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2화 〉 (H이벤트)MOON WORK(3)
* * *
“무조건 복종…나만의 군대.”
최면에 걸린 사람처럼 중얼거린 돌로레스는 끌어 오르는 전율을 주체할 수 없는 것처럼 고개를 쳐들어 올리며 미친 사람처럼 파안대소했다.
“후후후후, 후후후후. 하하하하하하하! 그래, 바로 내가 원하는 것이 이런 거였어. 정말로 고마워, 역시 자기가 최고야! 이히히히히. 아하하하하하하하하하!!!”
“당신의 도움이 되었다면 다행입니다.”
“물론이고말고. 덕분에 10년 묶은 체증이 한꺼번에 내려가는 기분이야! 그동안 여기에서 시집살이하는 게 어째서 이렇게 답답하고 짜증이 났는지 몰랐었는데, 그게 다 나에게 복종하는 군대가 없었기 때문이었어! 빌어먹을 래리, 그 인간이 내가 하려는 일마다 사사건건 훼방을 놓잖아!!”
부르르르르
진심으로 분하다는 것처럼 주먹을 쥐며 떠는 모습이 적반하장이라는 표현이 저절로 떠올랐지만 메이드장은 내색하지 않으며 몰래 조용히 실소했다.
“제니아의 봉쇄를 해제하겠어. 그래도 아르고스 라인의 모든 기능을 정지시킬 필요는 없겠지? 텔파이프로 연락하려면 통신 방해만 해제하면 되잖아.”
“맞는 말씀입니다. 거기에 사라 방백의 군대가 준비되는 타이밍에 맞춰서 장거리 공간이동을 가능하게 해주면 혹시 모를 다른 세력의 개입을 원천적으로 봉쇄하고 지원군도 신속하게 오르드리에 도착할 수가 있겠죠.”
“좋아! 역시 똑똑하다니까?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그렇게 하기로 했으면 지금 당장 관제센터로…자, 자기? 안대에서 피가 흘러내리는데 괜찮은 거야?!”
주르르르륵
뺨을 타고 흘러내리는 피를 보고 놀란 돌로레스가 외쳤다.
하지만 정작 자기 자신은 눈썹 하나도 까딱하지 않는 루시타.
“후후후후. 당신에게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하니 저도 모르게 기뻐서 눈물이 나온 모양입니다.”
“하여튼 못 말린다니까♡그래서 내가 자기를 좋아하는 거지만…아쉽게도 이런 상태로 동행할 수는 없겠네.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어서 가서 치료부터 받아.”
“명령이라면 따르겠습니다. 하지만 뭐처럼 당신께서 멋지다고 해주신 스타일을 포기해야 한다니 안타깝군요.”
“안대가 그렇게 마음에 드는 거야? 후후후후. 뭐, 솔직히 어울리기는 하지만 말이야. 그래도 깨끗하게 치료하고 돌아오도록 해. 코스프레를 하고 싶다면 침대 위에서 해도 되고 말이야. 게다가…”
덥썩
어깨를 붙잡고 귓속말로 조용히 속삭였다.
[나는 내 물건에 흠집이 생기는 것을 싫어한단 말이야.]
“…명령에 따르겠습니다.”
예의 바르게 허리를 숙이며 대답한 루시타는 신이 나서 흥얼거리는 돌로레스를 뒤로, 목발에 의지해서 절뚝거리며 방을 나갔다.
딸랑딸랑!
복도 바깥으로 울려 퍼지는 종소리.
긴급 소집이 떨어지자 근처의 대기실에 머무르고 있는 수많은 하인, 하녀들이 바깥으로 쏟아져 나왔다.
우르르르르
오와 열을 맞춰서 일사불란하게 속보로 이동하는 모습은 군대를 방불케 했다.
마주 오는 루시타를 발견하고 가벼운 목례를 하면서 지나쳐 갔다.
하나같이 두려워하는 기색이 역력한 표정.
심기가 불편한 주인마님께서 이번에는 또 어떤 불호령을 내릴지 걱정하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돌로레스를 옆에서 섬기며 그렇게 공포를 느낄 수 있는 감정이 남아있다는 사실만으로소 행복한 것이다.
그녀는 자신을 제외한 어느 누구도 믿지 않는다.
친가의 성장 환경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단순하게 의심이 많은 본인의 성격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자신에게 아무런 해를 끼칠 수 없는 열등한 존재(아무런 힘이 없는 일반 하인들)를 제외하면 가까운 측근이 언제, 어떻게 배신할지 모른다고 두려워했다.
그래서 돌로레스는 그런 불안을 떨쳐내기 위해서 그들에게 양자택일을 강요했다.
하나는 인간으로서 모든 존엄과 권한이 박탈당하는 노예구를 착용하는 것.
또 하나는 감정이 존재하지 않는 인형으로 개조당하는 것이다.
물론, 선택권이 주어진다고 해서 자신의 마음대로 고를 수가 있는 것은 아니다.
후자에 당첨된 사람들은 철저한 고문과 세뇌, 약물 조교로 인간성을 모조리 파괴당하고 자신의 의사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 꼭두각시로 재탄생하게 된다.
