방송에 출연해서 난동을 부려준 콜라라는 관종 덕분이지. 솔직하게 말해서 고마울 정도야. 녀석이 아니었다면 성난 민심을 달래느라고 상당한 곤욕을 치를 뻔했어.”

“그건 또 무슨…”

“후후후후. 그 대답은 오늘 저녁 인터뷰의 즐거움으로 남겨두도록 하지.”

****

저녁 8시.

리한은 인터뷰를 시작하기 전에 아카이아에서 일어난 사건 보고서를 입수할 수가 있었다.

현재까지 확인된 사망자의 숫자는 대략 6천여 명.

부상자는 두 배가 넘고 아무런 이유도 없이 체포된 사람만 2천 명을 넘어간다고 한다.

하지만 이것은 정보 길드를 통해서 입수한 초기 조사 자료였으며, 새로운 시신과 피해자가 현재 진행형으로 늘어나고 있었기 때문에 정확한 피해 규모가 얼마나 될지는 가늠하기도 어려울 지경이었다.

그야말로 도시 하나가 통째로 박살 나버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대참사.

제니아 전체가 아카이아에서 일어난 학살의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원래는 녹화 방송으로 진행할 예정이었던 리한의 인터뷰는 기자단을 초청하여 대대적으로 이루어지게 되었다.

그는 조의를 표하는 검은색 상복 차림으로 시작부터 허리를 숙였다.

“우선…천년 가문의 후계자로서 이런 비극이 일어나게 된 것에 사죄의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찰칵, 찰칵, 찰칵, 찰칵, 찰칵!!

처음부터 이례적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모습에 쏟아지는 플래시 세례.

[어째서 후계자님께서 사과하시는 겁니까?]

[이번 사건에 무슨 관련이라도 있는 건가요?]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가문의 수치는 저 자신의 수치이기도 합니다. 천년 가문의 통치 아래서, 저렇게 잔악무도한 무뢰배들이 명예롭고 긍지 높은 귀족을 자처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제 부덕의 소치입니다.”

찰칵, 찰칵, 찰칵, 찰칵, 찰칵, 찰칵!!!!

신문 기사의 타이틀로 대서특필할만한 발언이었기 때문에 한층 요란한 소란이 일었다.

[그렇다면 이 학살이 귀족 전체…충성파의 의사 표현이 아니라는 말씀입니까?]

“당연합니다. 실제로 오르드리에서 일어난 군중 시위도 잠시 무력 충돌로 이어졌습니다만 곧바로 명령 철회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까? 숙부 또한, 그 사건 이후로 재차 전군에 공문을 보내서 시위대와 충돌하는 것을 엄금하라는 명령을 내렸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웅성웅성­

예상하지 못한 발언에 현장에서는 소란이 있었다.

[지금 말씀은 자칫 래리님을 적으로 생각하고 있지 않다는 것처럼 들릴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제대로 이해하셨군요. 세상에 그 누가 뭐라고 해도 숙부는 저에게 있어서 숙부입니다, 비록 라프텔 호수의 사건을 일으킨 책임이 있고 응당한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가족의 인연까지 잘라낼 생각은 없습니다. 사람으로서 당연한 도리니까요.”

기자는 납득했다는 듯이 자리에 앉았고 다음 질문이 이어졌다.

[그러면 이번 사태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두말할 필요도 없겠죠. 이미 범인 스스로가 성명을 발표하지 않았습니까? 랭캐스터 연합. 그들에게 이번 학살의 모든 책임을 물어야만 할 겁니다.”

웅성웅성­

다시 한번 기자단이 술렁거렸다.

그리고 그들 사이에서 한 여성이 조용히 손을 들어 올리자 모두의 시선이 그녀에게로 몰렸다.

[하지만 랭캐스터 연합은 전체 인원이 스무명 정도밖에 되지 않는 귀족 청년들의 사교 모임이라고 들었는데요?]

웅성웅성

[혹시 알고 있었어?]

[아니, 처음 듣는 이야기인데?]

[터무니없는 정보력이네. 도대체 누구야, 저 여자는?]

[멍청아. 기자라는 새끼가 그것도 몰라?소냐잖아, 소냐! 제니아 방송국 소속의…]

[소냐? 설마 앵커리지 공화국의 그 전설적인 기자가 오팔 왕국으로 활동 무대를 바꿨다는 소리야?]

대부분이 활자 매체에 의존하는 신문사 기자들이었기 때문에 그녀의 등장을 상당히 놀라워하는 눈치였다.

“네, 말씀하신 그대로입니다. 원래는 랭캐스터 기사단이라는 이름이었습니다만 아주 최근에 이름을 바꾼 모양이더군요.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해서…이 학살을 공모하기 바로 직전에 말입니다.”

웅성웅성웅성웅성!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