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7화 〉 (H이벤트)MOON WORK(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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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한은 원래 소냐에게 손을 댈 생각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카밀라에게 넘겨받은 자료에 따르면 그녀의 외모는 평범함 그 자체.
어디에나 있을법한 흔해빠진 아줌마였기 때문이다.
중년 여성이라고 해도 오필리아처럼 매력이 넘치는 사랑스러운 여인이라면 얼마든지 하렘의 구성원으로 받아들일 수 있지만, 기준에 미달하는 대상은 그저 이용할 대상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소냐의 진짜 정체가 드러나는 것과 동시에 파란 하늘에 묻어버렸다.
둔갑술이 풀리면서 나타난 사랑스러운 토끼 귀의 미소녀.
어머니가 아니라 자매라고 불러도 좋을 정도로 파냐하고 쏙 빼닮은 모습이지만 차이가 있다면 기다란 두 귀와 머리카락이 예쁜 윤기가 흐르는 검은색으로, 전체적으로 더 슬림하고 늘씬한 체형을 가지고 있었다.
덕분에 자신의 딸보다도 어려 보이는 풋풋한 외모.
어려 보인다고 해도 합법 로리라고 표현할 정도는 아니지만 굳이 비유하자면 학창 시절에 남학생들에게 동경의 대상으로 군림할 법한, 스타일 좋고 지적인 흑발 롱헤어의 바니걸 선배라는 느낌이었다.
“…보아하니 기존의 프로필 데이터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을 것 같군.”
화르르르륵!
리한은 카밀라에게 건네받은 그녀의 신상 정보 문서를 모닥불이 활활 타오르는 벽난로 속으로 던져버렸다.
“어차피 소냐라는 이름도 가짜일 테지?”
“…너 따위에게 가르쳐줄 이름은 없다.”
검은 바니걸이 이를 악물고 대답해 왔다.
“후후후후. 코너에 몰린 주제에 쓸데없이 고집을 부리는구나. 뭐, 좋아. 대답하기 싫다면 자신의 딸이 눈앞에서 어른의 계단을 오르는 모습이나 지켜보도록 해라.”
“하윽!”
움찔!
유두를 꼬집힌 파냐가 가냘픈 신음을 토해내자 그녀의 표정이 악귀 나찰처럼 일그러졌다.
“인질을 잡다니 비겁한 녀석!”
“인질이라니 장래에 사위 될 사람에게 말을 너무 험악하게 하는군, 장모님? 한창 피가 끓어오르는 청춘 남녀가 서로 물고 빨고 하다 보면 속도위반도 하고 사고도 치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지. 손주도 빨리 볼 수 있고 말이야. 그렇지, 파냐?”
“하으으윽♡ 후계자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이 무조건 옳아요, 토끼이이잇!”
이미 정상적으로 사고 판단이 불가능해서 무슨 말을 하든지 yes!를 외치는 그녀.
이런 딸의 모습에 검은 바니걸은 주먹에서 피가 나올 정도로 강하게 부들거렸다.
“누, 누가 네놈의 장모라는 거냐?! 지금 당장 내 딸의 가랑이 사이에서 그 더럽고 불결한 물건을 치워라!!”
우뚝
이 말을 들은 리한이 눈살을 찌푸렸다.
“머리가 제법 좋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군. 사랑스러운 그녀를 봐서라도 좋게좋게 말로 해결하려고 했더니 말이야. 자기가 지금 어떤 처지에 있는지 모르는 거냐?”
“큭!”
딸은 인질로 잡혔고 자신도 적에게 패배해서 이 모양 이 꼴이다.
단독 작전이었기 때문에 외부의 조력은 기대할 수 없는 데다가 마나가 봉인 당하는 바람에, 비장의 수단이라고 할 수 있는 도술마저도 사용할 수가 없는 외통수 상태.
“아직도 그따위 표정을 지으면서 이를 갈다니 정말로 혼쭐이 나봐야 정신을 차릴 모양이군.”
“자, 잠깐!”
“뭐지?”
스노우 글로브에서 악마를 소환하려고 하던 리한은 잠시 실행을 멈추고 한 번만 더 기회를 줘보기로 했다.
“…네 말이 맞다. 목숨을 취하려고 찾아온 암살자 주제에 이런 요구를 하는 것을 뻔뻔스럽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 하지만 내 딸은…제발 내 딸에게만은 더 손을 대지 마라! 나에게는 무슨 짓을 해도 좋으니…”
“거절하지.”
“뭣?!!”
“매력적인 제안이기는 하지만 나는 내 여자를 교섭 대상으로 올리지 않는 주의라서 말이야.”
“큭! 나의 매력으로는 딸에게 미치지 못한다는 소리냐?”
“아니 그런 뜻은 아닌데…”
“하기야 그럴 만도 하지. 우리 파냐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럽고 귀엽다는 것은 우주의 섭리이자 절대불변의 진리니까 말이야. 지상에 강림한 천사를 눈앞에 두고서 나 같을 것 따위가 시야에 들어올 리가…”
‘이 녀석,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극심한 딸 바보잖아?’
황당함을 금할 수가 없었다.
“한 가지 확실하게 해두자면 나는 파냐를 억지로 범할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다.”
쿠구구궁!
“뭐, 뭐라고?! 네 녀석. 그러고도 남자라고 할 수 있느냐?!”