그렇게 새로운 인간(?)으로 거듭난 자들은 돌로레스에게 가상의 인격과 역할을 부여받아서 질려서 버려지거나 죽을 때까지 충성을 바치게 된다.
그야말로 완벽한 인형 놀이.
루시타 또한 이런 과정을 고스란히 거쳤다.
심지어 자신이 만들어낸 가장 완벽한 피조물이라는 칭찬을 들을 정도로 아끼는 애첩이었으며 헤아릴 수도 없이 몸을 겹치며 뜨거운 밤을 함께 보낸 친밀한 사이다.
하지만 돌로레스는 모르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하고는 다르게 그녀의 자아는 완전히 파괴당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쏴아아아아아
촤아아아악!
세면대에 물을 받은 루시타는 자신의 얼굴로 찬물을 끼얹었다.
“후우우우”
가볍게 한숨을 뱉어내고서 상처를 꼼꼼히 살펴보는 그녀.
안구가 통째로 으깨져 버렸으니 일반적으로는 고칠 수가 없는 것이 상식이지만, 데피리스 교단의 고위 사제가 사용한 그레이트 힐은 다리의 부상은 물론이고 파괴된 신체 기관을 완벽하게 원상복구 시켜주었다.
단점이라면 치료를 받으면 엄청나게 지쳐버린다는 것.
그리고 급격하게 늙는다는 것이었다.
“…차라리 고칠 수 없었으면 좋았을 텐데.”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리는 목소리에 분노가 어렸다.
돌로레스는 자신의 물건에 흠집이 나는 것을 싫어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루시타는 그 표현이 끔찍할 정도로 혐오스러웠다.
어느 정도냐면 영원히 한쪽 눈을 잃어버리게 된다고 해도 그녀가 자신의 흉물스러운 외모에 질려서 표정을 일그러트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정도다.
그녀에게 사랑받는 것, 안기는 것, 잠자리를 같이하는 것, 그나마 남아있는 자아의 한 조각마저 마비되어버릴 정도로 미약에 중독당해서 쾌락에 빠지고 헐떡거리며 울부짖는 모든 행위가 모두 다 역겹고 구역질이 올라왔다.
하지만 여기까지 와서 연기를 중단할 수는 없었다.
모든 것은 복수를 위해서.
달칵
루시타는 품속에서 조그마한 비밀 로켓을 꺼내서 열었다.
“이제 정말로 얼마 남지 않았어, 제이크.”
이제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남동생의 사진.
약간 병약했지만 세상 착하고 자랑스러운 하나뿐인 혈육은 돌로레스에 의해서 처참하게 고문당하고 살해당했다.
그리고 그 이유는 놀랄 정도로 단순했다.
우연히 눈에 띄었던 루시타가 그녀의 취향이었기 때문이다.
소위 말하는 첫눈에 반했다는 것.
하지만 돌로레스가 애정을 표현하는 방식은 끔찍할 정도로 삐뚤어져 있었다.
자신을 완벽한 인형으로 만들기 위해서 가족, 친구, 연인, 소중하게 여기는 모든 것들을 눈앞에서 철저하게 부숴버렸다.
낮과 밤을 구분할 수 없는 지하 감옥으로 끌려간 루시타는 그곳에서 아주 체계적으로 이루어져 있는 세뇌 교육을 받았다.
가혹한 고문으로 하루에도 까무러치기를 수십여 차례.
정신을 천 갈래 만 갈래로 찢어버리는 복종 훈련은 제대로 먹을 수도, 잘 수도 없는 환경 속에서 하루 몇 시간이고 끝도 없이 이어졌으며, 돌로레스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자신의 인간 이하의 가축이라는 선언을 간수와 죄수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알몸으로 몇백 번이고, 몇천 번이고 반복해서 외쳐야 했다.
제정신으로 살아가는 것이 불가능한 환경.
하지만 그곳에서는 불법 약물과 금지마법이 자연스럽게 사용되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의 의지로는 미쳐버리는 것도 목숨을 끊는 것도 불가능했다.
오직 돌로레스에게 복종하는 노예가 되기 전까지는 절대로 빠져나갈 수 없는 악마의 감옥.
루시타 또한 차라리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그녀의 자위 인형으로 살아가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을 수도 없이 해왔다.
그때마다 마음을 다잡아 준 것이 간수들에게 마지막까지 들키지 않은 이 비밀 로켓이었다.
덕분에 최후의 충성시험까지 무사히 통과한 루시타는 돌로레스의 신임을 얻어서 현재의 위치에 오르게 되었다.
살을 섞을 정도로 가까운 사이가 되었지만 그녀는 복수를 곧바로 실행에 옮기지는 않았다.
자신과 동생이 겪은 고통을 생각하면 단순하게 죽여버리는 것으로는 성에 차지 않거니와,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썩어도 무장의 힘을 가지고 있는 돌로레스를 당해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루시타는 그녀를 역사에 남을 희대의 폭군으로 만들어서 천년 가문의 역사와 함께 파멸시켜버리고 했다.
역사의 교훈대로 정상의 자리에서 나락까지 떨어트리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이 계획은 예상하지 못한 인물로부터 받은 편지 한 통으로 송두리째 바뀌어버리고 말았다.
“리한 도련님…”
세상에서 가장 비밀스러운 내부자가 탄생한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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