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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72화 〉 (H이벤트 포함)전쟁 준비(2) (272/429)

〈 272화 〉 (H이벤트 포함)전쟁 준비(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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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에 이종족 자유민의 숫자는 공화국 전체 인구 비율의 2%였다. 시민권 심사가 엄청나게 까다롭다는 사실은 감안해도 결코 적은 숫자라고 할 수는 없지.”

“네…”

파냐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종족 출신이 시민권 심사에 합격할 확률은 0.005%

인간과 비교하면 터무니없이 엄격한 조건을 요구하고 있지만 아예 대놓고 노예, 비국민, 2등 국민으로 취급하는 대다수의 나라에 비하면 이것마저도 관대한 편이었다.

“하지만 그게 제국이 두려워하는 것과 무슨 관련이 있는 거죠?”

“꼭두각시 노예군이야.”

중간에 끼어든 소월이 말을 받았다.

“…꼭두각시 노예군이요?”

“그래. 사회의 극심한 혼란과 갈등, 분열을 초래하는 모든 골칫덩어리 이종족의 사유재산과 시민권을 박탈하고 국가의 명령에 무조건 복종하는 꼭두각시 노예군으로 만들어 버리자는 주장이 있었어.”

“누가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시작은 군인 출신의 극우 정치인들이었지. 네 말대로 단순한 헛소리로 끝나버렸으면 좋았을 테지만…”

“어떤 여론 기관에서 조사한 바에 의하면 찬성한다는 의견이 68%였다고 하더군.”

“68%…”

터무니없는 수치에 말문이 막혀버리고 말았다.

이만한 지지를 받는 주장이라면 포퓰리즘에 영합하는 정치, 언론이 달라붙은 것은 당연한 수순.

“명분은 대를 위해서 소를 희생하자는 거였어. 유레시아 대륙에는 아직도 절대다수의 선량한 인간들이 전제 국가의 압제자들에게 부당하게 탄압당하고 있고, 그들을 전부 해방시키려면 아무리 군대가 많아도 모자라니까.”

당연한 소리지만 전제 국가의 필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테르할 제국으로서는 모골이 송연해지는 주장이 아닐 수 없었다.

“게다가 이종족 노예군을 전쟁터에서 고기 방패로 사용한다면 자국의 소중한 인간 군인들의 희생도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지.”

“하지만 그건 우리 이종족을 단순한 소모품으로밖에 보지 않는다는 소리잖아요!!”

“아직도 몰랐니? 그들에게 우리는 단순한 몬스터에 불과해.”

“!!!”

“인간들은 이종족이 천 명, 만 명이 죽어 나가도 눈썹 하나도 까딱하지 않아. 하지만 실수로라도 인간 하나를 다치게 하면 흉악한 몬스터가 마침내 본색을 드러냈다고 언론에서 난리가 나지. 그게 세계 최고의 이종족 권리를 보장한다는 앵커리지 공화국의 현재 주소라는 거야.”

“그건…”

파냐는 대꾸할 말을 찾아내지 못했다.

왜냐면 굳이 특별한 사례를 꺼낼 필요도 없을 정도로 자신이 살아오면서 보고 들은 것만으로도 수많은 케이스가 뇌리를 스쳐 지나갔기 때문이다.

인간 사회에 뿌리 깊이 자리 잡은 이종족 혐오.

역사적으로 보면 끝없이 영토를 빼앗기고 주권을 침탈당한 피해자인데도 불구하고 승자의 적반하장은 끝을 몰랐던 것이다.

리한은 그런 그녀를 쓰다듬어주고 다시금 설명을 이어나갔다.

“이쯤에서 본론으로 돌아가자면 국회에서 발의한 이종족 특별 자치구의 설립은 꼭두각시 노예군을 창설하기 위한 포석이라고 봐도 무방했어. 법안이 통과되는 것과 동시에 즉각적으로 효력이 발휘되어서 공화국 내부에 체류하는 모든 이종족의 출국을 차단, 권리를 박탈하고 격리구역으로 끌고 갈 예정이었으니까 말이야. 사유재산은 몰수당하고 신병은 구속되는 거지. 그러면 남은 수순은…”

꿀꺽.

“집단 세뇌…”

“아무리 그때가 공화국의 국력이 절정을 자랑하는 시기였다고 해도 터무니없는 스케일이기는 하다는 말이지. 어림잡아도 수천만에 육박하는 이종족을 어떻게 꼭두각시로 만들 생각이었는지.”

“방법이 있었어요.”

그가 의문을 표시하자 소월이 한숨을 쉬면서 입을 열었다.

“울트라 X. 공화국의 연금술사들이 개발한 불법 약물이 있었죠. 코스트 측면에서 종래의 세뇌 기술하고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저렴했어요. 대신 후유증이 어마어마했지만 그런 것을 신경 쓰는 사람들이 아니었으니까요…”

“흐음, 거기까지는 몰랐는데 말이야. 제국의 첩보부는 파악하고 있었던 모양이군.”

“로티나님이 등장하기 전에도 인적 자원 자체는 다른 국가와 비교가 되지 않는 나라였으니까요.”

“그렇군.”

“…”

태연한 얼굴로 터무니없는 이야기를 주고받는 두 사람에게 잠시 주눅이 들어버린 파냐였지만 이내, 뭔가를 결심한 것처럼 호흡을 가다듬고서 마침내 외면하고 있었던 모친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래서…법안 통과를 막으려고 제국 첩보부와 손을 잡았던 거야?”