“그러면 범할까?”
“당연히 안 되지! 우리 딸의 털끝 하나라도 건드렸다가는 죽을 때까지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어쩌라는 거지?’
털끝 하나가 아니라 이미 눈앞에서 처녀까지 빼앗은 상태이기는 했지만 리한은 굳이 상키시키지 않고 말을 이어나갔다.
“크흠, 너도 알고 있을 테지만 파냐는 원래부터 나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었다. 게다가 연애 경험이 없어서 남자에게 내성이 없고 밀어붙이는 것에도 대단히 약하지. 그녀와 사랑을 나누는 것이 목적이었다면 이렇게 눈가리개를 사용해서 속임수를 사용할 필요가 없었다는 소리다!!”
‘거짓말! 완전히 신바람이 나서 즐겼으면서…’
입에 침도 바르지 않는 그의 뻔뻔함에 카메라로 모든 진실을 기록하고 있었던 란란이 속으로 절규했지만 소냐, 아니 정체불명의 검은 바니 걸은 엄청난 사실을 깨닫고 충격을 받은 것처럼 비틀거렸다.
“그, 그럴 수가! 그렇다면 네놈이 파냐를 괴롭히고 희롱한 이유는 전부 나를 끌어내기 위한 함정이었다는 소리냐?”
“바로 그렇지.”
털썩!
“내, 내가 도대체 무슨 짓을…”
리한의 블러핑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소리였다.
처음에 그가 파냐를 자신의 인터뷰에 초대한 이유는 오직 귀여운 바니걸과 알콩달콩(?)한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자연스럽게 무드를 잡아서 침대로 이끌 생각으로 가득하기는 했지만 이렇게 억지로 범할 예정은 없었다.
이 상황에 소냐라는 가공의 인물로 자신의 신분을 위장하고 있던 그녀가 걸려들게 된 것은 완벽한 우연.
듣자 하니 처음부터 이렇게 무모하기 짝이 없는 암살을 시도할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었다고 한다.
“…육미호님은 야월과 폭스 하운드가 네놈에게 무슨 수법으로 당했는지 몰라서 상당히 경계하고 있었다. 정확한 원인과 대응책을 찾아내기 전까지는 섣부르게 손을 대지 말라고 하셨다만…자신의 딸이 무슨 이유로 지명을 당했는지 모르는데 세상에 어떤 어머니가 가만히 있을 수 있겠느냐!!”
“하지만 그게 오히려 역효과였지. 네가 쓸데없이 벌집만 건드리지 않았어도 인터뷰를 마치고 순순히 돌려보냈을 텐데 말이야.”
“크으으으윽!”
당연히 거짓말이었다.
이미 자식계획(?)까지 완벽하게 세워놓은 상태였지만 검은 바니걸의 멘탈을 무너트리기 위해서 더 뻔뻔하게 나가는 리한.
실제로 그녀는 자신의 딸이 무소불위의 힘을 가지고 있는 막강한 권력자에게 호출당했다는 사실에 머릿속이 새하얘져서, 사나그에 암약하고 있는 충성파의 잔당을 허겁지겁 끌어들여서 후계자를 암살하는 계획을 급조해냈다.
완벽한 베스트 플랜은 충성파가 바깥에서 경비대의 시선을 끄는 사이에 인터뷰를 빌미로 잠입해 들어간 자신이 리한을 제거해버리는 것.
도중에 샐리의 상담을 듣고서 그녀에게 모든 죄를 뒤집어씌워 버리기로 마음을 먹었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혼잡한 상황을 틈타서 파냐를 데리고 유유히 빠져나올 생각이었지만 결과는 대실패.
그가 만들어놓은 함정에 보기 좋게 걸려버리고 말았다.
“…별궁의 경비가 이상할 정도로 허술하다는 사실을 알아차렸을 때부터 뭐가 잘못되었간다고 생각하기는 했다. 충성파와 주고받던 연락이 갑자기 끊어졌을 때는 완벽한 실패를 직감했다만…지하 감옥에서 탈출했을 때 딸을 내버려 두고 도주했어야 했던 것인가?”
“그런 선택을 내렸다고 결과가 달라졌을 것 같으냐?”
리한이 웃음을 터트리면서 질을 가리켜 보였다.
그때부터 이미 그녀의 정체를 알아내서 몰래 마크하고 있었던 상태.
지하 감옥의 독방에 수용하기가 무섭게 기묘한 도술을 사용해서 분신을 만들어내고 몰래 빠져나가는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그림자에 숨어서 지켜보면서 스토킹하고 있었다.
만약에 그녀가 줄행랑을 치려고 했다면 곧바로 체포해버렸을 테지만, 풀려나기가 무섭게 샐리를 무시하고 파냐를 찾아서 별궁을 들쑤시고 다니는 모습을 보고서 두 사람이 특별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었다.
“…그렇군. 처음부터 외통수였다는 것인가? 나는 정말로 최악의 어머니였던 모양이군. 딱 하나뿐인 딸을 지켜내지도 못하고 오히려 궁지에 빠트리다니…”
기다란 검은 귀를 추욱 늘어트리면서 좌절하는 그녀의 모습에 연민(?)을 느낀 리한은 잠시 파냐의 가슴을 주무르면서 고민하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좋아. 그렇게까지 말하겠다면 딱 한 번만 기회를 주도록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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