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3화 〉 (H이벤트)MOON WORK(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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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이 편지를 발견한 루시타는 굉장히 혼란스러웠다.
그것이 침실 베개의 머리맡에 놓여져 있었다는 것은 둘째 치더라도 자신이 돌로레스에게 복수를 꿈꾸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처럼 지시를 내렸기 때문이다.
‘내 연기는 완벽했어. 그렇게 의심이 많은 돌로레스조차 눈치채지 못한 사실을 어떻게 도련님께서…’
그녀가 기억하는 리한이라는 사람은 동생 제이크를 떠올릴 정도로 착해빠진 사춘기 소년이었다.
아주 가끔 날카롭고 예리한 직감을 발휘하거나 생각하지도 못한 일면을 보여주는 경우도 있었지만, 자신에게 대놓고 적의를 드러내며 으르렁거리는 돌로레스에게조차 숙모님이라고 부르며 간도 쓸개도 빼줄 것처럼 깍듯이 대하는 모습은 보기만 해도 저절로 눈살이 찌푸려졌다.
그래서 처음에 이 편지를 살펴봤을 때는 누군가 다른 사람이 작성한 게 아닐까 의심했다.
자신의 심리 상태를 소름이 돋을 정도로 정확하게 꿰뚫어 보면서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냉철한 지시를 내리는 리한.
반면에 계획 자체는 제정신으로 세운 것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허무맹랑하고 말이 되지를 않았다.
그래서 돌로레스가 자신의 충성심을 다시 한번 시험해보려고 꾸민 함정이 아닐까 의심했지만, 그렇게 생각해도 이상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왜냐면 그녀가 자신을 작정하고 속이려고 했다면 마지막 충성시험처럼 훨씬 디테일하고 그럴듯한 거짓말을 늘어놓았을 것이며, 애초에 그렇게 번거롭게 돌아가지 않고 의심스러운 사람은 일단 지하 감옥으로 끌고 가라고 명령하는 것이 그녀의 스타일이었기 때문이다.
제아무리 루시타라도 그 지옥을 두 번 버텨낼 자신은 없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그곳으로 끌려가는 악몽을 꾸면서 잠에서 깨어나며,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서 오장육부를 완전히 녹아내리게 하는 독약을 이빨 속에 임플란트해놓고 다닐 정도다.
그래야 부활 마법을 사용해도 자신을 되살려내지 못할 테니까.
리한은 이런 루시타의 마음을 알고 있다는 것처럼 그녀를 설득해 왔다.
자신이 세운 계획이 농담도 실현 불가능한 계획도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해 보이겠다며 앞으로 일어날 사건과 전개 과정을 편지에 예언처럼 적어놓았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실재로 일어났다.
영결식장의 폭로, 래리의 스톰가드 행, 오르드리 시민의 폭동과 진압군의 충돌, 수도의 충성파가 레스터를 중심으로 뭉쳐서 돌로레스를 현재 상황에서 배제시키려고 할 거라는 것까지.
마치 모든 인간관계의 연쇄작용이 어떻게 일어날지를 훤히 꿰뚫어 보고 있다는 것처럼 예언은 정확하게 맞아떨어졌다.
리한이라는 마에스토로의 지휘에 왕국 전체가 춤을 추는 꼴이다.
그리고 그의 지휘봉이 마침내 루시타를 가리켰다.
예언서의 마지막 대목.
아니, 그것은 틀림없이 자신 따위는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악보 속에서 주어진 최후이자 단 한 번의 역할일 것이 틀림없었다.
궁지에 몰린 돌로레스를 꼬드겨서 사라 방백의 군대를 오르드리로 불러들이라는 지시.
어째서? 왜? 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지만 이유를 유추해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설마 텔파이프의 영주가 리한 도련님과 한통속이라는 건가???’
얼핏 생각하면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가설.
왜냐면 사라 크레이그라는 인물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알고 있다면 손익계산이 빠른 그녀가 그렇게 어리석은 선택을 내릴 거라고 생각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만큼 리한 파벌에게 배팅하는 것은 위험한 도박이었으며.
래리 파벌에게 배팅하는 것이 확실하게 승리를 거머쥘 수 있는 지름길이었다.
게다가 만약에 사라가 오르드리에서 일을 도모할 계획이라면 반드시 넘어서야 하는 장애물이 하나 있었다.
래리의 오른팔, 레스터 장군.
수도방위군의 총사령관이자 왕국에서도 명성이 자자한 명장 중의 명장이었다.
현재 제니아의 군부는 래리가 아니라 그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그의 군대는 뒤통수를 때리기도 어렵고 완벽하게 때려도 무너질 거라는 보장이 없는 강력한 결속력과 규율을 자랑했다.
오히려 섣부르게 일을 도모했다가는 거꾸로 역공을 당해서 독 안에 든 쥐처럼 몰살당할 가능성이 훨씬 더 높다.
최후의 수단으로 돌로레스를 인질로 잡아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것도 잠시 대치상황을 만들어낼 수 있을 뿐이지 결정적인 승리로 이어진다는 장담이 되지는 못한다.
왜냐면 래리가 우유부단하다고 해서 그의 오른팔인 레스터까지 그런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의 성정이라면 나중에 책임을 물어서 사형당하는 한이 있더라도 망설이지 않고 적과 인질을 모조리 몰살해버리는 명령을 내릴 터.