“…다른 선택지가 없었어.”

“거짓말! 공화국이 그런 끔찍한 짓을 하려고 했다면 다른 나라로 떠나버렸으면 됐잖아! 인간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어딘가를 찾아서…”

“그게 도대체 어디인데?”

“뭐???”

“너는 모르겠지만…이종족에게 시민권을 발급해주는 나라는 동, 서양을 막론하고 손에 꼽을 정도로 적어. 게다가 취득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아무리 짧게 잡아도 30년이야! 그동안 환영받지 못하는 이방인으로 국경 근처에 마련되어 있는 열악한 격리구역에서 살아야 해. 먹고 살기 위해서 터무니없는 중노동을 강요당하면서 말이야!”

“그리고 인간들을 피해서 숨어서 사는 것도 여의치는 않지. 이 세상에는 그런 이종족들을 노리는 노예 사냥꾼들이 넘쳐나거든. 전투력 자체는 보잘것없더라도 녀석들의 추적 기술은 보통이 아니야. 게다가 엄청나게 끈질기지. 다양한 요술을 사용할 수 있는 그녀 혼자라면 모르겠지만 아무런 힘이 없는 바니족 남편과 갓난아기인 너까지 데리고 도망치는 것에는 무리가 있었겠지.”

“그럴 수가…그렇다면 결국에는 내가 걸림돌이었기 때문에…”

“걸림돌이 아니야!!”

소월이 딸의 손을 덥석 붙잡으면서 소리를 질렀다.

“엄마는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 용기를 냈어! 그런 힘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네 덕분이었어. 그렇지 않았다면 진작에 도망쳤을 거야.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되거나 말거나 상관하지 않고 몇 번이라도, 몇 번이라도…앵커리지 공화국의 이종족들은 네가 있었기 때문에 지켜진 거야!!”

“엄마…”

“뭐, 조금 과장된 표현이기는 하지만 틀린 소리라고 할 수도 없지. 특급 암살자의 실력이라면 당시의 첩보부에게는 엄청난 도움이 되었을 테니까.”

리한이 감동적인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으면서 그렇게 말했다.

“크흠, 크흠! 그, 그러면 어째서 곧바로 돌아오지 않았던 거야? 특별법 법안 통과를 무산시킨 시점에서 손을 끊었으면 되잖아.”

“그건…”

“악마하고 계약했다고 하지 않았느냐? 돌아오고 싶어도 돌아올 수가 없었다는 거지.”

“악마의…계약이라고요?”

“제국의 첩보부는 요원들이 조직을 배신하지 못하도록 특별한 조치를 하는 것으로 유명해서 말이야. 폭스 하운드의 경우에는 오딘 소이라는 이교도 신의 계약으로 금제를 걸어놓았지. 물론, 그렇게 요란한 조치를 하는 것은 아주 특수한 케이스지만 말이야.”

“거, 거기까지 파악하고 있다니…”

소월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 그게 정말이야? 엄마?!”

“…안타깝지만 전부 사실이야. 심장에 마도구가 연결되어 있어. 한 달에 한 번 조직으로 돌아가서 조치를 받지 않으면…이래서 말하고 싶지 않았던 건데…”

“어떻게 그럴 수가! 어떻게 사람의 몸에 그렇게 끔찍한 조치를…흐흐흐흐흑”

“아니야. 엄마가 미안해…엄마가 모자라서 우리 딸이 그렇게 끔찍한 일들을 겪어야 했다니…크흐흐흑!”

오랜 세월의 흉금을 털어놓고 마침내 극적으로 화해하는 데 성공한 모녀가 서로를 얼싸안으면 뜨거운 눈물을 흘렸지만, 리한은 그런 감동적인 장면이 지루해서 견딜 수가 없다는 것처럼 늘어지게 하품을 했다.

“하아아아암~아직도 멀었느냐? 이렇게 결말이 뻔하게 보이는 이야기에 도대체 얼마나 쓸데없이 시간을 낭비하는 건지…”

“후, 후계자님!”

“이런 피도 눈물도 없는 괴물 같으니라고! 아무리 잔인한 인간이라도 어느 정도는 동정심이라는 것을 가지기 마련인데 어떻게 이런 상황에서까지 그렇게…”

“아니. 그래도 말이야.”

그는 귓가를 후비적거린 다음에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이미 네 심장에 달라붙어 있는 마도구는 제거를 했거든.”

“…뭐?”

잠시 동안, 뇌의 활동이 정지해버린 소월이 멍청한 표정으로 되물어 왔다.

“폭스 하운드의 건도 있고 은요호 기관의 암살자라면 당연히 신체검사부터 해야지. 처음에 힘을 봉인했을 때 마도구도 같이 제거해놨어. 폭스 하운드의 금제도 해제를 해줬는데 너처럼 가벼운(?)조치는 아무것도 아니지. 참고로 그녀들도 지금은 모두 다 내 부하야.”

“…뭐???”

더더욱이 멍청한 표정이 되어버리는 그녀.

아무래도 뇌의 처리속도가 현실 인식을 제대로 따라잡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그러니까 너는 이제 자유라니까?”

“엄마!!!”

비교적 빠르게 상황을 받아들이고 모친을 와락 끌어안으면서 뛸 듯이 기뻐하는 파냐.

하지만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다.

“아, 생각해보니까 표현을 잘못했네. 왜냐면…”

리한은 두 사람을 다시 한꺼번에 끌어안았다.

“너희들은 이제 내 소유물이니까 말이야.”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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