이렇게 고지식한 성격 때문에 나는 새도 떨어트리는 돌로레스조차 레스터를 함부로 대하지 못했으며 래리도 안심하고 스톰 가드에 틀어박힐 수가 있는 것이었다.
마누라를 피하기 위한 극단의 꼼수.
이런 엄청난 리스크를 감수해야 하기 때문에 사라 방백의 군대가 오르드리에 주둔한다고 해도 래리에게 뒤통수를 치는 어리석은 행동을 감행할 거라고 생각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완전히 속아 넘어간 돌로레스는 신이 나서 자신의 독단으로 연락을 취해버렸고 충성파는 혼란에 빠졌다.
그녀가 멋대로 행동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기는 했지만 사라 방백과 손을 잡는다는 계획 자체는 괜찮게 들렸기 때문이다.
전쟁에서 든든한 우방이 안전하게 후방을 지켜준다면 그것보다 마음이 편해지는 것도 없다.
이 소식을 전해 들은 래리는 어차피 일어난 일인 데다가 의외로 나쁘지는 않은 발상이라며 고개를 끄덕여 버렸고, 레스터는 돌로레스의 친위대가 생긴다는 사실을 언짢아하며 반대했지만 결국에는 주군의 의중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사라 방백의 군대가 도착하는 것은 앞으로 2주 후.
그야말로 아무도 의심하지 못할 복병들이 심장부로 숨어들어오는 셈이었다.
“당신을 믿겠습니다, 리한 도련님. 부디…저를 실망시키지 말아주십시오.”
루시타는 동생의 사진이 들어가 있는 비밀 로켓을 만지작거리면서 간절한 목소리로 조용히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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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그렇게 소원을 빌고 있을 무렵.
리한은 파냐에 대한 취조를 진행하고 있었다.
“후, 후계자님. 토끼.”
“왜 그러지?”
“한 가지 궁금해서 그러는데요. 토끼.”
“후후후후. 바니족답게 호기심이 많구나. 커다란 귀를 그렇게 쫑긋거리면서 말이야.”
“귀, 귀는 상관없잖아요! 토끼…”
그의 지적에 부끄럽다는 듯이 양손으로 기다란 자신의 귀를 감쌌다.
“다른 곳으로 새지 말고 이야기해라. 뭐가 궁금하다는 거지?”
“그, 그러니까…제가 심문을 받아야 하는 이유는 알겠는데…어째서 하필이면 이런 복장을 입어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아서요. 게다가 말끝에는 반드시 토끼라는 단어를 붙이라니. 토끼…”
바니걸 복장을 입은 그녀가 눈물을 글썽거리면서 질문해 왔다.
솜사탕처럼 몽실몽실한 분홍색 머리.
그 위로 쫑긋이 솟아오른 새하얀 귀.
목에는 보타이, 바닥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깊숙한 가슴 골짜기를 코르셋으로 단단히 조여 매고 있었지만, 다이아몬드 형태의 가슴 패드가 금방이라도 떨어져 나올 것처럼 유두에 매달려 있는 모습이 위태롭기 짝이 없었다.
그리고 남자의 꿈과 로망을 자극하는 그물 형태의 망사 스타킹 속에서 압도적인 볼륨감을 자랑하는 탐스러운 과실이 두 개.
마지막으로 엉덩이 골짜기 사이에 있는 토끼 꼬리가 완벽한 차밍 포인트였다.
그야말로 완벽한 바니 걸.
“어울리는군.”
“어, 어울리나요? 칭찬은 감사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말꼬리에 토끼를 붙이라고 하지 않았느냐? 심문이 지금 애들 장난으로 보이는 것이냐?!!”
“죄, 죄송합니다. 토끼이이이!!”
무섭게 윽박지르자 눈물을 글썽거리면서 사죄해 왔다.
“알아들었으면 되었다. 지금부터 본격적으로 심문을 시작할 테니까 저기에 있는 취조대로 올라가도록 해라.”
그렇게 말하면서 리한은 어쩐지 러브호텔에나 있을 법해 보이는 핑크핑크한 하트 모양의 침대 위를 가리켜 보였다.
“어째서 침대가 여기에…토끼.”
“어서 올라가기나 해라! 아니면 따듯한 침실이 아니라 차가운 지하 감옥에서 취조를 받고 싶은 것이냐?!”
“아, 아니에요! 토끼!!”
소스라치게 놀란 파냐가 허둥지둥 올라가서 무릎을 꿇고 정좌를 했다.
“편하게 앉도록 해라.”
리한의 말에 다리를 옆으로 누이면서 여자 앉기 자세를 취했다.
그가 신호를 보내자 요정의 마법으로 조용히 커다란 카메라를 운반해 오는 란란과 린린.
“촬영 시작하겠습니다!”
“촤, 촬영이요, 토끼?”
“단순하게 취조 내용을 기록하려는 것뿐이니까 의식하지 말도록 해라.”
그런 것치고는 카메라 포커스가 지나치게 자신의 가슴과 다리로 향하고 있다는 기분을 느끼는 파냐였지만, 심문을 당하고 있는 처지였기 때문에 아무런 불만을 토로하지 못하고 조용히 있을 수밖에 없었다.
“후후후후. 그러면 본격적으로 인터뷰를 시작해 보실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